188화 너란 존재는 정말이지 놀랍구나
실기 수업에 맞춰 집합한 지 대략 3분쯤 지났을 무렵.
무기 단련실의 입구 쪽에서부터 일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름 아닌 진태진 교관과 조교들이었다.
평소와 다를 것 하나 없는 익숙한 면면들 중에서 유독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김재학.’
김재학.
정확히는 우리의 정체를 인식하게 된 김재학이었다.
물론 지금까지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하지만 대면했을 때는 또 어떨지 모를 일이었다.
즉, 확인이 필요한 것이다.
‘과연 어떤 식으로 나올지.’
촉각을 곤두세운 채, 최대한 티가 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김재학을 주시했다.
그사이, 진태진 교관이 생도들을 한차례 훑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들 모였나? 그럼 수업을 시작하지.”
그의 지시에 생도들은 하나둘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성적에 따라 집합했고, 나 또한 친구들과 함께 움직였다.
조교들의 배정 역시 평소와 동일했다.
그때까지도 김재학은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역시 바로 반응할 생각은 없는 건가?’
아무래도 수업 시간에 일을 도모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서일까, 팽팽한 긴장감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방과 후나 저녁 시간에도 충분히 움직일 수 있으니 방심은 금물이겠지만.’
지나치게 심력을 쏟으면 필요한 순간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 적당한 수준으로 김재학의 움직임을 주시하면 될 듯싶었다.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무렵.
저벅저벅-
별안간 김재학이 우리 그룹 쪽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나한테 다가오는 줄 알고 바짝 긴장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알고 보니 김재학의 발걸음은 내가 아니라 진태진 교관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대체 뭐지? 수업에 관한 이야기인가?’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신경 쓰이는 가운데.
어느새 김재학은 진태진 교관과 이야기를 끝마쳤는지, 천천히 한 발짝 물러섰다.
모습을 보아하니, 실제로 수업에 관해 의견을 교환한 듯싶었다.
‘어쩔 수 없는 걸 알지만, 그래도 꽤나 지치는 일이네.’
일거수일투족을 신경 쓰는 건 생각 외로 심력 소모가 심했다.
한숨을 푹 내쉬며 신경을 거둬들이는 사이.
“그럼 지금부터 수업을 진행하도록.”
진태진 교관이 수업을 진행시켰다.
저마다 대련을 시작하는 가운데, 나도 슬슬 준비했다.
바로 그때.
“안일한 생도.”
문득 진태진 교관이 나를 호명했다.
고개를 돌리자 자연스럽게 두 사람과 시선을 마주쳤다.
진태진 교관, 그리고 김재학이었다.
이를 확인한 순간.
‘……내 이야기를 했구나.’
방금 김재학이 짧게 나눈 이야기가 나에 관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오래지 않아 그게 정확히 어떤 내용이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진태진 교관이 자초지종을 설명해 준 것이다.
“냉정하게 봤을 때, 생도는 이미 학습 목표를 달성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수업에서 추구하는 역량을 월등히 상회하는 수준이지.”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지나친 겸양은 모자람만 못하다. 과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순히 생도를 치켜세워 주려 꺼낸 말도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진태진 교관은 한없이 진지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나직한 어조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그러니 생도는 따로 수업을 진행한다.”
“그 말씀은……?”
“김재학 부교관에게 일대일 지도를 받는 거다.”
“……!”
예상치 못한 발언에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런 나를 향해 김재학이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소를 띤 채 설명을 덧붙였다.
“너 정도면 상대가 암수를 쓴다고 해도 어지간한 빌런은 제압이 가능할 거다. A급 초인이란 그런 거니까.”
“……그렇습니까?”
“그래. 오히려 필요한 건 강적을 상대하는 경험이지.”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김재학의 설명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의 속내를 알 수 없게 됐다.
떨떠름했지만 거절할 도리도 없는 까닭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다른 생도들에게 방해가 되면 안 될 테니까.”
김재학은 단정한 어조로 말을 맺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그를 뒤따르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가슴 속에서부터 호승심이 차올랐다.
그래서일까.
‘……기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한번 붙어보자.’
