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173화 (172/218)

< 173 이번 기회에 전부 갖출 생각이다 >

173 이번 기회에 전부 갖출 생각이다

“지금부터 2학기 생존 교과를 맡아줄 초빙 교관들을 소개하겠다.”

진태진 교관의 호출에 일련의 무리가 단상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가장 먼저 눈에 띈 사람은 다름이 아니었다.

‘……김재학?’

수호자 길드의 간부이자 강철의 기사라는 이명을 지닌 A급 초인, 김재학.

다만 이는 가면일 뿐으로, 그의 진정한 정체는 낙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간부이자 마지막 사도였다.

그런 김재학이 아카데미에 버젓이 모습을 드러내다니.

정체를 아는 나로서는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설마 대놓고 움직일 줄이야……'

이러한 김재학의 행보는 그림자 녀석도 예상치 못했기에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지금 당장 녀석에게이 문제에 관해 질문하거나 상의할 여유는 없었다.김재학만큼이나 예상치 못한 존재가 이어서 단상 위로 모습을 드러낸 까닭이었다.

‘……저분들은.’

당당한 걸음걸이에 특유의 나른한 미소까지.

너무나 익숙한 여성, 다름 아닌 오윤진과 그녀의 측근들이었다.

그녀는 김재학 이상으로 지금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였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달그림자 길드는 대외적으로 빌런으로 분류되어 있는 거 아닌가……?’

오윤진이 이끄는 달그림자 길드는 세간에서 빌런으로 취급 받는 까닭이었다.

진태진 교관이 빌런의 위험성을 강조한 지 불과 5분도 채 되지 않은 만큼, 대부분 의문을 떠올렸다.

곳곳에서 소란이 이는 가운데, 이를 의식했는지 진태진 교관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혼란스러운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그러니 지금부터 오윤진 길드장이 이번 초빙에 합류하게 된 배경을 간략히 설명하겠다.다들 집중하도록.”

그의 설명은 다름이 아니었다.

오윤진은 지난 수행평가 참사 당시 그림자 녀석의 부탁으로 사건의 원흉인 김한석을 죽였다.

진범 사살을 시작으로 배후의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건 물론.

이번 국제 대회 대참사를 통해 수면 위로 떠오른 낙일의 존재를 앞장서서 세상에 알린 모양이었다.

이러한 공로를 토대로 과거를 청산하고 이미지를 쇄신한 결과, 완전히 양지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설명을 전부 들은 순간.

‘……머지않아 만날 거라는 게 이런 뜻이었어?’

불현듯 오윤진이 마지막 대련이 끝났을 당시에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쳐 갔다.

뒤늦게 깨닫는 한편, 그제야 달그림자 길드에 방문했을 때 느꼈던 의문이 해소됐다.

‘괜히 도심 한복판으로 거처를 옮긴 게 아니었네.’

탄성을 흘리고 있을 때, 문득 오윤진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내가 그랬지?’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짓궂은 건 여전하네.’

한숨이 절로 흘러 나오는 한편.

김재학의 등장으로 바짝 긴장했던 마음이 한결 누그러졌다.

그러자 새삼스럽게 현 상황에 대한 의문이 떠올랐다.

‘김재학은 그렇다 쳐도, 누나까지 합류했을 줄이야.’ 지금과 같은 식은 아니어도, 김재학이 어떤 식으로든 움직일 거란 사실 정도는 그림자도 예상하고 있었다.다만 오윤진의 움직임은 녀석 또한 예상치 못한 모양이었다.

‘알고 있었다면 미리 내게 언질을 줬을 테니까.’

때문에 나 혼자 이런저런 추측을 이어 가는 가운데.

어느새 김재학과 오윤진에 관한 소개가 끝났다.

수호자 길드와 달그림자 길드.

두 곳으로 끝인 줄 알았으나, 예상과는 다르게 진태진 교관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특별한 분들을 소개하겠다.부디 이쪽으로 올라와 주시지요.”

특별한분들.

지극히 정중한 어조로, 앞선 두 사람들과는 소개하는 말투부터가 달랐다.

