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칼날을 보다 날카롭게 세워야 할 때
‘내가 가진 능력의 한계점……?’
내 능력의 한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
그림자는 그게 곧 현 상황의 활로가 될 거라고 말했다.
다소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까닭에 나는 속으로 녀석의 말을 곱씹어 봤다.
하지만 잘 와닿지 않고 모호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무어라 되물어보려는 찰나, 때마침 녀석이 말을 이어 갔다.
-동기화율 상승에 따라 새로 얻은 능력을 말하는 거다.
수수께끼에 매달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건지, 그림자는 빠르게 답을 말해 줬다.
그제야 나는 맥락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급속 진화하고 급속 재생 스킬을 말하는 거야?’
녀석이 언급한 내 능력이란 동기화율 70% 달성에 따라 업그레이드된 스킬.
‘급속 진화(S)’와 ‘급속 재생(S)’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림자는 곧바로 긍정하며 설명을 덧붙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급속 재생 스킬의 한계를 잘 파악해 둬야 할 거다.
‘급속 재생이라면…….’
급속 재생의 설명에 따르면 치명상, 심지어 절단이나 훼손 수준의 상처까지 치유가 가능했다.
이를 되새겨보니 자연스럽게 그림자 녀석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일정 수준의 피해를 불사하고 전투를 지속할 수 있다는 거잖아.’
-바로 그렇다.
녀석의 즉답에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혀 버렸다.
확실히, 피해를 신경 쓰지 않게 되면 그만큼 전투 속도는 빨라질 것이다.
특히 게이트 내부의 몬스터를 서문건이 조종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속도는 더더욱 중요한 요소였다.
하지만 이런 방식에는 한 가지, 무시 못할 결점이 존재했다.
-그만큼 고통스러울 거다.
‘…….’
-급속 재생이 피해를 빠르게 회복시켜 줄지언정, 고통을 완화시켜 주진 않으니까.
피해에 따른 고통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는 점.
그게 문제였다.
‘……내가 그 모든 고통을 견뎌낼 수 있을까?’
과연 고통 속에서 온전히 정신을 유지한 채로 지금의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을지.
모르긴 몰라도, 이는 말 그대로 초인적인 수준의 정신력이 필요할 터였다.
이 부분에 관해선 나는 감히 확신할 수 없었다.
확신은커녕, 정신이 조금씩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까닭에 주먹을 쥐며 불안감을 떨쳐내려 애썼다.
바로 그때.
“……안일한, 무슨 일 있어?”
문득 윤설하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녀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양손을 뒤로 감췄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고 나서야 나를 향하고 있는 세 쌍의 눈동자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걱정, 불안, 초조, 공포 등, 그 속에는 온갖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럼에도.
“안일한, 역시 너도 사람이었구나. 응, 이제야 좀 같은 나이 또래처럼 느껴지네.”
윤설하는 나를 향해 옅은 미소를 띤 채 가벼운 농담을 건네왔다.
마치 자신의 불안감을 뒤로한 채 나를 지탱해 주려는 느낌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걱정하고 있는 거지……? 이 상황을 무사히 헤쳐나갈 수 있을지, 우리 모두를 지킬 수 있을지.”
“그건…….”
“너무 부담 갖지 마. 아니지, 정 부담을 떨칠 수 없다면 함께 나눠 보는 건 어때?”
“나눠 보자고……?”
“응. 나도 최선을 다할 거거든. 안일한, 너하고 은월이, 그리고 저 사람까지 다 함께 무사히 여기를 빠져나가기 위해서!”
윤설하는 연소소까지 언급하며 씩씩하게 답했다.
예상치 못한 격려에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문득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설하 말이 맞아!”
다름 아닌 차은월이었다.
“분명 두려운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힘내 볼게……!”
실제로 그녀의 손끝은 나만큼이나 떨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차은월은 굳은 의지를 담은 눈빛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혼자서는 무리일지 몰라도, 함께라면 분명 지금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 믿어. 그러니까 일한이, 너도 우리를 믿어 줬으면 좋겠어……!”
한없이 진지한 태도로 위로와 격려를 건네는 두 사람.
