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모든 것의 끝을 볼 때까지
내 친구들은 물론, 선배들의 시선까지 전부 내 쪽으로 집중된 가운데.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진천호를 마주 바라봤다.
진천호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초를 치는 것 같아 조금 그렇지만, 네게 줄 수 있는 건 딱히 없어.”
줄 수 있는 게 없다.
이는 앞선 대화와는 완전히 다른 흐름이었다.
때문에 나는 물론, 주변 사람들도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진천호를 주시했다.
그러자 진천호는 마치 해명하듯, 빠른 어조로 설명을 덧붙였다.
“조금 이상하게 들리는 것 같으니까 정정할게. 정확히 말하자면, 넌 지금 그대로도 충분하다는 뜻이야.”
“충분하다는 말씀은…….”
“무력이나 무공에 관해선 우리의 조력이 필요 없다는 뜻이지. 너 정도 수준이면 사실상 이미 우리의 손을 벗어난 거나 다름없으니까.”
“……!”
이미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다.
이는 극찬에 가까운 말이었다.
그런 진천호의 발언에 공감한다는 듯, 선배들은 물론 내 친구들까지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특히 백유진과 심인욱은.
“우리 일한이가 규격 외이긴 하죠.”
“필요한 무공이 있었다면 차라리 쉬웠을 겁니다.”
주접 비스무리한 반응을 한마디씩 입에 담기까지 했다.
주위의 반응에 얼떨떨한 한편, 나는 무의식적으로 입맛을 다셨다.
아무래도 은연중에 무언가를 기대했던 모양이었다.
‘어차피 상관없으려나?’
사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진천호의 의견은 타당했다.
무엇보다 내겐 이미 아무런 대가 없이 무공을 후원해 주는 그림자가 있는 만큼 더더욱 그랬다.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하고 난 다음, 진천호에게 차분하게 대답을 건넸다.
“괜찮습니다, 저는.”
“그럼 다행이고. 이제 슬슬 다음 화제로 넘어갈까?”
“다음 화제라면…….”
“조력에 관한 이야기는 마쳤으니, 이제 정보하고 구체적인 일정을 의논해야겠지?”
국제 대회의 정보, 그리고 준비에 관한 이야기였다.
분명 이 부분도 선배와의 내기에 포함된 항목들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고 있을 때, 진천호가 말을 이어 갔다.
“우선 정보는 출국 일주일 전에 알려 줄게.”
“이유가 있나요?”
“국제 대회 정보뿐만 아니라 경쟁 상대에 관한 내용도 기억나는 대로 공유할 생각이거든. 한꺼번에 하는 편이 더 효율적일 것 같아서.”
생각보다 본격적이었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수긍이 갔다.
내 친구들과 백유진의 무리 또한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럼 정보에 관련된 부분도 결정됐고, 이제 남은 건 국제 대회 준비를 어떻게 할지가 되겠네.”
진천호는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나와 내 친구들을 한번 슥 훑었다.
그러고는 다시금 말을 이어 나갔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우리 팀의 최대 성적은 B+급이야. 사실상 A급 성적을 낸 너희 팀의 레이드 실력이 이미 우리보다 뛰어난 거나 다름없지.”
“……과찬이십니다.”
“아니 아니, 빈말이 아니라 진짜야.”
진천호는 손을 내저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객관적으로 따져 보자는 이야기야. 너희가 이미 잘하는 부분을 부족한 우리가 돕는 건 조금 이상하잖아? 분명 의미도, 효과도 없을 거야.”
“그건…….”
“그러니 우리는 너희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일에 집중할 생각이야. 이쪽이 더 효율적일 것 같지 않아?”
“……그렇네요.”
이미 잘하는 부분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에만 일점 집중하는 것.
즉, 진천호는 효율을 극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그의 말에 온전히 납득할 수 있었다.
내 반응에 진천호는 한 차례 웃으며 대화를 마저 이어 나갔다.
“납득한 모양이니 한번 세부적으로 나눠 보자.”
“네, 알겠습니다.”
“우선 스텟, 이 부분은 각자 알아서 할 수 있지?”
