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마치 광활한 하늘을 뒤엎는 그물처럼
“양 팀 준비해 주세요!”
나는 대회 관계자의 지시에 맞춰 가상 게이트 앞에 마주 섰다.
두 사람, 윤설하와 차은월 또한 내 곁에 나란히 섰다.
그렇게 대략적인 준비를 마치고 난 다음 무의식적으로 이번 상대, 백유진의 팀을 바라봤다.
공교롭게도 그들 또한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
세 사람 모두 강렬한 투쟁심을 눈빛에 품고 있었다.
그러한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 말없이 시선을 교환하기를 수 초.
침묵을 깨뜨린 사람은 다름 아닌 대회 관계자였다.
“그럼 지금부터 8강 2경기 시작하겠습니다. 양 팀, 입장해 주세요!”
관계자의 지시를 듣자마자 가상 게이트로 들어섰다.
이질적인 감각이 전신을 휘감고, 시야가 일변했다.
서서히 전신의 감각이 정상으로 돌아왔을 무렵.
나는 이번 경기에서 마주하게 될 몬스터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언데드로군.’
한밤의 공동묘지.
이는 언데드 병사 계열 몬스터가 출현하는 필드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윤설하와 차은월 또한 이 점을 바로 알아차렸는지.
“바로 움직이자!”
“알겠어!”
곧바로 지면을 박차고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나도 코어를 활성화시키며 친구들의 속도에 맞췄다.
처음부터 속도를 낸 덕분일까.
오래지 않아 첫 번째 몬스터 무리와 대면할 수 있었다.
‘다섯 마리, 그렇다면…….’
나는 녀석들의 숫자를 파악한 즉시 코어의 출력을 한층 끌어올렸다.
그러고는 친구들에게 가타부타 말도 없이 흑영신보를 발휘했다.
정확히는 구태여 그들과 의사를 교환할 필요가 없었다.
지난 16강 경기를 통해 페이스를 끌어올리는 전략까지도 합을 맞춰 놓은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화아앗-!
칠흑의 안개가 엄청난 속도로 언데드 병사 무리를 뒤덮었다.
내 접근에 반응하여 녀석들은 제각기 손에 쥔 무구를 휘둘렀다.
하지만.
휘이익-
녀석들의 공세는 그저 실체 없는 안개를 흩어 놓을 뿐.
내게 들어오는 타격은 전무했다.
그야말로 무의미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 상태로 곧장 녀석들의 한복판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크게 발을 굴렀다.
쩌-엉!
진천을 펼친 것이다.
급속도로 뻗어가는 진각의 여파, 감히 항거할 수 없는 힘에 언데드 병사 무리는 주르륵 밀려났다.
녀석들이 일시적으로 무력화됐을 때.
서걱-!
콰앙! 쾅!
그 위로 윤설하와 차은월이 공세를 퍼부었다.
이에 언데드 병사들은 그야말로 낙엽처럼 쓰러져 갔다.
진천의 효과로 인해 마나로 강화된 녀석들의 방어력이 무력화된 까닭이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이미 수없이 접해 왔다.
바로 그 때문이었다.
타닷-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지면을 박차고 달려나간 것은 말이다.
예상대로 두 사람은 오래지 않아 내 뒤를 따라 속도를 끌어올렸다.
그렇게 거침없이 필드를 가로질렀다.
‘이 정도 페이스라면…….’
이번 경기를 통해 최고 기록을 새로이 경신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속으로 기대감을 피워 올리고 있을 때.
고오오오-
마침내 최종 보스 몬스터, 리치의 영역에 이르렀다.
녀석은 우리의 존재를 인식한 바로 그 순간부터 막대한 마나를 피워냈다.
양손으로 순식간에 각기 다른 종류의 마법을 전개하는 리치.
녀석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패턴이었다.
하지만.
타닷-
나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흑영신보를 전개하며 녀석을 향해 짓쳐들었다.
칠흑의 안개가 전신을 휘감는 가운데.
머릿속으로 새로운 전략을 떠올렸다.
‘천라를 써 보자.’
무극삼권 제2초, 천라.
여태 숨겨 둔 비장의 무기라 할 수 있는 천라를 새로이 활용할 계획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진천만으로도 A급 성적은 거뜬하지만.’
지금 노리고자 하는 성적은 A등급이 아니었다.
A등급보다 윗 등급이자 최상위 성적, A+등급을 노려볼 셈이었다.
이를 위해선 보스 레이드를 여태까지 공략했던 것 이상으로 빠르게 잡을 필요가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쩌-엉!
가볍게 진각을 밟았다.
