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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136화 (136/218)

136화 저희와 내기 하나 하시죠

이정식 교관의 호출을 받은 세 사람이 다가오는 가운데.

‘우리 또래인 것 같은데, 누구지?’

여타 생도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다가오는 세 사람을 바라봤다.

반면 내 곁에 서 있던 세 사람, 백유진과 심인욱, 그리고 오윤서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마치 저들이 누군지 알고 있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정체를 묻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백유진이 나직하게 설명했다.

“2학년, 아니 이제는 3학년이겠구나. 아무튼 우리 선배들이야.”

이번에 3학년으로 올라간 선배들이었다.

그제야 납득되는 한편, 새로운 의문이 떠올랐다.

나는 이를 지체없이 물었다.

“그런데 너희는 어떻게 알았어?”

“가문 차원에서 몇 번 정도 교류가 있었거든.”

“가문? 설마…….”

백유진의 대답에 저들의 정체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때마침 3학년 선배들이 인파를 가로질러 이정식 교관의 옆에 섰다.

그는 선배들의 정중한 인사에 화답하고 난 다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 와 준 세 사람은 너희의 선배들이다. 또한 작년 국제 대회 출전 팀이기도 하지. 앞으로 이들이 너희의 국제 대회 준비를 도울 거다.”

이정식 교관은 우리 쪽을 향해 그렇게 운을 뗐다.

이어서 왼쪽부터 차례대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허리춤에 검을 찬 청년은 진천호.

등에 큼직한 활을 매고 있는 여성은 하유리.

마지막으로 안경을 쓴 청년은 도정석이었다.

각각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옆에 있던 백유진이 사족을 붙여 가며 설명해 줬다.

“왼쪽에 있는 진천호 선배는 환영검가의 직계야. 그리고 하유리 선배는 궁술로 유명한 하씨 가문의 직계고. 마지막으로 도정석 선배는 황혼의 마탑 부탑주의 셋째 아들인가, 그럴 거야.”

환영검가와 하씨 가문, 그리고 황혼의 마탑까지.

앞선 두 개의 가문은 신창백가와 더불어 3대 가문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황혼의 마탑 또한 앞선 두 가문에 결코 밀리지 않는 곳이었다.

‘오윤서의 아버지가 속한 다섯 번째 진리 마탑과 함께 2대 마탑이라 불리고 있으니까.’

즉, 저들은 백유진의 무리만큼이나 엄청난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기야, 작년 국제 대회 진출 팀이라는 걸 생각하면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려나.’

그 정도로 납득하는 한편, 교관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세 사람의 면면을 살폈다.

바로 그때, 문득 이정식 교관과 눈이 마주쳤다.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그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당분간 함께하는 시간이 많을 테니, 안면 정도는 익혀 둬야겠지. 우선 국제 대회의 출전이 확정된 A반 대표 팀부터 이쪽으로 나오도록.”

나와 내 친구들을 호출하는 것이다.

그의 부름에 나는 친구들과 한차례 시선을 교환한 다음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에 주위의 생도들은 물론.

“…….”

세 명의 선배들까지 전부 우리 쪽을 주시했다.

조심스럽게 마주한 순간, 이정식 교관이 재차 입을 열었다.

“그럼 안일한 생도부터 차례대로 인사를 나누도록.”

그의 지시에 나는 친구들과 함께 선배들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일한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들은 대체로 무표정하게 우리의 인사를 받아 줬다.

다소 경직되어 있는 분위기였으나, 나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여태 아무런 교류가 없었으니까.’

피차간에 어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데면데면한 채로 첫 대면을 마무리할 무렵.

이정식 교관은 추가적인 설명을 이어 나갔다.

“앞으로 5, 6교시에는 선배들의 지도하에 국제 대회를 준비한다. 나머지 오전 수업이나 7교시 이후의 수업은 동일하니 참고하도록.”

5, 6교시.

즉, 기존의 무기술 심화 수업을 국제 대회 준비로 갈음한다는 뜻이었다.

