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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161화 (161/218)

161화 지금은 믿음에 보답해야 할 때야

“아, 안일한! 정신 차려!”

“일한아 눈 좀 떠 봐!”

윤설하와 차은월은 혼비백산했다.

안일한이 마치 유언을 남기듯, 단 한마디를 내뱉고는 곧장 의식을 잃은 까닭이었다.

금방이라도 패닉 상태에 빠질 것 같은 두 사람.

반면.

‘……침착하자.’

연소소는 그들과 달리 침착했다.

정확히는 스스로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를 썼다.

안일한이 의식을 잃기 전, 나머지 상황 정리를 부탁한 까닭이었다.

‘지금은 그분의 믿음에 보답해야 할 때야.’

그녀는 가진 바 능력, 계승 덕분에 두 사람보단 사정이 나았다.

하나, 연소소 역시 이와 같은 상황을 실제로 겪는 건 처음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자기암시를 하듯, 속으로 되뇌며 마음을 다잡았다.

“후우.”

한 차례 깊게 심호흡을 하니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혼란을 잠재운 즉시 연소소는 두 사람을 향해 빠르게 입을 열었다.

“여러분, 안일한 님을 자세히 봐주세요.”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윤설하가 세차게 떨리는 눈빛으로 더듬더듬 되물었다.

연소소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곧바로 안일한에게 다가갔다.

이윽고 그녀는 그의 옷깃을 젖히고 목덜미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 갔다.

“보시다시피 안일한 님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세요.”

“……!”

“……!”

연소소의 말대로 안일한의 목덜미를 확인한 두 사람은 두 눈을 부릅떴다.

분명 그는 조금 전 서문건과의 전투에서 목을 꿰뚫리며 치명상을 입었다.

피가 왈칵 쏟아져 나오는 것까지 목격한 건 물론, 실제로 안일한의 앞섶은 피범벅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진짜로 멀쩡하잖아?”

“어떻게 이럴 수가…….”

문자 그대로 말끔했다.

심지어 상흔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입이 쩍 벌어진 두 사람을 향해 연소소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오히려 겉으로 보기엔 여러분보다 안일한 님의 상태가 더 좋을 거예요.”

“그게 무슨…….”

윤설하는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되묻는 한편, 무의식적으로 안일한의 신체 곳곳을 살폈다.

그 결과, 그녀는 경악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어떻게 이토록 멀쩡할 수 있는 거지?”

연소소의 말대로, 안일한에게선 그 흔한 타박상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까닭이었다.

오히려 서문건이 죽기 직전까지 몬스터의 발을 묶느라 고군분투했던 그녀의 상태가 더 안 좋았다.

그래서인지, 안일한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빛에 의문이 짙게 서렸다.

연소소는 이를 걱정했으나, 두 사람은 예상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일단 지금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니겠지?”

“응, 우선 일한이가 멀쩡하다는 사실은 확인했으니까.”

“연소소 님. 저희는 무엇을 하면 되죠?”

의문에 매달리기보단 잠시 접어 두고 당장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좋은 사람들이구나.’

연소소는 그리 생각하는 한편, 잠시 할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이내 신속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머지않아 침식 게이트는 붕괴될 거고, 저희는 모두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

“네, 그건 알고 있어요.”

“그 전에 저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해요.”

“그게 뭐죠?”

“지금까지의 상황에 대해 입을 맞춰 두는 겁니다.”

“……!”

윤설하와 차은월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개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아 아직까진 잘 와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설명이 부족했음을 알고 있는 만큼, 연소소는 서둘러 말을 이어 갔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은 만큼 간략하게 말씀드릴게요. 사실 이번 사건에는 ‘배후’가 존재해요.”

“배후라는 말씀은 그, 서문세가를 의미하는 건가요?”

윤설하의 질문에 연소소는 고개를 내저으며 나직하게 덧붙였다.

“그 너머에 있는 존재입니다.”

“너머라니…….”

“자세한 건 차후 안일한 님께서 설명해 주실 거예요. 어쨌든, 그들에게 정보가 흘러나가는 걸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저희는 입을 맞춰 둬야 합니다.”

사실 정보의 유출을 완전히 틀어막는 건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이런 요청을 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적어도 안일한 님의 정보가 새어 나가는 건 최소한으로 해야 해.’

