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나머지는 내게 맡겨라
악마화, 보스 몬스터로 전락한 서문건과의 전투.
녀석을 제거하기 위해 사전에 준비해 둔 계획은 다름이 아니었다.
연소소와 차은월, 그리고 윤설하.
세 사람이 녀석의 발을 묶는 데 주력하고, 내가 공격을 전담하는 것.
이게 바로 서문건을 제거하기 위한 계획의 골자였다.
‘마기의 두터운 방어력을 뚫으려면 어중간한 화력보단 한 자루의 첨예한 칼끝이 보다 유효할 거다, 였나?’
이는 그림자 녀석의 조언이었다.
범위가 상당한 방어력과 끈질긴 재생력을 띠는 마기의 특성상, 어중간한 공격은 효과가 없다는 모양이었다.
반면 나는 달랐다.
‘내겐 항마멸인장과 진천이 있으니까.’
마나의 순환을 어그러뜨리거나, 순환 경로 자체를 마비시키는 등.
기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가할 수 있는 무공.
오직 나만이 마기 그 자체에 유의미한 타격을 가하는 무공을 가지고 있는 까닭이었다.
세 사람에게 서문건의 발을 묶거나, 움직임에 제한을 가하는 역할을 맡긴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즉, 세 사람의 역할은 내가 가진 무기의 칼끝을 보다 날카롭게 벼려 주는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눈앞에서 서문건이 궁지에 몰린 형태로 나타났다.
“크윽! 이게 대체 무슨……!”
서문건은 다급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당혹성을 터뜨렸다.
앞선 연소소와 차은월의 일격은 그렇다 쳐도, 윤설하의 활약까진 전혀 예상치 못한 모양이었다.
뒤늦게 마기를 조종하여 윤설하의 빙벽을 무너뜨리고자 했으나.
“어딜 보는 거지?”
퇴로를 뚫을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 줄 내가 아니었다.
내 목소리에 서문건의 표정은 그야말로 처참하게 구겨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를 빙벽째 박살 내 버릴 기세로 주먹을 쏟아냈다.
무극삼권 제2초, 천라였다.
콰과과광-!
무수히 쏟아지는 권영.
이번에도 역시 서문건의 마기는 끈질기게 버텼다.
하지만 조금 전에 윤설하가 만든 빙벽을 없애려 마기를 분산시킨 탓인지.
쩌적-
마침내 거미줄 같은 실금이 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쩌저저저적-!
마기는 권격이 닿는 범위마다 무서운 기세로 갈라지며 무너져 내렸다.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서문건은 급기야 마기를 제어하는 것을 포기한 채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으아아아아아!”
기본적인 실력 덕분인지, 아니면 체내까지 스며든 마기 덕분인지.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는 서문건의 검술의 기세는 제법 매서웠다.
하지만.
‘그래 봐야 궁지에 몰려 발악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쪽은 온전한 정신으로 심혈을 다하여 무공을 펼치고 있었다.
상대가 될 수 있을 턱이 없는 것이다.
콰앙! 쾅! 쩌-엉!
그야말로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가운데.
서문건의 양옆, 그리고 배후에서 세 사람의 공세까지 더해졌다.
마기의 세가 눈에 띄게 약해졌으니, 거기에 맞춰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그 결과.
“커헉……!”
서문건은 검붉은 피를 한움큼이나 게워내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우리의 공세에 결국 무너진 것이다.
서문건은 가느다랗게 떨리는 제 손을 바라보며 황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럴, 이럴 수는…….”
서문건의 상태는 무척이나 불안정해 보였다.
그래서일까, 여태 철옹성처럼 그를 지키던 마기의 상태도 눈에 띌 정도로 불안정했다.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듯한 모습.
이대로라면 별다른 피해 없이 상황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떠올린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고생하셨어요, 안일한 님.”
후방에 머물던 연소소가 천천히 다가왔다.
차분한 어조와는 다르게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제손으로 직접 서문건의 숨통을 끊으려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연소소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여러분께서 손에 피를 묻힐 필요는 없습니다. 게다가 이자의 처분은 본가의 몫이니, 부디 양해해 주시길.”
서문건의 처리는 자신의 몫이다.
정중하지만 명확하게 선을 긋는 어조였다.
‘확실하게 숨통만 끊을 수 있다면.’
사실 누가 해도 상관 없는 문제였다.
오히려 내 친구들을 생각하면, 차라리 연소소에게 맡기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
문득 서문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샛노란 동공에서부터 검붉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표정은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상태였다.
