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 생도는 항상 본 교관의 예상을 뛰어넘는군 >
177 생도는 항상 본 교관의 예상을 뛰어 넘는군
진태진 교관의 눈을 보는 순간.
“……!”
나는 무의식적으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만큼 진태진 교관의 눈빛에 깃든 살기는 가공할 만한 수준이었다.
더욱이 특유의 무표정이나 무심하게 가라앉은 눈빛 등.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살기만 진득하게 뿜어내서 그런지, 한층 더 오싹하게 느껴졌다.
‘……역시 진태진 교관님인가.’
주변에 서 있던 생도들도 헛숨을 터뜨리거나, 한 발짝 물러서는 등.
대부분 경계심을 바짝 끌어 올렸다.
물론 그중에는 독특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존재했다.
“크으, 역시 교관님이시군!”
살기로 인해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입꼬리를 슬쩍 올리는 청년.
다름 아닌 임강철이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오직 임강철만이 진태진 교관을 상대로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한결같네.’
정말이지 일관성 있는 임강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감정이 전염되는 기분이 들었다.
가슴 속에서부터 승부욕과 향상심이 서서히 끓어오르는 가운데.
'......잠깐.’
문득 시야에 김재학의 모습이 들어왔다.
동시에 지금껏 잊고 있던 바가 머릿속에 되살아났다.
‘그자가 주시하고 있을 텐데, 과연 전력을 다해도 괜찮은 걸까?’
현재 김재학과 나는 서로를 주시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력을 다해 진태진 교관과 실전 대련을 펼친다?
눈에 안 띌 수가 없었다.
뜻밖의 의문에 생각이 깊어질 무렵.
-괜찮을거다.
때마침 그림자 녀석이 침묵을 깨고 말을 걸어왔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타이밍이었다.
이에 나는 곧바로 녀석과의 대화에 어울렸다.
‘내가 지나치게 걱정하고 있는 건가?’
-신중해서 나쁠 건 없지.게다가 네 걱정은 어느 정도 타당하다.
녀석은 이어서 이유에 관한 설명을 덧붙였다.
-눈에 띄는 건 애초에 A급을 달성한 그 순간부터 이미 예정된 사실이나 다름없다.특출난 만큼 당연히 의심도 깊어지겠지.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그래봐야 심증이다.
‘그래봐야 심증……?’
-그것만으로 판돈을 올리기엔 김재학 측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지나치게 크다는 거다.
‘아.’
확실히 녀석의 말대로, 심증이 깊어지는 건 이미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 만 그뿐이었다.
상대도 조직의 명운을 걸고 움직이는 이상, 보다 확실한 증거가 필요할 터였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뛰어난 역량은 움직일 근거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안심하고 수업에 집중해라.저만한 초인과의 대련은 얻을 게 많을 테니까.‘알겠어, 고마워.’ 녀석의 격려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덕분에 온전히 수업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때마침 진태진 교관이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대련을 시작하겠다.첫 번째는……"
그가 지목한 이는 10위에 해당하는 남자 생도였다.
생도는 긴장한 기색으로 조심스럽게 나섰다.
거기에 맞춰 진태진 교관도 미리 준비해 둔 창을 꺼내 들었다.
일정 간격을 두고 서로 마주 선 가운데, 나는 집중력을 끌어 올렸다.
‘한번 지켜보면 좀 더 정확히 알수 있겠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방식의 실전 대련.
설명만으로 잘 와닿지 않았던 부분도 비교적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터였다.그런 일념으로 두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시킬 무렵 본격적으로 대련이 시작됐다.
타닷
던저 움직인 쪽은 놀랍게도 진태진 교관이었다.
그는 상체를 숙인 채 창날을 비스듬히 세웠다.
언제든 공세를 퍼부을 수 있게끔 준비를 갖춘 것이다.
단순한 동작이 었으나, 의미는 남달랐다.
‘보통 교관님들은 먼저 공격을 받아 주시니까.’ 교관과의 대련은 지도의 성격이 짙은 만큼, 일반적으로 선공은 양보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명백히 선수를 취하고자 하는 것이다.
차이점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파직-
일정 간격에 들어선 순간, 진태진 교관은 섬전칠보를 펼쳤다.
