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 그 모든 걸 당신께 배웠으니 >
180 그 모든 걸 당신께 배웠으니
연씨세가의 2집사, 연후.
그는 현재 A급 권사이자, 훗날 최초의 S급 권사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될 정도로 강력한 초인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했다.
연소소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배울 자격부터 묻는 것도 바로 그 자부심의 일환이었다.
‘지난 생에서도 그러셨으니까.’
심지어 당시의 상황이 녹록지 않았음에?연후는 당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의 고집스러운 성격을 직접 겪어봤던 만큼, 그림자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황한 쪽은 다름 아닌 연소소였다.
-정말 죄송해요, 그림자 님! 본래 완고한 성격이신 건 알고 있었지만,이 정도일 줄은 저도 몰랐어요…….
연소소는 연후의 성격을 고려하여 일의 중대함을 충분히 설명하고, 심지어 간곡히 부탁까지 한 모양이었다.그 정도로 설득했음에도 실패해서 그런지, 상당히 당혹스러워했다.
이에 그림자는 도리어 그녀를 다독여 줬다.
“괜찮습니다.차라리 제가 깔끔하게 자격을 증명하는 편이 앞으로도 편할 겁니다.”
-그런가요……?
“네.그분이 완고한 건 사실이지만, 한 번 인정한 상대에겐 그만큼 확실하게 가르침을 베풀어 주시니까요.”
전투와 생존 역량 같은 육체적인 부분부터, 부동심과 같은 정신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
전부 연후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물론 마나 운용에 관한 전반을 가르쳐 준 차은월이나, 그를 여명으로 이끌어 준 오윤진 등.
도움을 준 사람들은 여명 내 여럿 존재했으나, 스승이라 이를 만한 사람은 연후뿐이었다.
‘물론 이번에는 양상이 조금 달라지겠지 만.’
A급에 이르는 역량은 물론, 멸망을 겪으며 한층 단단해진 부동심까지.이전 생과 지금은 판이할 정도로 달랐다.
‘과연 그분께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래서인지, 새삼스럽게 연후와의 재회를 향한 기대심이 커져 갔다.연소소에게 건넨 대답에도 이런 감정이 묻어난 건지.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한결 마음이 놓이네요.감사해요, 그림자 님.
그녀는 한결 부담을 덜어냈는지, 안도의 한숨과 함께 대답하는 한편.기운을 되찾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럼 어디로 가면 될까요?
“30분 후에 용맹관 1 층 무기 단련실, 거기서 뵙죠.”
알겠습니다!
연소소의 대답을 마지 막으로 통화를 종료했다.그림자는 스마트 워치를 통해 시간을 확인하는 한편.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스승님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니.’
먼저 가서 기다릴 겸, 미리 몸을 풀어 두는 편이 좋을 듯싶었다.
꽤나 격렬한 시험이 될 테니 말이다.
그림자는 옅은 미소와 함께 기숙사를 빠져나갔다.
잠시 후, 무기단련실.
약속 시간보다 대략 20분 일찍 도착하여 가볍게 몸을 풀어 두고 있을 때.
“앗, 그림자 님!”
단련실 입구 쪽에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름 아닌 연소소였다.
그녀는 평소와 다르게 수행원이 아닌 거친 인상의 중년 남성과 함께 나타났다.
이를 확인한 순간 그림자의 시선은 중년 남성에게 고정됐다.
‘……스승님.’
매서운 눈빛에 완고하게 다문 입, 거기에 고태식 교관을 연상케 하는 근육질의 체격까지.두 눈과 양팔이 멀쩡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기억 속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를 떠올린 순간.
설마 저분이 예전에 처음으로 계승 현상을 접했을 때 봤던 그분이야?
안일한이 말을 걸어왔다.
보아하니 그의 생각이 고스란히 전해진 모양이었다.
딱히 숨길 이유도 없는 까닭에 그림자는 나직하게 긍정했다.
‘외팔과 외눈의 나이든 사내를 말하는 거라면, 맞다.’
……그렇구나.
녀석은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탄성을 흘렸다.
단지 그뿐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와 같은 구체적인 사정은 묻지 않았다.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인 만큼 녀석 나름대로 배려해 준 모양이었다.