반면 그의 입가는 흉측할 정도로 비틀린 채 쭉 올라가 있었다.
무엇보다 부릅뜬 두 눈으로 이쪽을, 특히나 연소소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를 목격한 순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무언가 있다……!’
저 눈빛은 포기나 체념의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앞뒤 재지 않고 일을 벌이려는 사람의 그것이었다.
판단 즉시, 나는 연소소에게 달려들었다.
“아, 안일한 님?!”
내게 덮쳐진 연소소에게서 당혹성이 새어 나왔다.
무어라 설명할 틈조차 없이 나는 그녀를 안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설명은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그런 일념하에 본능을 믿고 벌인 일이었다.
하지만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
“연소소오오오오오-!”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연소소의 이름을 부르짖는 서문건.
동시에 녀석에게서 어마어마한 마기가 폭발하듯, 터져 나온 까닭이었다.
* * *
‘죽여 버리겠어……. 반드시 찢어 죽인다……!’
서문건의 머릿속엔 온통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안일한과 연소소, 그리고 함께 딸려온 두 명까지 모조리 찢어 죽이는 것.
사실 처음엔 이 정도로 극단적이지는 않았다.
연소소에게 집적거린 안일한은 결코 용서할 수 없지만, 나머지에겐 자비를 베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녀석들의 약삭 빠른 움직임과 상상을 초월하는 무력에 증오심은 빠른 속도로 깊어져 갔다.
그래서일까 전투 중간부턴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차라리 모든 걸 놔 버릴까?’
인간으로서의 마지노선이자, 최후의 보루나 다름 없는 이성.
여태 본능적으로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완전히 놓아 버리는 것이다.
그간 붙들고 있었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됐지만, 이딴 곳에서 뼈를 묻을 생각은 추호도 없는 까닭이었다.
‘녀석들을 처리하고, 연소소를 인질로 잡는다면…….’
게이트를 벗어나도 살아날 수 있을 터였다.
그런 일념으로 버텼으나, 그마저도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자 생각은 점점 극단으로 치달았다.
‘이대로 있다간 개죽음일 뿐이야!’
바로 그때부터였다.
체내에 스며들었던 아티팩트의 존재감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한 것은 말이다.
그 순간, 서문건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거 완전히 잠식되면…….’
아티팩트의 존재감에 완전히 잠식됐을 때.
그때가 바로 진짜 몬스터로 전락하는 순간이 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여지껏 붙잡고 있었으나 패배와 함께 그럴 여유조차 없어졌다.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도 갈등했지만, 눈앞에서 목격해 버렸다.
증오스럽기 짝이 없는 안일한에겐 살갑게, 반대로 그에겐 싸늘한 태도로 죽이려 드는 연소소의 모습을.
그 순간.
빠득-
서문건은 이를 악물었다.
동시에 생각했다.
‘차라리 몬스터가 되어서라도……!’
저 두 연놈을 반드시, 기필코 찢어 죽이겠다고.
결심과 함께 여태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제 의지로 완전히 놓아 버렸다.
그러자 변화는 급속도로 찾아왔다.
녀석들의 공세에 진탕이 되어 버린 체내의 마나 순환로가 순식간에 복구됐다.
뿐만 아니라 일방적인 전투로 인해 온몸에 누적되어 있던 피해와 피로가 말끔히 해소됐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결정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이 힘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었어.’
그에게 주어진 인외의 힘.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방식을 말이다.
동시에 스스로의 존재를 뚜렷하게 인식했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
더는 그런 나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그보다 우월한, 상위의 존재로 거듭났다.
악마.
스스로를 그렇게 정의 내린 순간, 남아 있던 이성이 싸그리 날아가 버렸다.
그러고는.
“……키킥.”
서문건의 입가가 흉측하게 비틀렸다.
동시에 이제야 진정으로 한몸이 된 마기를 빠른 속도로 응축시켰다.
그대로 터뜨려 찢어 죽이려는 찰나.
“……!”
안일한, 증오스럽기 짝이 없는 놈이 무언가 눈치챈 듯 표정을 굳혔다.
하지만 딱히 상관없었다.
어차피 결과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서문건은 더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소리쳤다.
“연소소오오오오오-!”
* * *
화아아앗-!
마기가 폭발적인 기세로 뻗어 나갔다.
나는 뒤늦게 몸을 일으키고 자세를 갖추면서도, 한편으론 직감했다.
‘……늦는다.’
