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이제 적들을 제거하는 일만 남았어요
이번 4강 경기의 상대는 다름 아닌 중국 팀이었다.
사실 이 부분은 충분히 예상했다.
어느덧 4강에 이른 지금, 현시점에 남은 팀은 중국이 두 팀, 북미 한 팀, 그리고 한국 한 팀이었으니까.
두 팀이나 살아남은 중국 팀과 맞붙을 확률이 더 높은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놀란 이유는 경쟁 상대로서 마주하게 된 한 사람 때문이었다.
“그림…… 아니, 안일한 님! 역시 올라오셨군요!”
다름 아닌 연소소였다.
그녀는 특유의 투명한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며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나 또한 그녀에게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나직하게 화답했다.
“여기서 마주하게 됐네요.”
내게 있어 연소소와의 대화는 이번이 두 번째였다.
하지만 그동안 그림자와 의식을 공유하며 그녀를 지켜본 만큼 그다지 어색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다만 그 정도로, 대화 자체는 길게 이어 가지 않았다.
이 자리는 담소를 나누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경기에서 경쟁을 펼치기 위해 마련된 까닭이었다.
이 점을 의식한 건지.
“그럼 서로 잘해 봐요. 그리고 밤에 뵈요……!”
연소소는 수줍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고는 종종걸음으로 제 팀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나 또한 뜻밖의 재회를 마치고 다시금 경기에 신경을 돌렸다.
여태 연소소한테만 신경이 쏠려 있던 까닭인지.
“……안일한, 너 저 애와 아는 사이였어?”
“저분이랑 무슨 관계야……?”
뒤늦게 나에게 쏠려 있는 친구들의 시선을 눈치챘다.
그녀들뿐만 아니라 상대 팀 쪽도 마찬가지였다.
연소소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의 청년 또한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제야 처신의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워낙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미처 신경을 못 썼네.’
연소소 또한 마침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는지, 뒤늦게 허둥거리며 내 눈치를 봤다.
이마를 짚고 있는 사이, 윤설하와 차은월이 재차 추궁해 왔다.
“언제부터 알게 됐어?”
“꽤나 친해 보이던데…….”
연소소가 우리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중국 팀 소속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두 사람은 연거푸 내게 질문을 건네왔다.
대답할 거리가 마땅치 않은 까닭에 나는 때아닌 고민에 휩싸였다.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이제 4강전 1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양 팀, 준비해 주세요.”
마침 대회 관계자가 경기에 관련된 지시 사항으로 분위기를 환기시켜 줬다.
나는 이때다 싶어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사정은 경기 끝나고 설명해도 될까? 우선은 여기에 집중해야 할 것 같은데.”
내 제안에 두 사람은 잠깐 고민하더니, 결국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뭔가 회피하는 것 같지만 일단은 알겠어.”
“끝나면 꼭 설명해 줘야 한다?”
둘 다 미심쩍은 눈빛으로 내게 한마디씩 덧붙였다.
그제야 비로소 곧 시작될 경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준비를 마칠 무렵.
“그럼 양 팀, 입장해 주세요.”
대회 관계자가 본격적으로 4강전 경기를 개시했다.
지시와 함께 가상 게이트 너머로 발을 내디뎠다.
이질적인 감각이 전신을 휘감는 가운데.
‘……변명거리, 생각해 둬야겠다.’
조금 전에 내뱉은 말과는 달리 가장 먼저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
…
…
잠시 후.
-1번 게이트 B급 난이도 공략이 완료됐습니다.
레이드는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 끝이 났다.
고민과는 별개로 공략에만 온전히 집중한 덕분에 보스 몬스터도 빠르게 잡을 수 있었다.
그 결과.
-게이트 공략 결과를 산정합니다.
-클리어 등급 A+. 레이드를 종료합니다.
이번에도 8강 경기 때와 마찬가지로 A+등급이 나왔다.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결과라 그런지.
“저번보다 좀 더 나아진 것 같은데?”
“응, 호흡이나 역할 분배 측면에서 더 자연스러워진 것 같아!”
윤설하와 차은월은 성적에 기뻐하는 대신, 이번 레이드에 관한 감상을 늘어놨다.
습관처럼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사이, 가상 게이트가 소멸해 갔다.
대회장으로 되돌아왔을 때 자연스럽게 옆쪽 게이트를 확인했다.
