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 상상 이상으로 가파르게 오를 거다 >
166 상상 이상으로 가파르게 오를 거다
최종 국면이 머지않은 지금.
나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상대가무려 S급 초인이니까.’
게다가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즉, 주어진 시간 내에 압도적인 성장을 이룩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백유진네에서 합숙 훈련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고?’
나는 그림자의 말에 호기심이 강하게 동했다.
녀석은 순순히 긍정하며 나직하게 말문을 열었다.
-그래.사실 네 약속으로 인해 잠시 미뤄졌다만, 본래 하려던 이야기가 바로 이거였다.
‘아, 그러고 보니 애들한테 연락하기 전에 무어라 말하려고 했었지?’
그림자의 말을 듣고 나시야 새삼 기억이 났다.
분명 녀석은 남은 여름 방학을 어떻게 활용할지, 이에 관해 무어라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아무래도 그때 이야기의 연장선인 모양이었다.
‘일단 알겠어.이 자리를 마무리하고 들려줘.’
-기다리지.
그렇게 나는 녀석과의 대화를 일단락 짓는 한편.
친구들을 향해 나직하게 운을 뗐다.
“나는 따로 움직일게.”
내 대답에 윤설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따로 움직인다고?”
“어.준비해야 할일이 조금 있어서.”
“그렇구나……
윤설하는 조금 아쉬운 듯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이내 그녀는 진지한 낯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힘내!”
“그럼 다음에 만날 때는 아카데미겠네?서로 강해져서 보자!”
여태 가만히 듣고 있던 차은월도 씩씩하게 대답을 돌려줬다.
이를 마지막으로 나는 친구들과 대화를 마무리한 다음 역까지 바래다줬다.
그러고 나서야 그림자와의 대화를 마저 이어 갔다.
‘아까 하던 이야기 좀 마저 해 줘.’
-오윤진, 그녀에게 협력을 요청할 생각이다.
‘아, 그분이 있었구나.지난번처럼 균열 투어?’
확실히 균열을 통한 실전 수련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혼자서 속으로 납득하고 있을 때.
-이번에는 균열이 아니다.게다가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 필요한 역량은 이미 충분히 갖췄다.
녀석으로부터 예상을 벗어난 대답이 흘러나왔다.
의아함에 고개를 기울이자 그림자는 묘한 어조로 말을 이어 갔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제니퍼 퀘이드는 S급 초인이다.
‘알고 있어.그게 왜?’
-정확히 말하자면 S급 마법사지.
‘……잠깐만, 설마?’
그림자의 대답을 듣는 순간, 왠지 모르게 녀석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도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네가 생각하는 그 설마가 맞다.오윤진을 상대로 수련하다 보면 고차원의 마법사와 싸우는 법도 충분히 숙달할 수 있겠지.
예상했던 내용이 그대로 머 릿속에 흘러들었다.
‘오윤진, 그분과 대련이라니……, 물론 실력은 엄청나게 늘어날 것 같긴 하다만.’
-네 역량은 상상 이상으로 가파르게 오를 거다.애초에 무력으로 따지면 그녀는 같은 A급 마법사인 김한석을 상회하니까.
‘……확실히 엄청나게 강한 사람이었지.’
그림자의 대답에 문득 뇌리로 작년 방학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머릿속에 떠올랐다.
균열 몬스터 무리를 상대로 압도적인 무위를 발휘했던 오윤진.
그녀가 선보인 활약은 상당히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A급 마법사와의 대련이라……'
격세감을 느끼는 한편, 벌써부터 온몸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러한 내 속내를 알아차렸는지.
-역시 움츠러들지 않는군.
그림자는 웃음기가 묻어나는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나 또한 픽 하고 웃으며 마주 대꾸해 줬다.
‘뭐, 강해질 수만 있다면, 뭐가 됐든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좋은 마음가짐이다.
‘그래서?어떻게 하면 돼?바로 연락할까?’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나는 곧장 녀석을 채근했다.반면 그림자는 평소처럼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아니, 요청은 내가 맡도록 하지.오늘 밤에 내가 연락해 두겠다.
‘알겠어, 그럼.부탁할게.’
A급 마법사이자 재앙의 마녀, 오윤진과의 대련.나는 속으로 한 번 더 곱씹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날 밤.
-대상의 무의식 상태를 확인.
-대상의 주도권이 [????의 그림자]에게로 넘어갑니다!
대상과의 동기화율을 확인.