나와 내 친구들을 훑어보며 묻는 말에 다 같이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그러자 진천호는 곧장 다음 화두로 넘어갔다.
“좋아, 다음은 대련. 일단 나는 우리가 대련에 집중하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다들 어떻게 생각해?”
그는 의견을 제시하는 한편.
고개를 돌려 그의 친구들, 하유리와 도정석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으응, 타당하네.”
“동감이야.”
두 사람은 처음부터 진천호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긍정했다.
“그럼 결정됐네. 대련은 우리가 집중적으로 봐줄게.”
“그 말씀은 저희들을 상대해 줄 거라는 뜻인가요?”
“맞아.”
“좋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레이드 같은 경우에는 피드백……, 아니지. 의견 교환 정도로 하는 편이 좋겠다. 괜찮지?”
“네.”
“대화가 잘 통해서 좋네.”
주저 없이 답하자 진천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조율을 끝마치고 난 다음.
“그럼 바로 시작할까?”
진천호의 제안에 따라 곧바로 본격적인 국제 대회 준비에 나섰다.
* * *
그날 저녁.
나는 기숙사에 돌아온 즉시 침대에 몸을 내던졌다.
지금까지 계속 레이드 연습에 매진해서 몸 상태가 녹초에 가까운 까닭이었다.
그대로 잠자리에 들기 직전.
‘그러고 보니 까먹고 있었네.’
그간 선배들과의 내기 준비에 여념이 없었던 탓에 여태 잊고 있던 일을 떠올렸다.
다름 아닌 몇 가지 질문들이었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보는 한편.
‘몇 가지 질문할 게 있는데.’
그림자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대답은 즉각적으로 돌아왔다.
-뭐지?
‘본격적으로 국제 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건 알지?’
-알고 있다. 내기에서 훌륭하게 이긴 것도 말이지.
‘고마워. 아무튼, 그래서 말인데. 무극삼권의 다음 초식은 언제부터 익힐 수 있어?’
첫 번째 질문은 다름 아닌 무극삼권에 관한 것이었다.
국제 대회는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그림자 녀석의 두 번째 계획과 맞닿아 있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일신의 무력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대략 한 달 뒤에 수련을 시작할 생각이다.
‘두 번째 초식도 수련하는 과정이 진천과 비슷한 모양이네? 그럼 체득은?’
-정확히는 해 봐야 알겠지만, 국제 대회 시기에는 얼추 맞을 것도 같군.
‘그건 다행이네.’
나는 머릿속으로 그림자의 설명을 갈무리하는 한편.
곧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나저나 곧 있으면 동기화율도 55%에 도달할 텐데, 이번에는 뭐 없어?’
다름 아닌 동기화율에 관해서였다.
54%에 오른 지도 꽤 됐으니, 머지않아 55%를 달성할 수 있을 터였다.
이 또한 첫 번째 질문과 비슷한 의도였다.
하지만.
-변화는 없을 거다.
녀석으로부터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런 변화가 없을 거라니, 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때문에 반 박자 늦게 반응하여 되물었다.
‘……변화가 없다니? 원래 5% 상승을 주기로 무언가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는 것 아니었어?’
-본래라면 그렇지만, 절반을 넘어선 지금부터는 여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거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거라니…….’
영문을 알 수 없는 대답에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꾹꾹 누르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 녀석이 설명을 이어 갔다.
-애초에 계승은 그렇게 설계가 된 거니까.
‘……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좀 더 설명해 줘.’
-설계된 배경에 관한 설명은 넘어가도록 하지. 어차피 이 부분은 머지않아 알게 될 테니까.
그림자 녀석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대답을 늘어놨다.
다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조금 더 알기 쉬운 내용으로 말문을 열었다.
-앞으로 동기화율에 따른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거기에 관해 궁금한 거겠지. 내 말이 맞나?
‘따지고 보면 그렇지?’
-그럼 그 부분에 대해 정확히 알려 주지.
녀석은 대답과 함께 잠깐 침묵했다.
그 모습이 마치 생각을 정리하는 것처럼 느껴진 까닭에 나는 잠자코 기다려줬다.
머지않아 머릿속에 고저 없는 음성이 울려 퍼졌다.
