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 필살(必殺)의 무공이자, 권의 궁극 >
176 필살(必殺)의 무공이자, 권의 궁극
스마트 워치로부터 흘러나오는 투명한 목소리.
상대는 다름 아닌 연소소였다.
“연 당주, 드릴 말씀이 있어 연락드렸습니다.”
그림자는 인사와 더불어 곧장 목적을 밝혔다.
이에 연소소는 즉각적으로 대답을 돌려줬다.
-어디로 가면 될까요?
당장이 라도 찾아올 것처 럼 반응하는 연소소.
그림자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정중히 사양했다.
“말씀은 고맙지만,이 부분은 만나기 전에 전화로 먼저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수호자 길드에 숨어든 낙일의 간부 때문인가요?
연소소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음에도 이유를 빠르게 알아차렸다.
덕분에 그림자는 한결 수월하게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네 맞습니다.김재학, 그자가 아카데미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이상 어느 정도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해해요.그럼 하실 말씀이 혹시 그자에 관한 이야기인가요?
“정확합니다.”
그림자는 나직하게 긍정하는 한편, 대책 겸 향후 계획에 관해 운을 뗐다.가장 먼저 김재학의 의도와 움직임부터, 거기에 따른 대응 방식.
마지막으로 오윤진이 제안한 혼선을 주는 계책과 이와 관련하여 협조를 요청하기까지.
전부 전해 들은 연소소는 특히 마지막에 이르러 탄성을 흘려가며 반응했다.
-……과연, 확실히 저와 오윤진 님이 조금만 신경 써서 움직이면 상당한 혼란을 유발할 수 있겠네요.
“네.필요한 시간 정도는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거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녀 역시 계책의 이점을 한눈에 꿰뚫어 본 것이다.
연소소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지닌 바 통찰력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그럼 접촉 대상은 백유진과심인욱, 오윤서, 윤설하, 그리고 차은월, 이렇게 다섯 명 맞나요?
“정확히 알고 계시네요.”
-어차피 김재학의 낌새를 파악하는 즉시 저희도 본격적으로 움직일 테니, 다른 이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도 없을 테고요.
“맞습니다.역시 연 당주님과는 대화가 편하네요.”
그림자는 진심으로 감탄하는 한편, 지금껏 생각해 왔던 바를 입에 담았다.
“저를 포함해서 총 일곱 명이니 두 그룹으로 나눌 겁니다.그중에서 2집사님께서 저를 포함 총 세 명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림자 님을 포함한 셋이라면, 나머지 두 분은……?
“윤설하, 차은월, 이렇게 둘입니다.”
- 아, 대회장에서 뵀던 친우분들이네요.
“맞습니다.”
윤설하와 차은월,이 두 사람은 이미 연소소와 안면을 튼 상태였다.
그녀의 입장에서도 다른 이들을 상대하기보단 두 사람이 한결 편할 터였다.
- 그리고 그림자 님께선 무공 때문에라도 저희 2집사님의 도움이 필요하시고요?
“잘 알고 계시네요.”
계승을 통해 미래의 기억을 공유한 덕분일까.
연소소는 그가 연후를 택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림자는 무극삼권의 마지막 초식 때문에라도 연후의 조력이 필요했다.
‘애초에 무극삼권은 그분께서 전수해 주신 무공이니까.’
다름 아닌 마지막 초식의 진의를 익히기 위함이었다.
이를 이해했다는 듯, 연소소는 시원스레 수긍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 그럼 또 다른 세 분은요?
“오윤진 길드장에게 맡길 생각입니다.”
백유진과 심인욱, 그리고 오윤서.
그들은 아무래도 오윤진이 맡아주는 쪽이 나을 터였다.
물론 세 사람에게 낙일에 관한 전말을 밝히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하나 그들도 오윤진의 호출이라면 별다른 의문을 품진 않을 터였다.
‘서로 면식이 있을 테니까.’
단지 오윤진에게 설명만 잘해 두면 될 것이다.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할 무렵, 연소소가 입을 열었다.
- 일단 그렇게 알고 바로 내일부터 진행할 수 있도록 미리 전해둘게요.
“모쪼록 부탁드리겠습니다, 연 당주.동기화율 작업도 내일부터 진행하면 될 것 같네요.”
- 네 맡겨만 주세요
그녀의 대답을 끝으로 슬슬 대화를 마무리하려는 찰나.
- 그나저나 참 신기하네요.
불현듯 연소소가 나직한 탄성과 함께 운을 뗐다.
