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186화 (185/218)

186화 이제야 비로소 완성됐으니까

-김재학의 의심이 확신에 가까워진 지금, 가장 중요한 건 그자의 돌발적인 움직임을 차단하는 거다.

김재학의 돌발 행동을 원천 차단하는 것.

그림자 녀석의 생각은 정확히 내 생각과 일치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그래야 대응할 수 있을 테니까.’

지극히 원론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우리의 기조 자체가 발 빠른 대처에 있는 만큼, 이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었다.

-정확하다. 거기다 녀석들의 움직임으로 인해 예상되는 피해를 고려한다면, 아카데미 내에서 상황이 벌어지는 것만큼은 피해야겠지.

‘그것도 맞는 말이네. 그래서, 대책은?’

-오늘 밤부터 본격적으로 주위 사람들을 동원할 거다.

‘주위 사람들이라면…….’

-백유진, 심인욱, 오윤서. 이 세 사람과 그들이 가진 배경까지 활용할 계획이다.

‘……!’

백유진과 심인욱, 그리고 오윤서.

정확히는, 그들의 배경이라 할 수 있는 거대 단체들의 힘을 빌리고자 하는 것이다.

‘신창백가에 대지의 혼 길드, 그리고 다섯 번째 진리 마탑이라……, 순식간에 판이 커지겠는데?’

-그래야 섣부른 움직임을 제한할 수 있을 테니까.

‘그건 그렇긴 한데…….’

그림자의 제안은 김재학의 돌발 행동을 제한하겠다는 취지에 부합하는 대처였다.

백유진을 비롯한 내 친구들의 배경이라면, 충분히 상대를 압박할 수 있는 까닭이었다.

다만 그렇다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우리가 정체를 눈치챘단 사실 정도는 김재학도 알아차리지 않을까?’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거대 단체들의 특성상, 이들의 행보는 필연적으로 이목의 집중을 동반한다.

하물며 대외적으로 수호자 길드에 속해 있는 김재학이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즉, 우리가 김재학의 정체를 알고 거기에 맞춰 대처한 것처럼 상대도 똑같이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점을 들어 그림자에게 질문을 건넸다.

‘만일 김재학이 완전히 숨어든다거나,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는 움직임을 취하면 대처가 안 되지 않나?’

-타당한 의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낙일이 우리를 포기할 가능성은 배제할 생각이다.

그림자는 그 근거로써 제니퍼 퀘이드의 광적인 집착을 들었다.

예언자의 능력을 향한 집착이 대단한 만큼, 절대 우리를 포기하지 않을 거라 보는 것이다.

‘하기야, 녀석이 말해 준 연씨세가의 몰락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도…….’

이전 생에서 제니퍼 퀘이드가 연씨세가의 능력, ‘계승’을 탐한 결과가 바로 연씨세가의 멸문이었다.

그들은 일반인들이 상상조차 못 할 정도로 간악하고, 교활한 방식으로 몰락시켰다.

거기에 투자된 소모 값을 생각하면, ‘광적인 집착’이란 표현도 결코 과장은 아니었다.

그 정도로 납득하는 사이, 녀석이 말을 이어 갔다.

-김재학의 행동 변화, 이 부분은 상황에 맞춰서 압박 수위를 조절하고, 그걸로 김재학의 행동 범위를 통제하는 쪽으로 접근할 생각이다.

‘압박 수위를 조절해서 행동 범위를 통제한다?’

-그래. 최대한 우리가 원하는 시점에 움직이게끔 유도하는 거지.

즉, 녀석은 김재학의 움직임에 따라 실시간으로 대처를 달리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당장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사실만 봐도 그랬다.

그래서일까, 녀석은 추가로 설명을 부연했다.

-물론 이 문제는 내가 전담할 생각이다. 오윤진, 그녀의 힘을 빌린다면 거대 단체들의 움직임도 조율이 가능할 테지.

그제야 어느 정도 머릿속에 그려졌다.

나는 그 정도로 납득하는 한편, 녀석에게 되물었다.

‘확실히, 누나의 도움이 있다면 한결 수월하겠네. 그럼 내가 할 일은?’

-백유진과 심인욱, 그리고 오윤서. 이 세 사람의 조력을 받아내 줬으면 한다.

‘저번처럼 말이지? 알겠어.’

