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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152화 (152/218)

152화 저 또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내일이면 그들은 지는 해는커녕, 새로 떠오르는 태양조차 보지 못하게 될 거예요.”

연소소는 나직하게 덧붙이며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감정이 없는 인형처럼 무표정한 그녀의 미소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다만 그녀의 투명한 눈동자 속에 깃든 살의는 오롯이 낙일을 향하고 있었다.

그게 더없이 든든하게 느껴지는 가운데.

“연 당주,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그림자는 마지막으로 계획의 디테일을 점검하고자 질문을 던졌다.

이에 연소소는 미소를 거둬들이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답변을 입에 담았다.

“우선 접촉 대상들에게 각각의 명분을 제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각국의 초인 협회와도 이야기를 끝마친 상태예요.”

“최소한의 잡음을 제외하면 별다른 문제는 없겠군요.”

그림자는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초인 협회’ 때문이었다.

‘여기서 몇 년만 더 지났어도 초인 협회의 협조를 받는 건 불가능했겠지.’

지난 생에선 초인 협회 또한 적이었다.

낙일이 진작에 마수를 뻗어 장악해 버린 것이다.

녀석들의 존재를 눈치챘을 무렵에는 이미 늦었다.

‘그래서 상당히 골치 아팠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몇 년이나 앞서 움직이는 만큼, 저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연소소 또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승전이 시작될 쯤이면 낙일의 간부는 손쓸 도리조차 없이 제거될 거예요. 연씨세가의 모든 걸 걸고 반드시 그렇게 만들 겁니다……!”

작은 주먹을 불끈 쥐며 단언했다.

그림자는 그녀의 각오에 나직하게 호응했다.

“저 또한 그리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본격적으로 움직이기까지 불과 수 시간.

두 사람은 그렇게 마지막으로 결의를 다졌다.

* * *

다음날.

마침내 결승전 당일의 아침이 밝아왔다.

인솔 교관의 인솔 아래 우리는 빠르게 대회장으로 이동했다.

선수 대기실에서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리는 가운데.

“결승전 경기까지 10분 남았습니다. 한국 팀, 준비해 주세요.”

어느새 결승전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대회 관계자의 지시에 나는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두 사람, 윤설하와 차은월의 표정은 살짝 굳어 있었다.

“으응, 생각보다 떨리네.”

“설하 너도? 나도 좀 그런 것 같아.”

여태 A+등급, 최고 성적을 연이어 받아냈음에도 결승전이란 이름의 무게가 무겁게 다가가는 모양이었다.

반면 나는 이들과는 조금 다른 이유로 긴장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두 번째 계획, 이제 곧 시작되겠구나.’

결승전이 시작되는 순간.

결승전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한 그림자 녀석의 두 번째 계획이 시작되는 까닭이었다.

낙일의 간부들이 숨어든 세력을 동시다발적으로 타격하는 것.

그 여파로 전면전이 일어난다면, 그조차도 피할 수 없을 터였다.

‘이제부터는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

애초에 녀석은 내게 말했다.

두 번째 계획이 시작되는 순간, 모든 것의 끝을 볼 때까지 결코 멈출 수 없다고 말이다.

녀석의 바람과 원하는 미래는 나의 그것과 맥이 맞닿아 있었다.

그러니 녀석의 일은 곧 내 일이나 다름없었다.

나 또한 각오를 다져야 마땅했다.

“후우.”

그런 일념으로 심호흡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때마침 윤설하와 차은월 또한 나름의 각오를 굳힌 모양이었다.

“잘해 보자! 이 기세로 우승까지 가는 거야!”

“응!”

그렇게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슬슬 대기실을 벗어나려는 찰나.

“세 명 모두 잘하고 와!”

“안일한, 아카데미의 위상을 드높이고 와라.”

“셋 다 지면 가만 안 둘 거야!”

백유진과 심인욱, 그리고 오윤서가 격려와 함께 우리를 배웅해 줬다.

세 사람에게 미소로 화답한 다음.

“가시죠.”

대회 관계자를 따라 경기장을 향했다.

잠시 후.