낯간지러운 말이었으나, 둘의 대가 없는 믿음과 신뢰의 효과는 굉장했다.
어느새 가슴 속에 자리하던 불안감이 상당 부분 해소된 것이다.
비단 두 사람에서 그치지 않고, 여태 가만히 듣고 있던 연소소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다 제 탓이에요. 대단히 죄송합니다, 여러분.”
그녀는 느닷없는 사죄의 말과 함께 고개를 푹 숙였다.
황급히 말리자 나직하게 사의를 표하는 한편,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제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여러분을 지켜 드리겠습니다. 염치없는 부탁인 줄은 알지만, 제게 조금만 힘을 보태 주세요!”
연소소는 나와 내 친구들에게 재차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보인 각오에 친구들은 일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내 무언가 결심을 한듯, 두 사람은 앞다투어 한마디씩 입에 담았다.
“잘 모르는 분이지만, 잘 부탁해요.”
“함께 힘내 봐요!”
그렇게 세 명이 한참이나 늦게 안면을 트는 사이.
나는 새로이 각오를 다졌다.
‘고통을 감수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결국 모두가 함께 고통을 분담하는 셈이었다.
그러니 과하게 매몰되어선 안 된다.
지금은 그보단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에 몰두해야 마땅했다.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 머릿속에서 그림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건 숙지해야 될 사실일 뿐. 그보다 중요한 일은 네 칼날을 보다 날카롭게 세우는 거다.
‘칼날을 날카롭게 세우라고?’
-그래. 만일 네 역할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게 전부였다면 무극삼권 같은 무공도 준비하지 않았을 테니까.
녀석의 말은 다름이 아니었다.
급속 재생의 효과, 고통을 감내하는 부분에만 매몰되지 말라는 것.
이를 바탕으로 도리어 내가 가진 전투력을 극대화시켜야 마땅하다는 뜻이었다.
그제야 마음 속의 번뇌를 전부 떨쳐낼 수 있었다.
녀석은 거기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게다가 만일의 경우, 내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그게 무슨 말이야?’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이 오면 기꺼이 내가 맡겠다.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그 말에 소름이 돋는 한편, 새삼스럽게 녀석의 각오가 느껴졌다.
동시에 불현듯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혹시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상한 거야?’
-그건 아니다. 돌발적인 변수가 발생할 거란 추측 정도라면 모를까, 정확하게 특정하는 건 무리였다.
‘하기야, 이미 김한석을 죽인 시점부터 네가 알고 있는 미래와는 완전히 틀어졌을 테니까.’
그렇게 납득하는 한편, 슬슬 준비에 나섰다.
본격적으로 움직이기에 앞서 나는 세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모두 알아둬야 할 내용이 있어.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설명할게.”
지금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침식 게이트라는 사실부터.
이곳에 출몰하는 몬스터의 종류와 등급, 그리고 서문건이 게이트 내부의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다는 점.
그러니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점과 서문건을 죽여야 끝낼 수 있다는 점까지.
필수적인 정보를 빠르게 공유했다.
이에 연소소는 계승 덕분에 단편적인 정보를 이미 알고 있었는지.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모든 내용을 빠르게 이해했다.
반면 윤설하와 차은월은 다소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알겠어. 상황이 되면 주저하지 않도록 할게.”
“응, 나도 노력할게!”
조금 전에 이미 각오를 굳혔는지, 의외로 빨리 회복하고 받아들였다.
마지막으로 나는 세 사람에게 새로운 전략을 밝혔다.
다름 아닌 ‘급속 재생’를 바탕으로 전투 속도를 끌어올리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였다.
물론 스킬의 이모저모를 상세하게 밝히진 않고, 대략적으로만 설명했다.
비교적 담담한 태도로 받아들이는 연소소와는 달리.
“일한아, 정말 괜찮겠어……?”
“……그 방법밖에 없는 거야?”
차은월과 윤설하는 조금 전보다 한층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되물어왔다.
고개를 저으며 무어라 설득하려는 찰나.
쿵! 쿵! 쿵!
멀지 않은 곳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로 가늠해 본 결과.
‘두 마리.’
