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 ……너, 도대체 정체가 뭐니?>
167 ……너, 도대체 정체가 뭐니?
“내 수련, 당신이 도와줬으면 좋겠어.”
그림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도움을 청했다.
이를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뭐라고?”
오윤진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당혹성을 토해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림자는 나직하게 제 할 말을 이어 갔다.
“여름 방학이 대략 한 달 조금 안 남은 상태다.그러니 개학할 때까지만 도와주면 그걸로 충분하다.
“하……!”
당돌하게 짝이 없는 태도.
이에 오윤진은 헛숨을 터뜨렸다.
하지만 마냥 싫지는 않았는지, 이내 그녀는 흥미 가득한 표정으로 진한 미소를 지었다.
“……대단한 자신감이네?그 말은 곧 나와 대련하고 싶다, 이거지?”
“가능하면 최대한 실전에 가까운 형태로 부탁하지.”
“실전처럼?괜찮겠어?죽어도 책임은 못진다?”
“그럴 일은 없을 테니 걱정 붙들어 매도록.”
한결같이 거리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태도였다.
그 모습이 오히려 마음에 쏙 들었는지, 오윤진의 눈매는 한층 더 둥글게 휘었다.
나아가 그녀는 흥미 가득한 표정으로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아, 도와줄게.3일만 시간을 줘.그때까지 준비를 끝마쳐 둘 테니까.”
“3일, 알겠다?기다리도록 하지.”
대답을 끝으로 오윤진은 손을 대충 휘저으며 떠 나갔다.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무렵.
……죽어도 책임은 질 수 없다니.거참 살벌하네.
머릿속에서 안일한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때마침 잘됐다 싶었는지, 그림자는 곧장 녀석과의 대화에 어울렸다.
‘여태 지켜봐서 알겠지만, 3일 후다.’
들었어.그럼 그동안 뭔가 준비라도 해야 하나?근데 3일이면 뭘 준비하기엔 지나치게 짧은 것 같은데?
녀석의 지적은 타당했다.
만일 아카데미에 머물렀다면 그나마 몸이라도 풀어 둘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집에서 머무르는 지금은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오윤진과의 대련에 앞서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그러니 특별히 뭔가를 따로 준비하지는 않을 거다.’
그럼 그냥 그 사람과 부딪히면 되는 거야?
‘오윤진과의 대련을 통해 실시간으로 배우면 되는 문제니까.’
끄응, 틀린 말은 아니네.
녀석은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그다지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이를 흐뭇하게 여기는 한편, 그림자는 추가로 설명을 덧붙였다.
‘준비 대신이라 하기엔 어폐가 있을 수도 있다만.방향성 정도는 알려주지.’
방향성?그 사람과의 대련을 통해 추구하는 목표를 말하는 거지?
‘그래.우선 목표는 크게 두 가지다.첫 번째는 고차원의 마법사를 상대하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두 번째는?
‘A급을 돌파하는 것.그게 두 번째다.’
의식 너머로 놀란 듯한 기색이 전해지는 가운데.그림자는 조금 더 세부적인 설명을 곁들였다.
‘남은 여름 방학 동안 스텟 단련은 내가 전담하겠다.그사이 너는 오롯이 오윤진과의 대련, 고위 등급 마법사를 상대할 역량을 기르는 데 집중하면 된다.’
-즉, A급을 찍는 건 네가 맡고, 나는 대련을 맡아라?
‘정확하다.’
-방학이 한 달도 채 안 남았는데, 정말 가능하겠어?
녀석의 의문은 합당한 것이었다.
총합 2기스텟인 현시점에서 A급을 달성하려면 거의 30스텟 이상을 올려야 하는 까닭이었다.
하지만 그림자는 당연하다는 듯 긍정했다.
‘내겐 최상급 성장 계열 스킬, 초진화가 있으니 충분히 가능하다.’
-아 SS급 스킬이 있었지……!
그제야 녀석은 나직하게 탄성을 흘리며 납득했다.
-확실히 일리 있네.성장 계열 스킬의 효율은 네 쪽이 더 좋으니까.
‘그것도 그렇지.’
-음?뭔가 이유가 더 있는 거야?
녀석의 질문에 그림자는 일순 흠칫했다.
다만 그뿐으로.
‘제니퍼 퀘이드, 최후의 전투는 네 몫이니까.’
그림자는 둘러대듯 구체적인 설명은 피하는 대신, 표면적인 이유를 입에 담았다.
실제로 그 일은 오롯이 현재를 살아가는 안일한의 몫이었다.
