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최강의 무기가 되어 줄 거다
연소소와의 대화부터, 그림자의 충격적인 설명까지.
하룻밤 새 이런저런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일어날 땐 개운했다.
‘그림자 녀석의 회복 스킬 덕분이겠지?’
추측건대 성장 스킬만큼이나 사기적인 회복 스킬 덕분인 듯했다.
오늘부터 국제 대회 예선전이 진행되는 만큼, 이점은 내게 큰 도움이 됐다.
덕분에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호텔 로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1등이네.’
비교적 여유롭게 나와서 그런지, 로비에는 인솔 교관과 나뿐이었다.
다행히 어색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친구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 까닭이었다.
“왔어?”
간단하게 인사를 건네며 친구들을 맞이하는 가운데.
두 사람, 나와 같은 팀인 윤설하와 차은월은 내게 인사 대신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질문해 왔다.
“안일한, 푹 쉬었어?”
“몸은 좀 어때? 할 수 있겠어?”
아무래도 어젯밤, 먼저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둘러댄 핑계를 아직까지 신경 쓰는 모양이었다.
그녀들의 마음 씀씀이에 새삼스럽게 고마운 감정이 들었다.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완전히 괜찮아졌어. 걱정해 줘서 고마워.”
내 대답에 두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마우면 잘해!”
“정말 다행이야, 일한아!”
배시시 웃으며 한마디씩 건네는 두 사람.
둘의 반응에 괜히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국제 대회에 좀 더 열심히 임하는 거로 보답해야지.’
그런 식으로 합리화를 하는 사이.
인솔 교관이 나와 내 친구들을 한차례 훑었다.
그러고는 변함없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다 모였으면 지금 출발한다. 다들 따라오도록.”
교관은 제 할 말을 마치고는 곧장 몸을 돌려 호텔 바깥으로 향해 갔다.
나는 친구들과 한차례 시선을 교환하고는 나직하게 말했다.
“가자.”
그렇게 우리는 교관을 뒤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 *
국제 대회 경기는 상하이의 외곽에 위치한 국제 초인 스타디움에서 진행됐다.
숙소로 제공되는 호텔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해 있는 덕분에 이동 간에 피로는 덜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경기장의 정경에 자연스럽게 입이 벌어졌다.
‘호텔도 그렇지만 경기장 규모도 어마어마하네.’
한국에 있는 아카데미의 정진관도 엄청났지만, 눈앞의 경기장은 그 이상이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대개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경기장 곳곳을 둘러보고 있을 때, 앞쪽에서 무심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부터 대기실로 이동할 거다. 거기서 차례를 기다릴 것이며, 호텔로의 복귀는 모든 경기가 끝난 이후다. 경기 일정은 가서 설명하지. 다들 따라와라.”
다름 아닌 인솔 교관의 목소리였다.
그는 내부가 복잡하니 잘 따라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곧장 경기장 입구로 들어섰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얌전히 그의 뒤를 따랐다.
…
…
…
국제 대회 참가자 및 관계자를 위해 마련된 대기실은 썩 편안했다.
게다가 내부에 모든 경기를 지켜볼 수 있는 홀로그램 화면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덕분에 대기하는 데 전혀 지루하지 않은 건 물론, 경기를 치르기 전에 유용한 정보들을 접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저기, 얘들아. 여기 레이드에 나오는 몬스터, 아카데미 때보다 움직임이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아?”
“확실히 좀 더 현실적인 것 같기도 한데, 직접 대면해 봐야 알 것 같은데?”
아카데미에서의 가상 레이드와 국제 대회 가상 레이드의 차이점이라든지.
“북미나 유럽 쪽도 일부 팀은 상당히 강하네.”
“잠깐, 얘들아. 저쪽에 중국 팀인 것 같은데?”
잠재적 경쟁 상대, 특히 중국 팀의 전력을 가늠해 본다든지.
가만히 지켜보는 나와는 달리 친구들은 활발하게 대화를 나눠가며 경기 관람에 여념이 없었다.
그 속에서 나는 중국 팀의 경기 쪽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생각에 잠겼다.
전력 분석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연소소, 저 사람은 마법사 쪽이었구나.’
어젯밤 찾아온 연소소.
때마침 그녀가 경기 중인 까닭이었다.
홀로그램 화면 너머에서 무표정하게 레이드에 임하는 연소소.
그녀의 모습을 보니 자연스럽게 어젯밤의 대화가 떠올랐다.
-……알겠어요. 믿을게요.