앞서 윤설하나 차은월의 조력을 받아냈던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애초에 시기를 가늠하고 있었으니까.’

본래 백유진 무리에게도 비밀을 털어놓고 협력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다만 지금까진 김재학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잠시 미뤄 뒀을 뿐이었다.

‘저녁 먹고 나서 한번 친구들한테 말해 볼게.’

-믿겠다.

녀석의 짤막한 대꾸를 마지막으로 대화를 마무리 짓는 한편.

나는 기숙사를 빠져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들어서는 순간, 임강철이 손을 흔들며 알은체를 했다.

“일한이, 이쪽이다!”

나는 음식을 대충 챙겨서 친구들이 마련해 준 자리에 앉았다.

그대로 식사를 진행하기에 앞서 백유진 무리에게 본론을 꺼내 들었다.

“식사 후에 잠깐 시간 좀 내줘.”

“시간?”

고개를 기울이는 백유진.

그를 향해 나직하게 이유를 밝혔다.

“할 이야기가 있어서. 중요한 거야.”

진지한 표정에 백유진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다 같이 내 방으로 향했다.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백유진의 무리는 물론, 윤설하와 차은월 그리고 임강철까지 함께하는 바람에 상당히 비좁았다.

다행히 친구들은 대수롭지 않은 기색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이 정도는 참을 만해. 게다가 중요한 이야기라면서.”

“고마워.”

백유진을 향해 짤막하게 감사를 표하고는, 그대로 운을 뗐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해.”

“도움? 별일이군. 일단 들어보지.”

심인욱은 무심하게 대답하면서도 내 말에 관심을 드러냈다.

백유진과 오윤서 또한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가운데.

나는 머릿속으로 할 말을 정리하고는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그전에 내가 가진 비밀부터 밝힐게.”

“……비밀을 밝히겠다고?”

“드디어 말해 주는 건가?”

“이제야 털어놓는구나. 그래서?”

세 사람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내 말에 반응했다.

나는 이전에 윤설하, 차은월에게 그랬듯, 세 사람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설명했다.

처음에는 놀라워하더니,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그들의 표정에는 경악 어린 빛이 서렸다.

마지막, 특히 낙일에 관한 부분에 이르러서는 심각하게 굳은 낯빛으로 내 말에 집중했다.

“……현재 그들은 내 능력을 노리고 아카데미에 간자를 심어 뒀어.”

“간자라면……?”

“김재학 부교관, 그가 바로 낙일의 간부,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사도야.”

“……!”

김재학의 정체까지 털어 놓자 세 사람은 물론.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윤설하와 차은월, 임강철까지도 두 눈을 부릅떴다.

‘김재학의 정체는 모두에게 숨겨 왔으니까.’

수호자 길드의 간부이자, 현재 아카데미의 부교관으로서 활동하는 김재학.

그가 가진 대외적인 가면의 무게감 때문인지, 친구들은 상당히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때문에 나는 그들이 마음을 추스를 때까지 잠깐 기다려줬다.

침묵이 생각보다 길어짐에 따라 머릿속에 오만 생각이 스쳐 가는 가운데.

백유진이 별안간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마음 같아서는 왜 이제야 털어놓은 건지 따지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으려나.”

“그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아니 아니, 사과를 요구할 생각은 없어. 네가 설명한 이유는 충분히 납득하고 있으니까.”

백유진은 손을 대충 휘젓는 한편.

동의를 구하듯, 심인욱과 오윤서를 한차례 바라봤다.

그의 시선에 반응한 두 사람은 차례대로 한마디씩 덧붙였다.

“확실히, 전후 사정을 고려하면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군. 오히려 현명한 대처였다고 봐야겠지.”

“내 말이. 이런 내막을 알고 있는 상태로 가만히 기다려야 하는 게 말이 돼?”

반응은 조금씩 달랐지만, 뉘앙스 자체는 백유진과 동일했다.

내 행동을 진심으로 이해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그래서?”

“그래서라니?”

“김재학은 언제 칠 예정인데?”

백유진은 뒤늦게 밝혔다는 점을 추궁하는 대신, 본격적으로 사안을 논하기 시작했다.

이에 나는 그의 배려에 구구절절 감사를 표하기보단, 마찬가지로 논의에 집중하기로 했다.

“김재학이 낙일의 간부인 건 사실이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조차도 곁가지에 불과해.”

