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 어디까지 강해질지 궁금할 정도야! >
171 어디까지 강해질지 궁금할 정도야!
“평소대로 해, 평소대로.”
갑작스럽게 오윤진의 측근, 김수한과의 대련이 성사된 가운데.
그녀는 내게 묘한 기색으로 그렇게 말했다.
물론 나는 그녀의 조언과 별개로 전력으로 임할 생각이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분명 자신감의 이유가 있을 테니까.,
설명 근거가 없다고 한들, 그게 대련에 소홀하게 임할 이유가 되진 않았다.
그런 마음가짐을 토대로 나는 오윤진을 상대할 때처럼 진지하게 대련에 임했다.
과연, 김수한은 현역으로 활동하는 마법사답게 만만치 않았다.
다만, 그뿐이었다.
‘차이가 너무 심한데?’
김수한은 지난 며칠간 물심양면으로 내 수련을 도와줬던 오윤진과 수준 차이가 극심했다.
마법 구사의 정교함은 떨어지고, 대응에 있어 노련함이 부족했다.
결정적으로 김수한의 마나량과 출력은 오윤진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나는 그 점을 노려 급속 재생을 토대로 힘 대결을 유도했고, 어렵지 않게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내가 기준을 너무 높게 잡은 건가?’
지난 며칠간, A급 마법사인 오윤진과 대련해 왔기 때문일까.
적어도 마법사의 역량에 관해 판단하는 내 기준은 그녀가 됐다.
그게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내가 상대해야 할 적은 S급 마법사니까.’
지금보다 기준을 높게 잡으면 잡았지, 내려서 좋을 건 없어 보였다.
새삼스럽게 마음을 다잡는 사이.
“그, 그만! 내가 졌어!”
김수한이 고개를 내저으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몰아치는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패배를 시인한 것이다.
그제야 나는 상념에서 벗어나 주먹을 거둬들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예를 표했다.
“많이 배웠습니다.수고하셨습니다.”
내 인사에 김수한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내 그는 한숨을 깊게 내쉬며 손을 대충 휘저었다.
“……너는 진짜.하아, 그래 너도 고생했어.”
김수한은 마지못해 인사를 하고는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걸음을 돌렸다.
그대로 오윤진을 향해 다가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여태 말없이 대련을 지켜보던 그녀는 미소 가득한 만면으로 김수한을 맞이하는 한편.특유의 나른한 목소리로 그에게 질문을 건넸다.
“가르쳐 본 소감이 어때?”
듣는 순간, 김수한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단번에 질문의 저의를 파악한 까닭이었다.
소리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은 모습과는 달리 그는 빽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다 보셨으면서 정말 성격 나쁘시네요!”
“쿡, 네가 말한 거잖니?”
“어휴, 네네!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김수한은 양손을 장난스럽게 들어 올리며 항복하는 시늉을했다.
두 사람이 한동안 투닥 거리는 사이.
나는 조금 전 대련을 머 릿속으로 곱씹었다.
내 역량에 대한 자가진단 겸, 피드백을 위해서였다.
그렇게 생각에 골몰하고 있을 때.
“얘, 이리 좀와 볼래?”
문득 오윤진이 나를 호출했다.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가자 그녀는 김수한에게 눈짓을 건넸다.
그는 한숨을 내쉬더니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감이 안 잡혔다.
가만히 고개를 기울이고 있자, 김수한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일한아.아까 너를 얕잡아 봤던 점, 사과할게!”
느닷없이 내게 사과하는 것이다.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잠깐 말문이 막혔다.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을뿐더러, 딱히 얕보였다는 생각도 없었다.
‘……마음에 두고 있었나?’
그런 생각을 하며 무어라 대답하려는 찰나, 오윤진이 먼저 선수를 쳤다.
“이런 성격이야.금세 자만하는 게 흠이긴 해도, 맺고 끊는 건 확실한 아이거든.”
“……길드장님, 아이라니요.거 후배가 보는 앞에서, 큼 크흠!”
김수한은 무안했는지, 연신 헛기침을했다.
이내 그는 다시금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정말 대단했다.네가 후배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이야!”
“……감사합니다.”
“어디까지 강해질지 궁금할 정도야!”
김수한은 시원스러운 미소와 함께 중얼거리는 한편.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는지 오윤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또다시 예상을 벗어 난 말을 입에 담았다.
“길드장님!이 녀석, 저희 길드에 데려오죠!”
느닷없이 나를 스카우트하려는 것이다.
‘……갑자기?’
당최 종잡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한편, 자연스럽게 내 시선은 오윤진을 향했다.그녀 또한 김수한의 행동을 예상치 못했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이내 쿡 하고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건 좀 힘들겠는데?”