그림자로서 그에게 주어진 시간의 끝이 머지않은 만큼 반드시 그래야했다.
이 사실을 속으로 삼킨 채, 그림자는 마저 말을 이어 갔다.
‘한 가지, 조언하자면 이번 기회에 재생 계열 스킬의 활용에 집중해 봐라.’
-재생 계열이라면, 급속 재생?
‘그래.과하게 쓰면 정신을 갉아먹지만, 적절하게 활용할 수만 있다면 다른 어떤 무공보다도 위력적인 스킬이 될 거다.’
-적절한 활용이라……, 염두에 둘게.
녀석의 대답을 끝으로 슬슬 대화를 마무리 싯는 한편.
그림자는 천천히 돌아섰다.
3일이라는 시간은 그야말로 쏜살같이 흘러갔다.
눈 깜빡할 사이 오윤진과 다시 만나기로 한 날이 찾아온 것이다.
‘ 가자.’
나는 살짝 긴장한 상태로 사전에 전달받은 약속 장소를 향해 갔다.
서둘러 출발한 덕분에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상태로 얼마간 기다리자 오래지 않아 익숙한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오래 기다렸니?”
다름 아닌 오윤진, 그녀가 직접 마중을 나온 것이다.
나는 고개를 살짝 가로저으며 답했다.
“저도 방금 왔습니다.”
“어라, 이제는 또 존댓말?변함없이 재밌는 아이네?”
그림자와 나 사이의 괴리감을 느꼈는지, 오윤진은 나른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순간 대답이 곤란해진 탓에 나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아, 그건…… 어디서부터 설명하는 게 좋을지.
뜻밖의 고민에 휩싸여 있을 때, 오윤진은 손을 대충 휘저으며 말했다.
“뭐, 상관없나?사소한문제는 나중에 이야기해도 늦지 않을 테니까.일단 따라오렴.”
“……네.”
그렇게 나는 오윤진을 따라 대로변을 가로질렀다.
늦은 밤에만 주로 만났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대낮에 만나서 그런지, 왠지 어색했다.
그녀가 정한 약속 장소도 서울 근교에서도 비교적 규모가 있는 도시였다.
‘게다가이 사람, 아무렇지도 않게 활보하네?’
심지어 오윤진이 이끄는 길드의 근거지로 보이는 건물 또한 번화가의 한편에 위치해 있었다.
그것도 주변에 있는 건물과 마찬가지로 어엿한 빌딩이었다.
뒷세계에서 주로 활동하는 사람들치곤 지나치게 양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
“거처를 옮긴 지 얼마 안돼서.살짝 정신이 없을 수도 있으니 양해해 주렴.”
오윤진이 먼저 건물에 들어갔다.
그녀를 따라서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끝에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
‘……와, 진짜 정신없네?’
나는 단숨에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서류 뭉치를 한 아름 안고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부터.
스마트 워치를 붙들고 열 변을 토해내는 사람들까지.
전형적인 회사 사무실의 풍경이었다.
그래서인지, 좀 전의 의문이 더욱 짙어졌다.
‘빌런이 맞긴 한건가……?’ 얼빠진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
오윤진은 어느샌가 제자리에서 무언가를 챙기고 다시 내 쪽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몸은 대련실에서도 풀 수 있으니, 바로 이동하자.”
의문을 해소할 틈도 없이 나를 어딘가로 끌고 갔다.
이번에는 지상이 아니라 지하였다.
승강기에서 내리자 익숙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진짜 대련실이네?’
스텟 단련실부터 마력 단련실, 그리고 중앙의 대련을 위해 마련된 장소까지.
아카데미에서나 볼법한 시설이 간소하게나마 마련되어 있었다.
신기한 까닭에 좀 전의 의문은 까맣게 잊고 연신 주위를 둘러봤다.
그사이 오윤진은 또 어 딘가를 향하더 니,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림새로 눈앞에 나타났다.
“제대로해 달라고 그랬지?”
나와의 대련을 위해 움직이기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것이다.
그녀의 물음에 나는 이곳에 온 목적을 새삼스럽게 상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부탁드릴게요."
나는 미리 챙겨둔 건틀렛을 착용하며 슬슬 투지를 끌어올렸다.
이를 알아차렸는지, 오윤진은 진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내게 말했다.
“일단 처음에는 수준부터 가늠해 보고, 거기에 맞춰서 본격적으로 하는 거로.어때?”
“좋습니다.”
대답을 끝마칠 무렵, 그녀는 나와 일정 간격을 둔 채로 마주 섰다.