- 사실 2집사님께서 그림자 님의 무공에 관한 유물을 확보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미래에서 전송된 그림자와 계승을 통해 미래를 접하게 된 연소소,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연후가 감당키 어려운 비급, 무극삼권이 깃든 유물을 손에 넣은 게 불과 수 주 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다만 이러한 사실을 계승이라는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접했기 때문일까.
연소소는 알고 있는 대로 흘러가는 상황이 꽤나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 워낙 고차원의 무공이라 그런지, 보통 난해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과연 저희 2집사님이 그림자 님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그녀는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는 듯했다.
다름 아닌 무극삼권의 체득 난이도에 관한 문제였다.
‘개별적인 초식 세 가지를 체득해야만 비로소 하나의 완전한 무공이 되는 무극삼권.’
각각의 초식이 최소 S급에 달하는 만큼, 체득의 난이도도 보편적인 무공과는 궤를 달리했다.
더욱이 지금 그림자가 익히고자 하는 마지막 초식.
무극삼권 제3초, 무극(武極)의 경우 정도가 더 심했다.
‘진천과 천라와는 또 다른 형태인 데다가 무극은 SS급 스킬이니까.’
진천과 천라는 각각 S급에 해당하는 만큼 하나하나가 절기(絶技)나 다름없었다.
그만한 스킬 사이에서도 무극삼권의 마지막 초식, 무극은 특별했다.
‘무극은 필살(必殺)의 무공이자, 권의 궁극.’
당연히 난이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진천과 천라가 제각각 다른 형태이듯, 무극도 앞선 두 초식과 달랐다.
고유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그 점이 바로 무극의 체득 난이도를 한없이 끌어올리는 주된 원인이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체득 방법은 이미 숙지하고 있으니까요.”
그림자에겐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애초에 지난 생에 체득했던 무공일뿐더러, 연후의 도움이 필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무극은 상대방이 있어야 체득이 용이하니까.’
진천과 천라와는 달리, 무극은 형(形)이나 투로를 몸에 익히는 과정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오직 활용으로 모든 걸 익혀야 하기에 스승 혹은 무극을 알고 있는 조력자의 존재가 필수였다.그러니 무극삼권을 확보한 것만으로도 연후는 그에게 충분히 도움이 될 터였다.
“게다가 저와 함께하는 게 그분에게도 훨씬 도움이 될 겁니다.”
- ……아, 반대로 그림자 님도 2집사님의 조력자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요?
“바로그렇습니다.”
즉, 연후와의 수련은 일거양득이 되는 셈이었다.
그제야 모든 의문이 해소됐는지, 연소소는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 감사합니다! 오히려 저희가 도움을 받게 되네요……! 틀림없이 2집사님도 기뻐할 거예요
“아닙니다.”
그림자는 진실로 그리 생각했다.
지난 생에서 무극삼권을 제공해 주고, 가르쳐 준 사람이 바로 연후였으니 말이다.
다만 이를 속으로 삼킨 채 슬슬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럼 내일 비슷한 시간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네! 편안한 밤 되세요!
연소소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통화를 종료했다.
그림자는 몸을 일으키는 한편, 기억을 더듬었다.
무극의 체득 과정을 떠올리니 자연스럽게 연후에 관한 기억이 잇달아 되살아났다.
‘스승님과의 대면이라……'
문득 그리운 감정이 가슴 속에 사무쳤다.
하지만 여태 다른 이들이 그랬듯, 연후와 보냈던 시간 또한 일방적인 추억에 불과했다.
이번에도 역시 공유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으며 그림자는 기숙사를 나섰다.
***
다음날.
본격적으로 2학기가 시작된 가운데.
첫 실기 수업은 시업식 때 밝혔듯, 생존 수업으로 진행됐다.
‘무기 단련실은 상당히 오랜만이네.’
진태진 교관의 지시에 따라 꽤나 오랜만에 1 층 무기 단련실로 집합했다.
수업 시작과 함께 일련의 무리가 대련실에 나타났다.
무리의 선두에는 익숙한 두 사람, 진태진 교관과 김재학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들 모였나.그럼 지금부터 5교시 생존 수업을 시작하겠다.”
진태진 교관은 변함없이 건조한 목소리로 수업 시작을 알렸다.
단지 그뿐으로, 그는 돌연 한걸음 물러 나 함께 온 무리와 나란히 섰다.
그 대신 김재학이 나서서 말문을 열었다.
