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165화 (164/218)

< 165 안일한, 넌 항상 기대 이상이었다 >

165 안일한, 넌 항상 기대 이상이었다

그림자의 답변은 다름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납득하는 데 필요한 내용이라면 전부 밝혀도 괜찮다고?’

윤설하와 차은월에게 비밀을 밝혀도 상관없다.

즉, 녀석은 내 생각 이상으로 흔쾌히 받아들인 것이다.

의아함에 고개를 기울이자 녀석은 나직한 어조로 이유를 밝혔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지만, 그들은 이미 당사자나 다름없다.

‘그건 그렇지만, 그렇게 따지면 이미 늦어도 한참이나 늦은 거 아니야?, -타당한 의견이군.뭐, 방금 건 여러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 말은 다른 이유도 있다는 뜻이지?’

-그래.사실 그보다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림자는 천천히 운을 떼는 한편.

생각지도 못한 화제를 꺼내 들었다.

-제니퍼 퀘이드와의 전투는 단순히 일대일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

-김한석, 그리고 서문건 사건을 떠올려 봐라.그들이 무엇을 했지?

녀석의 물음에 나는 반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오래지 않아 공통점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인위적으로 침식 현상을 일으키고, 나아가 지난번에는 침식 게이트를 발생시켰지’

-그래.그리고 그것들은 전부 개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의 아티팩트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기억하고 있나?

‘잠깐만, 그 말은……

그제야 나는 그림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는 가운데, 녀석은 설명을 마저 이어 갔다.

-그건 제니퍼 퀘이드가 만들어낸 최악의 발명품이다.최후의 전투가 벌어지면, 그녀는 거리낌 없이 아티팩트를 사용할 거다.

‘……그럴 수가.’

-심지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으로 피해 규모가 커질 수도 있다.애초에 네가 접한 미래의 파멸 또한 제니퍼 퀘이드, 그 여자가 일으킨 거니까.

‘……!’

-물론 아직은 그 정도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을 거다.애초에 이전 생보다 십여 년 이상 빠르게 움직인 것도 전부 손쓸 도리조차 없는 상황을 피하기 위함이었으니.

‘그건 천만다행이네.’ 그림자의 설명을 듣자 반사적으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내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녀석은 차분한 어조로 화제를 전환했다.

-그래.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믿을 만한 아군이 필요하다.

‘믿을 만한 아군?’

-많으면 많을수록 피해의 여파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을 테니까.

즉, 윤설하와 차은월에게 비밀을 밝히려는 건 실제로 두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그제야 녀석이 별다른 반발 없이 받아들인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동시에 자연스럽게 생각이 깊어졌다.

‘믿을 만한 아군이라……'

그림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제니퍼 퀘이드와의 결전은 이미 나와 그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상당한 피해를 동반한다는 게 확실해진 만큼, 마땅한 대책이 필요했다.

이를 인식한 덕분일까, 뇌리에 도움을 청할 만한 몇몇 사람들이 스쳐 갔다.

동시에 그들에게 비밀을 밝혔을 때 초래될 가능성이 있는 문제점도 함께 떠올랐다.

‘비밀은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유출의 위험성이 커지는 법이니까.이거 골치 아프네……'

뜻밖의 고민에 휩싸여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녀석이 나직하게 말을 걸어왔다.

-판단은 전적으로 네 몫이다.

‘판단이라면……?’

.믿을 만한 사람을 판별하고,비밀을 공유할 사람들을 택하는 건 네 판단을 믿고 따르겠다는 거다.

즉, 녀석은 아군을 선별하는 과정 전반을 내게 맡기려는 것이다.

이는 최종 계획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상당히 중요한 사안이었다.

그걸 내게 온전히 맡기겠다니, 녀석의 신뢰가 기껍게 느껴지는 가운데.

한편으론 걱정도 됐다.

‘……정말 괜찮겠어?’

-물론이다.애초에 나는 지금껏 네 판단에 단 한 번도 실망한 적 없다.안일한, 넌 항상 기대 이상이었다.

‘으음, 좀 낯간지러운데.’

-뭐, 그럴 수도 있겠군.요는 네가 충분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다.그러니 자신감을 가져라.

단순한 말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격려는 그 이상으로 내게 힘을 줬다.