급격하게 빨라진 속도에 생도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
벌어진 입을 다물 생각조차 못 한 채 생도는 다급하게 방어를 준비했다.
진태진 교관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싯쳐들어 그대로 공세를 퍼부었다.
채채채채챙-!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창격.
그 속에서 생도는 이를 악물고 공세를 받아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진태진 교관의 창술이 치명적인 궤적을 그리며 매서운 속도로 쇄도한 까닭이었다.
그것도 노리는 부위가 하나같이 급소라 생도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서걱-!
생도의 호신은 엄청난 속도로 깎여나갔다.
차마 반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수세에 몰리기를 수 분.
슬슬 호신을 일으킬 마나조차 간당간당해 보였다.
혹여나 피해가 발생하는 게 아닐까 싶은 찰나.
우뚝-
별안간 진태진 교관이 창을 거두고 멈춰 섰다.
이에 생도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고개를 기울였다.
그를 향해 진태진 교관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5분 지났다.잘 버텼군.”
예상과는 달리 진태진 교관은 생도에게 격려를 건넸다.
그제야 나는 제한 시간 5분이 지났음을 깨달았다.
시간조차 잊을 만큼 몰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이런 거구나.’
지금껏 지켜본 결과,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번 수업이 내게 상당한 도움이 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사이.
“……기본적인 대처나 호신의 활용은 훌륭했다.다만 소극적인 자세나 기초 체력, 그리고 시야의 협소함은 개선이 필요하다.앞으로의 수업에 있어이 점을 유념하고 임하도록.”
진태진 교관은 방금 대련의 피드백을 짧게 끝마쳤다.
그러고는 곧바로 다음 대련을 진행했다.
어김없이 진태진 교관이 선공을 취하는 가운데.
조금 전과는 살짝 다른의 미로 감탄이 나왔다.
‘역시 상위권 생도들이라 그런지 잘 버티네.’
물론 대련의 양상은 첫 번째 생도와 비슷했다.
하나같이 진태진 교관의 맹렬한 공세를 받아내기 급급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그룹의 생도들과 비교했을 때 수준 차이는 분명 존재했다.
특히 5, 6등을 차지한 생도들의 경우, B급이라 그런지 확실히 더 잘 버텼다.
그래서일까,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친구들은 어떨까.’
임강철은 물론, 차은월에 윤설하까지.
그들은 지난 겨울 방학에 전부 B+급을 달성했다.
즉, 진태진 교관보다 등급이 높아진 것이다.
과연 내 친구들은 진태진 교관을 상대로 어떤 양상을 보여 줄지.
기대감을 떠올릴 무렵.
“다음, 임강철 생도.”
“넵-!”
마침내 임강철의 차례가 왔다.
나는 변함없이 씩씩하게 대답하는 그를 향해 나직하게 말을 건넸다.
“잘하고 와.”
“물론이지!”
임강철은 내게 엄지를 척하니 들어 올리며 건치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는 진태진 교관과 마주 섰을 때까지도 이어졌다.
진득한 살기를 정면으로 받아내면서도 미소를 유지하는 것이다.
“……호오.”
진태진 교관은 임강철을 향해 탄성을 흘렸다.
다만 그뿐이었다.
타닷-
이번에도 역시 진태진 교관은 시작부터 빠르게 짓쳐들었다.순식간에 대련이 시작된 가운데.
“…...!”
두 눈이 절로 휘둥그레졌다.
이는 다름 아닌 임강철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예상을 뛰어넘는 그의 활약에 두 눈이 절로 커졌다.
“흐아압!”
그는 기합성을 터뜨리며 처음부터 마주 달려나가더니, 오히려 진태진 교관을 상대로 공세를 펼쳤다 임강철의 저돌적인 움직임 때문일까.
진태진 교관은 간격을 유지하며 응수했다.
그 결과, 자연히 공세의 주도권은 임강철이 쥐게 됐다.
콰앙! 쾅!
예상 외로 임강철이 맹렬하게 몰아치는 가운데.
진태진 교관의 창끝이 치명적인 궤도를 그리며 짓쳐들었다.
거기서 나는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임강철이 찰나의 순간에 그 모든 공격의 피해를 최소화한 것이다.
‘실력이 엄청 늘었네……?’