이에 맞춰 그림자는 구구절절 사족을 덧붙이는 대신, 나직하게 되물었다.
‘처음으로 계승 현상을 접했을 때 효과는 어땠지?’
그야 뭐, 엄청났지.한꺼번에 두 명을 상대할 수 있게 됐을 정도니까.
‘이번에도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못 하진 않을 거다.’
녀석이 언급했을 당시의 계승 효과는 일시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그 탓에 효과를 체화하려면 전신에 남은 감각의 편린에 의존해야했다.
반면 지금은 실시간으로 의식을 공유할 수 있을뿐더러 감각까지도 온전히 전해질 터였다.
‘분명 차원이 다른 효과를 체감할 수 있겠지.’
그리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에 호응하듯, 녀석 또한 탄성과 함께 대답했다.
호오, 알겠어.기대할게.
그 정도로 대화를 마무리할 무렵.
두 사람이 그림자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일정 간격을 두고 연후가 먼저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 상태로 말없이 시선을 교환하기를 수 초.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다름 아닌 연후 쪽이었다.
“기세는 제법이로군.”
그는 무심한 눈길로 위아래로 훑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림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스승님의 평가는 하나의 단면만 보는 게 아니니까.’
그의 평이 여기서 끝나지 않으리란 사실을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아니나 다를까.
“하지만육신의 강함이 전부는 아니지.”
조금 전과는 사뭇 다른 뉘앙스의 평이 흘러 나왔다.
“소소 아가씨께 듣기론,특이한 능력으로 그만한 강함을 얻었다지?”
그림자의 역량, 그 출처를 의심하는 것이다.
연후의 거침없는 표현에 연소소는 화들짝 놀라 허둥지둥 입을 열었다.
“지,집사님 그건……!"
“괜찮습니다, 연 당주.”
그림자는 연후를 제지하려던 그녀를 나직한 목소리로 말렸다.
그러고는 다시금 시선을 돌려 연후를 똑바로 바라봤다.
일말의 표정 변화조차 없는 그림자.
이에 연후는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부정하지 않는 걸 보아하니, 네 녀석도 인정하는 모양이로군.”
“직접 보여 드리면 될 일이니까요.”
“호오, 자신감이 대단하구먼.”
“그렇게 배웠거든요.”
그림자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연후의 미간이 살짝 꿈틀거렸다.
이러한 반응은 그의 오래된 습관으로, 만족스럽다거나 흥미를 느낄 때 주로 짓는 표정이었다.이를 증명하듯.
“……그저 시커먼 놈인 줄 알았더니, 꽤 재밌는 애송이로군.”
연후는 거칠게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림자는 거기에 대답하는 대신.
척_ 전투 자세를 취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이에 반응하여 연후의 미간이 크게 요동치는 가운데.
그림자는 마지막으로 짤막하게 대꾸했다.
“먼저 가겠습니다.잘 부탁드립니다.”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발언.
이에 연후는 거친 웃음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즉시 그림자는 바닥을 박차고 쏘아져 나갔다.
스르륵-
흑영신보 특유의 칠흑빛 안개가 전신을 감싸는 가운데.
그림자는 탈혼지를 발동시켰다.
무심한눈동자에 한 줄기 붉은 기운이 서린 순간, 연후의 전신 곳곳에 붉은 반점이 드러났다.
그제야 연후는 본격적으로 자세를 취했다.
척-
두 주먹을 비스듬히 들어 올린 자세.
익숙한 기수식이었다.
‘복마구권.’
마를 굴종시키는 권법, 복마구권이었다.
연후가 복마구권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애초에 대부분의 무공은 스승님께 전수받은 거니까.’
복마구권을 비롯한 무공들의 본래 주인은 연후였다.
즉, 연후가 아니라 그림자가 그와 동일한 무공을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그림자는 연후에게 직접 보여 줄 생각이었다.
그는 판단 즉시 흑영신보의 안개로부터 벗어나는 한편.
척-
동시에 연후와 정확히 동일한 자세를 취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리고 복마구권에는 복마구권이었다.
단순히 치기 어린 마음으로 결정한 건 아니었다.
‘스승님께선 현재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고 계시는 게 아니니까.’
