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 우리는 더 높이 올라갈 거다 >
172 우리는 더 높이 올라갈 거다
‘……이겼다.’
재앙의 마녀이자, A급 마법사 오윤진.
마침내 그녀에게 주먹이 닿았다.
첫 승리의 짜릿함 때문일까.
털썩-
분명 여력이 남아 있었음에도 다리에 힘이 풀린 까닭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멍하니 대련실의 천장을 바라보며 승리의 여운에 잠겨 있을 때.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오윤진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별안간 말없이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영문 모를 행동에 고개가 절로 기울어졌다.
시선을 얌전히 받아내기를 수십 초.
오윤진은 결국 한숨을 푹 내쉬며 말문을 열었다.
“후우, 됐다 됐어.설마 진짜로 따라잡힐 줄이야.”
아무래도 그녀에게도 이번 대쳄?결과가 꽤나 충격적인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간발의 차로 닿지 못했으니까.’
특히 전력으로 임했던 만큼 생각보다 허탈감이 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에 휩싸였을 때.
“후우, 차라리 잘된 건가?”
다행히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줬다.
나는 이때다 싶어 잽싸게 입을 열었다.
“잘됐다니요?”
“그동안 너한테 따라잡히지 않으려고 나도 고생깨나 했거든.”
“아,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니?차라리 후련한 기분이야.더 이상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되잖아?”
오윤진은 내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나른한 미소와 함께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대답을 들은 순간 참으로 대범한 사람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덕분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어요.”
오윤진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한 것은 말이다.
내 반응을 예상치 못했는지, 그녀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이내 그녀는 특유의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네.”
“진심이에요.”
“아하하, 이건 좀 부끄럽네.”
오윤진은 낯간지 럽다는 듯 제 뺨을 살짝 긁었다.
이내 뭔가가 떠올랐는지, 재차 입을 열었다.
“그래도 뭐, 그 정도면 어디 가서 일방적으로 당할 일은 없을 거야.특히나 상대가 마법사라면 더더욱
“상대가 누구든 절대 지지 않을게요.그럴 자신도 있고요.누구한테 배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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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은 미소와 함께 답하자 오윤진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동시에 그녀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한층 더 진해졌다.
“그런 기특한 대답도 할 줄 알았어?”
오윤진은 기분 좋은 탄성을 흘리며 싱글거렸다.
한참을 그렇게 음미하는가 싶더니, 이내 그녀는 안색을 바로잡으며 운을 뗐다.
“S급 마법사도 행동 원리 자체는 동일할 거야.”
지금껏 그녀의 도움 아래 역량을 갈고 닦은 이유이자, 목표.
S급 마법사 제니퍼 퀘이드와의 전투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이다.
이에 나는 집중력을 끌어 올리며 그녀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차이점은 출력과 전투 지속 시간, 그리고 수법 정도가 되려나.”
“스텟의 차이 때문인가요?”
“앞선 두 가지 요소는 그렇지.하지만 넌 스텟을 걱정할 필요는 없잖아?”
오윤진의 말대로였다.
지금껏 낮 시간을 활용해 내가 마법사와의 전투 역량을 끌어올리는 사이.
밤에는 그림자 녀석이 스텟 단련에 매진했다.
그 결과.
근력 스텟 68
민첩 스텟 67
체력 스텟 67
마력 스텟 109
총합 311스텟.
마침내 나는 A급을 달성할 수 있었다.
특히 이전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마력 스텟보다 근력, 민첩, 체력 스텟이 더 많이 올랐다.
“생각할수록 어처구니없긴 한데, 그런 괴물 같은 성장 속도라면 A급에서 끝나지 않겠지.”
이 또한 그녀의 말대로였다.
A급을 찍을 당시, 그림자 녀석이 내게 단언한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우리는 더 높이 올라갈 거다.
이를 떠올리니 새삼스럽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사이, 오윤진은 마저 설명을 이어 갔다.
“그러니까 네가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은 바로 제니퍼 퀘이드의 ‘수법’이야.”
“수법이요?”
