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저 후배들, 대체 정체가 뭐지?
“……!”
진천호는 두 눈을 부릅떴다.
그만큼 안일한이 내디딘 일보(一步)는 충격적이었다.
‘진각 계열의 무공을 가지고 있다……?’
진각, 혹은 그로부터 파생되는 무공은 결코 쉽게 접할 수 있는 스킬이 아니었다.
아카데미 내에서는 물론, 가문이나 길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희귀한 무공을 아무런 배경도 없는 후배에게서 접하게 되니, 진천호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충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쩌-엉!
단 한 걸음.
거기서 비롯된 백은색의 기파가 해일처럼 언데드 병사의 무리를 휩쓸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기세였다.
언데드 병사들이 감히 항거하지 못하고 주르륵 밀려나 버릴 정도로 말이다.
‘……저 위력은 대체.’
B급 몬스터, 그것도 여러 마리를 단숨에 밀어낼 정도로 강맹한 기파를 뿜어내는 무공.
결코 쉽게 접할 수 없는 위력이었다.
그로 인해 침음이 절로 나오는 가운데.
타닷-
또 다른 후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천호, 그와 마찬가지로 검을 사용하는 윤설하였다.
그녀는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진 언데드 병사들을 향해 순식간에 짓쳐들었다.
그녀가 보법을 펼치는 순간,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진천호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저건 난화보잖아?’
윤설하의 보법이 환영검가의 난화보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차린 까닭이었다.
이는 진천호뿐만 아니라 곁에 있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천호야, 저거……!”
“저 여자애, 너희 가문의 후원을 받은 것 같은데? 게다가 낙화칠검까지 가지고 있잖아?”
도정석의 말마따나 그녀가 펼치는 검법 또한 환영검가의 무공이었다.
‘난화보와 낙화칠검, 우리 가문의 후원을 받은 후배였구나.’
진천호의 두 눈에 흥미로운 기색이 서렸다.
윤설하가 환영검가의 후원을 받았다는 사실도 퍽 흥미로웠지만, 그보다는 다른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보아하니 가문에서 심법은 주지 않은 모양인데.’
진천호는 윤설하의 유일한 약점, 제대로 된 마나 심법의 부재를 한눈에 알아봤다.
‘그렇다면 필히 화력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물론 난화보와 낙화칠검은 그 자체만으로도 수준 높은 무공이었다.
하나 대부분의 무공이 그렇듯, 제대로 된 마나 심법이 받쳐 줘야 100% 이상의 위력이 나오는 법이었다.
‘과연 어떻게 전투에 임할지.’
기대감을 떠올리는 순간.
예상지 못한 그림이 펼쳐졌다.
쩌적-
그녀가 펼친 검술에 언데드 병사들이 얼어붙기 시작한 것이다.
자세히 보니 투명한 마나에 서릿발처럼 시퍼런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제야 진천호는 화면 속 현상의 정체를 깨달았다.
‘……마력형 특성이라.’
마력형 특성, 그중에서 꽤나 희귀한 축에 속하는 능력 같았다.
아무래도 마나 심법의 부재를 특성으로 메우려는 모양이었다.
이는 실제로도 유효해 보였다.
쩌저적-!
피격당한 부위에 서릿발이 눈꽃처럼 피어나 녀석들의 움직임을 봉쇄시켰다.
그렇게 언데드 병사들의 발을 묶어 둔 가운데.
지이잉-!
뒤쪽에서부터 다섯 줄기의 마탄이 쏘아졌다.
후배 팀의 화력 담당이자, 유일하게 원거리 계열인 차은월이었다.
‘규모부터 속도, 출력까지. 전부 심상치 않은데…….’
감상을 떠올리는 순간.
콰광-!
유성을 연상케 하는 다섯 발의 마탄이 각각의 언데드 병사를 일거에 꿰뚫어 버렸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위력에 진천호는 물론, 친구들까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 같은 마법사인 도정석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중얼거렸다.
“저 위력을 증폭시키는 역장은 도대체! 게다가 수십 개의 역장을 한꺼번에 제어하고, 또 겹치기까지 한다고?”
단순히 위력에 감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차은월이란 마법사의 찬연한 재능을 정확히 짚었다.
