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그건 상당히 기대되는데
시야를 가득 메운 메시지 세례.
최상단에 적혀 있는 내용은 다름이 아니었다.
-동기화율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의식에 각인된 [스킬] 효율의 재조정이 시작됩니다!
동기화율 60% 달성에 따른 ‘의식 각인 스킬’ 효율의 재조정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 결과.
-의식에 각인된 [스킬] 효율의 재조절이 완료됐습니다!
-스킬 [초진화(SS)]가 [급속 진화(S)]로 변경됩니다!
-신체 및 마나 코어의 성장 효율이 4배 상승합니다!
-신체 및 마나 코어의 수준이 평상시의 4배로 유지됩니다!
-스킬 [초재생(SS)]이 [급속 재생(S)]으로 변경됩니다!
-모든 종류의 휴식 효과가 32배 상승합니다!
-신체의 치명적인 데미지를 빠르게 회복하며 절단 및 파손된 신체 부위를 빠르게 수복합니다!
진화 및 재생 스킬이 S급으로 상승했다.
이로써 체급과 성장 효율이 한 차원 진화한 셈이었다.
더하여 이제는 ‘혼의 각성’ 없이도 엄청난 수준의 재생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변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식된 스킬 [초성장(B)]이 [진화(A)]로 변경됩니다!
-이식된 스킬 [초회복(B)]이 [재생(A)]으로 변경됩니다!
안일한에게 이식된 스킬.
성장과 회복 계열의 최고 등급 스킬이 마침내 한 차원 넘어 ‘진화’와 ‘재생’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 정도면…….’
A급 스킬, ‘진화’를 바탕으로 현재 스텟 이상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건 물론.
만에 하나 안일한에게 최악의 상황이 닥쳐도 A급 스킬, ‘재생’을 통해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을 터였다.
즉, 녀석의 안위를 지킬 최소한의 방비가 마련된 셈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림자는 생각을 정리하는 한편.
“……흐윽, 하아!”
눈앞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연소소를 바라봤다.
인위적인 동기화율 상승으로 인해 그림자에게 끔찍한 두통이 밀려왔듯, 그녀 또한 타격을 받은 것이다.
‘좀처럼 견디기 힘든 작업이긴 하지.’
계승에 따른 반동.
이는 이전 생에서의 연 가주 또한 버겁게 느낄 정도로 고된 작업이었다.
하물며 눈앞의 연소소는 아직 어린 데다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정신력이 높은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군.’
옛 생각이 어김없이 뇌리를 스쳐 갔다.
하지만 그림자는 고개를 한차례 털어내며 상념을 잠시 미뤄 뒀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닌 탓이었다.
“연 당주, 괜찮습니까?”
그림자는 나직하게 물으며 연소소의 안색을 살폈다.
그녀는 파리한 안색으로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한눈에 봐도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괘, 괜찮아요. 처음이라 당황한 것 같아요.”
“너무 무리하실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연소소는 말끝을 흐리며 그림자를 올려다봤다.
그녀의 투명한 눈동자 속에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넘실거렸다.
아무래도 조급함의 발로인 듯했다.
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이번 계획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니까.’
이전 생에서 연씨세가가 낙일의 대척점에 선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계승으로 인해 가장 먼저 표적이 됐고, 또한 엄청난 피해를 받았으니까.’
낙일은 ‘계승’을 탐냈고, 특유의 은밀한 활동으로 연씨세가를 좀먹어갔다.
그 결과가 바로 가문의 몰락, 그리고 선대 연 가주의 죽음이었다.
이러한 기억은 계승을 통해 연소소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러니 그녀의 입장에선 충분히 조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그 때문이었다.
“연 당주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조급함은 오히려 독이 될 뿐입니다.”
차분한 어조로 그녀를 달래준 건 말이다.
연소소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역시 그렇겠죠?”
“네. 앞으로 기회는 충분합니다. 그러니 지금은 컨디션 관리에 주력하는 편이 곧 있을 전면전에 훨씬 도움이 될 겁니다.”
“전면전…….”
연소소는 그의 말을 곱씹으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단번에 알아차린 까닭이었다.
“서문세가를 필두로 한 낙일과의 전초전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정확합니다.”
그림자의 대답에 연소소의 두 눈이 분노로 일렁였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계승을 노리고 연씨세가를 파고들 틈으로 낙일이 선택한 집단이 바로 서문세가였으니까.’