생각보다 빠르게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다른 행동이라면 모를까, 대련이라면 결코 허튼수작을 부릴 수 없을 터였다.
아니, 설령 대련 도중에 무언가 액션을 취한다고 해도 호락호락하게 당해 줄 내가 아니었다.
‘차라리 잘됐다.’
김재학과는 한번 제대로 맞붙어보고 싶었다.
뿐만 아니라 이번 대련은 어젯밤, 새로이 얻은 능력을 시험해 볼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완전히 마음을 다잡은 채로 김재학과 마주 섰다.
그는 마치 몸을 풀듯, 미리 챙겨 둔 워 해머를 가볍게 휘둘렀다.
부웅-!
그러고는 비릿하게 느껴지는 미소로 운을 뗐다.
“그럼 시작하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대답과 함께 코어를 활성화시켰다.
혼원현천신공의 도도한 흐름이 체내를 누비는 가운데.
시작부터 출력을 상당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쿠구구궁-!
온몸에 활력이 용솟음치는 기분 속에서 마나 소모량을 가늠했다.
그것만으로 새로 얻은 스킬, ‘초 진화’의 효과를 체감할 수 있었다.
‘마나 효율의 상승이 피부로 느껴지는 수준인데?’
마나 소모량은 확연히 줄고, 소모에 따른 출력은 되레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이 정도면 이전보다 기어를 한 단계 올려도 아무 문제가 없는 수준이었다.
‘하기야 효율이 8배나 증가했으니, 체감을 못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겠지.’
만족스럽게 결과물을 갈무리하고 있을 때.
김재학도 나와 마찬가지로 코어를 활성화시켰다.
그 증거로.
화아앗-!
특유의 순백색 마나가 그의 전신을 두텁게 뒤덮었다
나는 이를 신호 삼아 바닥을 박차고 쏘아져 갔다.
흑영신보 특유의 칠흑빛 안개 속에 녹아드는 한편.
일정 거리에 이르렀을 때 진각을 밟았다.
쩌-엉!
대련의 포문을 여는 일격, 진천이었다.
기파가 이전보다 한층 더 강렬한 기세로 뻗어 나가는 가운데.
마침내 김재학이 움직였다.
위에서 아래로, 워 해머를 일직선으로 내리찍었다.
가벼운 동작이었으나, 그 여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콰앙-!
타격점으로부터 순백의 참격이 폭발했다.
진천의 기파를 일격으로 받아친 것이다.
서로 다른 기운이 심상치 않은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뒤얽혔다.
다만 그뿐으로, 특정 기운이 우위를 점하거나 집어삼키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타닷-
나와 김재학은 거의 동시에 움직임을 취했다.
공세를 펼치는 타이밍도 마찬가지였다.
콰앙-!
건틀렛과 워 해머가 허공에서 맞닥뜨렸다.
단순히 무기와 무기의 충돌을 넘어 서로의 마나가 격돌한 만큼 범상치 않은 굉음이 울려 퍼졌다.
나는 방금 교환에서 비롯된 여파를 활용해 주먹을 거둬들이는 한편.
머릿속으로 김재학의 전력을 가늠했다.
‘마나 출력은 확실히 내가 앞서지만 육체적인 스펙은 다소 처진다.’
A급에 달하는 마력 스텟에 진화 계열의 최상위 스킬인 ‘초 진화’를 가지고 있는 만큼, 출력은 내가 우위였다.
하지만 물리적인 힘은 정반대였다.
김재학의 한 수에 담긴 묵직함은 다음 일격을 준비하는 지금까지도 잔향처럼 남아 은은한 통증을 가했다.
‘단순히 무기의 특성에 따른 위력 차이는 아니다.’
그만큼 김재학의 육체적인 스텟이 나를 상회한다는 뜻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가닿은 즉시 전략을 수정했다.
‘워 해머의 장점이 리치와 묵직함이라면.’
나는 내가 선택한 건틀렛의 장점에 충실하면 되는 일이었다.
판단과 동시에 한층 더 과감하게 김재학의 간격에 파고들었다.
지근거리에서의 난타전을 노린 움직임이었다.
‘그게 바로 내가 가진 강점이자, 김재학의 워 해머가 가진 약점일 테니까.’
