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여명이란 이름 아래
그림자.
연소소는 그의 정체성을 명확히 표현하는 호칭을 입에 담았다.
그의 정체는 안일한을 제외하곤 이 세상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었다.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했음에도 그림자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연소소는 당대 계승자니까.’
그림자가 지금과 같은 의식의 형태로 존재할 수 있게 만든 요소들.
그중 하나가 바로 연씨세가 혈족에게 전해지는 특수한 능력, ‘계승’이었다.
연소소는 그런 ‘계승’을 이어받은 당대 계승자였다.
당연히 그림자의 정체를 알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호칭에 의문을 표하는 대신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호칭은 딱히 상관없습니다, 연 가주.”
고저 없는 목소리.
거기에 담긴 말뜻에 도리어 연소소가 화들짝 놀랐다.
이윽고 그녀는 서글픈 기색으로 가만히 중얼거렸다.
“가주…….”
가문의 주인.
그림자의 호칭이 현재가 아닌 미래를 지칭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은 까닭이었다.
현재 엄연히 가주가 존재하는 시점에서 어린 연소소가 그런 호칭으로 불린다는 건 한 가지 사실을 의미했다.
다름 아닌 현 가주의 죽음.
“……역시 그렇게 되는군요.”
사실 연소소는 처음 그림자와 접촉한 순간 이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럼에도 막상 실제로 듣게 되니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애써 감정을 추스르며 나직하게 말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아직은, 아직은 아니에요. 지금은 우선 당주라고 불러주셨으면 해요.”
미래에는 그렇게 될지언정, 지금은 아니니까.
무엇보다 이 자리에 있는 건 그런 미래를 바꾸기 위함이었으니까.
그녀의 각오를 알아차린 그림자는 별말 없이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연 당주. 들어오시죠.”
그림자는 연소소가 방으로 들어올 수 있게끔 한 걸음 물러나는 한편.
무심한 눈빛으로 그녀의 뒤를 따르는 수행원 두 명을 곁눈질했다.
그의 시선을 눈치챈 건지.
“믿을만한 사람들이에요. 가주님……, 아버님이 붙여준 이들이니까요.”
그림자가 질문하기에 앞서 연소소는 수행원들의 신원을 보증했다.
이번에도 역시 그는 별다른 반발 없이 수긍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침대에 걸터앉은 채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침묵 속에서 시선을 교환하기를 수 분.
먼저 말문을 연 사람은 그림자 쪽이었다.
“당주, 전달된 기억은 안정됐습니까?”
“……네. 우선 아버님께 구두로 전달드렸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허락을 받고 나와있는 거고요.”
“권한은 어떻게 되시죠?”
“이번 사태에 관한 전권을 위임받았어요. 그림자 님께 적극적으로 협조하라는 말도 들었고요.”
“잘됐네요.”
그림자는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본격적으로 두 번째 계획에 관해 운을 뗐다.
“아시다시피 저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세계 각지에 숨어든 낙일을 들쑤시는 겁니다.”
“그 시작으로써 서문세가를 비롯한 신흥 가문을 치려는 거네요.”
“맞습니다. 시작은 중국이지만, 습격 자체는 세계 각지의 유력 단체와 연계해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으키게 될 겁니다.”
“원활한 연계를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물밑 접촉을 진행해야겠네요.”
“워낙 규모가 큰 계획이니까요. 국제 대회의 폐막식 때 움직이려면 적어도 준결승 무렵에는 조율이 끝나 있어야 할 겁니다.”
“유념해 둘게요.”
계승을 통해 모든 기억이 전해진 덕분인지.
두 사람 간의 대화는 그야말로 막힘없이 진행됐다.
덕분에 그림자는 두 번째 계획을 넘어 곧바로 마지막에 해당하는 계획까지 입에 담았다.
“아, 그리고 움직이는 과정에서 정보를 은근히 흘리는 부분도 신경 써 주셔야 합니다.”
“‘여명’이란 이름 아래 범세계적으로 뭉쳤다, 맞나요?”
여명(黎明).
이는 낙일에 맞서 오윤진이 결성한 저항 세력이었다.
본래 여명은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후.
