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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148화 (148/218)

148화 제한도 여기까지다

대회장을 빠져나온 서문건은 그 길로 곧장 선수 대기실을 향했다.

다만 그가 향한 곳은 소속 팀의 대기실이 아니라 다른 팀의 대기실이었다.

정확히는.

“소소, 나와 이야기 좀 해.”

연소소의 팀이 머무르는 곳이었다.

서문건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연소소는 물론.

함께 있던 두 명의 청년까지 고개를 돌렸다.

“…….”

연소소는 투명한 눈빛으로 서문건을 응시했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미미한 적의가 일렁이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서문건의 낯빛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미묘해진 가운데.

“……저기, 건아 우린 잠시 나가 있을까?”

“그, 그래! 둘이 편하게 이야기 나눌래?”

연소소와 같은 팀에 속한 두 청년은 서문건의 눈치를 보며 넌지시 물었다.

분위기도 분위기였지만, 두 청년은 연소소와 서문건의 관계를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괜한 걸 물어봤나? 당연한 걸 텐데.”

“마, 맞아. 약혼자를 만나러 온 건데, 당연히 우리가 배려해 줘야지.”

혼약 관계.

정확히는 가문 대 가문, 연씨세가와 서문세가 차원에서 정략혼을 추진하는 중이었다.

즉, 연소소는 서문건의 약혼자였다.

이를 명분으로 삼아 두 청년은 슬금슬금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결국 대기실에는 두 사람, 연소소와 서문건만이 남게 됐다.

“…….”

“…….”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기를 수 초.

그중 먼저 시선을 피한 사람은 다름 아닌 연소소였다.

“……저는 할 말 없어요.”

명백한 거절.

그녀의 반응에 서문건은 또다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연소소와는 여태 제법 오랜 기간 알고 지냈지만, 지금처럼 분명하게 감정을 드러낸 적은 처음인 까닭이었다.

서문건은 빠득 이를 갈며 생각했다.

‘정략혼이 성사됐을 때조차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주제에……!’

연소소, 그녀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인형이라 할 수 있었다.

외견의 아름다움도 그랬지만, 그보다는 마치 인형처럼 무감정에 가까운 성향 때문이었다.

새삼스럽게 이 사실을 떠올리자 서문건은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중에 해요. 지금은 대회를 준비해야 하니까.”

연소소는 싸늘함이 묻어나는 말투로 축객령을 내렸다.

그녀의 발언은 그야말로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서문건은 가슴 속에 분노가 들끓는 한편, 불현듯 그의 뇌리로 한 사람의 존재가 스쳐 갔다.

그로 인해 한층 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가운데.

“안 나가시면 제가 나갈게요, 그럼.”

연소소는 이번에도 역시 서문건의 상태를 조금도 개의치 않고 지나쳐갔다.

그 순간.

덥석-

서문건이 연소소의 팔뚝을 붙잡았다.

이에 그녀는 고통에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

그녀의 말이 채 끝내기도 전에 서문건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안일한, 그 녀석 때문인가?!”

“……!”

이름을 듣는 순간 연소소는 멈칫했다.

하나 이는 찰나에 불과했다.

그녀가 무어라 반문하려는 찰나, 대기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모습을 드러낸 건 조금 전 자리를 피한 청년 둘과 대회 관계자였다.

가장 먼저 두 명의 청년이 서문건에게 변명하듯 이유를 밝혀왔다.

“다름이 아니라 이제 우리 차례라서…….”

“미, 미안!”

둘에 이어서 대회 관계자 또한 서문건에게 정중한 태도로 양해를 구했다.

“10분 후에 이쪽 팀의 경기가 진행될 예정이라, 양해 부탁드립니다.”

관계자의 설명에 연소소는 서문건을 힐끔 바라봤다.

이는 마치 ‘들었죠?’라고 말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서문건은 하는 수 없이 그녀의 팔뚝을 놔주며 한걸음 물러섰다.

연소소는 제 팔뚝을 어루만지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는 두 청년을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

“……두 분, 가시죠.”

그렇게 연소소는 서둘러 대기실을 벗어났다.