“왜요?! 이만한 인재가 어디 있다고!”
“그게 아니라, 그럴 정신이 없다는 이야기야.”
“정신이 없다니요?이제 저희도 슬슬 자리 잡은……"
김수한이 고개를 기울이며 무언가를 언급하려는 찰나.
“그건 아직 비밀이니까 그만.”
오윤진이 잽싸게 말을 끊었다.
김수한뿐만 아니라 나 또한 고개를 기울이는 가운데.
그녀는 나른한 미소를 띤 채 말을 이어 갔다.
“아무튼, 우리는 할 일이 있거든.꽤나 중요한 일이라서 말이지.그렇지?”
오윤진은 말을 맺는 것과 동시에 내게 살짝 윙크했다.
그것만으로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김수한에게 정중히 사양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다만 지금은 그럴 겨를이 없어서요.죄송합니다.”
“끄응, 이거 나만 왕따를 당하는 기분이네.”
김수한은 앓는 소리를 내는 시늉을 하면서도 더 이상 내게 강권하지 않았다.
덕분에 곤란한 상황을 면할 수 있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나와는 다르게 오윤진은 한술 더 떴다.
“어머?이제 알았니?”
“길드장님!”
“작게 말해도 다 들리거든?”
“어휴, 진짜!”
못 당하겠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는 김수한.
오윤진은 그를 향해 한차례 웃어주며 슬슬 자리를 마무리했다.
“아무튼, 둘 다 고생했어.그보다 나는이 아이랑 할 이야기가 있으니 이제 그만 자리 좀 비켜 줄래?”
“네네, 방해자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김수한이 떠나가자 대련실에는 나와 오윤진, 단둘만 남게 됐다.
익숙한 상황이 돌아와서 그런 걸까, 자연스럽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런 내 모습에 오윤진은 피식 웃으며 말을 건넸다.
“꽤나 정신없는 친구지?”
“……괜찮은 분 같아요.”
에둘러 대답하자 그녀는 내 본심을 알겠다는 듯 한층 더 진한 미소를 지었다.다만 그뿐으로, 놀리거 나 속내를 추궁하는 대신 새로운 화제를 꺼 내 들었다.
“그나저나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는데, 괜찮지?”
아무래도 조금 전, 김수한에게 둘러댔던 말은 빈말이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나직하게 탄성을 흘리며 곧바로 반응했다.
“다음 단계요?”
“응, 방금 대련을 지켜보고 내린 결론이야.너도 이미 그렇게 느끼고 있지 않니?”
확실히, 마법사를 상대하는 법은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였다.
다만 스스로 판단이 잘 안 섰는데 때마침 그녀가 말해 주니 그제야 확신이 섰다.
“어느 정도 적응한 것 같아요.”
“그래, 그 정도면 충분해.그럼 넘어가는 거로?”
“알겠어요.그런데 다음 단계라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거죠?”
“간단해.”
오윤진은 대답과 함께 느닷없이 기세를 끌어 올렸다.
순식간에 주위의 공기가 뜨거워지는 가운데.
“전력을 다해 부딪히는 거야.어때?’ 그녀는 나른한 미소를 띤 채 나직하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열기에 대항해 코어를 끌어 올리는 한편,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부탁드릴게요.”
***
시간은 또다시 쏜살같이 흘러갔다.
어느새 여름 방학의 끝 무렵이 다가온 것이다.
더불어 오윤진과의 수련도 마지막 날을 맞이하게 됐다.
“이걸로 마지막이네?준비됐니?”
오윤진은 평소처럼 나른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반면 그녀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그녀가 대련에 전력으로 임하기로 결정한 이후부터는 줄곧 그랬다.
시작도 전부터 어마어마한 기세를 피워내는 가운데.
"네, 얼마든지.”
나 또한 그녀와 마찬가지로 마주 기세를 끌어 올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이미 적응했을뿐더러, 나도 그사이 많은 변화를 겪은 까닭이었다.
그 증거로, 처음 대련을 위해 그녀와 마주 섰을 때와는 다르게 긴장감은 전무했다.
대신 그 빈자리는 투지로 가득 채웠다.
타닷-
나는 곧장 대련실 바닥을 박차고 나가는 한편.
흑영신보를 발휘해 칠흑빛 안개 속에 녹아들었다.
내 움직임에 반응하여 오윤진은 순식간에 공격 마법을 전개했다.
지잉-! 지잉-! 지잉-! 지잉-!
수십을 넘어 수백에 이르는 마탄을 전개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랐는지, 그녀는 추가로 공격 마법을 전개했다.