정체 모를 몬스터 두 마리가 접근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판단 즉시 세 사람에게 정보를 공유했다.
“남은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지금 북서쪽 방향에서 두 마리가 접근하고 있어. 미안하지만 일단 내 말에 따라 줬으면 해.”
내 부탁에 두 사람은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에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기색이 묻어났으나 일부러 외면했다.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니까.’
딱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하는 한편.
슬슬 코어를 활성화시켰다.
다시금 전투 준비를 갖췄을 무렵, 어렴풋이 두 마리의 몬스터가 시야에 들어왔다.
정체는 다름 아닌 ‘변이된 트롤 대주술사’들이었다.
-변이된 트롤 대주술사 정도면 그나마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겠군.
‘그러게, 리치 계열이었으면 차라리 피하는 게 상책이었을 텐데.’
녀석의 말대로였다.
A급 몬스터에게도 진천의 투로가 먹히는 이상, 녀석도 온전히 마법을 발휘하긴 힘들 것이다.
계산은 딱 그 정도로 끝냈다.
슬슬 녀석들이 사정권에 들어선 까닭이었다.
“가자.”
나직하게 내뱉은 다음, 곧바로 지면을 박찼다.
* * *
같은 시각.
‘드디어……!’
서문건은 손에 쥔 아티팩트 속 반점들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그가 조종한 대로 ‘변이된 트롤 대주술사’ 두 마리가 연소소 일행에게 접근한 까닭이었다.
‘복수할 시간이다.’
서문건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무려 A급 몬스터가 두 마리다.
결코 일개 생도 수준으로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니 결과는 녀석들의 필패로 이미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그는 미리 계획까지 세웠다.
‘우선 절대로 죽이면 안 된다.’
마음 같아서야 연소소와 안일한, 두 녀석들만큼은 반드시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됐다.
저들이 죽어 버리면 게이트를 빠져 나간 다음이 문제가 되는 까닭이었다.
때문에 서문건은 생각을 조금 달리 했다.
‘차라리 반죽음 상태로 만들고…….’
네 명을 한꺼번에 인질로 삼는 것이다.
그럼 아쉬운 대로 복수도 할 수 있을뿐더러, 활로까지 확보할 수 있을 터였다.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에 입꼬리가 슬슬 올라가는 찰나.
‘시작됐다!’
때마침 두 개의 붉은색 반점이 초록색 반점들의 지척에 이르렀다.
드디어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아니, 전투라기보단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울 터였다.
‘잘 조절해야 할 텐데.’
혹여나 연소소 일행이 죽어 버리면 말짱 꽝이었다.
도리어 그런 걱정까지 하며 지켜보고 있을 때.
“……어?”
무언가 예상과는 다른 흐름이 벌어졌다.
네 개의 초록색 반점들 중 하나가 돌연 붉은색 반점을 향해 돌진한 것이다.
다만 서문건이 알 수 있는 건 그뿐으로, 정확히 누가 그런 행동을 취했는지는 파악이 불가능했다.
‘대체 어떤 머저리가 저런 무모한 짓을……!’
분명 저 네 명은 죽이고 싶은 상대였다.
하지만 게이트 탈출 이후의 계획 때문인지, 아이러니하게도 돌발 행동에 속이 답답했다.
이 점을 뒤늦게 알아차린 서문건은 한차례 고개를 털어내며 생각을 달리 했다.
‘아니지, 연소소만 아니면 돼.’
인질로서 가치가 가장 높은 그녀만 아니라면, 나머지 세 명은 사실 죽어도 상관없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안일한이란 놈은 차라리 죽었으면 했다.
‘그래. 연소소만 살아있으면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할 무렵.
반짝반짝-
느닷없이 아티팩트 속 붉은색 반점과 단독으로 달려든 초록색 반점이 깜빡거렸다.
갑작스러운 점멸 현상에 고개를 기울이는 순간.
오래지 않아 붉은색 반점 하나가 소멸했다.
“이게 무슨!”
서문건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아티팩트를 노려봤다.
처음 접하는 현상이었으나,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몬스터의 죽음. 그것도 A급 몬스터의 죽음이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어, 어떻게……!”
서문건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