“한국 팀은 2번 게이트 앞에 서 주시면 됩니다.”

어느새 익숙해진 경기장을 가로질러 우리 팀에 배정된 가상 게이트 앞에 마주 섰다.

그 상태로 대기하기를 수 분.

이윽고 경기장 출입구에서 세 명의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결승전 경기의 상대인 중국 팀이었다.

그중 사나운 인상의 청년에 눈에 띄었다.

‘서문건, 저 사람이 올라왔네.’

서문세가의 직계이자, 연소소가 경고했던 인물.

서문건이었다.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서문건에게 고정됐다.

어쩌면 서문건은, 정확히는 서문세가와는 결승전 이후 충돌하게 될지도 모르는 까닭이었다.

‘과연 어떤 상황이 펼쳐지게 될지.’

나름대로 가늠해 보고 있을 때.

찌릿-

문득 서문건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적의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이제는 그가 보이는 적개심의 이유도 알고, 서문세가의 추잡한 비밀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서문건의 시선에 당황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냈다.

저벅저벅-

그대로 나란히 섰을 때, 서문건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흘러나온 말은 다름이 아니었다.

“제법 한 수는 있는 모양이더군.”

나와 내 친구들의 실력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

하지만 뉘앙스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치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 그 이면에는 스스로에 대한 우월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이러한 감정을 느낀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내 친구들은 곧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반면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무심하게 답했다.

“그쪽도.”

“……뭐?”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서문건의 표정이 대번에 구겨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결승전이잖아. 피차 한 수 재간 정도는 가진 셈이지.”

“동급으로 취급하지 마라. 근본도 없는 게.”

“근본이라…….”

나는 태연하게 서문건의 말을 받아내는 한편,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서문세가가 무너지면 그땐 서문건의 근본 또한 함께 사라지는 게 아닐까.’

이미 연씨세가, 연소소의 표적이 된 이상 서문세가의 말로는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멸문(滅門).

그만큼 서문세가를 향한 연소소의 증오심은 엄청났고, 연씨세가는 그걸 이뤄낼 저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 사실을 떠올리니.

씨익-

자연스럽게 실소가 흘러나왔다.

이런 내 속내를 알 턱이 없는 서문건은.

“……감히 네까짓 놈이 나를 비웃어?!”

또다시 표정을 와락 구기며 분개했다.

그대로 분노에 몸을 맡겨 내 쪽으로 다가오려는 순간.

“서, 서문건 님! 진정을……! 보는 눈이 많습니다!”

대회 관계자가 나서서 그를 뜯어말렸다.

뿐만 아니라 서문건과 함께 팀을 맺은 남녀도 빠르게 나섰다.

그중 여자가 그의 귓가에 무어라 속삭이고 나서야 소요가 가라앉았다.

그렇게 돌발 상황을 수습하고 난 다음, 대회 관계자는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내게 속삭였다.

“……불필요한 사담은 삼가 주시길.”

제 할 말만 남기고 돌아서는 관계자의 발언에 내 친구들이 일순간 표정을 구겼다.

반면 나는 이번에도 역시 개의치 않았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비하면, 지금의 소요는 시답잖은 수준에 불과한 까닭이었다.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하는 한편, 친구들을 진정시킬 겸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승리로 갚아 주면 돼. 충분히 할 수 있잖아?”

내 속삭임에 두 사람은 일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내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쿡 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네.”

“반드시 이기자……!”

그렇게 의도치 않은 동기부여를 바탕으로 새로이 각오를 다질 무렵.

“그럼 지금부터 결승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양 팀, 바로 입장해 주세요.”

드디어 대회 관계자가 경기 시작을 알렸다.

“가자.”

나는 친구들과 함께 지시에 맞춰 가상 게이트 너머로 발을 내디뎠다.

잠시 후.

-2번 게이트 B급 난이도 공략이 완료됐습니다.

-게이트 공략 결과를 산정합니다.

-클리어 등급 A+. 레이드를 종료합니다.

결과에 이변은 없었다.

경기 직전에 서문건이 일으킨 소요가 도움이 된 건지, 오히려 기록 자체는 더 좋게 나왔다.