“수뇌, 그러니까 제니퍼 퀘이드란 사람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서다?”

“어. 그래야 예정된 파멸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

“흐음, 확실히 일리가 있네.”

백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한편, 추가적으로 내게 질문해 왔다.

“그럼 네 말대로 김재학을 압박하는 건 가문이나 길드의 도움을 받는다고 치고, 교관님들은? 아카데미에서 일을 벌이지 못하게 하는 데는 교관님들이 가장 효과적인 거 아니야?”

“교관님들께는 나중에 협조를 요청할 생각이야.”

“이유는?”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니만큼, 교관님들께 말씀드리면 지금처럼 임의로 상황을 제어할 수 없을 테니까.”

우리의 전략은 기본적으로 내 안위를 담보로 진행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이를 아카데미 측에서 용납할 리가 없었다.

교관님의 입장으로선 생도의 안전이 최우선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었다.

그러니 가급적이면 최후에, 제니퍼 퀘이드가 본격적으로 움직임을 취했을 때 요청할 생각이었다.

‘이 부분도 윤진 누나한테 부탁드리면 되겠지.’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할 무렵.

백유진도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됐는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알겠어. 가문 사람들을 동원하는 부분은 윤진이 누나와 조율하면 된다는 거잖아?”

“어, 부탁할게.”

“그리고 우리는 최대한 김재학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티를 내지 않는 쪽으로 움직이고.”

“가능하면 그렇게 해 줘.”

“알겠어, 다들 할 수 있지?”

백유진의 물음에 친구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이야기가 잘 풀려서 그런지, 안도의 한숨이 절로 새어 나오는 가운데.

나는 슬슬 대화를 마무리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공유할게. 아마 주로 스마트 워치를 활용하게 될 거야.”

“하기야, 그편이 의심을 덜 사겠지. 알겠어.”

백유진은 납득했다는 양 한차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심인욱과 오윤서를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

“오늘부터 다시 불태워야겠네. 얘들아, 바로 갈 거지?”

“그래.”

“난 잠깐 기숙사 좀 들렀다가 갈게.”

세 사람은 오윤진에게 지도를 받는 만큼, 지금부터 함께 움직이려는 모양이었다.

그들이 떠나자 남아 있는 친구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내 쪽을 향했다.

이대로 해산하기에 앞서 내 의사를 물어보려는 듯했다.

“먼저 가 있어. 난 잠깐 생각 좀 정리하고 따라갈게.”

그제야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둘씩 기숙사 방을 빠져나갔다.

혼자 남게 됐을 때 머릿속으로 그림자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훌륭하게 잘해 줬다. 나머지는 내가 맡도록 하지.

이젠 녀석의 차례였다.

* * *

그날 밤.

-대상의 무의식 상태를 확인.

-대상의 주도권이 [????의 그림자]에게로 넘어갑니다!

-대상과의 동기화율을 확인.

-현재 동기화율…… [89%]

그림자는 의식을 넘겨받은 즉시 오윤진에게 연락했다.

안일한이 제 몫을 다했듯, 그 또한 주어진 몫을 다하기 위함이었다.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그림자는 나직한 어조로 운을 떼며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전부 설명했다.

결코 가벼운 이야기는 아닌 만큼, 오윤진은 진지한 기색으로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결국 윤서도 휘말릴 수밖에 없는 건가?

“가급적 우리 쪽으로 적들의 초점을 집중하고 싶다만, 쉽지 않다.”

-푸념 한번 해 봤어. 사안의 중차대함은 이미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니까. 일단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최대한 조율해 볼게.

“부탁하지.”

짤막하게 감사를 표하며 그대로 통화를 끝내려는 찰나.

오윤진이 머뭇머뭇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나저나 괜찮겠니? 언제나 그렇듯, 네 나름대로 계획이 있겠지만 만에 하나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지면…….

그의 안위에 관해 걱정스러운 기색을 내비치는 것이다.

이에 그림자는 조금 전에 확인했던 시스템 메시지. 즉, 동기화율을 떠올렸다.

‘89%. 오늘이면 일단락 지을 수 있겠군.’

90%까지 불과 한 걸음 정도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그림자는 오윤진을 향해 단언했다.

“적어도 김재학에게 당할 일은 없을 거다.”

오랜 기다림 끝에.

이제야 비로소 완성됐으니 말이다.

- 187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