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 나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르지 >
168 나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르지
“작년에도 말이 안 나오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숫제 괴물이 됐네?그 흉악한 무공은 대체 뭐니?”
오윤진은 기가 찬다는 듯,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만큼 내가 펼친 무공, 진천의 위력이 그녀의 예상을 뛰어넘은 모양이었다.
‘A급 마법사에게도 충분히 먹히는구나.하기야, 초식에 불과하면서 등급이 무려 S급이니까.’
새삼스럽게 진천을 비롯한 무극삼권의 가치를 체감하는 한편.나는이 사실을 머릿속에 갈무리했다.이는 최종 결전, 제니퍼 퀘이드와의 전투에서도 유효하게 작용할 터였다.
‘이런 식으로 하나둘씩 데이터를 쌓다 보면……'
결국 S급 마법사에게도 주먹이 닿게 될 것이다.
나는 확고부동한 믿음 아래 다시금 자세를 갖췄다.
오윤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더니, 안색을 고쳤다.
그녀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했던 말, 취소할게.”
“취소라는 말씀은……?”
“아니지, 정확히는 수정이라 해야 할까?”
오윤진은 입꼬리를 슬쩍 들어 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다만 그녀의 눈빛은 이전과는 다르게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네 역량을 가늠하되, 수준을 조금 더 끌어올릴 거야.어차피 너, 앞으로 S급 마법사와 싸울 거잖아?”
“그렇죠.”
“그 부분을 중점으로 두고 진행할 테니, 잘 대처해 봐.기대하고 있으니까.”
눈빛은 그대로 가라앉은 채였으나, 그녀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한층 더 진해졌다.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이제부터 진심으로 임하려는 것 같아 등골이 오싹했다.기분과는 별개로.
타닷-
이번에도 역시 내가 먼저 짓쳐들었다.
원거리 계열과 전투는 간격을 좁히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까닭이었다.내 움직 임에 맞춰 오윤진은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그 순간.
화륵-!
무형의 마나가 순식간에 시뻘건 화마(火魔)로 화했다.
이는 단순히 마나의 성질을 화염 계열로 변화시킨 것에 지나지 않았다.
즉, 진짜는 따로 있는 것이다.하지만 상관없었다.
‘마법의 위력이 강맹하면 그만큼 급속 재생을 활용할 기회도 늘어날 테니까.’
피해 수복이 아닌, 마나 회복의 효과를 톡톡히 체감할 수 있으리라.
판단 즉시 코어를 활성화시키고 호신까지 일으켰다.
'이 정도면……
규모가 큰 마법이 됐든, 위력이 강맹한 마법이 됐든.
어지간한 공격 마법은 몸으로도 충분히 받아낼 수 있을 터였다.
그리 생각했건만.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 네?”
불과 몇 초 만에 예상이 빗나갔음을 깨달았다.
오윤진이 택한 수단은 특유의 대규모 화염 마법이 아니었다.
규모가 크기는커녕, 고차원의 마법 또한 아니었다.
그저.
지잉-! 지잉-! 지잉-! 지잉-!
마법 계열을 지망하는 생도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기초 중의 기초.
다름 아닌 마탄이었다.
다만 A급 마법사의 마탄답게, 보이는 숫자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언뜻 잡아도 일백은 돼 보이는 마탄, 게다가 하나같이 시뻘건 화염을 두르고 있었다.
이를 목격한 순간, 나는 직감했다.
‘……의도를 완전히 읽혔다.’
오윤진은 내 의도를 완전히 꿰뚫고 있는 것이다.
두 눈을 부릅뜬 채 대책을 강구하고 있을 때.
그녀가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법사와의 전투란 이런 거야.”
선언과 동시에 불꽃의 탄환이 빗발쳤다.
그야말로 사방에서 짓쳐드는 탓에 나는 다급하게 진각을 밟았다.
쩌-엉!
진천의 여파가 수십 발의 마탄을 그대로 흩어 버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할걸?”
그녀는 여유 가득한 목소리로 지적하는 한편, 단 한 번의 손짓으로 다시금 마탄 세례를 쏟아냈다.
투사체의 궤적부터, 불규칙적인 타이밍까지.
그녀는 말 그대로 모든 요소를 제어하고 있었다.
때문에 도무지 피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피할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으니까.’
피하기만 해선 이길 수 없다.당연한논리였다.
그렇기에 나는 피하지 않고 정면을 향했다.
콰앙! 쾅!