두 청년과 관계자 또한 쭈뼛쭈뼛 그녀를 뒤따랐다.

결국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된 서문건은 이를 꽉 깨물며 연소소가 떠나간 자리를 노려봤다.

‘출신조차 불분명한 놈에게 넘겨줄까 보냐……!’

서문건에게 있어 연소소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존재였다.

이는 개인적으로도 그랬지만, 특히 가문 차원에선 더더욱 중요한 일이었다.

가문 차원에서도 그랬고, 개인적으로도 그랬다.

연씨세가에는 신흥 세력에 해당하는 서문세가에 없는 특출난 장점을 가진 까닭이었다.

통칭 ‘구 가문’에 속하는 연씨세가는 오랜 역사와 그에 따른 굳건한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신흥 세력은 공통적으로 기반이 약하다는 단점이 존재했다.

즉, 연씨세가와의 정략혼은 서문세가의 약점을 채워 줄 절호의 기회나 다름없는 것이다.

‘게다가 계승, 그것만 있으면 다른 구 가문보다 우위에 설 수 있다.’

연씨세가의 직계에게 전해지는 특수한 능력이자 미구현 특성, ‘계승’.

연소소의 가문이 달리 역사의 산증인이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계승 덕분이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축적한 지식과 사고 등.

연씨세가의 직계는 선대로부터 그 모든 것을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연소소만 손에 넣는다면…….’

즉, 그녀를 가진다는 건 연씨세가의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가문 차원에서 연소소와의 혼인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실제로 서문건 또한 가문의 방침에 100% 동의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연소소만이 내 반려로서 적합하니까.’

배경뿐만 아니라 수려한 외모나 자연스레 풍기는 기품까지.

연소소는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었다.

그렇기에 서문건은 반드시 그녀를 쟁취할 생각이었다.

‘방해하는 자는 그 누가 됐든 모조리 처리하면 그만.’

서문건은 강하게 다짐하며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유유히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 * *

그날 밤.

-대상의 무의식 상태를 확인.

-대상의 주도권이 [????의 그림자]에게로 넘어갑니다!

-대상과의 동기화율을 확인.

-현재 동기화율…… [55%]

-[????의 그림자]가 연륜에 따른 분별력과 미래시(未來視)의 일부가 담긴 기억, 그리고 의식에 따라 행동합니다!

-의식에 각인된 [스킬]이 활성화됐습니다!

그림자는 평소보다 제법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오늘 밤에 예정된 연소소와의 약속을 안일한이 배려해 준 덕분이었다.

가만히 생각을 정리하며 기다리기를 2시간.

똑똑-

지난밤과 비슷한 시각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방문을 열자 연소소와 두 명의 수행원이 차례대로 인사를 건네왔다.

그림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여 화답하는 한편.

“들어오시죠.”

그녀와 수행원들을 방으로 들였다.

이전처럼 연소소와 마주 앉은 가운데.

그녀는 전에 비해 한결 차분해진 모습으로 곧장 본론을 꺼내 들었다.

“어떤 것부터 할까요?”

“우선 조율부터 하죠. 진척은 있었습니까?”

그림자의 물음에 연소소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

“우선 가문에서 협력을 요청할 단체의 명단과 필요한 정보, 그리고 접근 방식 등을 정리하고 있어요.”

엄밀히 말하자면 아직 준비 단계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림자는 곧장 납득했다.

연씨세가는 물론이고, 지금부터 접촉해야 할 대상들은 하나같이 몸집이 컸다.

또한 자국 내 영향력도 엄청난 만큼,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빠르게 퍼져 나갈 터였다.

그러니 철두철미한 준비를 바탕으로 신속하게 움직여야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 부분은 믿고 맡기겠습니다.”

“네. 그리고 지난번에 말씀하신 정보를 흘리는 부분,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좋을까요?”

그녀의 물음에 그림자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미리 생각해둔 만큼 침묵은 그리 길지 않았다.

“예언자가 출현했다는 거로 하죠.”

“예언자요?”