그러고는 품속에서 오브를 꺼내 들었다.
사소한 행동이 었으나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꿀꺽-
나는 무의식적으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바짝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내 모습에 오윤진은 픽 하고 웃었다.
다만 그뿐으로, 별다른 말 없이 그녀 또한 대련을 준비했다.
서로 준비를 마칠 무렵.
“선배로서 선공은 양보할게.와 보렴.”
오윤진은 나른한 목소리로 선수를 양보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얌전히 받아들이는 한편.
타닷-
곧바로 바닥을 박차고 쏘아져 갔다.
자연스럽게 코어가 활성화되어 온몸에 끝없는 활력이 차올랐다.
그사이.
화륵-
오윤진도 본격적으로 마나를 전개했다.
특유의 시뻘건 마나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가운데.
벌써부터 은은한 열기가 느껴졌다.
‘아직 사정권에 들어서지도 못했는데.’
벌써이 정도의 기운이라니.
새삼스럽게 그녀의 저력을 체감하는 한편, 투지가 한층 더 끌어 올랐다.
그 상태로 양 손에 백은의 마나를 휘 감았다.
모든 준비를 갖췄을 무렵, 그녀의 사정권에 들어설 수 있었다.
선공을 양보하겠다는 말이 과연 빈말은 아니었는지.
“어디 한번 실력 좀 볼까?”
여유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마치 그녀의 기대에 부응하듯, 나는 곧장 절기를 꺼내 들었다.
쩌-엉!
마나를 파훼하는 진각, 진천이었다.
급속도로 뻗어 나가는 기파에 그녀의 마나가 요동쳤다.
그제야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는지.
“……호오.”
그녀의 입가에 걸린 미소에 한 줄기 묘한 기색이 어렸다.
이를 증명하듯, 오윤진은 빠르게 왼손을 들어 허공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단순한 손짓에 불과했으나, 그에 따른 여파는 그렇지 않았다.
요동치던 마나가 순식간에 재배열된 것이다.
그사이.
타닷-
나는 완전히 그녀와의 간격을 좁혔다.
그 상태로 진천의 투로에 따라 주먹을 내지르는 순간.
터-엉!
느닷없이 나타난 반투명한 방벽에 가로막혀 버렸다.
찰나에 방어 마법을 전개한 것이다.
과연, A급 마법사다운 속도였다.
하지만.
‘이 정도쯤이야……!’
이번에도 역시 아랑곳하지 않고 마저 권법을 전개했다.
터엉! 텅! 터엉-!
진천 특유의 다양한 투로에 따라 주먹을 내질렀다.
결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쩌적-
소리가 변하고, 이어서 방어 마법의 상태가 변해갔다.
방어 마법의 표면에 거미줄 같은 실금이 엄청난 속도로 세를 넓혀가는 것이다.
내 일권에 실린 힘이 그녀의 예상을 벗어난 탓인지.
“……!”
여유 가득하던 오윤진의 표정은 살짝 굳었다.
동시에 그녀의 손짓은 점점 속도를 더해갔다.
그 결과.
채챙-!
화아아앗!
방어 마법의 파괴와 수복이 빠른 속도로 반복됐다.
처음 접하는 광경에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무극삼권에 입문한 이래로 단 한 번도 마나 방어 체계에 가로막힌 적이 없는 까닭이었다.
‘설마 파훼당할 때마다 마나 배열을 수정하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만한 속도가 나올 리가 없었다.
깨달은 순간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동시에 속으로 한 가지, 확신이 들었다.
‘이 사람이 상대라면…… 그림자 녀석의 말대로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다.
전율이 이는 가운데, 나는 공세의 템포를 한층 더 끌어 올렸다.
그만큼 마나 소모량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갔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급속 재생의 활용, 이것도 숙제였지?’
내겐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스킬들이 있으니까.
더욱이 소모되는 마나량이 엄청난 만큼, 나타나는 결과도 확실했다.
쩌저저저적-!
방어 마법의 수복이 파괴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다.
이로써 고위 등급의 마법사에게도 진천이 유효하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결과를 갈무리하고 있을 때.
화륵-!
느닷없이 오윤진의 전신이 화마에 휩싸였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를 인식할 무렵.
‘없어?’
그녀는 눈앞에서 사라져 있었다.
이동 마법, 순간 이동을 사용하여 다시금 간격을 벌린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대비하려는 찰나.
“와, 진짜……
살짝 떨어진 거리에서 오윤진이 입을 열었다.
그녀는 황당하기 짝이 없다는 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너, 도대체 정체가 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