배후에 낙일이 존재한다지만, 직접 손을 쓴 건 서문세가였다.
즉, 서문세가야말로 연씨세가를 파멸로 밀어 넣은 원흉인 것이다.
미래를 알게 된 연소소에게 있어 서문세가는 주적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됐다.
그러니 복수심을 불태우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게다가 지금 연 당주는 서문세가의 직계와 정략혼인 관계일 테니.’
이 점 또한 그녀의 조급함에 한몫 더했으리라.
하지만.
“……군자의 복수는 10년을 참아도 늦지 않는다지요. 알겠어요. 기꺼이 참고 기다릴게요.”
놀랍게도 연소소는 분노를 다스리며 그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그녀의 투명한 눈빛으로부터 굳은 결의가 느껴졌다.
이에 그림자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나머지 일정에 관해 이야기 나눠 보도록 하죠. 괜찮겠습니까?”
“네, 부디.”
“연 당주께서도 아시다시피 결행은 국제 대회 결승전 이후가 될 겁니다.”
“결승전이 다음 주니까, 대략 일주일 정도 남았군요.”
그녀의 말마따나 국제 대회는 이번 주에 4강까지 치르고 다음 주가 결승전이었다.
그리고 결승전을 치른 직후, 모든 계획을 실행에 옮길 생각이었다.
즉, 이는 다시 말해서 남은 일주일간 모든 준비를 끝마쳐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림자는 이 점을 고려하여 말을 이어 갔다.
“힘드시겠지만 앞으로 매일 밤, 오늘처럼 작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동기화율 말씀이시군요…….”
연소소의 표정이 일순간 어두워졌다.
추측건대 동기화율 상승 작업에 따른 반동을 저도 모르게 떠올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을 다잡듯 고개를 한차례 털어내며 씩씩하게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할게요!”
“노고에 감사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그림자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연소소 또한 마주 인사하며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 했으나 현기증을 느꼈는지 도중에 휘청거렸다.
관자놀이를 짚은 채 주저앉는 그녀를 향해 수행원 중 한 명이 빠르게 다가와 손을 건넸다.
“아가씨, 제 손을.”
“……고마워요.”
연소소는 수행원에게 부축을 받아 겨우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림자는 그녀에게 재차 감사를 표하며 문 앞까지 배웅했다.
그대로 떠나기 직전에 연소소는 문득 고개를 돌렸다.
“뭔가 더 하실 말씀이라도?”
“……네, 별거 아닐 수도 있는데.”
연소소는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
“서문건, 그가 당신의 존재를 알고 있어요.”
“제 존재를 알고 있다는 말씀은…….”
“정체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단지 현재 저는 그와 약혼 관계에 있어서요. 아마 그것 때문인 듯해요.”
연소소는 생각만으로 화가 치밀었는지, 씹어뱉는 듯한 말투로 설명해 줬다.
반면 그림자는 담담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주의하죠.”
“네, 그럼 내일 봬요.”
인사를 마지막으로 연소소는 떠나갔다.
그림자는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곧바로 안일한을 호출했다.
‘들었겠지만, 결행은 결승전 직후다.’
-결승전 직후라…….
‘그때까지 동기화율은 순차적으로 상승하게 될 거다.’
-그 말은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능력을 얻게 된다는 거야?
‘바로 그렇다.’
-그건 상당히 기대되는데.
의식 너머로 안일한의 만족스러워하는 감정이 전해져 왔다.
이에 그림자는 옅은 미소와 함께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래, 기대해도 좋을 거다.”
* * *
다음날.
국제 대회 2일 차를 맞이한 가운데, 16강이 펼쳐졌다.
예선전 때와 다르게 이번에는 우리보다 백유진의 팀이 앞서 경기를 치르게 됐다.
이들의 상대는 유럽 쪽 팀이었다.
결과는.
“아직까진 할 만하네!”
백유진 팀의 압승이었다.
물론 상대 팀의 역량이 유럽 쪽에서도 살짝 처진다는 평가가 있긴 했다.
이를 고려해도 백유진 팀의 활약은 눈부신 수준이었다.
‘실제로 성적도 A등급이 나왔으니까.’
그들 또한 우리 팀과 마찬가지로 이미 선배들의 수준을 뛰어넘은 것이다.
덕분에 백유진의 팀도 어느 정도 경계해야 할 필요성이 있겠다는 생각을 떠올릴 무렵.
“경기 준비됐습니다. 이쪽으로.”