그림자 님의 설명에 따르면, 어차피 계획의 최종 단계는 머지않은 상황이었다.

즉, 다소간의 시간을 끌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림자 님이 원하는 것도 바로 이거겠지.’

연소소는 확신과 함께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고는 마저 설명을 이어 나갔다.

“두 분이 기억해 주셔야 할 내용은 간단해요. 첫 번째로, 저희는 줄곧 밀려드는 A급 몬스터 무리를 상대로 힘겹게 버틴 겁니다.”

“줄곧이란 말씀은…….”

“네, 게이트가 붕괴할 때까지 쭉 A급 몬스터만 상대한 거죠.”

즉, 서문건과 맞서 싸웠음은 물론이고 마주친 적조차 없다는 뜻이었다.

말뜻은 알아들었으나 의문이 조금 남았는지 윤설하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녀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연소소는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여러분은 처음 듣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저희 본가에선 대대로 ‘계승’이라는 특수한 능력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어요.”

“계승, 이요?”

“네. 저는 선현의 지혜를 고스란히 이어받았고, 이를 십분 활용한 덕분에 A급 몬스터 무리를 상대로 가까스로 버틸 수 있다는 식으로 증언할 생각입니다.”

“확실히 그거라면 설명이 되겠네요!”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가만히 듣고 있던 차은월은 손뼉을 치며 반응했다.

반면 윤설하는 아직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여전히 고개를 기울인 채 질문을 건넸다.

“그럼 저 사람의 죽음은 어떤 식으로 처리해야 하죠?”

그녀의 시선 끝에는 싸늘하게 식어 가는 서문건의 주검이 자리하고 있었다.

연소소는 싸늘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시체를 응시하며 물음에 답했다.

“저자는 정체불명의 아티팩트를 사용하다가 자멸한 겁니다.”

“하지만 상흔이…….”

윤설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연소소는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그대로 서문건의 주검에 다가가더니 양손 가득 마나를 일으켰다.

그러고는 착 가라앉은 어조로 나직하게 말했다.

“두 분, 잠시 눈을 감아 주시길.”

통보에 가까운 요청과 함께 연소소는 곧장 작업에 들어갔다.

‘정체 모를 아티팩트로 인한 자멸’이라는 사인에 걸맞게 사체를 조작하려는 것이다.

‘……어차피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작자였으니까.’

그러니 사체를 훼손하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다.

연소소는 자기암시를 하듯, 속으로 몇 번씩이나 되뇌며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사이.

쩌저저적-

어느새 하늘이 붕괴되고 있었다.

침식 게이트의 완전한 소멸이 머지않은 것이다.

연소소는 서둘러 일행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두 분, 방금 제가 드린 말씀을 기억하고 계시는지요?”

그녀의 물음에 두 사람은 살짝 떨리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연소소는 둘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그럼 부디 증언할 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머지 일은 제게 맡겨 주시길.”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할 무렵.

쿠구구궁-!

침식 게이트가 완전히 소멸하고, 익숙한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드디어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게이트 소멸의 여파 때문인지, 관자놀이가 찌르르 울릴 정도로 현기증이 느껴지는 가운데.

“여, 연 당주님!”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찔러 왔다.

다름 아닌 그녀의 최측근, 김응이었다.

그를 비롯한 연씨세가 측 인원들과 협회 측 사람까지 한꺼번에 그녀 쪽으로 다가왔다.

반면.

“윤설하 생도, 차은월 생도! 무사한가?!”

한국 측 인원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은 단숨에 세 사람을 향해 갔다.

연소소는 그들의 모습을 곁눈질로 확인하고는 곧바로 김응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저씨, 상황 설명을 부탁드려요.”

그녀의 물음에 김응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표정을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경기장 내외부의 서문세가 측 인원들은 모조리 제압을 완료한 상태입니다.”

“서문세가의 본진은 어떻게 됐죠?”

“말씀하신 핵심 인물은 현장에서 즉시 사살하고, 죽음을 확인했습니다. 나머지 주요 인물들은 죽이거나 제압을 끝낸 상태입니다.”

“잘됐네요.”

완벽한 결과였다.

그로 인해 긴장이 풀린 탓인지, 극심한 현기증이 몰려왔다.

저도 모르게 휘청거리며 넘어지는 찰나.