김재학부터 오윤진까지, 이쯤 되니 더 놀랄만한 일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내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진태진 교관의 요청에 응답하여 단상 위로 오르는 일련의 무리들 중, 익숙한 사람이 눈에 띈 까닭이었다.

‘연 당주가 여길 왜……?’

연씨세가의 연소소.

중국에 있어야 할 그녀가 한국 초인 아카데미에 나타난 것이다.

예상치 못한 등장에 뚫어져라 바라보던 중, 문득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확신했다.

‘지난번 약속을 지키러 온 건가?’ 병실에 있을 당시, 그녀는 굳은 눈빛으로 약속했다.

자신을 비롯하여 가문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나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이다.

아무래도 스스로 내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이 자리에 임한 듯했다.

이런 속내는 나만이 알고 있었는지.

“중국의 11 가문의 한축을 담당하는 연씨세가다.빌런의 위협이 한 나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만큼, 기꺼이 합류해 주셨다.”

진태진 교관의 입에선 조금 다른 내용의 설명이 흘러나왔다.

대참사를 일으킨 서문세가의 죄업에 대해 중국의 대가문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점.

더불어 같은 피해자로서의 공조하려는 점 등.

이런 식으로 연씨세가는 대외적인 명분을 내세웠다.

그 결과.

“연씨세가 측에선 생존 교과를 맡아 줄 교관 한 분과 친교의 의미로써 교환학생 한 명을 보냈다.다들 인사하도록.연후 2집사님, 그리고 연소소 양이다.”

연씨세가는 교관 파견 및 교환학생의 형태로 한국 초인 아카데미에 합류했다.

‘……교환학생이라니, 진짜 상상도 못 했는데.’

거듭 생각할수록 그들의 수법에 감탄이 설로 나왔다.

그사이, 단상 위의 두 사람 중 거친 인상의 중년 남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연씨세가의 2집사를 맡고 있는 연후다.한국의 동량들을 만나게 되어 기쁘기 한량없다.”

중후한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다만 통역용 아티팩트 때문인지 살짝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그런 감상과는 별개로 묘한 연후라는 중년 남성에게서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국제 대회 경기장에서도 본 적 없는 사람 같은데.’

의아함을 떠올리는 사이, 연소소 또한 스스로를 간략하게 소개했다.

그녀가 인사를 마치고 한걸음 물러서자 진태진 교관이 재차 입을 열었다.

“총 세 분이 각 반의 부교관을 맡아 주실 거다.김재학 팀장이 A반을, 연후 2집사님이 오반을, 그리고 오윤진 길드장이 C반을 맡게 될 테니 다들 그렇게 알고 있도록.”

수호자 길드의 팀장 김재학, 달그림자 길드장 오윤진, 그리고 연씨세가의 2집사 연후까지.

아무래도 초빙 교관은 세 사람이 전부인 모양이었다.

이 사실을 머릿속에 갈무리하는 한편.

‘그나저나 김재학이 A반 담당이라……'

요주의 인물 김재학의 향후 움직임을 속으로 가늠했다.

그가 A반을 담당하게 된 만큼 면밀히 주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도 마찬가지였다.

‘김재학도 나를 주시하겠지.’

그림자가 낙일에 흘린 정보.

‘예언자’의 존재를 특정하기 위해서라도 그럴 터였다.

그러니 대책이 필요했다.

‘시업식이 끝나면 녀석과 한번 상의해 봐야겠어.’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할 무렵.

“그럼 이것으로 시업식은 마무리하겠다.구체적인 사항은 각 반의 담임 교관이 전달할 테니 생도들은 지금 바로 이동하도록.”

어느새 시업식이 끝났다.

나는 마지막으로 두 사람, 오윤진과 연소소를 곁눈질하고는 그대로 걸음을 돌렸다.

잠시 후.

몇 달 만에 A반에 들어선 가운데.

그리운 감정을 느끼기도 전에 진태진 교관은 전 생도를 대상으로 착석을 지시하며 말문을 열었다.

“그럼 지금부터 생존 교육 과정을 포함한 2학기 커리큘럼에 관해 설명하겠다.”