“응.그 부분만큼은 같은 마법 계열끼리도 천양지차로 나뉘니까.”
오윤진의 대답을 듣는 순간, 불현듯 뇌리에 한 사람이 스쳐 갔다.
다름 아닌 A급 마법사이자, 환영 계열 마법의 사용자인 김한석이었다.
그의 존재를 떠올리 니 확실히 이해가 됐다.
“물론 그녀는 우리와 같은 미구현 특성의 보유자니까 화력이 생각보다 처질 수는 있겠지만……
“반대로 까다로울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죠?”
“정확해.역시 이야기가 빨라서 좋네.”
제대로 구현된 특성의 경우, 대부분 전투 및 화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미구현 특성은 달랐다.
오윤진의 ‘재앙 예보’나 윤설하의 아버지, 윤 박사님의 ‘무형의 조형사’처럼 전투와는 하등 상관없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것이다.그렇다고 미구현 특성이 일반적인 특성에 비해 처지는 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상식을 벗어난 불가해한 능력이 주를 이루는 만큼, 일개 전투가 아니라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수준이니까.’
게다가 미구현 특성의 경우, 효과가 저마다 다른 만큼 예측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변수.즉, 전투에 있어선 최악의 조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가 ‘수법’을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 명심할게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윤진은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아, 이걸로 수업은 끝이야.”
그녀는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양, 손뼉을 치며 몸을 일으켰다.나는 그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또 연락 드릴게요.”
그림자의 말에 따르면 오윤진과는 이미 한배를 탄 사이나 마찬가지였다.
최종 국면이 가까워지는 만큼, 머지않아 다시 재회하게 될 터였다.그런 생각으로 인사를 건넸으나, 왠지 오윤진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연락?좋을 대로 하렴.어차피 머지않아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그럼 바빠서 먼저가 볼게.조심해서 들어가렴?”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마지막으로 오윤진은 대련실을 벗어 났다.
한참 동안 의문에 골몰했으나 소득은 없었다.
결국 나는 집에 가는 내내 의문에 머리를 싸맬 수밖에 없었다.
***
오윤진과의 마지막 대련 이후.
시간이 빠르게 흘러 2학기 시업식 날이 찾아왔다.
2학년을 맞이하는 1 학기 때와는 달리 약식으로 진행할 줄 알았건만, 그게 아니었다.교실이 아니라 대강당으로 생도들을 소집한 것이다.
‘원래 이런 건가?아니면 뭔가 중요한문제라도 있는 걸까?’ 의아한 감정을 뒤로한 채 대강당을 향했다.
비교적 여유 있게 도착한 덕분일까.
“오, 일한이! 오랜만이군!”
임강철을 비롯하여 반가운 면면들과 재회할 수 있었다.
다름 아닌 내 친구들이었다.
그중 방학 때 만났던 윤설하와 차은월과는 달리 남은 친구들은 거의 한 달 만에 보는 것이었다.그래서일까.
“안일한, 몸은 좀 괜찮나?”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것 같은데?”
심인욱과 백유진은 가장 먼저 내 상태를 물었다.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주려는 찰나.
“괜찮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한 달 내내 우리 언니랑 아주 좋은 시간을 보냈을 리가 없을 테니까!”
여태 왠지 모르게 나를 째려보던 오윤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무래도 그녀는 오윤진과 친자매 사이인 만큼 내 수련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예 말을 안 했구나, 내가.’
뒤늦게 깨닫는 사이.
어느샌가 친구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어 있음을 알아차렸다.
어떻게 해명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따로 할 일이 있다더니, 오윤서네 언니분에게 도움을 받은 거였어?”
“아니, 일한아! 애초에 그 사람이랑 아는 사이였어?!”
윤설하와 차은월을 시작으로.
“잠깐, 너 설마그사이에 더 강해진 거야?!”
“……정말 방심할 수 없는 녀석이군.그래서, 지금은 등급이 어떻게 되지?”
백유진과 심인욱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이며 내게 질문을 쏟아냈다.
개중에서 오윤서는 여전히 부루퉁한 기색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전에 말하지 않아 서운함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어디서부터 대답해야 하지?’
