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전부 손에 넣었으니까요
-자신감은 여전하네. 이런 괴물 같은 녀석.
오윤진은 한숨을 푹 내쉬며 투덜거리듯 대답했다.
다만 그뿐으로, 말투는 어느새 누그러진 채였다.
그녀 역시 그림자의 역량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알겠어, 한번 해 볼게. 조금 번거롭겠지만 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하면 어느 정도 조율은 가능할 테니까.
염려나 걱정 대신, 긍정적인 답변을 돌려줬다.
이에 그림자는 나직하게 감사를 표했다.
“부탁하지.”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오윤진의 대답을 마지막으로 통화를 끝마쳤다.
그림자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벌써 연후와 연소소, 두 사람과의 시간이 다가온 까닭이었다.
‘가 볼까.’
그림자는 빠른 걸음으로 기숙사를 빠져나갔다.
…
…
…
잠시 후.
그림자가 무기 단련실에 들어서는 순간.
“일한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창 수련에 매진하고 있던 임강철과 윤설하, 그리고 차은월이 그를 반겨줬다.
아무래도 세 사람은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여 미리 워밍업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친구들과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 오래지 않아 연후와 연소소가 단련실에 나타났다.
그림자는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는 한편.
“스승님, 그리고 연 당주. 김재학에 관하여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곧바로 본론부터 꺼내 들었다.
연소소는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이며 되물었다.
“……뭔가 변화가 있나요?”
“네. 아무래도 그자가 저희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 같습니다.”
“……!”
연소소는 물론,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연후도 두 눈을 부릅뜨며 반응했다.
그림자는 두 사람에게 김재학의 인식 변화부터, 그에 따른 대응 방침까지 상세하게 설명해 줬다.
그제야 두 사람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연후는 단순히 수긍에서 그치지 않고, 침착한 태도로 그림자에게 되물었다.
“그럼 우리가 할 일은 뭐지?”
“당분간은 평소대로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음.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하거라.”
“감사합니다, 스승님.”
그림자의 대답에 연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그는 한마디를 덧붙이며 몸을 돌렸다.
“그럼 난 코흘리개들을 먼저 봐주고 있을 테니, 작업이 끝나면 부르거라.”
연후가 언급한 작업, 이는 다름 아닌 연소소와의 동기화율 작업을 의미했다.
이를 위해 자리를 비켜줄 겸, 무극삼권을 단련하기에 앞서 친구들의 수련을 먼저 봐주려는 것이다.
평소에도 이런 식으로 진행된 만큼, 그림자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연소소와 마주 앉았다.
“오늘이면 드디어 90%를 달성하겠네요.”
그녀는 평소와 달리 경직된 말투로 말문을 열었다.
뿐만 아니라 연소소 특유의 투명한 눈동자에는 일말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굳이 캐묻지 않아도 그림자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번 작업으로 거의 모든 능력을 회복하게 되는 만큼, 반동도 평소 이상으로 상당할 테니까.’
오늘 밤 작업을 통해 동기화율이라는 제약을 모두 해소할 수 있을 터였다.
그 말은 곧, 여태 제약을 가해야 할 정도로 부하가 큰 능력들이 오늘 비로소 전부 개방된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이는 어마어마한 반동을 동반할 게 분명했다.
‘애초에 여름 방학 때와 다르게 1%씩 상승시키며 천천히 접근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으니까.’
어느 정도 반동을 고려한 채 작업을 진행해 왔음에도 여전히 고통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연소소가 움츠러드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때문에 그림자는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쥐면서 입을 열었다.
“부담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연 당주. 그다지 도움은 안 되겠지만, 앞으로 머지않았습니다.”
나직한 어조로 격려의 말을 건넨 것이다.
이를 예상치 못했는지, 연소소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반응했다.
“……아, 괜찮아요! 모두를 위한 일이잖아요. 게다가 저뿐만 아니라 그림자 님도 함께 분담하시기도 하고요.”
“그리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모습에 그림자는 나직하게 감사를 표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윽고 연소소는 맞잡은 손에 힘을 더하며 단호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시작할게요……!”