마탄 세례는 매캐한 연기와 함께 내 몸을 폭격했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전신 곳곳에서 폭발했으나 직접적인 피해는 전무했다.
혼원현천신공의 기본 효과에 호신까지 더한 결과였다.
하지 만 그만큼 마나 소모량은 가파르게 올라갔다.
이 사실을 인식한 순간, 나는 그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소모전을 유도하는 거구나.’
그것도 상당히 일방적인 교환을 노리고 있었다.
마탄 한 발 한 발의 위력이 강맹한 건 어디까지나 그녀가 A급 마법사라 그런 것일 뿐.절대적인 소모값 자체는 상당히 적었다.
반면 나는?
‘호신을 유지해야 하는 데다가, 직접적인 피해를 면하려면 계속해서 수복해 줘야 할 테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내가 손해였다.
그리고 이는 고스란히 패배로 이어질 터였다.
일반적으로는 그랬다.
다만.
‘나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르지.’
난 이미 일반적인 범주를 뛰어넘은 존재였다.
내가 가진 능력을 활용한다면, 상식을 벗어 난 대응도 가능했다.
이를테면.
타닷-!
피해를 불사하고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움직임이라든가.
즉, 나는 살 정도는 기꺼이 내어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움직임은.
“……!"
완전히 그녀의 예상을 벗어난 모양이었다.
다만 충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마냥 버티면 부러질 텐데?”
의문을 표하면서도 곧장 화력을 끌어 올리며 반응하는 것이다.
순식간에 마탄의 숫자가 불어났고, 불꽃 코팅의 색채도 한층 더 진해졌다.오윤진의 대응에 나는 한 가지를 확신했다.
‘아직 내 밑천을 모르고 있다.’
그녀는 ‘급속 재생’을 모른다.
따라서 내 회복의 한계 또한 가늠하지 못할 터였다.
그렇다면 이는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어쩌면……'
조심스럽게 승기를 떠올리는 한편.
나는 전신 곳곳에 마탄이 폭발하는 와중에도 우악스럽게 달려나갔다.
완전히 그녀의 사정권에 들어설 무렵.
너는 도대체가!”
오윤진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내게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익!”
그녀가 전략을 수정한 것은 말이다.
오윤진은 발 빠르게 움직여 간격을 유지하는 한편.
허공에 몇 차례 손을 휘저었다.
그 순간.
화륵-!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화염 구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본격적으로 그녀의 주특기라 할 수 있는 화염계 마법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 대 강, 화력 싸움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했건만.이번에도 역시 그녀의 대처는 내 예상을 아득히 웃돌았다.
“……!”
화염계 마법에서 그치지 않고 또다시 마탄 수십여 발을 구현한 것이다.목격한 순간, 불안한 예감이 뇌리를 스쳐 갔다.
‘설마……'
힘 싸움과 동시에 소모전을 이어 나가려는 게 아닐까.
떠올린 가능성은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이렇게까지 하게 될 줄은 정말이지, 조금도 예상치 못했지만……"
오윤진의 손짓에 화염구가 빠르게 낙하했다.
동시에 그녀는 수십여 발의 마탄으로 나를 정조준했다.
“절대 죽으면 안된다?”
섬뜩하기 그지없는 경고.
그 후로 지옥이 펼쳐졌다.
콰앙! 쾅!
마탄 세례가 그야말로 사방에서 시간 차를 두고 전신을 두들겼고, 화염구는 정확히 내 머리 위로 추락했다.그야말로 소름 돋는 멀티태스킹 능력이었다.
‘……역시 대단한 사람이다.’
마법의 위력은 물론, 마법 전개 속도부터 자유자재로 마나를 운용하는 능력까지.
이는 천재라 불리는 차은월조차 불가능한 기예였다.
김한석과의 결전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A급 마법사의 위용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가운데.
나는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려 대책을 고심했다.
‘마탄은 어 떻게든 감당할 수 있겠지 만.’
실시간으로 가까워지는 화염구를 호신만으로 막아 내는 건 무리였다.
그로 인한 피해는 급속 재생을 바탕으로 한 마나 회복 속도를 능가할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된 이상……
결국 나는 그녀에게 접근하기를 포기했다.
그렇다고 물러 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도망치다 무력하게 패배하는 건 대련을 안 하느니만 못할 테니까.’ 바로 그 때문이었다.
“흐읍!”
피하지 않고 맞서기로 작정한 것은 말이다.
나는 판단 즉시 흑영신보를 펼치며 진각을 밟았다.
쩌엉-!