현재 동기화율…… [80%]
[????의 그림자]가 연륜에 따른 분별력과 미래시(未來視)의 일부가 담긴 기억, 그리고 의식에 따라 행동합니다!
의식에 각인된 [스킬]이 활성화됐습니다!
스킬 [초진화(SS)]가 활성화됐습니다!
-스킬 [초재생(SS)]이 활성화됐습니다!
그림자는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습관처럼 메시지 세례를 확인했다.
중국에 있을 당시와 비교해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여태 그랬듯, 앞으로도 동기화율을 올리려면 연소소의 힘이 필요한 까닭이었다.
‘뭐.시기는 얼추 맞을 테니.’
분명 그녀라면 적절한 시기에 찾아올 터였다.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하는 한편.
그림자는 곧장 스마트 워치를 조작하여 전화를 걸었다.
오래지 않아 스마트 워치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연락하려 했는데, 통했네?
나른한 목소리, 다름 아닌 오윤진이었다.
그림자는 간단한 인사와 더불어 지체 없이 용건을 꺼내 들었다.
“중국에서의 일은 완벽하게 처리했다.구체적인 이야기는 만나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시간 있나?
-직설적인 건 여전하네?덕분에 꽤나 바빠지긴 했지만.뭐, 나도 마침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오윤진은 투덜거리면서도 거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침 잘됐다는 듯, 적극적인 자세로 임했다.
-아무래도 밤이 낫겠지?
“밤이 편하다면 그렇게 해도 상관없다.”
-좋아 그럼, 내일 밤에 보는 거로.시간과 장소는 내일 아침까지 전달해 줄게.
“알겠다.기다리지.”
그림자는 짤막하게 대꾸하는 한편.
‘나머진 내일 밤인가.’
속으로 약속 시간을 헤아리며 오윤진과의 통화를 종료했다.
다음날, 늦은 저녁 무렵.
-그럼 부탁할게.
‘그래, 맡겨 둬라.’ 안일한에게 의식의 주도권을 넘겨받은 그림자는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서둘러 출발한 덕분일까, 아침에 전달받은 장소에 여유롭게 도착할 수 있었다.그 상태로 얼마간 기다리자 익숙한 인영이 나타났다.
“안녕?오래 기다렸어?”
다름 아닌 오윤진이었다.
그녀를 향해 그림자는 한 차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나도 방금 도착했으니 신경 쓸 필요 없다.”
“흐응, 그렇다면 다행이고.그래서?”
“내가 먼저 이야기하도록 하지.”
“군더더기 없어서 좋네.그래, 어디 한번 들어 볼까?”
귀를 쫑긋 세우는 시늉을 하는 오윤진.
그녀를 향해 그림자는 나직하게 설명을 풀어놨다.
“연씨세가와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겠지.그 부분부터 설명하도록 하지.”
그림자는 연소소를 비롯한 연씨세가와의 구체적인 협력 과정부터.
이번 사건을 통해 낙일이 입은 피해와 현재 남아 있는 전력에 이르기까지.
설명이 이어질수록 오윤진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 갔다.
“쿡, 아주 박살을 내버렸구나?”
그녀 역시 같은 목표를 공유하는 만큼, 낙일의 몰락을 진심으로 기꺼워했다.
이어서 그림자는 최종 계획, '여명’에 관해 설명했다.
낙일의 수장이자 최후의 적이 S급 초인, 제니퍼 퀘이드라는 점부터.
그녀를 꾀어내기 위해 시도한 방법과 그림자가 주축이 되어 만들어낸 단체, ‘여명’에 관한 이야기까지.이를 듣는 순간.
“……여명?”
오윤진은 단체의 명칭을 곱씹으며 신기한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탄성과 함께 그림자에게 되물었다.
“그 이름, 혹시 네가 생각해낸 거니?”
낙일에 대항하여 결성한 단체, ‘여명’.
아무래도 이름이 그녀의 마음에 쏙 드는 모양이었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당연히 그렇겠지.원래는 본인이 생각해 내고, 만들어 낸 단체니까.’
애초에 여명은 과거, 오윤진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단체였다.
즉, 여명이란 명칭 또한 그녀가 떠올린 것이었다.
새삼스럽게 이를 떠올렸기 때문일까, 그림자의 입가에 자연스레 옅은 미소가 걸렸다.
그사이 오윤진은 진한 미소를 머금은 채 중얼거렸다.