진천의 여파가 엄청난 기세로 리치를 뒤덮었다.
그로 인해 녀석이 전개한 마법이 일순간 마비됐다.
이를 확인한 즉시.
‘지금!’
칠흑의 안개에 몸을 맡긴 채 녀석을 향해 짓쳐들었다.
흑영신보를 펼친 상태에서 곧바로 천라를 발휘했다.
스스스-
흑영신보에서 비롯된 칠흑빛 안개가 요동쳤다.
리치의 정면부터, 측면, 배후, 그리고 사각지대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안개가 응축되어 갔다.
칠흑과도 같은 검은색이 마침내 혼원현천신공에서 비롯된 특유의 백은색 마나로 화했을 때.
“흐읍!”
나는 천라의 투로에 몸을 맡겨 두 주먹을 쉴 새 없이 내질렀다.
콰광-!
마치 광활한 하늘을 뒤엎는 그물처럼 사방에서 권격이 쏟아져 내렸다.
면면부절 이어지는 공세는 무수한 권영이 되어 일대를 뒤엎었다.
무극삼권 제2초, 천라(天羅)였다.
‘끝없는 투로와 그에 따라 무수히 쏟아내는 공세.’
면면부절 이어 가는 연환 초식.
그게 바로 천라의 요체라 할 수 있었다.
흑영신보를 유지한 채 천라를 펼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래야 사각(死角) 없이 대상에게 공세를 퍼부을 수 있을 테니까.’
이러한 활용은 그림자 녀석의 조언 덕분에 알게 됐다.
결과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쩌저저적-!
유성우처럼 쏟아지는 권격에 리치가 전개한 방어 마법 체계는 산산이 부서졌다.
천라는 녀석을 둘러싼 마나 방어력을 가볍게 뚫고 들어가 본체에까지 직접적인 타격을 가했다.
그 결과 녀석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존재 자체가 소멸했다.
스스스……
녀석의 뼛가루만이 덧없이 허공에 흩날리는 가운데.
내 뒤에서 각자의 역할을 위해 준비하고 있던 두 사람, 윤설하와 차은월은 반 박자 늦게 반응했다.
“아, 안일한! 너 그건……!”
“일한이 너, 설마 또 새로운 무공을 익힌 거야?!”
경악 어린 표정으로 나와 리치가 있던 장소를 번갈아 바라보는 두 사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천라는 출국 직전에 익혔으니.’
천라는 한창 국제 대회를 연습할 때가 아닌, 거의 준비를 끝낼 무렵에서야 체득했다.
때문에 친구들에게 선보일 기회 자체가 없었다.
더욱이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활용하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마나 소모가 진천의 곱절, 아니 그 이상이었으니까.’
천라는 모든 일격이 권격의 형태로 발출되는 만큼 위력이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그만큼 마나 소모가 극심했다.
연환 초식, 즉 끊임없이 투로를 이어 나가야 하는 천라의 특성 때문이었다.
‘국제 대회 경기의 난이도에는 비효율적이었지.’
사실 처음에는 천라를 꺼내 들 생각이 없었다.
마음이 바뀐 건 어젯밤, 연소소의 도움으로 습득하게 된 ‘진화’와 ‘재생’ 스킬 덕분이었다.
‘하룻밤 새 체급 자체가 변한 수준이니까.’
덕분에 불가능이 가능으로, 비효율이 효율로 순식간에 변모했다.
그런 상황에서 8강 경기의 상대가 명실상부 강팀에 속하는 백유진 팀이 배정됐다.
천라를 꺼내 들 이유가 또 하나 추가된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삭제에 가까운 수준의 리치 공략 형태로 나타났다.
“……진짜 어이가 없다 못해 가출할 지경이야.”
“역시 일한이는 대단하구나, 새삼스럽지만 같은 팀이라 다행이다…….”
윤설하는 이마를 짚은 채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고, 차은월은 몽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두 사람의 충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3번 게이트 B급 난이도 공략이 완료됐습니다.
허공에서부터 경기의 끝을 알리는 음성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물론, 나 또한 기대를 품은 채 결과를 기다렸다.
머지않아 성적이 발표됐다.
-게이트 공략 결과를 산정합니다.
-클리어 등급 A+. 레이드를 종료합니다.
A+등급.
신기록이자, 최고 기록이었다.
이를 듣는 순간.
“얘, 얘들아!”
“해냈어!”
두 사람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서로를 얼싸안았다.
동시에 둘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나를 바라봤다.
나 또한 기분 좋게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시선에 화답했다.
그렇게 친구들과 함께 신기록에 대한 기쁨을 만끽하는 사이, 가상 게이트가 천천히 소멸해갔다.