-지금까지는 시간에 따라 차근차근 상승했다면, 이제부터는 특별한 조치를 통해 동기화율을 단번에 끌어올릴 거다.
‘……동기화율을 단번에 끌어올린다고?’
충격적인 내용에 입이 절로 벌어지는 한편.
뇌리에 몇 가지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쳐 갔다.
동기화율을 단번에 끌어올린다면, 그에 따른 새로운 현상까지 한꺼번에 발생하게 되는 건지.
또한 동기화율이 100%에 이르렀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그때가 되면 내가 가진 미구현 특성의 진정한 능력을 알 수 있을지 등.
머릿속이 복잡할 정도로 여러 의문들이 앞다투어 떠올랐다.
그 순간.
-그때가 되면 대부분의 해답을 알 수 있을 거다.
그림자는 여전히 고저 없는 음성으로 말을 이어 갔다.
‘해답이라면…….’
-방금 네가 떠올린 의문들에 관한 답이 되겠지.‘
‘……!’
간단하게 긍정하는 그림자 녀석의 답변에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야 다시금 대화를 이어 갈 수 있었다.
‘조금 전에 특별한 조치라고 했지? 그 부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해 줘. 누가, 어떤 식으로 조치를 해 주는 거야?’
-혹시 지난번에 윤진호 박사님에 관해 알려 준 내용을 기억하고 있나?
대답 대신 되묻는 말에 나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녀석은 딱히 기다릴 생각이 없었는지, 곧바로 할 말을 이어 갔다.
-지금의 내가 의식이라는 형태로 너와 마주할 수 있는 것. 그 부분에 관한 이야기다.
‘그게 왜?’
-박사님과 비슷한 역할을 해 준 사람이 있다. 정확히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는 편이 좀 더 맞겠지.
‘사람들? 설마…….’
녀석의 대답에 몇몇 기억들이 순식간에 뇌리에 되살아났다.
나는 그중 한 가지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혹시 우릴 알아보고, 도와줄 거라 했던 사람들을 말하는 거야?’
다름 아닌 예전에 그림자가 두 번째 계획을 설명하며 언급했던 사람들에 관한 기억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래. 그들이 우리의 동기화율을 끌어올려 줄 거다.
그림자는 나직하게 긍정했다.
나아가 녀석은 내가 원하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동기화율을 올리는 것 또한 그들이 우리에게 해 줄 수 있는 조력의 일환이라 보면 된다.
‘그런 것도 가능하다니……, 설마 그 사람들도 미구현 특성을 가지고 있는 거야?’
-역시 눈치가 빠른 편이군.
녀석의 대답에 무의식적으로 탄성이 흘러나오는 한편.
새삼스럽게 두 번째 계획에 관한 의구심이 커져 갔다.
정확히는.
‘동기화율까지 한 번에 끌어올리고, 그걸 가능케 만들어 줄 정도로 대단한 사람들과 함께 대체 무엇을 하려는 거지?’
녀석이 가진 두 번째 계획.
그 목적에 대해 의문이 증폭되어 갔다.
무극삼권부터 동기화율을 끌어올리는 작업까지.
두 번째 계획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들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까닭이었다.
녀석은 그런 내 의문을 타당하다고 느꼈는지.
-슬슬 밝혀야 할 순간인 것 같군.
심상치 않은 기색으로 운을 뗐다.
-두 번째 계획은 최종장, 마지막 계획과 이어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말은…….’
-지금 준비하는 것들이 단순히 두 번째 계획만을 위한 작업이 아니라는 뜻이지.
최종장, 마지막 계획.
이를 듣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예정된 파멸을 떠올렸다.
그사이 그림자 녀석이 설명을 이어 갔다.
-그래. 본격적으로 이번 계획에 접어드는 순간, 비로소 시작이다.
‘……무슨 시작?’
-파멸을 막기 위한 여정이자, 원흉을 제거하는 싸움.
그렇기에 최종장이었다.
말뜻을 알아듣고 가늘게 몸서리치고 있을 때.
-앞으로는 멈출 수 없을 거다.
녀석이 나직하게 덧붙였다.
-모든 것의 끝을 볼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