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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175화 (174/218)

< 175 혼선을 가하는 것 >

175 혼선을 가하는 것

김재학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에 관한 대책을 따로 가지고 있는 건지.

오윤진의 질문에 나는 나직하게 말문을 열었다.

“우선 저들의 의도는……"

가장 먼저 김재학의 목적.

‘예언자’를 추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가 아직까지는 우리의 존재를 특정하지 못했다는 점.반면 우리는 연씨세가의 등장으로 인해 한층 더 빠르고 철저한 준비가 가능할 거라는 점.

마지막으로.

“……그러 니 발각되는 걸 최대한 늦추는 게 목표예요.”

이를 위해 시간을 끌어야 한다는 결론까지.

낮에 그림자 녀석과 합의했던 내용을 고스란히 오윤진에게 전달했다.

그녀는 나직하게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런 이유라면 최대한 시간을 지체시키는 쪽이 유리하겠네.”

“그렇죠.”

“알겠어, 그럼 나도 당분간은 사태를 지켜볼게.”

“누나가 그자의 동향 파악을 거들어 주신다면 확실하게 도움이 될 거예요.”

물론 김재학이 A반의 부교관을 맡게 된 이상 앞으로 수업을 통해 자주 접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수업 이외의 시간이라면?

일개 생도의 신분으로는 그자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반면 오윤진은 다르다.

‘이제는 같은 부교관 신분이니까.’

수업을 준비하거 나, 교직원 회의에 참여하는 등.

행정실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지내게 되는 만큼, 나보다 더 접촉의 여지가 많을 것이다.

‘물론 방과 후의 움직임까진 확인이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아카데미 내에서의 움직임 정도는 낱낱이 캐치할 수 있을 터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리는 정도의 수준이니까.’

오윤진은 전부 이해했다는 듯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이고는 새로운 화제를 꺼내 들었다.

“앞으로는 이렇게 따로 대면하는 것보단 연락하는 쪽이 낫겠네?”

“아무래도 그렇겠죠?”

“아니면 너 말고도 다른 애들과 접촉하면서 예언자의 특정에 혼선을 주는 것도 방법이겠고.”

그녀의 의견을 듣는 순간.

“……혼선이요?”

두 눈이 절로 휘둥그레졌다.

지금껏 몸을 사릴 생각만 했지, 도리어 상대에게 혼선을 줄 생각은 못 해 봤기 때문이다.거듭 곱씹어봐도 나쁘지 않은 전략이었다.

“확실히 그 방법도 괜찮겠네요.”

“그렇지?그편이 네가 움직이는 데도 편할 테고.연씨세가와도 뭔가 준비할 게 있다면서?”

“맞아요,이 부분은 따로 의논을 좀 해 봐야겠네요.”

나는 그녀가 제시한 혼선 유도를 머릿속에 갈무리하는 한편,진지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반응이 만족스러웠는지, 오윤진은 나른한 미소를 띤 채 돌아섰다.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그럼 나중에 결과 알려줘.아, 참고로 그건 메시지나 전화로 해도 충분하니까.”

“알겠습니다.조심히 들어가세요.”

내 인사에 오윤진은 손을 대충 휘저으며 멀어져갔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고는 다시금 용맹관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잠시 후.

퇴근을 위해 주차장을 향하던 오윤진은 문득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이유는 다름 아닌 주차장의 입구 쪽에 서 있는 일련의 무리 때문이었다.

‘……저 남자는.’

오윤진은 저들을 보자마자 한눈에 정체를 알아차렸다.

때문에 그녀는 진하디진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거침없이 다가갔다.

그중에서도 그녀는 무리의 한가운데에 있는 30대 남성을 향해 입을 열었다.

“흐응, 이게 누구야.”

특유의 나른한목소리.

언뜻 빈정거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말투에 사람들은 곧장 반응하여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이내 오윤진의 정체를 알아차리고는 너 나 할 것 없이 표정을 굳혔다.

그 와중에 딱 한 사람만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탄성을 흘렸다.

“……호오.”

무리의 한가운데에 서 있던 사람이자, 그녀가 처음부터 쭉 주시하던 30대 남성.

오윤진은 주위의 시선을 외면한 채 그를 향하여 재차 입을 열었다.

“강철의 기사님 아니야?이제 퇴근하나 봐?”

강철의 기사이자 수호자 길드의 간부, 김재학이었다.

그는 능청스럽게 묻는 오윤진을 향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응수했다.

“재앙의 마녀.당신이 초인 양성의 요람이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버젓이 활보하다니, 역시 협회 측 인간들의 안목은 믿을 게 못 되는군.”