임강철 특유의 야성적인 움직임은 기억 속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한층 기민해졌을뿐더러, 영리하게 느껴지기까지했다.
덕분에 두 사람의 대련은 지금까지와는 크게 다른 양상을 보였다.
오히려 진태진 교관 쪽이 수세를 유지하는 형국이 펼쳐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교관님은 교관님이네.’
진태진 교관은 진태진 교관이었다.
지금껏 다른 생도들이 방어에 급급했다면, 진태진 교관은 현상을 유지하는 쪽에 가까웠다.
반격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급소만을 노리고 날카롭게 쇄도해 갔다.
그 탓에 임강철의 움직임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소모전으로 가면 확실히 임강철 쪽이 불리하겠지.’ 아니나 다를까, 임강철의 마나 출력은 눈에 띄게 줄어들어 갔다.
그럼에도 앞선 생도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이를 증명하듯.
“그만.”
진태진 교관이 대련의 끝을 알리는 시점에서도 임강철은 호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도 감사함돠!”
호흡이 가쁜 상태로 고개를 푹 숙이는 임강철.
그를 향해 진태진 교관은 이전처럼 피드백을 진행했다.
다만 앞선 생도들과 달리 칭찬의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이쯤 되면 다른 친구들도 기대되는데?’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찰나.
다음 차례로 차은월이 호명됐다.
그녀 역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니, 사실상 눈부신 수준의 활약을 선보였다.
‘……역장을 저런 식으로 활용할 줄이야.’
차은월이 가진 마력형 특성, 마력 역장.
그녀는 이를 처음 보는 형태로 운용했다.
전처럼 역장을 겹겹이 전개하며 공격력을 증폭시키는 데서 나아가 방어에도 수준급의 활용을 보였다 정확히는 미소한 범위로 역장을 전개하여 방어는 물론, 상대의 움직임 그 자체를 제어하는 것이다.
‘게다가 공격 수단이나 전략도 다채로워졌고.’
위력이 증폭된 마탄 세례와 일반적인 제어 마법의 효과를 뛰어넘는 전격 마법까지.
차은월의 마법 운용은 오윤진의 그것을 연상시 킬 정도로 정교하고 다채로웠다.
덕분에 대련은 조금 전과 또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그만, 수고했다.”
여전히 진태진 교관을 제압하거나, 치명적인 유효타를 가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 것이다.
이는 윤설하 또한 마찬가지였다.
‘역시 윤설하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그녀 또한 다른 친구들처럼 B+급에 걸맞은 활약을 선보였다.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음을 증명하듯, 전과 다른 움직임으로 몰아쳤다.
심지어 그녀의 경우 실시간으로 진태진 교관의 공세에 적응하거나, 거기에 맞춰 대응을 섬세하게 바꾸는 등.
특유의 괴물 같은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나,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물론 이는 어 디까지나 진태진 교관을 제압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을 뿐.
“훌륭했다.피드백이 필요 없을 정도다.생도는 그대로 정진하면 더 높은 경지로 날아오를 수 있을 거다.”
칭찬에 인색한 편에 해당하는 진태진 교관에게 극찬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
“가, 감사합니다!”
윤설하는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제자리로 돌아가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방금 대련을 머릿속으로 복기해 보려는 모양이었다.
‘역시 대단한 친구네.’ 나는 옅은 미소와 함께 윤설하를 곁눈질하는 한편.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진태진 교관을 바라봤다.
때마침 그도 나를 지그시 응시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마지막, 안일한 생도.앞으로 나오도록.”
마침내 내 차례가 다가온 까닭이었다.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진태진 교관과 마주 섰다.
진득한 살기가 오롯이 나를 향해 엄습해 왔으나.
쿠구구궁-!
코어를 일깨우는 것만으로 단숨에 걷어낼 수 있었다.이를 알아차린 건지.
“……!”
일순간 진태진 교관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이내 그는 이채가 서린 눈빛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생도는 항상 본 교관의 예상을 뛰어넘는군.”
진태진 교관은 옅은 미소를 짓는 한편.
“그러니 생도에게는 방식을 달리할 예정이다.”
창을 쥔 오른손을 늘어뜨리며 나직하게 덧붙였다.
“전력을 다해 본 교관을 제압해 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