뜻하지 않은 고민에 휩싸여 있는 사이.
때마침 대강당의 단상 위로 일련의 무리가 올라갔다.
이어서 단상에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들 조용.지금부터 2학기 시업식을 시작하겠다.”
다름 아닌 진태진 교관이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친구들을 향해 양해를 구했다.
“미안, 나중에 전부 설명할게.”
그제야 친구들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꼭 그래야 할 거야! 으휴, 어찌나 자랑하던지!”
오윤서는 마지막까지 투덜거리며 고개를 홱 하니 돌려 버렸다.
그제야 소란이 가라앉은 가운데, 본격적으로 시업식이 시작했다.
1 학기 때와는 달리 훈화를 늘어놓는 과정은 생략됐다.
그대신.
“지금부터 2학년 2학기 교과 과정에 관해 중요한 전달사항이 있으니 다들 집중하도록.”
이후 커리큘럼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내용은 다름이 아니었다.
“이번 학기부턴 새로이 생존 교과가 추가될 예정이다.전 생도 예외 없이 수강해야 하며, 2학기의 정규 시험과 초인 라이선스 승급 시험 또한 그에 맞게 조정이 이루어질 거다.”
듣도 보도 못한 ‘생존 교육 과정’이 추가된 것이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표정에 의아함이 서렸다.
‘원래 2학년 2학기는 승급 시험하고 길드 인턴 과정의 준비 위주로 진행되는 거 아니었나?’
본래 알고 있던 커리큘럼과 달라진 까닭이었다.
지금껏 내가 낙일과 최종 계획에만 골몰할 수 있었던 건 2학기의 수업이 별거 없다는 점도 한몫했다.
뜻하지 않게 생각이 깊어질 무렵.
“다들 궁금한 점이 많겠지.그런 의미로 새로운 교과의 창설 배경에 관해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다행히 진태진 교관은 통보에서 그치지 않고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생도들도 알다시피 근 2년간, 초인 사회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불미스럽게도 전부 아카데미와 관련되어 있었지.”
작년의 실습용 게이트 침식 사태부터, 수행평가 참사, 그리고 올해 서문세가의 난에 이르기까지.
원흉이나 원인, 양상 등.저마다 크고 작은 차이점이 있었으나 딱 한 가지, 공통점이 존재했다.
전부 아카데미의 생도가 휘말렸으며,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이었다.
“그래선 안 된다.생도들이야말로이 사회의 미래이자, 동량이다.그렇기에 반드시 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본 교관을 비롯한 아카데미의 전 교육자는 이를 위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할 것이다.하 지만.”
진태진 교관은 엄격한 목소리로 단언하는 한편.
살짝 굳은 낯빛으로 설명을 마저 이어 갔다.
“현재 초인 사회는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이한 상황이다.예측 불가능한 위협과 악의에 직면한 상태지.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 모든 위험을 막아내기엔 중과부적이다.”
예측 불가능한 위협과 악의.
이는 빌런을, 정확히는 낙일을 뜻하는 것이었다.
구태여 명칭이 언급되지 않았음에도 대부분 알아듣는 눈치였다.
때문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은 가운데.
“그러니 생도 개개인의 차원에서 생존 역량을 기르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셈이다.다만 무작정 생도들에게 생존 문제의 책임을 전가할 생각은 없다.”
진태진 교관의 목소리가 재차 이어졌다.
“아카데미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생도들의 생존 역량을 길러줄 것이다.이번에 창설한 생존 교과가 바로 그것이며, 이를 위해 검증된 전문가를 교관으로서 초빙했다.”
그는 단호한 어조로 말을 끝맺는 것과 동시에 느닷없이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닿은 곳에는 일련의 무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진태진 교관은 나직하게 그들을 호출했다.
“지금이 자리에서 소개하겠다.다들 이쪽으로.”
그의 호출에 하나둘씩 단상 위로 오르는 가운데.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저 사람이 왜?’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
아니, 사람들이 단상 위로 모습을 드러낸 까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