낙일이 재앙을 일으킨 다음에야 탄생하는 조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보다 훨씬 더 빨리 그 이름을 등장시킬 생각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여명의 이름을 낙일에게 알리는 것. 그거야말로 최종 계획의 신호탄이 될 테니까.’
그림자는 생각을 정리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여명의 수장으로서 저의 정체 또한 낙일 수뇌부의 귀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건.”
연소소는 일순 말문이 막힌 듯, 말끝을 흐렸다.
여태 원활하게 대화를 이어 가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그림자는 채근하지 않고 잠자코 기다렸다.
그녀가 보이는 반응, 행동의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까닭이었다.
‘알고 있는 거겠지. 우리의 정체가 낙일의 수뇌부에게 흘러든다는 의미를.’
낙일의 수뇌부, 정확히는 수장이 그림자의 정체를 알게 된다는 것.
이는 그가 반드시 낙일의 표적이 된다는 걸 의미했다.
즉, 낙일을 상대하는 모든 계획을 통틀어 가장 위험해지는 역할을 맡겠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연소소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연씨세가의 능력이자, 그림자가 전해 받은 능력.
계승이란 단순히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기억 그 자체를 이어받는 것이었다.
그 속에는 단순히 예정된 파멸의 미래만 담겨 있는 게 아니었다.
재앙을 겪으며 발생한 수많은 감정들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녀, 연소소의 감정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연 가주도 오윤진이나 차은월, 윤 박사님처럼 최후의 순간까지 함께했으니.’
지금 눈앞의 연소소가 그를 향해 내비치는 감정은 바로 그 일환이었다.
당사자라 할 수 있는 그림자는 그녀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주께서도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미래에 어떤 일이 닥치는지.”
“……그렇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받아들이기 힘겨운 모양이군요.”
연소소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그림자에겐 그 모습이 마치 데자뷔처럼 다가왔다.
실제로 여명의 수뇌가 모여 지금의 계획을 구상할 당시에도 그녀는 비슷한 반응을 보인 까닭이었다.
‘오히려 지금이 더 힘겨워 보이는군.’
지금의 연소소는 기억 속의 그녀와 다른 존재였다.
무엇보다 눈앞의 그녀는 아직 어렸다.
막중한 책임을, 심지어 타인의 목숨까지 짊어지기에는 아직 미숙했다.
그렇기에 그림자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작은 어깨에 손을 올리는 순간.
“……!”
연소소는 작은 동물처럼 움츠러들었다.
그림자는 가느다랗게 떨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입을 열었다.
“모든 수단을 강구한 끝에 내놓은 최선의 결론입니다.”
“…….”
“그러니 믿어 주시지요.”
이는 연소소에게 하는 말이었다.
동시에 안일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바로 그 때문이었다.
‘궁금한 부분이 많겠지. 지금 전부 설명하겠다.’
연소소와의 대화를 배려해 여태 가만히 지켜봐 주던 안일한에게 말을 건넨 것은 말이다.
* * *
‘상당히 오래간만이네.’
눈을 뜬 순간, 깨달았다.
나는 꿈을 꾸고 있으며, 그림자와 의식이 이어진 이후 처음으로 심상세계에 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무너진 건물 옥상의 광경을 바라보고 있자, 입구 쪽에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변함없이 희미하게 보이는 녀석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화 중인데, 괜찮겠어?”
내 물음에 녀석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연소소에겐 찰나의 침묵에 불과할 거다.”
“그렇다면 뭐.”
“궁금한 게 많을 텐데.”
“그렇지?”
두 번째 계획의 구체적인 내용부터.
최종 계획의 시작으로써 연소소에게 요구한 부분까지.
하나같이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더욱이 후자의 경우, 내가 곧 당사자였다.
궁금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차분하게 기다리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어차피 설명해 줄 거잖아?”
녀석이라면 전부 설명해 줄 테니까.
독단적으로 일을 벌이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는 까닭이었다.
이런 내 속내를 알아차렸는지.
“……고맙군.”
그림자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러고는 본격적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두 번째 계획은 이를테면 최종장을 위한 포석이다.”
“포석?”
“그래. 우리는 이미 낙일에 속한 간부들의 명단을 알고 있다.”
“낙일의 간부들을 연소소의 가문, 연씨세가의 힘으로 치려는 거고?”