-저는 무엇을 하면 되죠?
연소소는 대화의 말미에 결심을 굳힌 듯, 의지가 서린 눈빛으로 그림자에게 물었다.
거기에 녀석은 짤막하게 대꾸했다.
-동기화율을 올릴 겁니다. 그 일이 급선무입니다.
동기화율을 끌어올리는 것.
중국에 오기 전에 예고했던 바를 곧바로 입에 담은 것이다.
심지어.
-내일 밤부터 진행했으면 좋겠습니다. 계획의 구체적인 조율은 동시에 진행하도록 하죠.
내일 밤, 즉 오늘 저녁부터 진행하자는 요청까지 덧붙였다.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의 추진력이 아닐 수 없었다.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었음에도 연소소는 별다른 내색 없이 곧바로 수긍했다.
-알겠어요.
그걸로 그녀와의 대화는 끝이었다.
그림자도, 연소소도 일말의 의문조차 없어 보였으나, 나는 달랐다.
내겐 여전히 동기화율을 끌어올리는 작업에 관한 의문이 남아 있는 것이다.
특히 녀석이 나중에 내게 설명해 준 이유로 인해 의문은 더더욱 증폭됐다.
-모든 계획의 핵심은 우리의 안위를 지키는 거다. 그리고 동기화율 상승은 이를 위한 최강의 무기가 되어 줄 거다.
내 안위를 지켜 주는 최강의 무기.
이는 곧 동기화율 상승에 따라 나타나는 새로운 능력이 그만큼 엄청나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걱정보단 기대가 됐다.
‘과연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또 어떤 능력을 갖추게 될지.’
그렇게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 사이.
“윤설하, 차은월, 안일한. 준비해라. 너희 차례다.”
어느새 우리 팀의 차례가 다가왔다.
나는 교관의 지시에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친구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나는 동기화율에 관한 생각을 잠시 미뤄 둔 채 친구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준비됐지?”
나직하게 묻자 두 사람은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대기실을 벗어나기 전에 남은 친구들.
백유진의 무리를 향해 말했다.
“먼저 갔다 올게.”
“잘하고 와!”
그들의 격려를 뒤로한 채 관계자의 뒤를 따라 대기실을 벗어났다.
오래지 않아 경기장에 도착했고, 첫 번째 상대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남미 쪽 팀인가.’
상대 팀에 관한 데이터는 없었지만 딱히 걱정은 되지 않았다.
중국 팀을 제외하곤 선배들로부터 별다른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상대 팀을 신경 쓰는 대신, 나는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공략에 관한 합을 의논했다.
“일단 하던 대로 해 보자. 나머지는 겪어 본 다음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하는 거로.”
이는 조금 전, 대기실에서 다른 팀의 공략을 관람하며 느꼈던 바를 고려한 제안이었다.
‘확실히 아카데미에서의 가상 게이트와는 느낌이 조금 달랐으니까.’
두 사람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곧장 수긍했다.
그렇게 최종 조율을 마치고 난 다음.
“두 팀, 입장해 주세요.”
관계자의 지시에 가상 게이트로 발을 내디뎠다.
익숙한 감각과 함께 시야가 일변했다.
그리고 펼쳐진 광경을 보는 순간, 이번 공략에서 상대하게 될 몬스터의 정체를 깨달았다.
‘첫 번째 공략은 오우거네.’
B급 몬스터, 오우거였다.
여태 지겹도록 연습해서 그런지, 나뿐만 아니라 친구들 또한 이 사실을 바로 알아차렸다.
동시에 오우거를 상대하기에 적합한 대형을 갖췄다.
“가자.”
곧바로 지면을 박차고 나아가는 가운데.
나는 속으로 우선순위를 정리했다.
‘우선 아카데미의 가상 게이트와 실제로 차이가 나는지부터 확인해 보자.’
슬슬 생각을 정리할 무렵, 첫 번째 몬스터와 대면했다.
녀석 또한 우리를 발견하고 포효를 내질렀으나,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화아앗-
그대로 흑영신보를 펼치는 한편.
혼원현천신공을 끌어올려 양손에 백은색의 마나를 휘감았다.
전력을 파악하는 게 급선무인 만큼 진천은 잠시 아껴 둘 생각이었다.
그 상태로 녀석과 맞닥뜨렸을 때.
그워어어-!
오우거가 무쇠 같은 주먹을 휘둘렀다.
나 또한 지지 않고 복마구권에 따른 일권을 내질렀다.
쩌엉-!
굉음과 함께 두 주먹이 충돌한 가운데.