그로 인해 진천호는 하유리와 함께 다시 한번 탄성을 흘리는 한편.
“……저 후배들, 대체 정체가 뭐지?”
하유리의 말마따나 새삼스럽게 의문이 생겼다.
대체 어디서 튀어나왔길래 저만한 저력을 보이는지.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콰직!
서걱-!
후배들은 마탄으로 인해 반으로 절단된 언데드 병사들의 골통을 깨부쉈다.
벌써 첫 전투의 마무리에 들어간 것이다.
그 광경을 보며 도정석이 고개를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저 여자애, 차은월이라고 했나?”
그의 관심은 여전히 마법사 후배, 차은월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같은 마법사라서 그런가.’
진천호는 피식 웃는 한편, 도정석의 혼잣말에 적당히 대꾸해 줬다.
“아마도?”
“조금 이상해.”
“뭐가?”
“분명 마나 운용부터 제어, 그리고 위력까지.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건 맞는데. 그렇다고 언데드 병사의 방어력을 단번에 꿰뚫는 건 좀 이해가 안 돼서.”
의아하다는 듯, 도정석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말끝을 흐렸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불현듯 진천호의 뇌리에 한 가지 가능성이 스쳐 갔다.
‘……설마 처음 대면했을 때 펼쳤던 진각 때문인가?’
효과를 정확히 모르는 만큼, 단순히 가설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진천호는 확신했다.
방금 도정석이 떠올린 의문이 안일한 후배가 펼친 진각과 맞닿아 있음을 말이다.
‘조금 더 지켜보면 알게 되겠지.’
진천호는 홀로그램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의 눈빛에는 강렬한 흥미가 서려 있었다.
* * *
같은 시각.
“안일한, 마나 소모는 어때?”
첫 번째 전투를 마친 후.
윤설하는 곧바로 내게 질문을 건네왔다.
다름 아닌 새로운 무공, 진천 때문이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아. 이대로만 가면 될 것 같아.”
실제로 그랬다.
애초에 진천을 친구들에게 공유하고, 본격적으로 연습을 시작했을 당시.
진천의 마나 소모량을 고려하여 그에 맞게 전략을 세운 까닭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일개 무공을 핵심으로 두고 전략을 세웠을 정도로 진천의 효과는 빼어났다.
‘마나 순환을 바탕으로 한 몬스터의 방어력을 완전히 무력화시켜 버리니까.’
정확히는 진각에서 비롯된 기파는 체내의 마나 흐름을 어그러뜨렸다.
B급 몬스터가 자랑하는 방어력을 손쉽게 뚫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덕분이었다.
그 결과 지금까지와는 궤를 달리하는 전략이 탄생했다.
가장 먼저 내가 녀석들의 방어를 무력화시킨다.
그다음, 윤설하가 그녀의 특성, 혹한을 바탕으로 녀석들의 발을 묶는다.
마무리는 차은월의 몫이었다.
그녀의 강력한 마법으로 상대를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효율적인 마나 활용이 가능하고, 무엇보다 전투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으니까.’
나는 진천을 딱 한 번만 쓰면 되는 만큼, 마나 소모량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윤설하와 차은월도 마찬가지였다.
마나 순환이 어그러진 이상, 녀석들의 방어력은 과장 조금 보태서 종잇장이나 다름없었다.
자연히 각 전투에 따른 소모값이 줄어드는 것이다.
바로 그 덕분이었다.
“페이스를 조금 더 올려도 될 것 같은데, 다들 어떻게 생각해?”
무려 B급 몬스터, 언데드 병사들을 상대로 이동하면서 전투를 치르는 건 물론.
거기서 한층 더 페이스를 올릴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말이다.
내 의견에 두 사람은 고민할 필요조차 없다는 듯, 바로 수긍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저마다 전투 중에 한마디씩 입에 담을 정도의 여유를 보여 줬다.
“처음에는 언데드 병사 쪽이 더 까다로울 거라 생각했는데.”
“동감이야! 사실 오우거 쪽도 충분히 해볼 만하겠지만, 지금은 내기가 걸려 있으니까.”
두 사람의 생각은 정확히 나와 일치했다.
‘적어도 오우거를 상대로는 지금처럼 이동하면서 전투하는 것까진 불가능할 테니.’