“아무렴, 당신만 하겠어?보아하니 투잡 뛰느라 공사가 다망하신 모양인데.”

“초빙 교관의 책무가 막중한지라.물론 당신처럼 출신 성분이 지저분한 사람은 평생 모르겠지.”

“어머, 당신이 지저분한 걸 논할수 있는 처지였나?”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를 향해 날이 바짝 선 말들을 주고받는 두 사람.

반면 둘의 표정은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분위기는 더더욱 살벌했다.

먼저 고개를 돌린 사람은 다름 아닌 김재학이었다.

“……의미 없군.먼저가 보도록 하지.당신 같은 사람에게 시간을 쏟느니, 단련을 한 번이라도 더 하는 게 훨씬 이로울 테니.”

김재학이 몸을 돌리자, 그의 곁에 있던 이들도 걸음을 옮겼다.

물론 그냥 움직이지 않고 은근한 어조로 저마다 한마디씩 입에 담았다.

“칫, 이래서 빌런과는 상종하면 안 된다니까.가시죠, 팀장님.”

“협회 측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원, 쯧쯧!”

모욕적인 언사.

하지만 그녀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일일이 반응하는 대신, 그녀는 한층 더 진한 미소를 띤 채 김재학의 등에 대고 입을 열었다.

“모쪼록 열심히 단련하길 바라.그래야 그 질긴 명줄이 조금이나마 길어질 테니까, 쿡!”

그녀의 과격한 발언에 순간 김재학이 멈춰 섰다.

다만 그뿐으로, 그는 고갯짓조차 하지 않은 채 마저 걸어갔다.

오윤진은 그의 뒷모습을 싸늘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그렇게 당당하게 나올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지금이라도 충분히 즐겨 두도록 해.

그녀는 한 차례 속으로 되뇌고 나시야 돌아섰다.

***

김재학은 뒷좌석 시트에 몸을 맡긴 채 실시간으로 변해가는 도로의 풍경을 무심하게 주시했다.그러고는 머 릿속으로 두 사람을 떠올렸다.

‘재앙의 마녀 오윤진, 그리고 연씨세가의 2집사라……'

국적부터 출신 성분, 그리고 사회적 위치까지.

두 사람은 그야말로 판이하게 다른 존재였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

그들에게는 딱 하나, 공통점이 존재했다.이는 다름이 아니었다.

‘낙일의 적.’

두 사람 모두 그가 몸담고 있는 조직.

낙일의 존재를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고, 나아가 적대적이라는 점이었다.

즉, 앞으로 한 학기 동안 적들과 같은 지붕 아래 함께 지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럼에도.

“……과연 그게 가능할지.”

김재학은 무덤덤하게 웃었다.

이미 암어까지 폐지한 상황이었다.

더 이상 그의 정체를 입증할 수 있는 수단은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적어도 그가 먼저 움직이지 않는 한, 탄로 날 가능성은 전무했다.

‘물론 움직이기 시작해도 그들은 따라올 수 없겠지만.’

낙일의 수장, 제니퍼 퀘이드와 그가 주도하여 철저히 준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김재학은 그들의 추적을 두려워하는 대신, 다른 관점으로 현 상황을 바라봤다.

‘여명이란 이름 아래 뭉친 오윤진, 그리고 연씨세가.이 둘은 높은 확률로 내 목적을 알고 있다.’

예언자의 존재를 특정하는 것.

그들이 초빙에 응한 것도 바로 이를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추론의 이유는 간단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공교로운 상황이 일어날 리가 없지.’

애호에 만일 저들이 그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굳이 아카데미까지 따라올 필요는 없었다.

초빙에 응할 이유도, 의미도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오윤진은 차치하더라도, 세계 곳곳에 숨어든 낙일의 간부를 색출해 제거해낸 역량을 가진 연씨세가는 굳이 이런 식으로 움직일 이유가 없으니까.’

즉, 연씨세가의 합류가 추론의 결정적인 근거였다.

그럼에도 지금과 같은 공교로운 상황이 펼쳐진 이유가 무엇일까.

답은 어렵지 않게 도출해낼 수 있었다.

‘내 목적을 저지하기 위해서겠지.’

즉, 그가 예언자를 특정하는 걸 저지하거나.

혹은 발각됐을 때, 그에게서 예언자를 지키기 위함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결론이 가리키는 바는 명확했다.

‘예언자는 현재 아카데미에 있다.’

여명의 수장을 자처하는 자.

통칭 ‘예언자’는 아카데미에 있을 것이다.

