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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179화 (178/218)

< 179 무극(武極) >

179 무극(武極)

안일한 생도의 끝을 헤아릴 수 없는 능력.

김재학의 질문은 그 연원을 묻는 것이었다.

들은 순간, 진태진의 뇌리에 안일한 생도에 관한 온갖 기억들이 스쳐 갔다.

‘안일한 생도라……'

이상하리만큼 빠른 성장 속도,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무공.

심지어 아카데미의 어느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 빌런, 김한석의 정체를 알아내고 야욕을 저지하는 등.

안일한 생도는 존재 자체가 이미 불가해의 영역이었다.

새삼스럽게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드는 가운데.

‘……음?’

진태진은 문득 김재학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단정하고 이지적인 외견.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다만 어째선지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진태진은 오래지 않아 그 원인을 깨달았다.

‘저 눈빛은 도대체……'

정확히는 김재학의 눈빛 속에 담긴 감정 때문이었다.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웠으나, 더없이 불온하게 느껴졌다.

이를 인식하는 것과 동시에 진태진은 입을 열었다.

“……안일한 생도의 경우, 수면 시간을 줄여가며 수련에 매진하더군.”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다름 아닌 틀에 박힌 답변이었다.

상대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엔 지나치게 전형적인 대답을 내놓은 것이다.이는 다분히 의도된 것으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김한석, 그 후안무치한 빌런을 생각하면……'

지난 수년간, 김한석의 정체는 아카데미의 어느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만큼 교묘하고, 은밀하게 숨어서 활동하는 게 바로 미증유의 빌런 집단, 낙일의 방식이었다.

저들의 악랄한 행적으로 인해 세상이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금, 각별히 주의해야 마땅했다.

‘특히나 그 대상이 어쩌면 낙일을 판별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일지도 모르는 안일한 생도라면 더더욱.’

즉, 현시점에서 안일한 생도는 물론.

생도의 불가해한 능력에 관한 비밀은 반드시 지켜져야 마땅했다.

‘후배를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애석한 일이지만, 그게 설령 친애하는 후배여도 예외는 없어야했다.

비밀이란 알고 있는 사람이 최소여야 비로소 성립되는 까닭이었다.

진태진은 그런 일념하에 자신의 직감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거기다 안일한 생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의 향상심을 가지고 있지.지금까지도 놀라운 성장을 보여 줬지만,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그런 생도라고 말할 수 있겠군.”

“……그런 열정적인 생도는 참으로 오랜만에 접하는 것 같네요.”

김재학은 나직하게 탄성을 흘리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의 이질적인 느낌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였다.

그것과는 별개로 진태진은 변함없이 무표정을 유지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답변이 되었나?”

“충분한 것 같습니다.이미 뛰어난 인재들이라 그런지,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가 살짝 의문이긴 합니다만.”

“자네 정도 되는 초인의 관심이다.분명 생도들에게 큰 도움이 될 테니 괘념치 말도록.”

“조언 감사합니다, 선배님.”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는 김재학.그의 모습에 진태진은 무의식적으로 자문했다.

‘너무 과민한 반응을 보인 건가.’

잠깐 생각해 봤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아니오’였다.

상대가 누구든, 안일한 생도의 비밀은 함부로 발설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닌 까닭이었다.

‘그게 나를 믿고 의지해 준 생도를 향한 예의일 테니.’

진태진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고는 슬슬 대화를 마무리하고자 입을 열었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으니 먼저 가보도록 하지.”

“네, 선배님.저는 이만 퇴근해 보겠습니다.”

"음."

다시 한번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김재학을 뒤로한 채, 진태진은 그대로 행정실을 향했다.

...

...

...

진태진이 시야에서 사라질 무렵.

김재학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흥미롭네.’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후보 세 명.

윤설하, 차은월, 그리고 안일한 생도에 관한 이야기는 퍽 흥미로웠다.그중에서도 안일한이 가장 흥미롭게 다가왔다.

‘열정과 향상심으로 A급을 달성했다, 인가……'

아카데미의 생도 시절에 A급을 달성하는 건 사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아니, 특별하고 특출난 존재라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최초는 아니지.’

결코 유일한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그 증거로 당장 기억나는 초인만 무려 둘이나 있었다.