시업식 때의 설명을 마저 이어 나가려는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직접 할 생각이 없었는지, 진태진 교관은 돌연 한 발짝 물러났다.

동시에 옆으로 살짝 고개를 돌렸다.

“김재학 팀장, 아니 부교관.”

“네,선배님.”

“앞으로 김재학 부교관이 A반의 생존 교육 과정을 전담하게 될 테니 생도들의 안면도 익힐 겸, 직접 설명하는 거로 하지.”

“알겠습니다, 선배님.”

김재학은 절도 있게 대답하는 한편.

“내 소개는 시업식 때 했으니 생략하고, 바로 커리큘럼에 관한 설명으로 넘어가겠다.”

무표정하게 입을 열었다.

“생존 교과의 목표는 말 그대로 여러분들의 생존 역량을 기르는 것이다.이를 위해 세 가지 과정으로 세분화하여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세 가지는 다름이 아니었다.

대인 전투, 빌런을 상대하는 법.

다수의 습격으로부터 생존하는 법.

마지막으로 돌발 상황에서 대처하는 법까지.

즉, 생존 교과라는 명칭에 걸맞은 커리큘럼으로, 내용 자체는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이어지는 내용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장 먼저 대인 전투의 경우……"

목적에 충실한,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설명이 계속됐다.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새삼스럽게 소름이 끼쳤다.

‘만일 저 사람의 정체를 몰랐다면……?’

속지 않을 도리가 없을 거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그만큼 김재학이 뒤집어쓴 가면은 견고해 보이는 한편.한 가지 의문이 강하게 들었다.

‘김재학이 사도인 이상 이렇게 아카데미를 마음 놓고 활보할 수 없어야 정상인데.’

그림자의 말에 따르면 김재학은 김한석과 같은 낙일의 간부, 사도였다.

따라서 김한석의 정체를 까발렸던 방법, 암어를 통해 김재학의 정체 또한 만천하에 까발릴 수 있을 터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해가 안 됐다.

‘어떤 식으로든 암어로 찔러 봐야 하려나?아니, 지금처럼 이렇게 대놓고 움직이는 건 틀림없이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건데.’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때.

-동감이다.

느닷없이 그림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나는 잠깐 상황을 살피고는 곧장 녀석과의 대화로 신경을 돌렸다.

‘동감이라니?너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틀림없이 믿는 구석이 있다는 거다.이를테면, 암어에 관한 문제를 해결했다든지.그편이 가장 유력해 보이는군.

그림자도 정확히 나와 같은 의견인 모양이었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생각을 이어 갔다.

‘역시나……, 그럼 당장은 지켜보는수밖에 없으려나?’

-그래.하나 그것도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오히려 당분간은 잠자코 지켜보는 편이 우리에겐 더 좋을지도 모르겠군.

‘지켜보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저들의 목적은 우리가 흘린 예언자의 존재를 특정하는 것이다.즉, 우리의 정체를 밝혀내는 거지.

녀석의 말대로였다.

김재학이 구태여 이번 초빙에 응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즉, 지금 이렇게 대놓고 활보하는 것부터가 아직까지 우리의 정체에 미치지 못했다는 걸 증명하는 거나 다름없다.

‘알고 있으면 굳이 김재학을 움직일 게 아니라 제니퍼 퀘이드, 본인이 직접 움직일 테니까?’

- 정확하다.

녀석은 만족스러운 어조로 내 대답을 긍정했다.

이를 듣고 나서야 조금 전, 그림자가 했던 말이 비로소 이해가 됐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녀석은 설명을 이어 갔다.

게다가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그러니 지금처럼 서로 탐색하는 기간은 오히려 우리한테 유리하게 작용하는 셈이지.

‘시간이라면, 설마……?’

곧바로 되묻는 한편, 불현듯 뇌리에 몇 가지 요소들이 스쳐 갔다.

동기화율, 무극삼권의 마지막 초식, 그리고 S급 등.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을 때.

그래.이번 기회에 전부 갖출 생각이다.

그림자 녀석으로부터 듣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찬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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