물론 이 사실은 나만 알고 있는 게 아니었다.
김재학 역시 이 점을 십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 증거로 그는 쉽게 간격을 내주지 않았다.
부웅-!
그는 워 해머를 횡으로 짧게 휘둘러 접근을 차단하는 한편.
신속하게 움직여 충분히 간격을 확보했다.
이 모든 게 단 한 수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역시 호락호락하진 않네.’
김재학은 오윤진과 마찬가지로 이명을 가진 A급 초인이었다.
그러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손쉽게 우위를 점하는 쪽이 더 곤란했다.
‘아직 시험해야 할 게 많이 있으니까.’
애초에 김재학의 대처는 예상 범위 내였다.
그렇기에 나는 거침없이 후속 행동으로 이어 갔다.
다시 김재학에게 접근하는 것과 동시에 크게 한 발짝, 발을 굴렀다.
쩌-엉!
최대 출력을 발휘한 덕분인지, 좀 전에 펼친 진각보다 한층 강렬한 기파가 일었다.
이 정도 위력이라면 반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김재학은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대응에 나섰다.
콰앙-!
또다시 순백의 마나가 폭발하듯 일어났다.
다만 전처럼 동률을 이루지는 못했다.
앞서 파악한 대로 마나 출력에선 내가 확실히 웃도는 까닭이었다.
‘전략을 파악당해도 상관없어.’
애초에 경지에 이른 초인간의 전투에선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전략 같은 건 다소 의미가 없었다.
치명적인 실수가 나오거나, 실전 경험, 노련함의 격차가 크지 않는 한 그랬다.
이는 지금껏 밤마다 그림자와 연후의 수준 높은 대련을 지켜보고 깨달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승부를 판가름하는가 하면, 답은 간단했다.
‘어느 쪽의 무력이 더 강력한지.’
보다 강한 무력으로 자신의 전략을 관철하는 것.
그게 곧 경지에 이른 초인간의 현실적인 전투법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방식에 충실하게 따를 생각이었다.
쩌-엉!
잇달아 진각을 밟으며 착실하게 간격을 좁혀 갔다.
김재학은 거기에 따른 여파에 일일이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곧 그만큼 움직임이 더뎌진다는 뜻이었다.
그 상태에서 나는 확실하게 간격을 고정시키기 위해서 또 다른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다름 아닌 무극삼권 제2초, 천라였다.
스스스……
자욱하게 퍼지는 칠흑빛 안갯속, 백은색의 마나가 곳곳에서 피어났다.
이윽고 마나는 뭉게뭉게 몸집을 부풀려 강맹한 권격으로 화했다.
그대로 구름처럼 김재학을 집어삼키려는 순간.
화아앗-!
일순간 눈부신 광망이 정면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머리로 파악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것만으로도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광휘의 화신.’
김재학의 상명절기나 다름 없는 스킬, ‘광휘의 화신’이었다.
존재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여기서 그걸 꺼내들 거란 사실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속내는 제쳐 두더라도, 김재학은 일단 부교관 행세로 대련에 임하고 있으니까.’
지금 대련은 표면적으로는 지도를 위한 것이었다.
다소 안일하게 생각했던 건 바로 그 때문인 듯했다.
새삼스럽게 마음을 다잡는 한편.
후웅-!
본격적으로 공세에 나서는 김재학에 맞서 자세를 가다듬었다.
방금 손을 섞어 본 결과, 마나 출력이 동수를 이룬다는 점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건 출력에 따른 위력일 뿐, 마나의 재생력이나 효율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결국 대련이 길어진다면…….’
필승, 절대로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나는 그러한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여유롭게 김재학의 공세를 받아 냈다.
슬슬 반격의 타이밍을 가늠하고 있을 때.
“……너란 존재는 정말이지 놀랍구나.”
느닷없이 김재학이 귓가에 속삭였다.
그것도 한창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와중에 말이다.
“……!”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으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김재학으로부터 전혀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말이 흘러나왔다.
“아주 쓸모가 많겠어. 예언 이외에도 말이야.”
소름이 등골을 타고 내달리는 가운데.
김재학이 오싹한 미소를 지었다.
- 189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