“연씨세가의 힘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진 세계 각지의 인맥을 철저히 활용해서 한꺼번에 친다. 그럼 낙일의 수뇌까지도 끌어낼 수 있겠지.”
“……그래서 포석이구나.”
적의 수뇌를 끌어내는 것.
이는 앞서 그림자가 연소소에게 요청한 내용과 이어지는 부분이었다.
나는 확인차 녀석에게 되물었다.
“그걸 위해서 우리의 정보를 흘리려는 거야?”
“바로 그렇다. 쉽게 말해 우리가 미끼가 되는 거지.”
“미끼라…….”
미끼.
다소 적나라한 단어였으나, 확실히 이해됐다.
동시에 연소소가 보인 반응도 뒤늦게서야 제대로 공감이 됐다.
“……확실히, 제일 위험한 역할이네.”
“동시에 가장 중요한 역할이자, 우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림자는 단호한 대답과 함께 말을 이어 갔다.
“적에 대한 정보, 빠른 성장을 위한 스킬, 그리고 무공까지. 애초에 이 모든 건 적의 수뇌를 상대하고, 나아가 제거하기 위해 준비된 거니까.”
“……철저히 그런 목적을 위해 설계됐다, 그런 건가?”
“나의 경우에는 그렇다.”
그림자의 대답에 나는 침음을 삼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해야 하는 거구나.’
여태 어렴풋이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던 일이 현실로 다가온 까닭이었다.
녀석은 나와 구분 지어 답했지만 결국 내가 해야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니라 내 손으로 예정된 파멸의 고리를 끊어내야 하는 것이다.
내 모든 성장은 최후의 매듭을 짓기 위해 준비됐다는 녀석의 말이 바로 그 증거였다.
가만히 침묵하고 있자.
“달리 말하자면, 이 계획은 오직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거다.”
그림자가 나직하게 덧붙였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녀석을 향해 되물었다.
“……우리만 할 수 있다고?”
“그래. 그리고 그건 단순히 적의 수뇌를 제거하는 일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럼?”
“오직 우리만이 녀석의 마수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다. 사실 일의 전후로 따지면 현 상황에선 이 부분이 핵심이다.”
우리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 말로 인해 조금 전과는 뉘앙스가 완전히 달라졌다.
“그럼 여태까지 내게 제공한 모든 것들이 단순히 적의 수뇌를 제거하기 위해 마련한 게 아니라…….”
“당연히 너의 생존과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부분까지 포함되어 있다.”
분명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 부분마저 고려했고, 가능한 모든 수단과 대책을 강구했다.
그림자의 말은 바로 이런 뜻이었다.
거기에 녀석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저 부분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약속하지. 내 모든 걸 바쳐서라도.”
굳은 의지가 서린 목소리.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미 오래전에 결심했던 일이야.’
1학년 여름방학의 게이트 실습 사태부터, 2학기의 수행평가 참사 등.
사실 지금까지를 돌아보면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은 몇 차례 있었다.
그럼에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역량을 지닌 그림자.
녀석이 함께하는 한, 적어도 계획을 그르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믿음이 이미 내 안에 굳건히 자리 잡은 상태였다.
이를 바탕으로 나는 녀석에게 고개를 끄덕여 줬다.
“알겠어. 그렇게 하자.”
녀석이 내게 각오를 보여 줬듯, 나 역시 믿음으로 돌려줬다.
이에 그림자는 잠깐 동안 침묵했다.
그러기를 수 초.
이윽고 녀석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감사하지. 그 믿음,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거다.”
나직하고 단호하게 감사를 표한 다음.
녀석은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머지, 구체적인 내용은 연소소와의 대화를 마무리한 다음 계속하도록 하지.”
“알겠어.”
대답과 동시에 세계가 서서히 흩어져 갔다.
심상세계에서 벗어나 다시 현실로 신경을 돌린 것이다.
그러자 호텔 방의 풍경과 어느새 떨림이 잦아든 연소소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림자의 시선을 통해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때.
“……알겠어요. 믿을게요.”
때마침 연소소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녀의 표정에는 여전히 불안한 기색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투명한 눈동자에는 결심의 빛이 서려 있었다.
이를 증명하듯.
“저는 무엇을 하면 되죠?”
연소소는 올곧은 눈동자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