그녀의 말이 끝난 직후.
“……!”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종류의 고통이 엄습해 왔다.
그로 인해 그림자의 표정은 순식간에 구겨지고, 연신 식은땀이 새어 나왔다.
‘……이건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군.’
연소소의 형편도 그다지 다를 바 없었다.
그녀 역시 격통을 참지 못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통에 젖은 신음을 흘리는 것이다.
찰나가 영원처럼 느껴지는 가운데, 그림자는 가까스로 눈을 떴다.
그의 눈앞에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스템 메시지 세례로 가득 차 있었다.
-현재 동기화율…… [90%]
-동기화율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계승]이 모두 완료됐습니다!
-의식이 최대치로 확장되며, [미래시]가 개방됩니다!
동기화율이라는 제약의 완전한 해소를 뜻하는 ‘미래시(未來視)’.
즉, 계승의 마지막 단계라 할 수 있는 4단계를 달성한 건 물론.
-이식된 [스킬] 효율의 재조절이 완료됐습니다!
-이식된 스킬 [급속 진화(S)]가 [초 진화(SS)]로 변경됐습니다!
-이식된 스킬 [급속 재생(S)]이 [초 재생(SS)]으로 변경됐습니다!
안일한에게 이식된 두 종류의 스킬도 본래 등급을 회복했다.
즉, 녀석도 이제야 비로소 온전한 형태의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나머지, 미구현 특성의 진정한 능력 개방은…….’
그림자는 머릿속으로 시기를 가늠하는 한편.
조심스럽게 연소소의 손을 놓아줬다.
그제야 고통에서 벗어났는지, 그녀는 창백한 안색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악, 하아. 흐윽.”
“고생하셨습니다, 연 당주.”
“끄, 끝났나요……?”
“연 당주께서 힘 써 주신 덕분에 무사히 끝냈습니다.”
그림자는 대답과 함께 연소소를 벽에 기대어 앉혔다.
그녀는 손길에 몸을 맡긴 채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느 정도 안정됐을 때,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남은 동기화율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앞으로의 작업에 관해 신경을 쏟았다.
그 모습이 퍽 대견하게 느껴진 까닭에 그림자는 무의식적으로 옅은 미소를 지었다.
“99%까지 올려 둘 생각입니다. 퍼즐을 맞추는 건 최후의 순간이 되겠지요.”
“그런가요……?”
“네. 앞으로는 반동도 그리 크지 않을 겁니다. 필요한 건 전부 손에 넣었으니까요.”
“다행이네요.”
연소소는 재차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두 눈을 살포시 감았다.
그러고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먼저 수련하고 계시겠어요? 저는 조금만…….”
“네. 편히 쉬세요.”
그림자는 마지막으로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몸을 일으켰다.
때마침.
“오늘 지도는 여기까지다.”
연후도 친구들의 지도를 일단락 지으려는 모양이었다.
이를 확인한 즉시, 그림자는 그를 향해 다가갔다.
접근을 눈치챈 연후는 그림자를 쳐다보는 대신, 곁눈질로 연소소의 상태를 살폈다.
그녀의 상태가 썩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서 그런지, 그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크흠, 오늘이 마지막이렷다?”
아무래도 연소소의 상태가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연후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만큼, 그림자는 공손하게 대꾸했다.
“앞으로는 반동이 크지 않을 겁니다.”
“네 말이 맞길 바라마.”
연후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그 대신, 두 주먹을 들어 올리며 자세를 취했다.
다름 아닌 무극삼권의 수련을 위해서였다.
이제는 일과가 됐을 정도로 익숙해진 까닭에 그림자도 아무렇지 않게 자세를 잡았다.
“그럼 가겠습니다.”
“오냐.”
짤막한 문답.
이를 끝으로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진각을 밟았다.
쩌-엉!
어마어마한 굉음 속에 서로 다른 기파가 허공에서 살벌하게 얽혀들었다.
거의 동시에 진천을 펼친 것이다.
두 사람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본격적으로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쩌저저저정-!
진천 특유의 각양각색의 투로에 천라까지.
권격의 궤적이나 여파, 그리고 타이밍 등.
