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일한이, 너라면 이유가 있을 테니깐!
꿀꺽-
김재학의 노골적인 시선이 나를 향하기를 수 초.
마른침이 절로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지만, 나는 김재학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
내가 그를 의식하고 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다행히 김재학과의 불편한 시선 교환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수업을 이어서 진행하려는 양, 아무렇지도 않게 먼저 고개를 돌린 것이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그가 생도들을 향해 짤막하게 소리쳤다.
“그럼 다들 움직이도록. 집합 방식은 이전 수업과 동일하다.”
김재학의 지시에 하나둘씩 걸음을 옮기는 가운데, 나도 슬슬 친구들과 함께 움직였다.
집합이 끝날 무렵, 조교들의 배정도 끝났다.
우리 그룹을 맡은 조교들 중 익숙한 사람이 대번에 눈에 띄었다.
다름 아닌 진태진 교관이었다.
‘이번에도 B급 초인으로서 조교 역할을 맡아 주시려는 건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때마침 그가 말문을 열었다.
“다들 주목하도록. 저번 수업과 마찬가지로 생도들은 본 교관이 맡을 예정이다.”
예상대로 진태진 교관은 이번에도 역시 B급 초인이자 조교 역할로 참여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밖에도 대련 순서나 몇 가지 주의할 점 등.
세부적인 설명을 이어 나가는 가운데,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여러모로 쉽지 않겠는데?’
다수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부터.
그 상대 중 한 명이 진태진 교관이라는 점 등.
수업 자체의 난이도도 쉽지 않아 보였지만, 정작 내가 신경 쓰는 문제는 조금 다른 부분이었다.
‘일대일 피드백이라……, 과연 어떨지.’
김재학, 본인이 직접 나서서 진행할 예정이라는 일대일 피드백.
거기서 과연 그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도저히 가늠이 안 되는 까닭에 더더욱 신경이 쓰였다.
‘이래서야 수업에 제대로 집중이나 할 수 있을는지.’
자연히 그런 걱정이 들었지만, 오래지 않아 기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업이 시작되니 자연스럽게 대련에 빠져든 것이다.
새삼스럽게 이를 알아차리고 나니 머릿속이 한결 개운해졌다.
‘결국 그자가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떠보거나, 찔러보는 수준에 불과하겠지.’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담담하게 대처하는 것.
포커 페이스까지는 아니더라도, 덤덤한 표정을 유지하는 건 몇 안 되는 특기 중 하나였다.
‘그러니 별문제 없을 거야.’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하며 수업으로 신경을 돌렸다.
때마침 첫 번째 생도의 대련이 시작됐다.
그대로 대련을 지켜본 결과, 생각보다 난이도가 높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수를 상대하는 게 처음은 아니지만.’
작년 고태식 교관의 지도 아래 두 명을 상대로 대련을 펼쳤던 경험이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때와는 난이도의 차원이 달랐다.
상대의 등급이 훨씬 더 높은 건 물론, 인원수도 두 배 이상 차이가 나는 까닭이었다.
그래서일까, 첫 번째 생도의 대련은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끝나 버렸다.
“그만. 이번에는 실격이다.”
치명적인 유효타를 허용해 버린 탓에 제한 시간 1분을 채우기도 전에 실격 처리된 것이다.
그만큼 진태진 교관을 위시한 다섯 명의 공세는 삼엄하면서도 살벌했다.
이어지는 다른 생도들의 대련도 비슷하게 흘러갔다.
낮은 성적부터 오름차순으로 진행된 만큼 뒤로 갈수록 오래 버텼으나 결국 1분을 채우지는 못한 것이다.
‘상대를 전부 제압하는 건 내 생각 이상으로 난이도가 높을지도 모르겠네.’
괜히 김재학이 다수의 호흡을 읽어내는 것을 강조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자연스럽게 곧 있을 친구들의 대련에 관심이 옮겨갔다.
‘과연 내 친구들은 어떨지.’
내 친구들은 첫 번째 과정에서도 앞선 최상위권 생도들과 비교해 차원이 다른 활약을 보여줬다.
그러니 이번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 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대련 후에 김재학에게 피드백을 받을 테니까 친구들에게 감상을 물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거고.’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기대감을 떠올리는 사이 내 친구들의 차례가 다가왔다.
첫 번째 주자는 다름 아닌 임강철이었다.