“출국은 대략 두 달 후에 이뤄질 거다. 그때까지 모쪼록 잘 준비해 보도록. 이상이다.”

나는 속으로 날짜를 헤아리는 한편, 친구들과 함께 짤막하게 대답했다.

이를 마지막으로 이정식 교관은 슬슬 설명을 마무리 지었다.

친구들과 함께 다시금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는 찰나.

“…….”

문득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다름 아닌 선배들이었다.

나는 곁눈질로 선배들의 시선 속에 담긴 감정을 한번 헤아려 봤다.

‘음, 잘 모르겠네.’

그들의 눈빛은 다만 가라앉아 있을 뿐, 쉬이 읽히질 않았다.

그사이.

“일한아, 안 가?”

윤설하가 의아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마저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다시금 백유진의 무리 곁으로 돌아왔을 때.

“모처럼 큰 행사도 치렀겠다, 그거 하자!”

백유진이 싱글거리는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건네왔다.

“그거라니?”

가만히 고개를 기울이자 백유진은 익숙한 단어를 입에 담았다.

“뒤풀이!”

* * *

그렇게 반 대항전을 성공적으로 끝낸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나는 백유진의 무리와 함께 매점을 향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정말이지 훌륭한 승부였다! 지켜보는 내내 피가 끓어오르더군!”

임강철도 함께했다.

그렇게 다과와 함께 잡담을 나누며 반 대항전에서 비롯된 피로를 푸는 가운데.

“그나저나 벌써 국제 대회라니, 시간 참 빠르다.”

자연스럽게 국제 대회에 관한 화제가 흘러나왔다.

백유진이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곧바로 심인욱이 반응했다.

“우리도 슬슬 준비해야겠지. 오늘 안으로 국제 대회에 출전하는 나머지 한 팀이 확정될 테니까.”

심인욱의 시선은 백유진과 오윤서를 향하고 있었다.

그의 말마따나 아직 나머지 한 팀의 인원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포함하여 백유진, 오윤서와 한 팀이 될 거란 사실을 어느 정도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그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안 봐도 뻔하지, 뭐. 유진이하고 너, 그리고 나겠지.”

오윤서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이는 충분히 공감되는 반응이었다.

‘나머지 인원들에 비해 세 사람은 각 팀에서 독보적이었으니까.’

유의미할 정도로 격차가 상당한 까닭이었다.

더욱이 나머지 한 팀의 선정 기준 자체가 반 대항전에서 보여 준 활약을 바탕으로 하는 만큼, 거의 확실해 보였다.

그래서일까.

“B급 난이도는 과연 어느 정도이려나?”

백유진 또한 다른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출전을 기정사실화한 채로 화제를 이어 나갔다.

“C+급 난이도와는 결이 다르다던데?”

“애초에 스텟이 최소 C+급은 되어야 하니까.”

오윤서와 심인욱이 한마디씩 덧붙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나와 내 친구들은 가만히 경청했다.

B급 난이도에 관해선 아는 바가 거의 없는 까닭이었다.

이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그러고 보니 일한이 너는 벌써 B급을 달성했지? 그럼 준비가 한결 수월할 거야.”

백유진은 싱긋 웃으며 운을 뗐다.

보아하니 그가 알고 있는 B급 난이도에 관해 설명해 주려는 모양이었다.

이에 귀를 기울이려는 찰나.

“너희들, 국제 대회 출전이 확정된 후배들 맞지?”

등 뒤에서부터 처음 접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낯익은 면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아까 봤던 선배님들인가, 이름이…….’

환영검가의 진천호, 하씨 가문의 하유리, 그리고 황혼의 마탑의 도정석.

차례대로 이름을 떠올릴 무렵.

세 사람 중 차가운 인상의 청년, 진천호가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백유진의 무리를 시작으로 나와 내 친구들까지 한차례 훑어봤다.

그러고 나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가 얘네들을 꺾고 첫 진출 팀으로 확정된 건가?”

나는 진천호의 물음에 대답하기에 앞서 그의 눈빛을 살폈다.