실제로.

“얘들아. 저쪽 게이트, 아직 활성화되어 있어.”

“그렇다는 건……!”

이전 경기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역시 우리 팀이 한발 앞서 공략을 끝마쳤다.

대회 관계자의 표정이 살짝 굳은 가운데.

스스스-

얼마 지나지 않아 서문건이 속해 있는 중국 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는 이전 경기의 상대들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였다.

하지만.

‘우리 팀에는 못 미쳤지. 그게 중요한 거고.’

그래 봐야 우리 쪽이 더 빨랐다.

상대방 또한 이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너, 너!”

순식간에 표정을 구기며 우리 쪽에 삿대질을 했다.

특히 서문건의 경우, 실시간으로 표정이 썩어들어 가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무심한 눈빛으로 대회 관계자를 지긋이 응시했다.

내 시선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렸는지.

“겨, 결과는 한국 팀의 승리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관계자는 거의 마지못해 말하는 수준으로 우리 팀의 승리를 확정 지었다.

“우리가 우승한 거야?!”

“해, 해냈어!”

윤설하와 차은월이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는 사이.

대회 관계자는 머뭇머뭇 말을 이어 갔다.

“이제 곧 시상식이 진행될 예정이니…….”

“잠깐!”

대회 관계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느닷없이 서문건이 끼어들었다.

그러고는 관계자가 말릴 틈조차 없이 내 쪽으로 순식간에 다가왔다.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그가 빠르게 입을 열었다.

“대회 우승자는 12가문의 초청을 받을 수 있지. 네놈을 초청할 테니, 사내라면 반드시 응해라. 거기서 네 밑천을 낱낱이 까발려 줄 테니까.”

예상과는 달리 서문건은 경기 결과 자체에 불복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순수하게 내 역량을 의심하는 모양이었다.

그의 의도를 파악하는 한편, 머릿속으로 결승전 이후의 일정을 더듬어 봤다.

‘확실히 시상식 이후에 초청 행사나 만찬 일정이 잡혀 있었지.’

분명 그런 일정이 존재한다고 들은 기억이 있었다.

그럼에도 일말의 신경조차 쓰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전부 다 의미 없어질 테니까.’

이제 곧 전쟁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곳은 전란에 휩싸이게 될 터였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서문건에게 나직하게 대답했다.

“글쎄, 과연 그게 의미가 있을까?”

“뭐라고?! 네 녀석, 설마 도망칠…….”

무어라 반발하려는 찰나.

“도련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근처에 있던 남성이 다급하게 서문건에게 다가가 소리쳤다.

영문 모를 발언에 서문건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아니, 반응하기 직전에 남성이 그의 귓가에 무어라 속삭였다.

이를 전해 들은 순간.

“……뭐, 라고?”

서문건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의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과 남성의 심각하게 굳은 얼굴만 봐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건가.’

연씨세가, 연소소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다들 이쪽으로 집합해라!”“도련님을 모셔!”

순식간에 십여 명에 달하는 인원이 서문건을 향해 모여들었다.

그 모습은 마치 그를 보호하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나를 제외한 대부분이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가장 먼저 서문건에게 접근한 남성이 느닷없이 우리 쪽을 노려봤다.

“이렇게 된 이상, 저들을 인질로 삼아서라도 도련님을……!”

추측건대 서문세가 측은 나와 내 친구들.

즉, 한국 측 초인을 인질로 삼아 연씨세가의 마수에서 벗어나려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되면 국제적인 분쟁 수준으로 사태의 규모가 커지겠지만.’

속수무책으로 연씨세가에 당하는 것보단 나을 거라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단순히 결심에서 그치지 않고 작정이라도 한 듯, 움직이려는 순간.

“그렇게 둘 순 없죠.”

출입구에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방금 서문건에게 모여든 인원의 2배가 넘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경기장을 포위했다.

서문건은 그 선두에 있는 이를 가리키며 황망한 목소리로 더듬더듬 중얼거렸다.

“소소, 너……!”

그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

거기에는 연씨세가의 연소소, 그녀가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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