나는 마음을 다잡으며 녀석의 기대에 응했다.

‘그렇게까지 말해 주는 데 실망시킬 수는 없지.알겠어, 한번 생각해 볼게.’

그 정도로 대화를 마무리한 다음.

나는 곧바로 스마트 워치를 조작했다.

두 사람, 윤설하와 차은월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위함이었다.

-지난번에 했던 약속, 기억하지?시간 좀내줄래?

***

두 시간 후.

“실례하겠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두 사람, 윤설하와 차은월은 내 아버지께 꾸벅 인사를 건네며 우리 집에 들어섰다.

내가 보낸 메시지에 응하여 집까지 찾아와 준 것이다.

‘아무래도 공공장소는 조금 애매할 테니까.’

그들과 앞으로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는 어디 가서 떠들 수 있을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나는 고민 끝에 내 방을 선택했고, 다행히 친구들은 별다른 반발 없이 받아줬다.

모처럼 집에서 쉬고 계셨던 아버지도 너그러이 받아들여 주셨다.

“편하게 머물다 가려무나.”

인자하게 친구들을 맞이해 주고는 자리를 비켜 주신 것이다.

나는 아버지께 간단하게 인사를 드린 다음, 친구들을 데리고 방으로 돌아갔다.

“저쪽에 앉으면 돼.”

내 방이 신기했는지, 둘은 연신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레 침대에 걸터앉았다.

나는 책상의 의자를 쭉 빼서 그들과 마주 앉았다.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 두 사람은 내게 간단히 안부를 물어왔다.

“몸은 좀 어때?”

“걱정했는데, 이렇게 바로 볼 수 있어서 다행이야!”

아무래도 의식을 잃은 나를 중국에 내버려 둔 채 먼저 귀국했던 점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물론 그녀들은 아카데미의 방침에 따른 것뿐이라는 걸 알고 있는 만큼, 딱히 사감은 없었다.그보다 이렇게 나를 걱정해 준다는 사실이 고맙게 느껴질 뿐이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이젠 멀쩡해.”

나는 두 사람에게 나직하게 감사를 표하는 한편.

슬슬 본론을 꺼내 들었다.

“약속대로 전부 설명해 줄게.이야기가 꽤 길어질 테니 양해해 줘.”

운을 떼는 순간, 윤설하와 차은월은 살짝 경직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냈다.

“우선 내 진짜 능력부터 설명해 줄게.”

가장 먼저 내가 가진 미구현 특성, ‘????의 그림자’의 효과에 관한 간략한 설명부터.

그림자 녀석을 통해 접하게 된 멸망 직전에 놓인 미래의 풍경.

그리고 지금껏 우리가 파멸을 막기 위해 움직여 왔다는 점까지.

이해하는 데 필요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그렇지 않은 부분은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넘어갔다.

‘작년에 해결했던 첫 번째 계획이라든가, 그림자 녀석이 미래의 나라든가 하는 내용은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할 테니까.’

다행히 두 사람은 특별히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럴 여유가 없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했다.

그만큼 내가 털어놓은 비밀에 커다란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사실상 충격을 받지 않는 쪽이 되레 이상하지.’

두 사람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서두르지 않고 그녀들이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려 줬다.

그렇게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은 가운데.

“……여태 혼자서 그런 짐을 짊어지고 있었구나.”

윤설하가 처연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마치 위로해 주려는 양 조심스럽게 내 손등을 어루만졌다.

생각지도 못한 행동에 반사적으로 손을 빼려는 찰나, 그녀의 떨리는 손끝이 눈에 들어왔다.

차은월 또한 어느새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제야 나는 두 사람이 보이는 반응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비밀에 대한 충격이 아니라 나 때문이었나.’ 조금 전에 무덤덤하게 밝힌 그동안의 고군분투에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는 것이다.

특히 자신들이 힘이 되어 주지 못해 미안함과 죄책감마저 느끼고 있는 듯했다.

‘……정말 좋은 친구를 뒀구나, 나는.’

새삼스럽게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한편.

마지막으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천천히 입에 담았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하지만괜찮아, 이제 끝이 머지않았으니까.”

“……정말?”

“그렇긴 한데, 반대로 가장 위험할 수도 있어.”

내 대답을 듣자 윤설하는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

이에 나는 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며 할 말을 골랐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니까.’