재앙의 마녀 오윤진.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김재학, 그 자신이었다.

‘재능이란그런거니까.’

타고난 천재성, 압도적인 재능이란 분명 드물지만 전무하다곤 할 수 없었다.즉, A급을 달성했다는 사실만으론 그의 흥미를 끌기엔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그럼에도 안일한에게 유독 관심이 가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선배님의 반응이 미묘하게 달랐어.’

다름 아닌 진태진의 설명에서 느낀 온도차 때문이었다.

물론 말로 표현하기 애매한 수준에 불과한 차이였다.

그럼에도 분명 앞선 두 사람에 관한 설명과는 뉘앙스부터가 달랐다.

‘어째서일까.’

그 이유가 안일한 생도에 관한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김재학은 이를 음미하듯 생각을 확장시켜 나갔다.

‘선배님께서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건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으나, 확신에 이르기에는 근거가 다소 부족했다.

설명의 빈약함은 진태진이 숨기는 게 아니라 정말로 아는 게 없을 경우에도 해당되는 까닭이었다.

잡힐 듯 말 듯한 모호한 감각 속에 김재학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안일한 생도라......'

이를테면 연구 대상이라 해야 할까.

알면 알수록 흥미가 깊어지는 느낌이었다.

입가에 걸린 미소가 한층 더 진해지는 가운데.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김재학은 천천히 걸음을 돌렸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나는 곧바로 스텟 단련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일전에 그림자에게 약속한 대로 스텟 단련에 매진하기 위함이었다.

‘태진 교관님은 넘어섰지만.’

내겐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았다.

더욱이 내가 상대해야 할 적은 S급이니만큼, 여기서 안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새삼스럽게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

-좋은 자세다.

문득 그림자 녀석이 말을 걸어왔다.

단순히 격려로 끝낼 생각이 아니었는지, 녀석은 추가로 말을 이어 갔다.

-오늘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시작이라니,뭘?’

-동기화율 작업, 그리고 무극삼권 마지막 초식의 수련이다.

그제야 녀석이 느닷없이 대화를 청한 이유를 깨달았다.오늘 밤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이려는 것이다.

‘드디어……

과연 동기화율 90%를 달성했을 때 어떤 능력을 얻게 될지.

무극삼권의 마지막 초식의 위력은 어느 정도일지.

차오르는 기대감에 가슴이 뛰는 가운데.

녀석은 나직한 어조로 내게 한 가지 조언을 건넸다.

-동기화율 작업은 상관없지만, 무극삼권의 수련 만큼은 특히 집중해서 지켜보는 편이 좋을 거다.‘네가 수련할 때는 대부분 딴 생각하지 않고 주시하긴 하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

실제로 매 순간까지는 아니어도, 녀석이 수련할 때만큼은 대부분 집중했다.

그래야 무공을 펼치는 감각이 보다 생생하게 전해지는 까닭이었다.

분명이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녀석이 이토록 강조하니, 호기심이 동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 기다리자 녀석은 순순히 이유를 밝혔다.

-무극삼권의 마지막 초식, 무극(武極)은 육체로 펼치는 무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육체로 펼치는 무공이 아니다?’

그림자의 설명에 고개가 절로 기울어졌다.

육체로 펼치는 무공이 아니라니, 가늠조차 되지 않은 까닭이었다.이런 내 속내를 알아차렸는지, 녀석은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해 주지.한번 마법을 떠올려 봐라.

‘마법?’

-그래.마법은 어떻게 전개되지?

녀석의 질문에 일순간 말문이 막혔다.

어렴풋하게나마 머릿속에 그려졌으나, 무어라 표현하기가 난해한 까닭이었다.

뜻밖의 고민에 머 리를 싸매고 있을 때.

-구체적인 작동 원리를 묻는 게 아니다.편하게 이야기하도록.

이번에도 역시 그림자는 내 속내를 헤아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는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생각나는 바를 그대로 떠올렸다.

‘음, 마법은 보통 허공에 전개한 마나를 제어하여 마법으로 발현시키지 않나?’

-정확하다.마법은 체내의 마나를 활용할지언정, 무공처럼 초식이나 투로가 존재하진 않지.

그림자의 대답을 들은 순간, 녀석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설마.’