“잘하고 와.”
“그럼 갔다 오지!”
임강철은 변함없이 씩씩한 태도로 대답하고는 조교들과 대면했다.
그러고는 지체 없이 대련을 시작했다.
임강철의 수법은 김재학이 앞서 보여 준 간결한 대처나, 상대의 호흡을 읽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C급 조교 네 명이 쏟아내는 불규칙적인 공세에 맞서.
스윽- 슥-
특유의 야성적인 움직임으로 종이 한 장 차이로 공세를 피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했고.
쾅! 콰광!
때로는 그가 가진 특성, ‘분쇄’를 십분 활용하여 공세를 정면으로 박살 내며 질주했다.
그러고는 처음부터 표적을 진태진 교관, 단 한 명으로 정한 것처럼 그에게 집중적으로 공세를 퍼부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자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역시 임강철,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
과연, 저돌적인 성향답게 임강철은 상상도 못 한 대련을 선보였다.
심지어 이러한 전략은 제법 유효하게 먹혀들었다.
우악스럽기 짝이 없는 공세와 야성적인 움직임에 C급 조교 네 명의 공세는 잔뜩 위축됐다.
덕분에 임강철은 진태진 교관의 날카로운 공세를 막아내는 데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그만, 합격이다.”
처음으로 1분을 버텨 냈다.
임강철은 포효에 가까운 환호를 내지르는 한편, 조교들에게 정중하게 인사하며 예를 표했다.
이에 진태진 교관이 대표로 인사를 받으며 말했다.
“고생했다. 지금 바로 김재학 부교관에게 가서 피드백을 받고 대기하도록.”
“넵!”
임강철은 씩씩하게 대답하며 몸을 돌렸다.
나는 그가 김재학에게 다가가기 직전에 신속하게 접근했다.
그러고는 귀엣말로 한 가지 부탁을 건넸다.
“임강철, 피드백 받고 나서 어떤 내용인지 대충 들려줄 수 있어?”
김재학과의 대화 내용을 공유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에 임강철은 의아했는지, 고개를 기울였다.
그의 반응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직 임강철이나 친구들한테 김재학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니까.’
즉, 그를 비롯한 내 친구들은 아직 김재학의 진짜 정체를 모르는 상태였다.
이는 지금과 같은 상황, 김재학이 어떤 식으로든 접근할 것을 염두에 둔 판단이었다.
때문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잠깐 고민하고 있을 때.
“필요한 거라면 그렇게 하지!”
임강철은 내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여 줬다.
이유를 추궁하는 대신, 그는 단지 한마디를 덧붙였다.
“일한이, 너라면 이유가 있을 테니깐!”
건치 미소와 함께 엄지를 치켜드는 임강철.
그의 변함없는 신뢰에 새삼스럽게 고마운 감정이 밀려들었다.
나는 감정을 구구절절 표현하는 대신,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고마워, 부탁할게.”
임강철은 그 길로 곧장 김재학을 향해 다가갔다.
그사이.
“준비됐나?”
“네, 잘 부탁드립니다!”
차은월의 차례가 다가왔다.
나는 임강철이 김재학과 마주 앉는 광경까지 확인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때마침 차은월의 대련이 시작됐다.
우리들 중 유일하게 마법사라서 그런지, 그녀의 대련 역시 상당히 독특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타닷-
처음부터 빠르게 간격을 벌리는 한편.
달려드는 조교들을 대상으로 그녀가 가진 특성, 마력 역장을 전개했다.
그 결과, C급 조교들은 공세는커녕 접근조차 역장에 가로막혔다.
덕분에 차은월은 한결 여유롭게 진태진 교관을 상대할 수 있었다.
중간에 조교들이 역장을 파괴하는 데 성공했으나, 그럼에도 그녀에게 접근하는 건 불가능했다.
파직-!
역장을 통과하며 위력이 배가된 전격 마법이 조교들의 움직임을 완전히 봉쇄한 까닭이었다.
결국 차은월은 진태진 교관을 비롯한 5인에게 간격을 전혀 내주지 않은 채 대련을 끝마쳤다.
“수고했다. 그리고 훌륭했다.”
“가, 감사합니다!”
임강철의 뒤를 이어서 그녀도 무사히 1분을 버텨 낸 것이다.
나는 임강철에게 했던대로 차은월에게도 똑같은 부탁을 건넸다.