우리 팀의 차례가 됐다.
“8강에서 기다릴 테니, 잘하고 와!”
백유진 팀의 배웅을 받으며 관계자의 뒤를 따랐다.
우리 팀의 상대는 북미 쪽 팀이었다.
북미에서 참가한 팀들 중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팀이라 그런지.
“이번에는 긴장을 늦추면 안 될 것 같은데?”
“조금 더 집중해 볼게!”
윤설하와 차은월은 살짝 긴장한 기색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반면 나는 조금 달랐다.
‘진화와 재생, 이거라면 한층 출력을 끌어올려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젯밤 동기화율 상승에 따른 변화를 시험해 볼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그래서인지, 은연중에 자신감이 흘러나온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건 내 친구들에게도 고스란히 영향을 줬다.
“그래도 뭐, 질 것 같진 않은데?”
“나도 이상하게 그런 느낌이야!”
덕분에 다 같이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경기에 임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한국 팀의 승리입니다. 8강 진출을 축하드립니다.”
가뿐하게 승리를 쟁취하고 8강 진출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
소득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전처럼 성적 자체는 A등급이지만, 분명 공략 시간은 단축됐어.’
이번 경기에선 진화와 재생, 특히 진화를 믿고 페이스를 살짝 끌어올려 봤다.
덕분에 제법 유의미한 수준으로 공략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한 가지 더 고무적인 사실은 그렇게 페이스를 올렸음에도 여력이 충분하다는 점이었다.
‘이거라면 지금보다 더 높은 점수도 가능할지도.’
그렇게 새로운 가능성과 함께 2일 차, 16강을 마무리 지었다.
밤에는 어김없이 연소소가 찾아왔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동기화율을 상승시키기 위함이었다.
그 결과, 5%가 더 올라 65%를 달성했다.
다만 그에 따른 변화는 딱히 없었다.
‘이제는 10% 단위로 나타나나 보네.’
그렇게 그림자와 의식을 공유하는 상태로 밤을 보내고, 3일 차를 맞이했다.
‘오늘도 별일 없겠지?’
그림자 녀석의 계획은 결승전 직후, 즉 다음 주였다.
게다가 동기화율 상승에 따라 전력도 확연히 상승한 만큼 대회도 별문제 없었다.
때문에 오늘도 무탈하게 흘러갈 거란 생각으로 경기장에 도착했다.
이러한 예상은 정확히 경기 일정을 확인하는 순간까지만 이어졌다.
“……잠깐만, 이거.”
대진표를 재차 확인하며 멍하니 중얼거리는 윤설하.
그녀뿐만 아니라 나와 차은월, 심지어 백유진 팀 또한 완전히 동일한 반응을 보였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벌써 너희랑 붙는다고? 이건 좀 곤란한데…….”
8강의 상대로 백유진의 팀이 배정된 것이다.
즉, 이번 경기는 한국 팀의 내전이라 할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침묵이 내려앉은 가운데.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다름 아닌 인솔 교관이었다.
“생도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본 교관도 상당히 당황스러우니까.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경기에 임해라. 그래야 서로 간에 후회가 남지 않을 테니.”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우리 모두에게 격려의 말을 건네왔다.
덕분에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진 가운데.
“그래, 어차피 결국은 맞붙게 됐을 거야. 단지 시기가 예상보다 앞당겨졌을 뿐이지.”
가장 먼저 백유진이 의욕을 되찾았다.
그의 뒤를 이어 심인욱과 오윤서는 도리어 이번 경기에 투지를 불태웠다.
“유진의 말이 맞다. 우리에게는 설욕전이 되겠군.”
“흥! 이번에야말로 각오해, 차은월!”
금세 평소의 모습을 되찾은 두 사람 덕분일까.
다소 침울해져 있던 윤설하와 차은월도 어느 정도 기운을 차렸다.
“네 말이 맞아 백유진. 게다가 상대가 너희라면 지금 이러고 있을 순 없겠지, 응.”
“……상대가 너희들이라 해도 지지 않을 거야.”
그렇게 서로를 향해 투지를 불태우는 가운데.
백유진이 내 쪽으로 다가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도 좋은 승부 펼쳐 보자, 안일한!”
그의 모습에 나 또한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은 온전히 경기에 집중하는 게 맞겠지.’
때문에 머릿속에서 그림자의 계획이니, 동기화율이니 하는 문제들은 잠시 미뤄뒀다.
그리고 백유진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