“감히 태양을 추락시키겠다는 광오한 녀석들을 상대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이름이야.”
“마음에 드는 모양이군.”
“마치 내 속내를 읽은 것 같은 기분이야.”
“그럼 합류하는 거로 알고 있겠다.”
“네 밑으로 들어가라고?흐응, 그건 좀 생각해 봐야겠는걸?”
오윤진은 쿡, 하고 웃으며 농담을 건네는 한편, 나른한 목소리로 운을 뗐다.
“이제 내 차례인가?네 이야기에 비하면 좀 빈약하긴 하지만.뭐, 들어 봐.”
그녀는 예전에 부탁했던 윤설하의 아버지, 윤 박사님의 호위에 관한 이야기부터.
현재 낙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사도, 김재학의 동향에 관한 부분까지.
이전보다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정보를 공유해 줬다.
‘윤 박사님도 무사하고, 김재학은 아직까지 잠잠하다는 건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범위의 내용이었다.
때문에 그림자는 나직하게 감사를 표하고는 곧장 화제를 전환했다.
“근황 보고는 이쯤에서 끝내지.”
“벌써?우리 몇 달 만에 만나는 거 같은데, 너무 매정한 거 아니니?”
오윤진은 고운 눈썹을 찡그리 며 능글맞게 물었다.
하지만 그림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본론을 꺼 내 들었다.
“한가지 부탁할게 있다.”
“……칫, 재미없네.뭔데?”
“앞서 말했듯, 제니퍼 퀘이드의 목표는 나다.정확히는 내 존재를 특정한 순간부터 나를 노릴 거다.
“그렇겠지?내가 그 작자였어도 그랬을 테니까.”
“즉, 최종적으로 그녀와싸우게 되는 건 내가 되겠지.”
“그래서?강해져야 하니까 수련을 도와달라고?”
“정확하다.”
그림자의 즉답에 오윤진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내 그녀는 흥미 가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균열 탐색이라……, 지금 필요한 유물이 있으려나?”
아무래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균열이나 게이트의 동행을 고려하는 모양이었다.
이에 그림자는 나직하게 부정했다.
“그게 아니다.”
“응?아니라고?”
“몬스터 사냥에 필요한 역량은 이미 충분하니까.”
“호오, 그래?”
오윤진은 대답과 함께 그림자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이윽고 그녀는 뭔가를 감지한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탄성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기세가 제법이네?”
“아직 한참이나부족하다.”
“뭐, 상대는 무려 S급이니까.그나저나 자기 객관화가 아주 철저한데?”
“결론을 말하자면 대련 상대가 필요하다.”
“대련 상대라……
오윤진은 검지로 입술을 두드리며 말끝을 흐렸다.말없이 생각에 잠겨있기를 수 초.
이윽고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흐음, 너도 알다시피 길드 차원에서 진행 중인 작업 때문에 손이 부족한 상황이야.”
“진행중인 작업?그건 처음 듣는군.”
“……처음 듣는다고?”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오윤진은 의혹 가득한 눈빛으로 그림자를 응시했다.
이내 그녀는 묘한 기색의 미소를 머금은 채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호오, 거기까진 모른다 이거지?이건 좀 흥미로운데?네가 가진 미래 예지, 완벽한 건 아니구나?”
오윤진은 제 스스로 날카로운 질문이라 여겼는지, 한층 진한 미소를 지었다.
반면 그림자는 고개를 기울이며 뒤늦게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오윤진에겐 비밀을 밝힌 적이 없군.’
오윤진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배를 탄 운명공동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림자는 순간 비밀부터 밝힐까 고민했지 만.
‘지금 당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니까.’
멋대로 결론을 짓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사이 오윤진은 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말을 이어 나갔다.
“쿡, 조만간 깜짝 놀랄 일이 있을 거야.이건 기다리는 보람이 있겠는데?’
“기대하지.그보다 대련은 들어줄 수 있나?”
“글쎄.부하들도 바쁜 데다가 네게 맞는 상대를 구하는 것도 일이니까.지금 당장은 마땅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네?”
오윤진은 살짝 곤란하다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답했다.
반응만 봐도 진실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 가지, 간과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림자는 이를 주저 없이 입에 담았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지?”
“물론 나는 길드장이니 필요한 일은 진작 처리한 상태이긴 한데……?잠깐, 너 설마?”
말뜻을 이해한 오윤진의 동공이 팽창하는 가운데.
그림자는 나직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당신이 내 상대가 되어 줬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