그녀 역시 별다른 의심 없이 내 요청을 받아들여 줬다.
“그럼 부탁할게.”
“응!”
차은월이 종종걸음으로 김재학을 향해 다가가는 사이.
마치 그녀와 바통을 터치하듯, 임강철이 피드백을 끝마치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곧장 내 곁으로 다가와 빠르게 속삭였다.
“대충 정리하자면…….”
임강철의 말에 따르면 김재학의 피드백은 크게 세 가지 화제로 진행된 모양이었다.
대련에 대한 피드백과 ‘낙일’로 대표되는 빌런의 위험성 강조, 그리고 매일 밤 하고 있는 수련에 관한 질문까지.
김재학은 내 생각보다 노골적으로 피드백에 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상하냐 묻는다면 그건…….’
김재학의 정체를 알고 있는 나라면 모를까,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단정 짓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우선 대련에 대한 이야기는 애초에 주된 목적이 피드백인 만큼 당연히 언급했을 것이다.
즉,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두 번째로 낙일에 관한 이야기.
이는 노골적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이상하다고도 할 수 없는 문제였다.
‘생존 교과 자체가 낙일로 대표되는 빌런의 위협 증가 때문에 생긴 거니까.’
즉,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매일 밤, 따로 진행하는 수련에 관한 질문도 특별히 수상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밤에 따로 수련을 하고 있냐고 물어보시더니, 우리들의 칭찬을 해 주시더군!”
딱히 깊게 파고들지 않고 으레 할 수 있을 법한 이야기 위주로 접근한 까닭이었다.
‘생각보다 까다롭네.’
김재학은 생각 이상으로 철두철미하고 교묘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한편, 나는 임강철에게 나직하게 감사를 표했다.
“알려줘서 고마워.”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군!”
적당히 임강철과의 대화를 마무리 지을 무렵.
어느새 차은월도 피드백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녀의 이야기도 들어 본 결과, 임강철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결국 직접 겪어보는 수밖에 없으려나?’
그편이 가장 확실해 보였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나는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친구들의 경험담을 통해 어느 정도 그의 수법을 가늠할 수 있게 된 지금.
대면했을 때 표정 관리만 신경 쓴다면, 별다른 문제는 없을 터였다.
그 정도로 가닥을 짓는 사이.
“역시 윤설하 생도로군. 훌륭하다.”
“감사합니다!”
어느새 윤설하의 차례도 끝이 났다.
임강철과 차은월의 이야기를 듣느라 대련 과정은 놓쳤지만 그녀 역시 수월하게 통과한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붙잡지 않았다. 피드백에 관한 정보는 이미 충분한 까닭이었다.
그 대신.
저벅저벅-
나는 진태진 교관을 비롯한 조교들을 향해 다가갔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됐기 때문이다.
‘우선은 대련에 집중하자.’
새삼스럽게 마음을 다잡으며 진태진 교관과 마주 섰다.
서로 무기를 꺼내며 대련을 준비하는 가운데.
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이번에도 뛰어난 활약을 기대하지.”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대답과 동시에 자세를 취했다.
진태진 교관을 비롯한 조교들이 자세를 취할 무렵.
타닷-
나는 신속하게 바닥을 박차고 쏘아져 갔다.
빠른 속도로 간격이 좁혀지는 가운데, 나는 순간적으로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러고는 곧장 오른발을 내리찍었다.
쩌-엉!
무극삼권 제1초, 진천을 꺼내 든 것이다.
그 여파는 선두에서 달려드는 C급 조교 두 명에게로 집중했다.
“커헉!”
“크, 윽!”
무시무시한 기파에 선두의 두 명이 몸을 비틀었다.
이는 그간의 수련, 그림자와 연후의 무극삼권 단련으로부터 배운 기예였다.
타닷-
순간적으로 허점을 보이는 선두의 두 조교.
나는 그들을 향해 빠르게 짓쳐들어 항마멸인장을 꽂아 넣었다.
진천의 효과에 항마멸인장의 파괴력까지 더해지자.
털썩-
결국 선두의 두 사람은 그대로 허물어졌다.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상황에 후열의 C급 조교들은 물론.
“……!”
진태진 교관까지도 두 눈을 부릅뜬 채 나를 주시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내는 한편.
‘앞으로 세 명.’
무심하게 속으로 남은 상대를 헤아렸다.
- 185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