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혹시 저를 아시나요?
연씨세가의 직계와 접촉하는 것.
그게 바로 그림자의 두 번째 계획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이를 새삼스럽게 떠올리는 가운데.
다시금 머릿속에 그림자 녀석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연소소다. 저 여자가 바로 연씨세가의 모든 것을 이어받을 당대 계승자다.
‘……연소소.’
낯설게 느껴지는 이름이었다.
그래서인지 무의식적으로 되뇌는 한편, 내 시선의 끝에 위치한 연소소를 지긋이 바라봤다.
흑단 같은 머리칼, 백옥같이 새하얀 피부에 조그마한 얼굴, 거기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까지.
연소소는 옆자리의 윤설하만큼이나 엄청난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시선을 사로잡는 건 유리알처럼 투명한 그녀의 눈동자였다.
‘저 눈빛은…….’
눈빛 너머에 담긴 감정은 헤아리기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눈동자는 오색 찬연한 빛을 머금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만큼 연소소는 어딘가 이질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자연스럽게 그림자 녀석이 알려 준 정보가 떠올랐다.
‘연씨세가의 당대 계승자라……, 여기에도 뭔가 의미가 있으려나?’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말 그대로의 의미다.
느닷없이 그림자가 내게 대꾸해 왔다.
무어라 되물어보려는 순간.
“……어?”
의도치 않게 연소소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한 채로 나를 지그시 응시했다.
그 상태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아무래도 내 시선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
마치 홀린 것처럼 연소소의 투명한 눈동자를 멍하니 바라보기를 수 초.
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는 먼저 고개를 돌렸다.
‘시작도 전에 이상한 사람으로 찍히면 곤란한데…….’
이는 결코 나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스스로의 부주의함에 미약한 자괴감을 느끼며 반성하고 있을 때.
“안일한, 너도 눈치챘구나?”
문득 옆자리의 윤설하가 내 귓가에 자그맣게 속삭였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나는 대답 대신 그녀 쪽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러자 윤설하는 다시금 소곤소곤 말을 이어 갔다.
“네가 방금 보고 있던 방향, 저쪽이 선배들이 말씀해 주신 중국 팀인 것 같아서.”
“아.”
그제야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의도와는 다르지만, 윤설하 또한 중국 팀을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비단 그녀뿐만 아니라 차은월을 포함한 나머지 친구들도 나름대로 경쟁 상대들을 살피고 있었다.
‘진짜 정신줄을 놓고 있었구나, 내가.’
여태 연씨세가의 직계를 발견했다는 생각에만 골몰해 있어서 그런지, 이제야 눈치를 챘다.
정신을 차리고자 고개를 한차례 털어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는지, 윤설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것도. 그래서?”
“그래서라니?”
“중국 팀, 네가 보기엔 어때?”
내 질문에 윤설하는 곁눈질로 중국 팀을 살폈다.
말없이 검지로 입술을 톡톡 두드리는 윤설하.
아무래도 내 질문을 심도 있게 고민해 보는 듯했다.
오래지 않아 그녀는 손가락 끝으로 두 개의 테이블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중국은 총 네 개의 팀이 참가했잖아?”
“그렇지?”
“그중에서 저쪽하고, 저쪽이 심상치 않아 보여.”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확인한 순간, 두 눈이 저절로 휘둥그레 커졌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연씨세가의 직계, 연소소가 속해 있는 테이블.’
윤설하가 가리킨 두 곳 중 한 곳에 연소소가 포함되어 있는 까닭이었다.
새삼스레 그녀의 안목에 감탄하는 한편, 연소소를 비롯한 중국 팀의 면면을 살폈다.
확실히 윤설하의 말대로 남다른 기도를 풍기는 이들이 몇몇 보였다.
‘혹시 저들과도 마찰을 빚게 되려나?’
이는 결코 국제 대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애초에 높은 곳까지 오르고자 마음을 먹은 이상, 대회에서 중국 팀과 맞붙는 건 필연적인 사실이었다.
그러니 내가 생각한 마찰은 국제 대회가 아닌 그림자 녀석의 두 번째 계획에 관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무극삼권 제2초, 천라를 체득한 시기가 살짝 공교로웠으니까.’
비록 3일에 불과하지만, 천라를 시험해 본 결과 확실히 알게 된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그건 바로 천라의 위력이 국제 대회에 비추어 봤을 때 과한 수준이라는 점이었다.
자연히 국제 대회가 아닌, 무언가 무력 충돌을 대비한 느낌이 강하게 들 수밖에 없었다.
생각을 떠올린 순간.
-역시 감이 좋군.
그림자 녀석이 말을 걸어왔다.
즉각적으로 반응한 거로 보아 그다지 숨길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단지 예상 수준에 불과하지만,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하고 있는 건 맞다.
그림자는 내가 떠올린 가능성을 긍정하는 답변을 내놓았다.
나는 곧장 녀석에게 되물었다.
‘그럼 역시 저들 중 몇몇과 대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건가?’
-그렇지. 하지만 저들이 아닐 수도 있다.
‘저들이 아니다? 설마…….’
-그 너머에 있는 존재들이 될 수도 있겠지.
너머에 있는 존재들.
통칭 12가문이라 불리는 중국의 유력 가문을 의미하는 듯했다.
생각보다 스케일이 커진 것 같은 까닭에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내 감정을 읽었는지, 녀석은 곧장 설명을 덧붙였다.
-물론 우리끼리 맞서야 하는 건 아니니 그 점은 걱정할 필요 없다. 단언하지.
‘하기야, 저만한 세력을 일개 개인이 상대하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천라를 체득한 건 어디까지나 만일의 상황, 즉 대립의 규모가 커졌을 때 우리의 안위를 지키고, 마땅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함이다.