물론 언데드 병사보단 손이 조금 더 많이가는 것뿐.
오우거 계열이 걸렸어도 자신이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무엇보다 진천의 효과는 이게 전부가 아니니까.’
애초에 첫 전투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를테면 약식으로 진천을 활용했다.
페이스 조절 겸, 공략의 효율을 위함이었다.
‘뭐, 약식으로 활용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여력을 남기고자 하는 건 보스 레이드 때문이었다.
B급 난이도인 만큼 보스 몬스터의 등급은 무려 B+급이었다.
그러니 최대한 여력을 비축할 필요가 있었다.
추가로 진천의 제대로 된 효과를 위해서라도 나는 특히 여력을 아껴야 했다.
‘이대로만 가면 아슬아슬하게 딱 맞을 것 같으니까.’
나는 계속해서 코어의 마나량을 점검하며 공략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대략 10여 분 정도 흘렀을 때.
“……!”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
이를 인식한 순간.
“얘들아, 보스 몬스터야……!”
차은월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보스 몬스터의 접근까지 파악했다.
마나에 관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역량을 지닌 차은월다운 성과였다.
덕분에 나와 윤설하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녀석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어어어……
일반 언데드는 물론, 여태 상대해 온 언데드 병사들과도 존재감부터 다른 몬스터.
다름 아닌 리치였다.
리치는 트롤 주술사 이상 가는 마법사였다.
때문에 무차별적으로 퍼붓는 공격 마법은 물론, 방어 마법으로 인해 공략이 상당히 까다로웠다.
‘오히려 언데드 챔피언 이상으로 까다로운 존재지만.’
본래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타닷-
나는 곧바로 흑영신보를 펼치며 녀석에게 쇄도해 갔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이었음에도 내 친구들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사전에 합의를 해 둔 까닭이었다.
‘나를 중심으로 리치 공략을 진행하는 것.’
그게 바로 리치를 상대하기 위해 계획한 전략이었다.
이번에도 핵심은 무극삼권 제1초, 진천이었다.
다만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이를테면 진천에 내재된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흐우…….”
녀석과의 간격을 시시각각 좁혀가는 한편.
나는 체내의 마나를 맹렬하게 순환시켰다.
거기에 반응한 건지.
위잉-!
리치가 본격적으로 허공에 마나를 수놓았다.
한 손으론 방어 마법, 나머지 한 손으론 공격 마법을 전개하는 것이다.
이중 마법 전개.
이 수법이야말로 리치 공략 난이도를 배가시키는 원인이었다.
하지만.
‘이걸 기다렸다.’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마저 간격을 좁혔다.
방어 마법을 믿는 건지, 녀석은 피하지 않고 나를 마주했다.
그 상태로 녀석이 공격 마법을 전개하려는 순간, 오른발을 들어 올렸다.
쩌-엉!
그대로 내딛자 응축된 기파가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일대를 휩쓸었고, 그중에는 녀석의 두 가지 마법도 포함되어 있었다.
쩌저저적-
방어 마법은 물론, 공격 마법에 이르기까지.
요란하게 실금이 갔다.
이에 녀석의 텅 비어 있는 동공에 맺힌 귀화가 한 차례 흔들렸다.
……!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리치는 순식간에 간격을 벌리며 다시금 허공에 흩어진 마나를 수습했다.
아니, 수습하려 했으나.
‘느려.’
내가 한 발 더 빨랐다.
쩌-엉!
다시금 진각을 밟으며, 이번에는 기본적인 투로에 따라 일권을 내질렀다.
단 일격에 녀석이 겨우 수습한 마나는 물론, 뼈마디에 흐르는 마나까지 전부 흩어 버렸다.
이거야말로 진천의 진정한 위력, ‘마나 분쇄’였다.
그어어어!
생각지도 못한 현상에 괴성을 내지르는 리치.
그러거나 말거나.
‘이걸로 내 역할은 끝이고, 다음은…….’
나는 밀려드는 탈력감 속에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 빈 자리는 순식간에 채워졌다.
“나머진 맡겨 줘!”
제 차례를 맞이한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선 까닭이었다.
그렇게 악착같이 마나를 그러모으려는 리치를 상대로 두 사람의 서릿발 같은 공세가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