연소소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의 특성을 단지 특이한 능력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게 바로 그 증거였다.그림자는 같은 무공을 사용함으로써이 점을 바로잡을 생각이었다.
그럼 의구심 상태에 머물러 있던 연소소의 설명도 한층 와닿게 될 터였다.
생각을 정리할 무렵.
“……네 녀석!”
때마침 기수식을 알아봤는지, 연후가 두 눈을 부릅뜬 채 소리쳤다.
하지만 그림자는 거기에 반응하는 대신.
타닷
면후를 향해 한층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백 마디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이런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연후 또한 본격적으로 복마구권을 펼치기 시작했다.
쩌-엉!
권격을 넘어 주먹과 주먹이 충돌했다.
이대 연후는 또다시 두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그림자가 마나의 출력은 물론, 물리적인 힘으로도 그와 동수를 이뤘기 때문이다.
경악스러운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휘익-!
연후와 그림자, 둘 다 거의 동시에 두 번째 수를 위해 주먹을 휘두르는 가운데.그림자의 일권, 그 너머의 노림수이자 무공의 정체를 대번에 꿰뚫어 본 까닭이었다.
“탈혼지……!”
혼을 앗아가는 지법, 탈혼지.
그림자가 복마구권에 이어 탈혼지마저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이다.하지만 그것만으론 연후의 부동심을 흐트러지게 만들기엔 다소 부족했다.
“흐읍!”
상체를 크게 젖히는 단순한 동작으로 일권을 회피.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허리를 뒤틀며 발을 차올린 것이다.
마치 눈앞을 절단할 기세로 펼치는 각법.
다름 아닌 무영귀살각이었다.
서-컥!
소리 없이 일어난 참격이 세로로 길게 닥쳐왔다.
거기에 맞서 그림자는 회피하는 대신, 횡으로 허공을 걷어찼다.
이번에도 역시 연후와 같은 무공, 무영귀살각으로 응수한 것이다.
참격과 참격이 맞닥뜨린 순간.
쩌저저적-!
이질적인 소리가 단련실 내부를 가득 메웠다.
거기에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림자는 곧바로 바닥을 박찼다.
두 참격이 폭발하여 마나의 파편이 허공에서 어지러이 흩날리는 가운데.
타닷- 합이라도 맞춘 듯, 두 사람은 여파를 뚫고 나왔다.그 즉시 둘은 서로의 존재를, 움직임을 인식했다.
그림자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무덤덤하게 응시했다.바며
“……!”
연후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그래서일까.
“흐아압!”
연후는 한층 살벌한 기세로 공세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복마구권은 물론, 탈혼지에 무영귀살각, 거기에 벽뢰수에 이르기까지.
온갖 무공을 쏟아냈다.
콰과과과광-!
A급 권사의 전력은 과연 매서웠다.
단순히 등급뿐만 아니라 세월과 함께 축적해 온 경험, 노련함이 특히 그랬다.
하지만 그림자는 등급에 따른 무력에서도, 심지어 경험과 노련함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모든 걸 당신께 배웠으니.’
그만큼 연후의 가르침이 뛰어났으니까.
물론 이전 생에선 단순히 배운 내용을 어떻게든 소화하기에 급급했다.
가르침을 바탕으로 강해지기엔 시작 시점이, 출발 지점이 너무나 늦은 까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남부럽지 않은 수준으로 빠르게 시작했고, 성장을 뒷받침해 줄 압도적인 성장 스킬도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
쩌-엉!
비로소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경지에 도달했음을 증명할 수 있었다.이에 연후는 결국 감탄을 터뜨리며 자세를 바로했다.
“……제대로 배웠구나!”
모든 생을 통틀어서 처음 들어보는 칭찬이었다.
이는 곧 그에게 배울 자격을 증명한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림자는 거기서 그칠 생각이 없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마주하게 됐는데,이 정도 수준으론 부족하지.’
그러니 보여 줄 생각이었다.
이전 생에서 그가 뿌린 씨앗이 시공을 넘어 발아했음을.
거친 비바람 속에서도 무럭무럭 자라났음을.
그 결과, 마침내 활짝 피어나 그를 넘어서게 됐음을 말이다.
“한 가지 더 보여 드릴 게 있습니다.”
“……무엇이지?”
“무극삼권입니다.”
“…...!”
연후의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