-어느 정도는 눈치챈 모양이군.외부에 발출한 마나를 제어함으로써 완성시키는 것.그게 바로 마법과 무극의 공통점이다.

육체로 펼치는 게 아니며, 초식이나 투로가 존재하지 않는 무공.

그리고 마법과 마찬가지로 외부에 발출한 마나를 제어하여 완성시키는 권법.

그게 바로 무극삼권 제3초, 무극인 모양이었다.

'무극.......'

그림자의 설명만 놓고 보자면 무극은 일반적인 무공과는 궤를 달리하는 느낌이었다.

여전히 가늠조차 안 되는 가운데, 녀석은 천천히 설명을 이어 갔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유형화된 마나를 특수한 방식으로 제어하는 거다.마나를 권법으로 구현시키는 거지.

‘……끄응, 설명만으론 감이 잘 안 잡히는데.’

-그게 정상이다.어차피 수련과 체득은 내 몫이니까.다만 앞서 말했듯, 체득과정을 집중해서 지켜본다면 실전에서도 무리 없이 활용할수 있을 거다.

‘알겠어.최대한 집중해 볼게.’

나는 속으로 다짐하듯, 몇 번씩 되뇌었다.

그대로 대화를 끝마치려는 찰나,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나저나 무극은 연후 부교관님이었나?그분한테 도움을 받는 거야?’ 다름 아닌 무극의 수련에 관한 부분이었다.

기억을 더듬으며 묻자 녀석은 곧바로 긍정했다.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군.

‘뭐, 중요한 대화였으니까.어떤 분일지 궁금하네.’

무극에 관한 호기심이 강렬해진 만큼, 수련을 도와줄 사람을 향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커져갔다.무의식적으로 떠올린 생각에 그림자는 어째선지 침묵했다.

이윽고 녀석은 어딘가 그리운 기색이 묻어나는 어조로 답했다.

-……굉장한 분이다.분명 무극을 체득하는 것 이외에도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실 거다.

뭔가 사연이 느껴졌지만 나는 구태여 캐묻지 않았다.

그대신.

‘그건 기대되네.’

적당히 대화를 마무리하고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그날 밤.

-대상의 무의식 상태를 확인.

-대상의 주도권이 [????의 그림자]에게로 넘어갑니다!

-대상과의 동기화율을 확인.

-현재 동기화율…… [80%]

그림자는 비교적 이른 시각에 눈을 떴다.안일한이 배려해 준 덕분이었다.

‘보고 있나?’

-그래.

그림자는 의식의 공유를 확인하고는 곧장 스마트 워치를 조작했다.

움직이기에 앞서 연소소와 만날 시간을 조율하기 위함이었다.

전화를 걸자 수초 만에 반응이 왔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림자님.

아무래도 여태 연락을 기다린 모양이었다.

그림자는 나직하게 감사를 표하는 한편, 곧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지금 시간 괜찮으신지요.”

- 얼마든지요!

연소소는 평소처 럼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대로 대답하고 통화를 마치려는 찰나.

……그런데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어요.

연소소가 망설이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듣는 순간 그림자는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혹시 문제가 있나요?”

네, 다름이 아니라 저희 2집사님이…….

그녀가 무어라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그림자는 떠올린 바를 입에 담았다.

“자격을 묻지 않던가요?”

그, 그걸 어떻게……!

스마트 워치 너머로 연소소의 당황스러운 감정이 여실히 느껴졌다.

반면 그림자는 당혹스럽기는 커녕, 가슴 속에 한층 더 진한 그리움이 밀려드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감정에 취하는 대신,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했다.

“아시다시피 전 미래에 그분과 인연을 맺은 적이 있습니다.”

-아……,그렇네요.정신이 없어서 그만.

“그분께서 제 자격을 시험하는 건 상관없습니다.”

연후의 자격시험.

이는 이전 생에서도 겪은 일이었다.

당시는 지금과 같은 지식도, 바탕도 없었지만 결국은 그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가진 것 하나 없을지언정, 독기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수준이었으니까.

‘하물며 지금이라면.’

필요한 건 전부 갖추고 있었다.

오히려 차고 넘치는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분께 전해 주시죠.얼마든지 받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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