그것도 재? 중인 생도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지금껏 낙일과 관련된 사건의 공통분모를 따져봤을 때 그랬다.

‘똑같이 각 사건의 교집합으로 후보를 추려본다면 그가 담당하는 A반에 세 명.

연씨세가의 2집사가 담당하는 B반에 한 명.

그리고 재앙의 마녀 오윤진이 담당하는 C반에 두 명.

정리하자면 유력한 후보는 총 6명이었다.

거기서부터 김재학은 새로운 추론을 이어 나갔다.

‘가장 먼저 낙일의 정체를 알아차렸다는 평가를 받는 오윤진의 존재를 생각하면 C반.’

대지의 혼 길드장의 자식인 심인욱, 그리고 다섯 번째 진리 마탑주의 딸이자 오윤진의 동생 오윤서 두 사람이 유력하다.

하지만 그는 금방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둘은 서문세가의 난에 휘말리지 않았다.’

즉, 심인욱과 오윤서는 연씨세가와의 커넥션이 부실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둘 중 하나가 예언자일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진다.

같은 이치로 B반의 유력 후보, 백유진의 가능성 또한 함께 낮아졌다.

따라서 김재학은 자연스럽게 A반으로 신경을 돌렸다.

‘A반의 후보는 총 세 명.’

윤설하 생도, 차은월 생도, 그리고…….

“……안일한 생도.”

김재학은 무의식적으로 그 이름을 되뇌었다.

자연히 안일한 생도에 관한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몇몇 인상적인 장면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이를테면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이라든가.

아니면.

‘성휘의 화신을 두른 워 해머에 상반신이 짓뭉개지고도 불과 며칠 만에 멀쩡한 상태로 퇴원했던 일이라든가.’

불가사의한 일이었기에 여전히 생생하게 떠올랐다.

분명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예언자의 능력은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것.재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까.’

냉정하게 따져보자면, 당시의 기억은 단순히 인상적일 뿐.

예언자의 특정에 관한 근거가 될 순 없었다.

게다가 안일한 생도를 넘어 A반에 예언자가 있을 거라는 근거도 다소 빈약했다.

‘2집사와 오윤진, 둘 다 A반을 선택하지 않았으니까.’

그들에게 있어 예언자는 지켜야 할 대상이었다.

그런 존재가 속한 반이 아닌 다른 반을 택한다?다소 이해하기 힘들었다.

“흐음……"

뚜렷한 결론이 나오지 않은 채 생각은 계속해서 깊어져 갔다.

지나치게 신중한 게 아닌가 심을 정도였으나, 김재학에겐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존재했다.

‘단 한 번 정도라면 움직이기 시작해도 저들은 따라잡을 수 없다.하지만.’

두 번은 불가능했다.

지금껏 낙일의 밑천이 전부까진 아니어도, 상당 부분 드러나 버린 것이 원인이었다.

즉, 섣불리 움직였다가 틀리면 다음 기회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역시 아직 속단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는 건가.’ 김재학은 시트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그러고는 속으로 되뇌었다.

‘기회는단 한번.하지만 괜찮다.’

시간은 충분하니까.

그러니 새로운 가면에 맞게 충실히 생활하다 보면 머지않아 알게 될 터였다.김재학은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하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날 밤.

-대상의 무의식 상태를 확인.

-대상의 주도권이 [????의 그림자]에게로 넘어갑니다!

-대상과의 동기화율을 확인.

■현재 동기화율 [80%]

그림자는 눈을 뜨며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켰다.

바로 움직이는 대신, 그는 기억을 더듬었다.

다름 아닌 의식을 넘겨받기 전, 안일한이 제시한 의견 때문이었다.

‘혼선을 가한다라……'

단순히 몸을 사리면서 최대한 은밀하게 준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상대에게 혼선을 주는 것.상당히 괜찮은 아이 디어였다.

특히 거창한 행동이 필요 없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랬다.

‘무엇보다 우리가 움직일 필요 없이 오윤진이 조금만 더 세심하게 신경 써 주면 되는 부분이니까.’ 저녁 무렵, 그녀가 안일한과 단둘이 대화를 나눴듯.

오윤진이 다른 이들과 따로 만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입장에선 충분히 혼란스러울 터였다.

‘염두에 둬야겠군.’

만족스럽게 생각을 정리한 그림자는 곧장 스마트 워치를 꺼내 들었다.본래의 목적을 다하기 위함이었다.

‘동기화율, 그리고 무극삼권의 마지막 초식.’

이를 머릿속으로 되새기는 한편.

곧바로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윽고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림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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