화륵-!
허공에 넘실거리던 진홍빛 색채의 마나가 돌연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그녀의 절기(絶技)이자, 화염 계열의 최상위 공격 마법.
‘용오름’이었다.
무려 세 개의 소용돌이가 대련실 한복판에 휘몰아치는 상황이었으나,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초기와는 달리 좀처럼 여유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콰앙! 쾅! 콰광!
그녀는 용오름에 더하여 수백 발의 마탄을 불규칙적으로 흩뿌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불살라 버릴 기세로 공세를 쏟아내자 굉음과 더불어 연신 쪽발음이 귓가를 찔렀다.
하지만 나는 이를 신경 쓰는 대신, 온전히 심력을 스킬 활용에 쏟았다.
다름 아닌 ‘급속 재생’이었다.
스르륵-
타격 지점을 특정하여 그 부분만 마나의 재생 속도를 가일층 끌어 올렸다.
그래서일까, 호신을 수복하는 속도가 소모량을 월등히 상회했다.
덕분에 피해가 전무한 가운데.
쩌엉-!
나는 공세의 신호탄으로써 가장 먼저 진각을 밟았다.
진천의 여파가 급속도로 뻗어 나가 대련실 전체를 아울렀다.
이에 오윤진은 굳은 낯빛으로 자세를 낮췄다.
언제든 간격을 벌릴 준비에 나선 것이다.
그녀의 반응에 새삼스럽게 격세감을 느끼는 한편.
“흐읍!”
나는 연달아 세 차례, 발을 차올렸다.
다름 아닌 무영귀살각이었다.
백은의 참격은 이전과 달리 눈부실 정도로 선명했다.
색채만큼이나 위력 또한 절륜했다.
콰광-!
단숨에 세 개의 용오름을 말 그대로 찢어 버린 것이다.
이게 바로 지금껏 연마해 온 수련의 성과였다.
화르륵-!
절단된 용오름의 잔재가 불규칙적으로 비산하며 장내를 어지럽히는 가운데.
“……칫!”
오윤진은 혀를 짧게 차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천의 효과로 인해 용오름의 파편은 더 이상 그녀의 무기가 아니었다.
즉, 유성우처럼 쏟아지는 불덩이가 피아를 가리지 않게 된 것이다.
반면 나는.
콰앙
용오름의 파편을 정면으로 맞으면서 질주했다.
‘이 정도 타격쯤은.’
급속 재생의 피해 수복까지 갈 것도 없었다.
마나 회복 속도를 끌어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당 가능한 수준이었다.
이게 바로 오윤진이 황급히 움직이기 시작한 이유였다.
그렇게 쫓고 좇기는, 때아닌 추격전이 벌어졌다.
콰앙! 쾅!
도주와 함께 무차별적으로 공격 마법을 퍼붓는 오윤진.
나는 그녀를 쫓아 최단 거리로 내달렸다.
이는 급속 재생을 가진 나만이 가능한 재주였다.
타닷- 탓!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수록, 오윤진의 표정은 어두워져 갔다.
제아무리 그녀가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다고 한들 최단 거리로만 움직이는 나를 떨쳐낼 수 없는 까닭이었다.결국 오윤진은 모종의 결심을 했는지.
“……치잇!”
도주를 멈추고 나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거기서 직감했다.
‘지금부터는.’
강 대 강, 물러설 수 없는 힘겨루기의 시작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그녀는 순식간에 수십 겹의 방어 마법을 전개하는 한편.
화아아앗-!
또 다른 절기, 지옥의 겁화를 펼쳤다.
그녀의 마법은 단순히 화마(火魔)를 일으키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한 점에 끊임없이 수렴해 가더니, 붉은색을 넘어 백색의 구체로 화한 것이다.백열의 염옥.
오윤진이 가진 궁극의 마법이었다.
거기서 비롯된 여파로 호신의 마나가 급속도로 녹아내리는 가운데.
‘지금!’
나는 급속 재생의 최대 출력을 이끌어 냈다.
전처럼 탈력감은 없었다.그만큼 세밀한 제어가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그 상태로 나는 무극삼권 제2초, 천라를 펼쳤다.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난 백은의 권격이 염옥을 뒤덮어 갔다.
마침내 격돌했을 때.
쩌-엉!
어마어마한 굉음이 대련실을 가득 메웠다.모든 여파가 말끔히 가실 무렵.
“하아, 하아! 난 이제 한계야, 너는
"네, 여력이 조금 남아 있네요.”
“……끄응, 괴물 같은 녀석.”
승부가 결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