마침내 대회장으로 돌아왔을 때.
“경기 끝났습니다. 잠시 이곳에서 대기해 주시길.”
대회 관계자가 정중하게 우리를 맞이해 줬다.
나는 지시에 따르는 한편, 옆쪽을 바라봤다.
백유진 팀이 들어간 게이트는 여전히 활성화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는 그만큼 우리 팀의 레이드 속도가 빨랐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기야, A+등급은 이번 대회에서도 최초일 테니까.’
지금까지 확인해 본 바로는 그랬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만큼, 백유진의 팀이 끝나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대략 5분 정도 지났을 무렵.
“……어?”
가상 게이트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백유진의 팀과 눈이 마주쳤다.
나와 내 친구들을 확인한 순간, 그들의 표정에는 진한 아쉬움이 서렸다.
이를 증명하듯 백유진과 심인욱, 그리고 오윤서는 저마다 한마디씩 입에 담았다.
“역시 역부족이었나.”
“……설마 이 정도로 차이가 날 줄은.”
“이익! 또 졌잖아?!”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 세 사람.
하지만 분통을 터뜨리는 오윤서마저도 기꺼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좋은 승부였다. 그런 의미를 담은 손길이었다.
기꺼이 마주 잡고 악수를 나누는 가운데.
“대체 얼마나 빨리 클리어한 거야?”
“그것도 궁금하군, 성적은 어떻게 나왔지?”
백유진과 심인욱이 윤설하를 향해 질문을 건넸다.
그녀는 문득 내 쪽을 곁눈질하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같은 팀원인 나조차도 놀랄 지경이니까, 나중에 시간 되면 한번 경기 영상을 확인해 봐.”
윤설하의 어처구니없다는 뉘앙스에 두 사람, 백유진과 심인욱의 시선이 자연스레 내 쪽을 향했다.
그들을 향해 무어라 반응하려는 찰나, 관계자가 말문을 열었다.
“한국 A팀의 승리입니다. 4강 진출을 축하드립니다.”
이번 경기의 결과를 확정 짓는 말에 백유진을 비롯한 세 사람은 한 발짝 물러섰다.
그러고는 진심 어린 표정으로 우리에게 박수를 보냈다.
“4강 진출 축하한다.”
그렇게 한국 팀 내전의 승리는 우리가 차지하게 됐다.
…
…
…
잠시 후.
대기실로 돌아오자 인솔 교관이 옅은 미소로 우리를 맞이해 줬다.
“안일한 생도, 윤설하 생도, 그리고 차은월 생도. 승리를 축하한다. 물론 백유진 생도, 심인욱 생도, 오윤서 생도도 고생 많았다.”
승자에겐 축하를, 패자에겐 격려를 보내는 것이다.
이후 교관은 대기실을 벗어나며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겼다.
“남은 일정을 확인하고 올 테니, 편하게 쉬고 있도록.”
그렇게 우리만 남게 되니 분위기는 한결 가벼워졌다.
금방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게 된 가운데.
자연스럽게 이후 일정에 관한 화제가 흘러나왔다.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일정은 시상식하고, 대회 종료 후에 있을 만찬 행사 정도인가? 이제 귀국할 때까진 심심하겠네.”
백유진의 말대로 탈락한 팀은 더 이상 경기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탈락 팀이 먼저 귀국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국제적인 행사인 만큼, 경기 이후에도 몇 가지 일정이 추가로 존재하는 까닭이었다.
‘대회 이후의 일정이라…….’
백유진의 흘러가는 말에 자연히 생각이 깊어졌다.
내겐 친구들과는 다른, 특별한 일정이 있는 탓이었다.
‘결승전이 끝나고 난 다음이라고 했지?’
결승전이 끝난 직후.
그때부터 비로소 두 번째 계획의 막이 오를 터였다.
날짜를 곱씹는 한편, 재차 마음을 다잡았다.
* * *
저녁의 일과는 어제와 동일하게 흘러갔다.
대충 저녁을 먹고, 빠르게 그림자 녀석에게 주도권을 넘겼다.
이후 연소소가 찾아왔고, 동기화율을 끌어올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 결과.
-현재 동기화율…… [65%]
65%를 달성했다.
다만 그뿐으로,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지금까지의 추이로 미뤄봤을 때, 새로운 능력은 70%를 달성해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늦은 밤을 보내고 국제 대회 4일 차를 맞이한 가운데.
“양 팀 준비해 주세요!”
나는 친구들과 함께 4강의 상대와 마주 섰다.
그 상대는.
“……!”
8강 때와는 다른 의미로 내 예상을 벗어나는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