‘안위와 역할인가…….’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설명이었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일한이, 넌 어떻게 생각해?”
윤설하가 다시금 내 귓가에 속삭여 왔다.
그제야 나는 상념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왔다.
‘나머지 대화는 이따가 마저 하자.’
-그래.
그림자와의 대화를 적당히 마무리 지은 다음, 윤설하에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도 비슷한 것 같아.”
“역시나…….”
내 대답에 확신을 얻었는지, 윤설하는 나직하게 탄성을 흘리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녀와의 대화도 슬슬 마무리될 무렵.
“……이것으로 제45회 초인 국제 대회 개막식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때마침 사회자가 개막식 행사의 끝을 알렸다.
마무리로 인해 주위가 소란스러운 가운데.
가장 먼저 인솔 교관이 몸을 일으켰다.
“화장실 갈 사람은 가고, 저녁 식사는 호텔에서 먹게 될 거다.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배고픈 사람은 조금만 참아라. 그럼 20분 내로 입구에 집합하도록.”
교관은 묵묵히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그대로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는 가운데, 내 친구들도 슬슬 몸을 일으켰다.
“호텔 요리는 맛있으려나?”
“국제 대회가 끝나면 만찬회 같은 것도 열린다던데.”
한마디씩 주고받는 친구들.
그들과는 달리 나는 한쪽을 유심히 바라봤다.
중국 팀이 머물렀던 테이블, 정확히는 연소소의 자리 쪽이었다.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내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는지.
“일한아, 안 가?”
차은월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그녀를 비롯한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잠깐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지금이 바로 그림자가 요청한 일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시점인 까닭이었다.
“확인?”
“어. 먼저 입구에 가서 기다려 줘.”
“응, 알겠어.”
내 대답에 차은월은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뿐으로, 딱히 추궁하거나 캐묻진 않았다.
그대로 돌아서는 친구들의 모습을 확인한 즉시,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이제 막 몸을 일으키려는 연소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지금이 기회겠지?’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
이는 내게 있어 익숙지 않은 일이었다.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렸으나,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저벅저벅-
연소소가 내 인기척을 느낄 수 있을 법한 간격에 들어섰을 때.
나는 주머니를 뒤적여 통역용 아티팩트가 잘 작동하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파악을 끝마칠 무렵.
“……?”
한 쌍의 투명한 눈동자가 어느샌가부터 나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다름 아닌 연소소였다.
또다시 그녀와 눈이 마주친 가운데.
저벅저벅-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그대로 다가갔다.
연소소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상태에서 그녀의 조그마한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혹시 저를 아시나요?”
청아한 음색, 하지만 통역용 아티팩트를 거쳐서 그런지 그녀의 목소리는 어딘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연소소의 물음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을 모르는걸요?”
“아직은 그럴 겁니다.”
나는 대답과 동시에 그림자 녀석이 이전에 해줬던 말을 떠올렸다.
‘분명 저쪽에서 내 존재와 능력까지. 전부 알고 있다고 말했지?’
이제 와서 추측하건대, 그녀와의 접촉이 트리거로 작용하는 모양이었다.
지금 눈앞의 연소소가 보이는 반응을 보고 나니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생각을 잠시 미뤄 둔 채 연소소를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
그녀는 의아했는지, 내 얼굴과 내민 손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한동안 그러고 나서야 그녀는 내 행동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렸다.
그 증거로써 연소소는 머뭇머뭇 마주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위해 그대로 살포시 맞잡은 순간.
“아……!”
연소소는 헛숨을 삼키며 탄식을 흘렸다.
그녀는 유리알 같이 투명한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나를 응시했다.
눈동자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그녀는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당신은…….”
애처롭게 떨리는 목소리.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에 물기가 어렸다.
이해할 수 없는 반응에 당황스러웠으나, 일단 표정을 가다듬는 데 집중했다.
그사이.
덥석-
연소소가 두 손으로 내 오른손을 붙잡았다.
생각지 못한 행동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하지만 차마 그녀의 두 손을 뿌리칠 순 없었다.
눈앞의 연소소가 보이는 심상치 않은 반응도 한몫했지만,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더 컸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지금 연소소와의 접촉은 그림자의 두 번째 계획에 있어 중요할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붙잡혀 있을 때.
오싹-!
문득 근처에서부터 살벌한 적의가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연소소에게서 손을 빼는 한편, 고개를 돌려 적의의 진원지를 바라봤다.
시선이 가닿은 곳에는 머리를 짧게 친 사나운 인상의 청년이 오만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의 적개심 어린 눈빛을 담담하게 받아내며 생각했다.
‘저 남자, 연소소와 관련이 있는 사람인가?’
청년의 정체가 무엇인지.
연소소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여러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으니, 한 가지 확실한 점이 있었다.
저자가 내게, 정확히는 연소소에게 접근한 내게 적개심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현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아…….”
옆에서 미약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다름 아닌 연소소였다.
그녀 또한 나를 바라보는 청년의 적개심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 그런 건지.
그녀는 순간적으로 몸을 일으켜 내 쪽으로 훅 하고 다가왔다.
“……!”
반사적으로 몸을 빼려는 찰나.
청아한 음색이 귓가로 흘러들었다.
무어라 판단하기도 전에 연소소는 내게서 멀어졌다.
그러고는 곧장 청년을 향해 다가갔다.
“……치잇!”
사나운 인상의 청년은 마지막으로 나를 향해 혀를 짧게 차고 나서야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그를 향해 다가가는 연소소를 상대하려는 모양이었다.
그제야 나는 적개심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연소소와 낯선 청년, 두 사람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을 무렵.
나는 가만히 선 채로 기억을 더듬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연소소가 마지막으로 내게 남긴 말 때문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겠어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떠올린 순간, 고개가 절로 기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