“연 당……, 소소 아가씨!”

김응이 단숨에 움직여 부축해 줬다.

그는 연소소를 안전한 곳으로 이끌기 위해 인원을 불러들였다.

아니, 부르기 직전에 연소소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잠깐만요, 아저씨. 아직 해야 할 일이 하나 남아 있어요.”

“네? 그게 무슨…….”

연소소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바라봤다.

김응 또한 자연스럽게 그녀의 시선을 쫓았다.

두 사람의 눈길이 가닿은 곳에는 네 사람이 덩그러니 모여 있었다.

다름 아닌 안일한을 비롯한 한국 측 사람들이었다.

“저분들에게 커다란 빚을 졌어요. 마땅한 조치를 신경 써서 취해 주시고, 특히 정신을 잃은 분 보이시나요?”

“네, 보입니다.”

“저분은 의식이 깨어날 때까지 최상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 드리고, 각별히 신경 써 주세요.”

“……알겠습니다.”

김응은 대답과 함께 제 수하를 불러 방금 연소소에게 들은 내용을 전달했다.

그제야 연소소는 마음이 놓인 듯 김응의 품에서 눈을 감았다.

정신을 놓기 직전, 그녀는 속으로 되뇌듯 중얼거렸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 * *

이른바 ‘국제 대회 대참사’ 혹은 ‘서문세가의 난’이라 불린 사건이 발생한 직후.

세계는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초인 국제 대회라는 공신력 있는 세계 무대에서 참사가 벌어졌다는 점도 한몫했으나, 핵심은 따로 있었다.

-전 세계의 음지를 무대로 활동하는 낙일(落日), 이들의 정체는?!

-무려 중국의 12가문 중 한 곳이라 불리는 서문세가의 몰락을 불러온 낙일, 이들의 저력은 대체!

-중국 초인 사회를 시작으로 세계 각국의 초인 사회까지 대혼란을 맞이하다!

다름 아닌 낙일(落日).

이들의 존재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처음에는 대부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도 그럴 게, 낙일이 간자를 심어 둔 대상이 하나같이 비범한 까닭이었다.

가장 먼저 소요가 발생한 서문세가부터.

미국의 초인 전문 그룹, 거기에 유럽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굴지의 길드들까지.

과장 조금 보태서 이들은 국가나 대륙을 대표할 만한 단체들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출처가 중국의 12가문의 일축이자, 구 가문을 대표하는 연씨세가인 만큼 아예 낭설로 치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반신반의에 머물고 있던 기조가 한순간에 뒤집어졌다.

낙일의 행적이 세계 초인 협회의 이름 아래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낙일, 이들의 목적은 일반적인 빌런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낙일의 목적은 단순히 사익 추구가 아니었다.

사람을 세뇌하거나, 굵직한 단체의 전복을 노리고 인원을 침투시키는 등.

일반적인 빌런 단체와는 차원이 다른 행보였다.

심지어 이들을 특수 능력을 가진 초인을 대동하여 심문해 본 결과,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낙일의 간부, 인위적으로 게이트를 발생시켜 사회에 큰 혼란을 몰고 오려는 계획을 보유하고 있어 충격!

한 단체, 한 국가가 아니라 전 세계.

그것도 초인 사회뿐만 아니라 민간인이 포함된 사회 그 자체를 전복시킬 야욕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치밀하고 간악한 수법에 최악의 목적까지.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빌런 집단, 낙일은 등장과 동시에 전 세계의 적으로 자리매김했다.

각국은 세계 초인 협회의 이름 아래 뭉쳐 낙일을 향한 대대적인 수사는 물론, 적극적인 공조를 약속했다.

사람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머지않아 낙일의 잔당과 수뇌부는 전부 잡힐 것이며, 그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을 거란 사실을 말이다.

그런 세간의 기대와는 달리.

“……이거 꽤나 골치 아프게 됐네?”

소식을 접한 낙일의 수장, 금발의 여성은 미간을 찡그리며 투덜거릴 뿐이었다.

그녀에게선 두려워하거나 움츠러드는 기색 따윈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쿡 하고 연신 실소를 흘렸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여명이라고 했나?”

대대적인 수사 소식과는 달리 은밀하게 전해진 정보.

‘여명’이라는 비밀 단체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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