진천의 여파가 마탄을 무력화시키며 일순간 화염구의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그 틈을 타 내가 가진 최강의 창이라 할 수 있는 무공의 기수식을 취했다.
무극삼권 제2초, 천라였다.
츠즈즈즛?
면면부절 이어지는 투로.
그에 따라 무수한 권영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백은의 권격은 마치 하늘을 뒤덮는 그물처럼 화염구를 향해 쇄도해 갔다.
쾅! 콰쾅!
시뻘건 화마를 쉴 새 없이 두드리는 가운데.
화염구가 빠른 속도로 붕괴되기 시작했다.
거기서 한층 더 템포를 끌어 올리자 마침내 수십 개의 불덩이로 나뉘어 유성우처럼 흩어져 내렸다.그야말로 난장판이 따로 없는 상황 속.
“이이……!”
오윤진은 또다시 여유를 잃고 바쁘게 양손을 놀렸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화염구의 파편은 그녀의 제어가 먹혀들지 않았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흉악한 무공이 하나가 아니라 더 있다고기 너는 대체 어디서 그런……!”
마나를 파훼하는 효과.
즉, 마법사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무공이 광범위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까닭이었다.
결국 그녀는 제어하기를 포기하고는 서둘러 움직였다.
화염구의 파편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내게서 간격을 벌리는 것이다.
‘지금이 기회다.’
드디어 공세의 주도권이 내게로 왔다.
다만 이는 찰나에 불과할 터였다.
정신없이 움직이는 와중에 마법을 재정비하는 오윤진의 모습으로 보아 틀림없었다.
나는 판단과 동시에 두 주먹을 거둬들였다.
그러고는.
타닷!
흑영신보 특유의 칠흑빛 안개에 몸을 맡긴 채 그녀를 추격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녀가 향하는 방향을 정조준했다.
그대로 상체를 비틀며 눈앞을 쪼개 버릴 기세로 발을 차올렸다.
쐐애애액-!
다름 아닌 무영귀살각이었다.
백은의 참격이 대련실을 가로질러 그녀의 진로를 차단했다.
“??????!”
이에 오윤진은 두 눈을 부릅뜨며 흠칫했다.
물론 이는 찰나에 불과했다.
하나 내가 그녀의 지척에 이르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잡았다-!”
희열에 찬 외침과 함께 출력을 가일층 끌어 올렸다.
마나가 급속도로 소모되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럼에도 나는 멈추지 않고 기수식을 취했다.
‘범위는 협소하지만 마나 순환 그 자체를 어그러뜨리는 항마멸인장이라면……
진천의 투로에 항마멸인장을 더할 생각이었다.
이거라면 확실하게 승리를 쟁취할 수 있으리라.
그런 일념으로 오른손에 요사스러운 기운을 이끌어내는 순간.
“잡혔다,가 맞지 않을까?”
눈앞에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아함을 인식하기도 전에.
화륵-
느닷없이 눈앞에서 오윤진의 신형이 화마에 휩싸였다.
정신을 차렸을 땐 그녀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뒤였다.
‘이건 설마……
딱 한 가지,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다.
고위급이동 마법, 순간이동.
이를 깨달은 즉시 다급하게 코어를 끌어 올렸다.
그대로 상체를 비틀어 대응하려는 순간.
콰앙
등 쪽에서 어마어마한 충격이 느껴졌다.
감히 항거할 수 없는 힘에 튕겨 나가는 가운데, 의식이 깜빡깜빡 점멸했다.
등이 작열하는 감각과 더불어 대련실 바닥을 나뒹굴며 온몸이 쓸린 덕분일까.
크, 윽!”
다행인지, 불행인지.의식을 잃지는 않았다.
가까스로 몸을 틀어 대자로 누운 상태에서 가쁜 숨을 몰아 내쉬었다.
그사이.
저벅저벅-
오윤진이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 졌구나.’
명백히 내 패배였다.
하지만 결과와는 별개로 속이 뻥 뚫린 듯 시원했다.
이처럼 모든 역량을 쏟아내 누군가와 맞붙은 건 상당히 오랜만이라 그런 듯했다.
개운함과 더불어 이런저런 감정이 차오르는 가운데.
흐릿한 시야로 오윤진이 보였다.
‘……정말대단한 사람이야.’
오윤진, 그녀는 차원이 다르다는 표현이 더없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그래서일까, 나는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괴물 같아요……"
탄성과 함께 내뱉은 순간, 그녀에게서 뾰족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금 누가 누구 보고 괴물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