‘아직까지 게이트가 활성화되어 있다는 건…….’
우리 팀의 승리를 의미하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친구들과 주먹을 살짝 부딪치며 승리를 자축하고 있을 때.
스스스-
머지않아 상대 팀의 가상 게이트가 소멸하고, 연소소를 비롯한 세 사람이 나타났다.
그녀는 먼저 나와 있는 내 모습을 확인하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반면 그녀와 같은 팀인 두 청년은 경악에 가까운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그렇게 희비가 엇갈린 가운데.
“결과는 한국 팀의 승리입니다. 결승전 진출을 축하드립니다.”
대회 관계자가 우리 팀의 승리를 확정시켜 줬다.
결과 발표에 상대 팀의 두 청년은 마지못해 박수를 치는 반면.
연소소는 우리 팀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지은 채 진심으로 박수를 쳐 줬다.
그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나를 향해 조그마한 입술로 무어라 벙긋거렸다.
해석한 결과.
‘좋은 승부였습니다, 이따 봐요……인가?’
그저 평범한 인사에 불과했다.
하지만 내 친구들에겐 달리 전달된 모양이었다.
“……방금 또 눈웃음 보내지 않았어?”
“일한이한테 뭐라 말한 것 같은데, 도대체 둘이 무슨 관계야……?”
대회장을 벗어나기도 전부터 다시 나를 추궁하기 시작한 것이다.
4강도 끝났고, 결승전은 다음 주 월요일인 만큼 더는 물러설 곳도 없었다.
때문에 나는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그게 말이지.”
그렇게 필사적으로 둘러댄 끝에 저녁 식사 무렵이 돼서야 겨우 두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었다.
* * *
그날 밤.
어김없이 연소소가 찾아온 가운데.
이제는 거의 일과나 다름없는 작업, 동기화율 상승에 착수했다.
그 결과.
-현재 동기화율…… [65%]
-현재 동기화율…… [66%]
-현재 동기화율…… [67%]
…
…
…
-현재 동기화율…… [70%]
동기화율 70%를 달성했다.
그 순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참기 어려운 두통이 몰려왔다.
“……크, 윽!”
결국 그림자는 신음을 흘렸다.
그럼에도 힘겹게 실눈을 떠 정면을 바라봤다.
고통의 대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허공에는 그가 원하는 내용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식된 [스킬] 효율의 재조절이 완료됐습니다!
-이식된 스킬 [진화(A)]가 [급속 진화(S)]로 변경됩니다!
-이식된 스킬 [재생(A)]이 [급속 재생(S)]으로 변경됩니다!
안일한에게 이식된 스킬의 등급 상승.
그게 바로 동기화율 70%에 따른 보상이었다.
‘아직 한 단계가 더 남아 있지만.’
이번 계획에선 ‘급속 진화(S)’와 ‘급속 재생(S)’ 정도면 충분해 보였다.
애초에 이번 계획에 있어 그림자가 원하는 바는 압도적인 무력이 아니라 안위를 지킬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으로 이틀은 더 끌어올릴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급하게 접근할 필요는 없었다.
그림자는 새삼스럽게 생각을 정리하는 한편.
호흡을 가다듬는 연소소를 향해 나직하게 물었다.
“연 당주, 오늘은 이걸로 충분한 것 같습니다. 괜찮으십니까?”
그의 물음에 연소소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작업의 여파 때문인지, 그녀의 안색은 창백했다.
그럼에도 연소소는 희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조금은 힘들지만, 그래도 제법 적응된 것 같아요. 처음보단 견딜 만하네요.”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솔직히 연소소는 빈말로도 좋다고는 할 수 없는, 그런 상태였다.
그럼에도 가만히 납득하고 넘어간 건 그녀 나름의 의지를 존중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마음이 전해졌는지.
“네. 그나저나 그림자 님은 대단하시네요!”
연소소는 맑게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이에 그림자는 짐짓 모르는 척 그녀의 장단에 맞췄다.
“대단하다는 말씀은……?”
“오늘 경기요!”
“아, 대회 말씀이시군요.”
“네! A+등급이 나왔잖아요, 정말 굉장했어요! 같은 나이 또래라고는 믿기지 않을 수준이었어요!”
연소소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칭찬을 쏟아냈다.