사실 비밀을 털어놓은 건 신의라는 문제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다른 목적이 더 컸다.

바로 여명 계획의 최종 국면에 대비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우선 낙일의 수장, 제니퍼 퀘이드에 관한 이야기부터 해 줄게.”

나는 한층 더 세밀하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림자가 알려 줬던 제니퍼 퀘이드의 성향부터, 예상되는 움직임까지.

나는 좀 더 그들에게 와닿게 설명하기 위해 그림자가 예시로 들었던 낙일의 예상되는 행동을 입에 담았다.

“어쩌면 나를 노리고 아카데미를 습격해 올지도 몰라.”

“……그게 무슨!”

“너희도 겪어 봐서 알겠지만, 단순 납치의 형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주위에 큰 피해를 끼칠 수도 있다고 봐.

“그럴 수가 경악을 금치 못하는 두 사람.

그들을 향해 여태 생각해 둔 말을 꺼내 들었다.

“그래서 너희가 나를 도와줬으면 해.”

믿을 만한 아군을 포섭하는 것.

그 일환으로써 나는 가장 먼저 윤설하와 차은월을 선택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현 상황에선 두 사람이 가장 믿을 만하니까.,

물론 진태진 교관이나 고태식 교관처럼 눈앞의 두 사람보다 강한 이들은 많았다.

하지만 교관님들에겐 선뜻 밝히기 어려웠다.

‘내 말을 믿어 주시긴 하겠지만.’

그들은 우리와는 다르게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와 신분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는 행동을 취할 수 있을뿐더러, 그 과정에서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반면 일개 생도에 불과한 두 사람이라면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결국 아군이 필요한 건 제니퍼 퀘이드의 무력 때문이 아니라 주위에 초래될지도 모를 피해 때문이니까.’

이를 대비하는 데 있어 두 사람의 무력은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나와 그림자의 생각이었다.

두 사람이 어떻게 반응할지, 마냥 낙관할 순 없는 까닭에 가만히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자.

“알겠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게!”

“부탁해 줘서 고마워! 길한아!”

두 사람은 추호도 망설이지 않고 즉답을 돌려줬다.

이에 나는 감사를 해야 할지, 사죄해야 할지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찰나지간 생각을 정리한 끝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위험한 일에 휘말리게 만들어서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아무래도 사죄가 먼저일 것 같아 그렇게 말했건만.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모든 잘못은 저쪽에 있는 거지.”

“일한이 넌 피해자일 뿐이야.우리와 마찬가지로.”

도리어 두 사람은 내게 어려운 결정을 해 주어 고맙다는 말과 함께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보였다.

“이로써 강해져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났네?”

“응, 나도 의욕이 샘 솟는 기분이야!”

낙일에 맞서 투지를 불태우는 것이다.

그 모습이 더없이 든든하게 느껴지는 가운데.

문득 윤설하가 내게 질문해 왔다.

“근데 안일한, 나머지 세 명에겐 말했어?”

“세 명?”

“백유진하고 심인욱, 오윤서 말이야.”

“ 아.”

확실히 그들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교관님들과 비슷한 이유로 일단 배제했다.

‘세 사람이라면 충분히 믿을 만하고, 그들의 배경까지 생각하면 커다란 힘이 되겠지만.’ 그 과정에서의 위험성이 지금은 더 크게 느껴졌다.

해서 나는 일단 판단을 유보하기로했다.

이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생각 중이야.때가 되면 내가 말할 테니, 그동안은 꼭 비밀로 해 줬으면 좋겠어.”

대충 얼버무렸다.

두 사람은 별다른 의문 없이 납득하는 한편.

“그럼 이제 강해질 일만 남았네?”

“여름 방학도 반 정도 남았으니까.일한아, 넌 어떻게 할 거야?”

화제를 돌려 최종 국면의 대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아무래도 지난 겨울 방학 때처럼 백유진에게 부탁하는 편이 나으려나?”

“합숙?괜찮은 것 같은데?! 일한아, 넌 어때?”

확실히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그런 감상을 떠올리는 찰나.

-그것도 좋겠지만, 우선 내 이야기를 듣고 판단하는 건 어떤가?지금보다 더 강해지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법이 하나 있다.

때마침 그림자가 솔깃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