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직접 증명해 드리죠
“……뭐라고?”
내 제안에 진천호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되물었다.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건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안일한, 너.”
“갑자기 그게 무슨…….”
진천호와 함께 온 선배들은 물론.
내 친구들의 시선까지 전부 내 쪽으로 쏠렸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분명 선배님들은 저희를 미덥지 않다고 여기시는 것 같은데, 맞습니까?”
“호오…….”
직설적으로 묻는 말에 진천호의 눈가에 흥미로운 기색이 어렸다.
못 미덥다는 말을 대놓고 하기에는 살짝 꺼려졌는지, 그는 대답 대신 나직하게 탄성을 흘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할 말을 이어 나갔다.
“직접 증명해 드리죠. 저희가 국제 대회에 출전할 자격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겠다고?”
진천호가 흥미 어린 기색으로 되묻는 순간.
여태 가만히 듣고 있던 심인욱이 심기 불편한 기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안일한, 너희는 이미 성적으로 자격을 증명했다. 명확한 증거를 보고도 못 믿는 사람들에게까지 구태여 증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
그의 말에 이번에는 진천호를 제외한 나머지 두 선배들이 반응했다.
하지만 그들은 무어라 항변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할 수 없는 쪽에 가까웠다.
심인욱의 의견은 지극히 정론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무래도 필요할 것 같아서.”
나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어차피 이대로 가면 국제 대회를 준비하는 데 제대로 된 도움을 받을 수 없을 테니까.”
현 상태로는 선배들에게 제대로 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는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하는 나한테 있어 손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B급 난이도의 레이드 공략은 제쳐 두고, 국제 대회의 경험과 정보는 필요하니까.’
이를 위해서라도 그들의 도움, 적극적인 조력은 필수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대신 저희가 자격을 증명하면 성심을 다해서 저희를 조력해 주셔야 합니다. 또한 이번 일, 진심으로 사과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내기의 조건으로써 약속과 사과를 요구했다.
사실 사과의 경우에는 나를 위한 조건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 취향은 사과보단 어떤 식으로든 찍어 누르는 쪽에 가까우니까.’
그럼에도 사과를 조건으로 제시한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내 자존심을 위해서가 아닌, 상처받았을 내 친구들의 자존심을 위해서였다.
이를 눈치챘는지.
“일한이, 너…….”
윤설하와 차은월이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담은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들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내기라……, 그럼 우리가 이기면?”
여태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진천호가 나직하게 물었다.
나는 단숨에 입을 열어 대답했다.
“자진해서 출전권을 반납하겠습니다.”
“……뭐?”
내 즉답에 진천호는 일순 두 눈을 부릅떴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안일한, 너……!”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여태 잠자코 있던 백유진과 오윤서가 경악 어린 눈빛으로 나를 다그쳤다.
모두가 충격 속에 빠져 있는 가운데, 오직 나만은 평온했다.
당연히 이번에도 믿는 구석이 있는 까닭이었다.
‘국제 대회는 아카데미의 위신이 걸린 문제다.’
초인 국제 대회는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초인 육성 기관이 참여하는 세계적인 대회였다.
단순히 아카데미를 넘어 국가의 위신이 걸려 있는 문제였다.
반 대항전을 통해 최강의 팀을 가려서 출전권을 부여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만한 대회에 생도 개인의 치기로 출전을 좌우한다?
‘교관님들이 받아들일 리가 없지.’
즉, 내가 내건 조건은 블러핑이었다.
최악의 경우, 교관님들에게 훈계를 받는 정도에 그칠 뿐. 높은 확률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터였다.
‘그보다 더 최악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본디 내기에 리스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나 다름없었다.
더욱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선 언제나 그렇듯, 다소간의 리스크는 감수해야 하는 법이었다.
이런 속내를 알 턱이 없는 진천호는 사뭇 진지한 기색으로 나를 살폈다.
잠깐을 그렇게 바라보고 난 다음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건 너무 극단적이지 않나, 후배?”
“그 외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마땅치 않아서.”
“……흐음.”
진천호는 한차례 입맛을 다시더니, 잠깐 침묵했다.
가만히 시선을 교환하기를 수 초.
문득 그의 눈빛에서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감정이 떠올랐다.
‘흥미? 호기심 같은데?’
정체를 떠올리는 순간, 진천호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후배, 이름은?”
“안일한입니다.”
“그래, 안일한. 넌 주 무기가 뭐지?”
뜬금없는 질문에 살짝 당황스러웠다.
그 탓에 곧장 대답하지 못하고 의도치 않게 뜸을 들이게 됐다.
“……건틀렛입니다만.”
“검이 아닌가, 그건 좀 아쉽네.”
정말로 아쉽다는 듯, 진천호는 입맛을 다셨다.
아무리 봐도 그의 의도를 헤아릴 수 없는 까닭에 나는 가만히 주시했다.
그러자 진천호는 예상치 못한 말을 꺼내 들었다.
“그럼 우리가 이기면 후배가 내 부탁을 한 가지 들어주는 거로 하지. 어때?”
“……부탁 말씀이십니까?”
“그래. 출전권을 반납하는 문제는 일개 생도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잖아?”
진천호는 입꼬리를 슬쩍 들어 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어느 정도 내 생각을 읽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딱히 상관없으려나.’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오히려 국제 대회에 출전할 수 없다는 일말의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였다.
‘무슨 부탁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진천호의 눈빛에 담긴 이상한 감정을 생각하면, 마냥 내게 해가 되는 일은 아닐 터.
게다가 애초에 내기에서 이기면 되는 문제였다.
나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죠.”