“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연씨세가 측에서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능력자를 확보했고, 가문의 유산을 더하여 완전무결한 존재를 만들 거다……. 이런 식이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과거와 미래를 완벽하게 꿰뚫는 예언자.

이는 곧 그림자이자 안일한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과장이 들어간 건 사실이었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딱히 틀리지 않는 표현이었다.

그리고 이 정보가 낙일의 수뇌에 들어간다면.

‘반드시 움직이겠지. 그것도 직접.’

그림자는 이 점을 확신했다.

근거는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낙일의 수뇌가 보인 행적이었다.

실제로 이전 생에서 낙일의 수뇌는 두 사람, 연소소와 오윤진을 집요하게 추적했다.

과거에 해당하는 ‘계승’과 미래에 해당하는 ‘재앙 예보’를 손에 넣기 위함이었다.

‘그런 작자들이 과거와 미래, 두 가지 요소를 온전히 손에 넣은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면.’

결코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이는 단순히 소문으로 끝나지 않을 테니 더더욱 그랬다.

“……정보를 퍼뜨리는 시기를 잘 조율하면, 예언자를 지키기 위해 신흥 가문과 마찰을 빚는다는 그림도 가능하겠네요.”

“바로 그렇습니다.”

연소소가 추론한 대로였다.

본래 목적은 신흥 세력에 숨어든 낙일의 간부를 제거하는 것이다.

발각된다면 낙일의 수뇌는 한층 더 깊이 숨어들어 후일을 기약할 터.

하지만 예언자라는 미끼와 더불어 이를 확보하기 위한 세력 간의 알력 다툼으로 위장한다면?

본래 목적도 숨길 수 있을뿐더러, 낙일의 수뇌까지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이건 묘수네요…….”

연소소는 나직하게 탄성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투명한 눈빛에는 그림자를 향한 감탄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그림자는 별다른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

감탄의 대상이 잘못된 까닭이었다.

‘애초에 나는 단지 기억하고, 전달할 뿐이니까.’

지금 논의하는 계획은 여명의 수뇌부가 다 함께 머리를 싸맨 결과였다. 그러니 받을 수 없었다.

그림자는 구태여 그리 생각하며 넘어갔다.

“앞으로도 진척 상황의 공유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럼 다음은 동기화율……, 맞나요?”

연소소는 머뭇머뭇 물어왔다.

아마도 ‘동기화율’이란 단어가 익숙지 않아 그런 모양이었다.

충분히 그럴 만했다.

‘본래 계승은 동기화율과는 상관없이 작동하니까.’

연씨세가에 전해지는 계승은 본래 동기화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능력이었다.

그럼에도 그림자가 동기화율에 따라 점진적으로 능력을 되찾는 식으로 작동하는 이유는 ‘부하’ 때문이었다.

‘과거와 미래의 방대한 기억, 거기에 상식을 뛰어넘는 효과를 지닌 스킬들까지.’

이 모든 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코 버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동기화율은 일종의 제약이었다.

하지만.

‘제한도 여기까지다.’

이제는 다르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그림자는 생각을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방법은 알고 계시죠?”

“그림자 님에게 받은 기억에 들어있네요. 잠시만요.”

연소소는 관자놀이를 짚은 채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기를 수 초.

마침내 떠올렸는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그림자는 무심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실례하겠습니다.”

“……아니에요.”

대답을 듣고는 곧장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그 순간.

“……!”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기운이 연소소의 손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동시에 눈앞에 반투명한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현재 동기화율…… [55%]

-현재 동기화율…… [56%]

-현재 동기화율…… [57%]

다름 아닌 동기화율이었다.

본래 55%에 머물러 있던 동기화율은 1%씩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서히 올라가더니.

-현재 동기화율…… [60%]

60%에서 멈춰 섰다.

이를 인식한 순간, 끔찍한 두통이 일었다.

“……크윽.”

참지 못해 신음이 저절로 새어 나오는 가운데.

그림자는 힘겹게 눈을 뜬 채 시야를 가득 메운 메시지 세례를 훑어내렸다.

그곳에는 그림자가 바라 마지않던 내용이 한가득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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