이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단적으로 S급 스킬의 보유량만 봐도 그랬다.
‘보통 S급 스킬은 평생 구경조차 못 하는 초인들이 대부분이니까.’
심지어 이는 A급 초인조차 쉽게 구할 수 없는 스킬이었다.
그만큼 희귀한 스킬을 몇 개씩이나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이전 생에서 다들 필사적으로 모아 줬으니까.’
대의라는 단 하나의 목적으로 뭉친 ‘여명(黎明)’.
조직 차원에서 총력을 다한 덕분이었다.
이 사실을 새삼스럽게 떠올려서 그런지.
“연 당주께서도 아시다시피, 저희는 같은 나이 또래 수준으로는 불가능한 목표를 꿈꾸고 있으니까요.”
그림자는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답했다.
다소 무거운 주제라 내뱉고 나서 아차 싶었다.
분위기가 다시금 침울해질까 걱정했으나.
“……그렇죠, 하지만 지금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 생각해요!”
예상과는 다르게 연소소는 침울해지는 대신, 새삼스럽게 의지를 불태웠다.
좋게 받아들여져서 다행이라 생각하는 한편.
“아시다시피, 이번 주 일요일까지 모든 준비를 끝내야 합니다. 각국의 접촉 대상과의 조율은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알 수 있을까요?”
대화를 마무리 짓기 전에 앞서 마지막으로 계획의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연소소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에 임했다.
“큰 틀에서의 합의는 끝났고, 세부 사항 정도만 남았으니 대략 90% 정도라 보면 될 거예요.”
“그 말씀은……?”
“일요일까진 충분히, 완벽하게 끝낼 수 있을 거란 뜻이에요.”
똑 부러진 답변에 그림자는 나직하게 탄성을 흘렸다.
“그렇군요. 역시 연씨세가는 수완이 좋네요.”
“중요한 일이니까요.”
연소소는 눈빛을 빛내며 고개를 크게 한 번 끄덕였다.
그 모습이 썩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감상을 뒤로한 채 그림자는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내일도 모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연 당주.”
* * *
토요일에는 대회 경기는 물론, 별다른 일정도 없었다.
때문에 낮에는.
“혹시 몸이 굳을 수도 있으니까 스텟 단련이나 하자!”
“그게 좋겠다! 일한아, 가자!”
내 친구들, 윤설하와 차은월, 거기에 백유진의 무리까지 포함해서 다 함께 스텟 단련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밤에는.
-현재 동기화율…… [70%]
-현재 동기화율…… [71%]
-현재 동기화율…… [72%]
…
…
…
-현재 동기화율…… [75%]
연소소의 도움으로 동기화율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별일 없이 토요일을 보내고, 일요일.
낮의 일과는 토요일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대신 일요일 밤은 조금 달랐다.
-현재 동기화율…… [75%]
-현재 동기화율…… [76%]
-현재 동기화율…… [77%]
…
…
…
-현재 동기화율…… [80%]
목표했던 동기화율 80%를 달성했고.
-의식에 각인된 [스킬] 효율의 재조절이 완료됐습니다!
-스킬 [초진화(SS)]가 활성화됐습니다!
-신체 및 마나 코어의 성장 효율이 8배 상승합니다!
-신체 및 마나 코어의 수준이 평상시의 8배로 유지됩니다!
-스킬 [초재생(SS)]이 활성화됐습니다!
-모든 종류의 휴식 효과가 64배 상승합니다!
-신체의 치명적인 데미지를 엄청난 속도로 회복하며 절단 및 파손된 신체 부위를 신속하게 수복합니다!
그림자에게 있어 강력한 창이자, 동시에 방패가 되어 줄 스킬.
진화 및 재생 계열의 최상위급 스킬, ‘초진화(SS)’와 ‘초재생(SS)’을 되찾았다.
‘이걸로 완벽하다.’
희소식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 됐어요!”
“그 말씀은…….”
“어젯밤, 모든 접촉 대상과 조율을 끝마쳤어요!”
마침내 연소소가 각국의 유력 단체들과 조율을 끝마친 것이다.
이 소식이야말로 이번 계획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그녀는 섬뜩한 미소를 띤 채 나직하게 덧붙였다.
“이제 적들을 제거하는 일만 남았어요.”
파란을 예고하는 연소소.
그녀의 말에 그림자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