“앞서 설명했듯, 여러분의 생존 수업은 내가 전담하게 됐다.함께 온 이들은 내 휘하의 팀원들이다.여러분의 수업을 보조하는 조교 정도라 생각하면 편할 거다.”
그제야 대동한 이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어서 김재학은 추가로 설명을 덧붙였다.
“참고로 진태진 교관님께선 본래 수업을 감독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만, 특별히 여러분을 위해 조교 역할을 자처해 주셨다.”
다름 아닌 진태진 교관의 역할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러니 수업에 집중하여 잘 배워갈 수 있도록 한다.알겠나?”
“네!”
김재학은 A반 생도들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수업에 관한 화제로 넘어갔다.
“앞서 설명한 대로 생존 수업은 총 세 가지 과정으로 이뤄져 있다.오늘은 그 첫 번째, 빌런을 상대하는 법에 관한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이번 수업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김재학의 설명에 따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첫 번째 과정, '빌런을 상대하는 법’ 수업은 오늘부터 2주간 진행하며, 방식은 일대일 실전 대련이었다.
다만 지금까지의 대련 수업과는 궤를 달리했다.
무엇보다 대련 상대가 김재학이 대동한 조교, 즉 현역 수호자 길드원이라는 점.
그리고 그들의 최소 등급이 B급이라는 점이 그랬다.
‘그래서 진태진 교관님도 조교 역할로 참여하신 건가.’ 그런 생각을 떠올릴 무렵.
“……마지막으로 다음 초인 라이선스 승급 심사는 수업 내용과 동일하게 진행될 테니 참고하도록.”
때마침 김재학의 설명이 끝났다.
이어서 그는 조교들을 불러모으는 한편, 별안간 생도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 너희들도 이쪽인가!”
나는 임강철과 차은월, 윤설하와 함께 분류됐다.
그 외 6명이 더해져 총 10명을 이뤘다.
추가로 소집된 여섯 명의 면면을 살펴보니 대충 분류의 기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분명 우리 반 상위권 애들이었지.’
나와 내 친구들을 포함, 전부 반에서 10등 안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즉, 김재학은 성적에 따라 생도를 분류한 것이다.
정확히는.
"여러분은 각자 등급에 따라 분류된 상태다.이는 각자 수준에 맞게끔 조교를 배정하기 위함이니 참고하도록.그럼 지금부터 조교의 통제하에 수업을 진행한다."
생도들을 등급에 따라 나눈 것이었다.
그 증거로 나를 비롯한 최상위권 10명의 상대는 조교들 중에서도 특별한 사람이 선정됐다.
“생도들은 본 교관이 맡을 예정이다.”
다름 아닌 진태진 교관이었다.
그제야 뒤늦게 그의 등급이 떠올랐다.
‘……확실히 진태진 교관님은 B급이셨지.’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정확히는 B급 이상으로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게, 진태진 교관은 A급 마법사인 김한석과 부족하게나마 동수를 이뤘다.
당시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서 그런지, 나보다 낮은 등급이란 사실이 도저히 와닿지 않는 것이다.
그사이 진태진 교관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지금이 자리에 모인 생도 중에는 본 교관의 등급보다 높은 등급이 생도가 존재한다.분명 본 교관의 지도에 의혹을 느낄 수도 있다.그러니 이번 수업의 목적에 관해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진태진 교관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 수업을 굳이 대련이 아니라 빌런을 상대하는 법이라 명명한 이유는 간단하다.빌런과의 전투에선 비단 상대를 제압하는 게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번 수업에서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생존, 즉 생환(生還)이다.그렇기에 채점 방식도 다르다.”
채점 방식은 다름이 아니었다.
상대에게 유효타를 허용할 때마다 감점.
심지어 치명적인 유효타가 나올 경우 실격이었다.
물론 상대를 제압할 시 만점이지만, 그 와중에 유효타가 나오면 영락없이 감점이었다.
‘……분명 실력 향상에는 엄청나게 도움이 되겠지만.’
그만큼 지금껏 해왔던 대련보다 훨씬 까다로울 터였다.
게다가 대련 상대는 같은 생도가 아니라 교관, 그것도 진태진 교관이었다.
새삼스럽게 수업의 난이도를 체감하고 있을 때.
“앞서 설명했듯, 이번 수업은 실전 대련이다.따라서 본 교관은 살수를 사용할 거다.그럼 본 교관보다 높은 등급의 생도들도 분명 얻어가는 바가 있겠지.”
진태진 교관이 나직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모쪼록 다치지 않길 바란다.”
그의 무심한 눈빛에 한 줄기, 진득한 살기가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