타이밍을 맞출 수 없다.
그만큼 서문건이 뿜어낸 마기의 기세는 노도처럼 닥쳐들었다.
무엇보다.
“아, 안일한 님!”
아직 자세를 잡지 못해 내 아래에 웅크려 있는 연소소 때문에라도 회피는 불가능했다.
결국 나는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몸으로 때운다.
정확히 말하자면, ‘급속 재생’의 효과를 바탕으로 마기를 온몸으로 받아낼 심산이었다.
머지않아 닥쳐올 고통에 심호흡을 하는 찰나.
타닷-
근처에서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설하야! 왼쪽을 부탁할게!”
“알겠어!”
다름 아닌 차은월과 윤설하였다.
별다른 요청을 하지 못했음에도 그녀들은 각자의 판단을 바탕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타이밍, 바로 그 덕분이었다.
쩌-엉!
해일처럼 밀려드는 마기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던 것은 말이다.
마력 역장으로 증폭된 방어 마법과 시퍼런 빙벽이 마기의 진군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기세만큼이나 출력이 엄청났는지.
“으윽……!”
두 사람의 표정은 점차 고통으로 얼룩져 갔다.
더 늦기 전에 나는 연소소의 몸을 일으키며 신속하게 가세했다.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녀석 또한 마기를 뿜어내는 행동 이외 추가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를 인식한 즉시.
‘지금이 기회다.’
나는 곧바로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서문건의 상태가 이상해. 정보가 있으면 알려 줘.’
-반인반마가 된 거다.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고 보면 된다.
반인반마(半人半魔).
달리 말해 인간의 탈을 쓴 악마 계열 몬스터라는 뜻이었다.
침음이 절로 흘러 나오는 가운데, 그림자가 신속하게 덧붙였다.
-마기를 제몸처럼 다루게 되겠지. 이미 한몸이나 마찬가지니까. 게다가 곧 있으면 내부의 몬스터까지 조종하려 들 거다.
‘……그럼 방법이 없는 거야?’
그림자에게 되물어보면서 무의식적으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만약 방법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오면, 그건 곧 죽음을 의미하는 까닭이었다.
-아니, 아직은 방법이 있다. 녀석이 마기의 활용법은 깨우쳤을지 몰라도, 출력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 거다.
다행히 녀석으로부터 바라마지않던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러니 고통을 감수하고 맞서라. 의식이 날아가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다가서서 주먹을 휘둘러라. 더 강해지기 전에 골통을 박살 내는 거다.
녀석의 주문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저 불길하기 짝이 없는 마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라는 부분이 그랬다.
그럼에도 나는 긍정했다.
아니, 대답을 돌려주려는 찰나 녀석이 빠르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를 듣는 순간.
타닷-
나는 곧바로 마기의 정면을 향해 뛰어들었다.
“아, 안일한!”
등 뒤에서 윤설하의 뾰족한 외침이 들려왔다.
아마 다른 두 명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그럼에도 나는 전진했다.
세 사람이 힘을 합쳐 형성한 방어막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마기의 영역에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
진득한 마기가 전신을 옥죄었다.
어렵게 뜬 눈꺼풀 사이로 서문건의 모습이 들어왔다.
녀석 또한 내 접근을 눈치챘는지.
히죽-
입꼬리를 비틀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서문건은 느닷없이 양팔을 들어 올렸다.
녀석의 손짓에 세 사람을 집어삼킬 기세로 밀어붙이던 마기가 순식간에 흩어졌다.
이윽고 녀석의 마기는 내 머리 위쪽에서 다시금 뭉치기 시작했다.
마침내 마기가 거대한 말뚝 형태를 갖췄을 때.
“죽어.”
나를 향해 쏟아냈다.
쌔애애액-!
폭우처럼 쏟아지는 마기의 칼날.
온몸이 난도질당하는 감각 속에서도 나는 이를 악물고 걸음을 내디뎠다.
저벅-
빠르게 간격이 좁혀지고 있음에도 녀석은 유희를 즐기듯 미소를 머금은 채였다.
반면 나는 표정 관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계속 그렇게 여유 부리고 있어라.’
나는 속으로 웃었다.
마침내 녀석의 사정권 안에 다가섰고, 의식은 고통으로 인해 빠르게 아득해져갔다.
본래라면 최악의 상황일 터, 하지만 적어도 내겐 아니었다.
의식이 빠르게 가라앉는 가운데.
-나머지는 내게 맡겨라.
한 줄기, 더없이 믿음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