거기서 비롯된 충격량을 통해 녀석의 위력을 가늠했다.
‘위력은 달라지지 않았다.’
몬스터의 위력은 아카데미와 동일한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녀석의 대응 방식과 행동 패턴을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그 부분도 머지않아 확인할 수 있었다.
‘확실히 아카데미 때보단 좀 더 자연스러워졌네.’
하지만 단지 그뿐으로 녀석의 위력이나, 맷집, 체력은 체감상 그대로였다.
즉, 국제 대회에 맞춰 전략을 수정할 필요 없이 하던 대로 임해도 크게 문제없을 듯했다.
나는 판단 즉시 친구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그들은 무어라 대답하는 대신.
끄덕-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의사가 전달됐다.
나는 거기에 맞춰 순식간에 템포를 끌어올렸다.
그 시작으로써.
쿠웅-!
크게 한 발짝, 진각을 밟았다.
우리 팀 전략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진천을 발휘한 것이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콰앙! 쾅!
여태 마나로 인해 강화된 녀석의 방어력을 뚫지 못했던 친구들의 공세가 전부 유효타로 들어간 것이다.
구어어억!
고통에 찬 괴성을 내지르는 오우거.
녀석의 모습을 주시하며 생각했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레이드에 임할 차례였다.
새삼스럽게 마음을 다잡으며 녀석을 향해 짓쳐들었다.
* * *
잠시 후.
-9번 게이트 B급 난이도 공략이 완료됐습니다.
-게이트 공략 결과를 산정합니다.
-클리어 등급 A. 레이드를 종료합니다.
오우거 챔피언을 쓰러뜨린 것과 동시에 게이트 공략의 결과가 발표됐다.
연습 때와 마찬가지로 A등급이었다.
이를 인지한 순간, 승리를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 팀의 승리입니다. 16강 진출을 축하드립니다.”
가상 게이트를 빠져나왔을 때 곧바로 관계자가 우리 팀의 승리를 발표했다.
“해냈어!”
“이대로만 가자!”
소소하게 승리를 자축하는 가운데.
나는 상대 팀의 성적을 확인했다.
‘B등급이면 거의 완승이라 봐도 무방한 수준이네.’
상대였던 남미 쪽 출신 팀의 성적은 B등급이었다.
B등급부터 기록을 단축하기가 까다로워지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격차라 봐도 무방했다.
‘게다가 몇몇 팀을 제외하면 거의 B급이었으니까.’
대진표가 무난하게 잡히는 이상, 쭉쭉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이번 경기에선 전력을 다하지 않고 어느 정도 페이스를 조절했다.
무엇보다 진천을 활용한 기본적인 전략을 썼을 뿐.
무극삼권의 제2초, 천라를 꺼내 들지 않았다는 게 바로 그 증거였다.
‘이 점을 감안하면…….’
강팀이라 손꼽히는 북미, 유럽의 몇몇 팀.
특히 선배들이 콕 짚어 충고한 중국 팀들과 맞붙어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샘솟는 자신감 속에 생각을 정리했다.
‘혹시 모르니까 적어도 대회를 진행하는 시간에는 온전히 여기에만 집중하자.’
그림자 녀석의 계획에만 매몰되지 않기 위함이었다.
국제 대회가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닐뿐더러, 하루종일 계획에 골몰한다고 해서 득이 되진 않는 까닭이었다.
새삼스럽게 마음을 다잡을 무렵.
“돌아가자!”
슬슬 대기실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
…
…
같은 시각.
사나운 인상의 청년은 대회장의 출입구를 바라봤다.
그의 시선이 가닿은 곳에는 한국 팀 세 사람이 대기실로 향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남자의 등을 바라보며 눈매를 좁혔다.
“…….”
이윽고 한국 팀 전원이 시야에서 사라질 무렵.
청년은 고개를 돌려 9번 게이트 쪽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게이트 입구 옆에 위치한 홀로그램 화면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방금 공략을 끝낸 한국 팀 인원들의 명단과 간략한 정보가 나타나 있었다.
오래지 않아 청년은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안일한.’
확인한 순간, 청년의 표정이 험악하게 굳었다.
죽일 듯 안일한의 이름 석 자를 노려보는 청년.
그는 다름 아닌 서문세가의 직계이자 중국 대표 팀의 일원인 서문건이었다.
서문건은 빠득 이를 갈며 속으로 되뇌었다.
‘두고 보자.’
그러고는 홱 하고 몸을 돌려 대회장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