“시원시원하네, 마음에 들어. 그럼 구체적인 내용을 정해 볼까?”
진천호는 시원스레 웃으며 본격적으로 내기의 조율에 나섰다.
가장 먼저 언급된 부분은 내기의 종목에 관해서였다.
“B급 난이도 레이드로 가리도록 하지. 단 너희는 처음일 테니 충분한 연습 시간을 제공할게. 성적은 우리와 동급이면 너희가 이기는 거로, 어때?”
“괜찮은 것 같네요.”
“거기다 2주간 아예 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딱 한 번, 공략의 예시를 보여 줄게. 그 정도면 나름대로 공평하지?”
“네.”
충분한 연습 시간과 동급 성적일 시 우리에게 승리를 양보한다는 조건, 그리고 예시를 보여 준다는 점까지.
진천호는 생각 외로 조건을 후하게 책정했다.
그가 대표인 모양인지, 나머지 두 선배는 별다른 반발 없이 납득하는 기색이었다.
반면 내 친구들은 조금 다른 반응이었다.
“……치잇.”
진천호의 양보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혀를 차며 분통을 터뜨리는 것이다.
다만 얼떨결에 대표로서 대화를 진행하는 내가 가만히 있어서 그런지, 그 이상의 거친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흐음.”
진천호는 그런 내 친구들, 특히 나와 한 팀인 윤설하와 차은월의 면면을 살폈다.
그 모습은 마치 그녀들의 얼굴을 기억해 두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윽고 확인을 끝마쳤는지, 진천호는 다시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바로 보여 줄게. 너희들도 괜찮지?”
진천호는 곧바로 B급 난이도 공략을 보여 주려는지, 함께 온 선배들에게 의사를 물었다.
두 선배들은 한숨과 함께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갈까?”
그렇게 의도치 않게 뒤풀이가 끝나고, 내기의 서막이 올랐다.
* * *
잠시 후.
주말이라 텅 비어 있는 정진관 내부로 일련의 무리가 들어섰다.
다름 아닌 나와 내 친구들, 그리고 진천호를 비롯한 선배들이었다.
잠자코 진천호 무리의 뒤를 따르던 중.
‘가만, 교관님들도 안 계시는데 레이드를 할 수 있나?’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때마침 터널 앞에 이르러 앞서가던 진천호와 선배들이 멈춰 섰다.
그러고는 품속에서 굉장히 익숙한 형태의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다름 아닌 가상 게이트 출입용 아티팩트였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아, 이거? 어쩌다 보니 상황은 이렇게 됐지만, 본래 우리는 너희의 지도 자격으로 온 거니까.”
내 시선을 알아차린 진천호가 곧바로 설명해 줬다.
그의 말에 따르면 국제 대회 연습을 위해 할당된 평일 5, 6교시는 물론.
방과 후나 주말에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미리 아티팩트를 지급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바로 보여 준다고 했구나.’
그렇게 납득하고 있을 때.
“후딱 해치우고 오자.”
진천호가 슬슬 터널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머지 두 선배들은 우리 쪽을 마땅찮은 눈빛으로 힐끔 곁눈질하고는 따라 걸어갔다.
그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무렵, 나는 친구들과 함께 터널 옆으로 이동했다.
그들의 레이드를 지켜보기 위함이었다.
홀로그램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을 때.
“일한이 너, 정말 괜찮겠어?”
여태 침묵하던 백유진이 모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물어왔다.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건 비단 백유진뿐만이 아니었다.
함께 하는 윤설하와 차은월은 물론, 심인욱과 오윤서까지도 왠지 나를 신경 쓰는 기색이었다.
다만 임강철은 조금 달랐다.
“일한이, 여전히 자신감이 대단하군! 난 널 믿는다!”
내게 변함없는 믿음을 보이는 것이다.
그의 천연덕스러운 반응 덕분일까.
“후,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쩔 수 없나?”
백유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덕분에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졌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반드시 이기자.”
백유진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의지를 불태웠다.
실제로 그는 단순히 말에서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 줬다.
“뒤풀이에서 하려고 했던 설명, 지금 이어서 할게.”
방금 막 시작된 레이드를 손가락 끝으로 가리키며 말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B급 레이드 공략에 관해 설명해 주려는 모양이었다.
“B급 난이도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총 두 가지 종류가 있어. 저 사람들한테는…….”
때마침 선배들이 몬스터와 조우했다.
다름 아닌 오우거였다.
“오우거가 나왔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언데드 병사 계열이야.”
오우거와 언데드 병사.
전자의 경우, 반 대항전에서 보스 몬스터로 등장했을 때 상대해 봤다.
또한 후자, 언데드 병사 계열의 몬스터들을 상대해 본 경험이 있었다.
다만 이는 내 경험이 아닌, 그림자 녀석의 것이었다.
가만히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경험을 더듬어보고 있을 때.
“저마다 차이가 존재하지만 B급 난이도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들에겐 공통점이 있어.”
백유진이 말을 이어 갔다.
“첫 번째로 전체적인 스펙이 올라갔다는 점, 그리고 두 번째는 지능이 올라갔다는 점이야.”
백유진은 말을 맺는 것과 동시에 재차 홀로그램 화면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오우거와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다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양상이 펼쳐져 있었다.
‘근접 한 명에 원거리 두 명이라는 팀 구성의 차이점은 제쳐 두고 생각해도…….’
느렸다.
정확히는 오우거에게 유의미한 타격이 쉽사리 들어가지 않는 느낌이었다.
‘파괴력이 부족한 건가? 그런 거라면.’
B급 난이도.
어쩌면 내겐 좀 더 수월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