두 사람의 무극삼권은 서로 같은 무공을 펼치고 있는 건지 의심이 될 정도로 상이했다.
그러면서도 박빙을 이루는 가운데.
“슬슬 그걸 꺼내 보자꾸나.”
“네.”
두 사람은 또다시 짤막한 문답을 주고받았다.
그 직후.
화아아앗-!
두 사람은 사전에 합이라도 맞춘 것처럼, 코어의 출력을 급속도로 끌어올렸다.
그러자 체외로 발산되는 마나의 색채가 진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각각의 마나가 마법을 연상케 할 정도로 선명해졌을 무렵.
콰과과과광-!
서로 다른 형태로 상대에게 쇄도해 갔다.
이것이 바로 무극삼권의 마지막 초식, 무극이었다.
두 사람은 단순히 무극을 펼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콰앙! 콰광! 쩌-엉!
무극에 이어 조금 전까지 그랬듯, 서로를 향해 진천과 천라를 함께 쏟아내는 것이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 대련에 주변 곳곳에서 탄성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파괴적으로 공방을 교환하기를 수 분.
“……후, 이쯤 하지.”
연후가 먼저 한걸음 물러서며 손을 거둬들였다.
놀랍게도 그의 마나가 먼저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그 증거로, 연후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반면 그림자는 처음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괴물 같은 녀석.”
연후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뱉은 말과는 다르게 그의 눈빛에는 그림자의 역량을 대견스럽게 여기는 기색이 서려 있었다.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지는 가운데, 연후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럼 어디 한번 논해 보자꾸나.”
이 또한 무극 수련의 일환이었다.
무극을 직접 펼칠 수 있게 된 지금, 주로 논의하는 건 최적의 활용에 관해서였다.
‘무극의 완벽한 체득도 머지않았다.’
그림자는 속으로 시기를 가늠하는 한편.
“무극의 경우, 다양한 형태로의 구현도 좋지만 역시나 결정적인 한 방이자, 최후의 일권으로…….”
연후와의 논의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 * *
다음 날.
오전 수업과 오후 이론 수업은 언제나 그랬듯, 평범하게 흘러갔다.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흐름.
나는 이 사실에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이유는 다름 아닌 김재학 때문이었다.
‘김재학, 그자가 우리의 정체를 눈치챘으니까.’
바로 어제, 나는 김재학이 우리의 정체를 알아차렸음을 깨달았다.
그로 인해 동분서주하며 이런저런 대비 태세를 갖추긴 했으나, 여전히 변수는 남아 있었다.
때문에 나는 아침부터 촉각을 곤두세운 채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바로 움직일 생각은 없는 모양이네.’
그나마 아직까진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하지만 안심하긴 아직 이른 상황이었다.
‘아직까진 마주치지 않았으니까.’
지금까진 교양 수업과 이론 수업이 진행된 만큼 김재학과 직접 대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곧 시작될 실기 수업은 다르다.
반드시 마주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거기서 확인해 봐야 비로소 확실해질 터였다.
‘당장 움직이려는 건지, 아니면 지금껏 그랬듯 시기를 가늠할지.’
후자일 경우가 최선이지만, 혹여나 전자에 해당할 경우에도 최악까지는 아니었다.
2학기 시작부터 낙일의 대비를 진행해온 만큼, 지금도 이미 어느 정도는 준비가 된 까닭이었다.
‘아직 S급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A+급에는 거의 근접한 상황이었다.
뿐만 아니라 어젯밤 이후로 동기화율 90%를 달성하며 새로운 능력도 획득했다.
그림자와 마찬가지로 진화와 재생 계열의 최종 스킬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차분하게 마음을 다잡는 한편.
“일한이, 가자!”
“어.”
나는 친구들과 함께 실기 수업을 위해 이동했다.
…
…
…
시간이 흘러 실기 수업이 시작됐다.
김재학은 평상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단련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참으로 뻔뻔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과 함께 별다른 문제 없이 지나가나 싶을 무렵.
‘……뭐라고?’
수업 도중, 김재학이 예상치 못한 움직임을 취했다.
- 188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