정확히는 그 속에 담긴 감정을 헤아려 봤다.

‘이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네.’

아직은 명확하지 않은 까닭에 감상을 잠시 미뤄 둔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맞습니다.”

“흐음.”

흥미로운 기색으로 입맛을 다시는 진천호.

비단 그뿐만 아니라 함께 다가온 하유리와 도정석 또한 우리들을 훑었다.

그들은 진천호와는 달리 비교적 명확한 감정을 두 눈에 담고 있었다.

‘왠지 마땅치 않다고 여기는 느낌인데.’

어느 쪽인가 하면, 부정적인 쪽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

“너희, 소속은?”

진천호가 말을 이어 갔다.

“소속이라면?”

“부모님 말이야. 소속이 어떻게 되시는지 묻는 거야.”

진천호의 대답을 듣는 순간 또 한차례 느꼈다.

그를 비롯한 선배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사실을 느낀 게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없어요, 그런 거.”

나 대신 윤설하가 다소 뾰족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녀의 반응에 새삼스럽게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윤설하는 원래 이런 부분에 민감했지?’

그녀는 개인의 노력과 이를 바탕으로 한 성취에 자부심을 가지는 스타일이었다.

반대로 배경을 가지고 젠체하는 이들에게는 날을 세우기도 했다.

지금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구태여 배경부터 묻진 않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진천호는 윤설하의 대답에 곧바로 반응했다.

“그런데도 얘네를 제치고 먼저 국제 대회 출전을 확정했다는 건가. 이건 좀 걱정되는데.”

백유진의 무리를 살피며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다.

그제야 진천호의 눈빛에 뚜렷한 감정이 떠올랐다.

다름 아닌 선민의식이었다.

이는 진천호를 뒤따라온 두 사람 또한 마찬가지였다.

“쯧, 이래서야 망신살이 뻗칠 수도 있겠네.”

“이거 괜히 시간을 낭비하는 거 아니야?”

마치 다 들으라는 듯, 한마디씩 보태는 것이다.

이들의 중얼거리는 말에 윤설하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그녀뿐만 아니라 곁에 있던 차은월의 안색도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아무리 선배님들이라도 그런 말씀은……!”

윤설하가 나서서 무어라 항변하려는 찰나.

콰앙!

근처에서 누군가가 책상을 손바닥으로 세게 내리쳤다.

그로 인해 나를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한쪽으로 쏠렸다.

놀랍게도, 책상을 친 사람은 다름 아닌 백유진이었다.

“선배님들, 그 말 취소하시죠?”

백유진은 진천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입가는 평소처럼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으나, 눈빛만큼은 달랐다.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는 것이다.

곁에 있던 심인욱과 오윤서도 마찬가지로 심기가 불편하다는 티를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저 녀석들은 저희를 꺾고 정당하게 국제 대회 출전권을 따낸 겁니다. 지나친 말씀은 삼가주시지요.”

“지금 그 반응. 황혼의 마탑이 우릴 무시하고 있다고 봐도 되는 건가요, 선배님들?”

마치 자신의 일처럼 나서서 우리를 대변하는 세 사람.

그들의 반응에 윤설하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백유진의 무리를 바라봤다.

이는 진천호의 무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너희 둘은 그렇다 쳐도, 신창백가까지 나설 줄이야. 신창백가의 수준이 그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빈정거리는 말투.

이에 질세라 백유진 또한 여유로운 태도로 응수했다.

“제가 보기엔 오히려 환영검가의 안목이 시원찮은 것 같은데요?”

그의 말에 오윤서가 빠르게 거들었다.

“3학년이나 되어서 안목도 떨어지고, 명가의 품위조차 지키지 않으시네요. 아주 명문의 망신은 선배님들이 다 시키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간의 사정으로 인해 어느 정도 유순해졌다곤 하나, 본래 오윤서는 상당히 뾰족한 스타일이었다.

그런 그녀의 성향이 유감없이 발휘되자 하유리와 도정석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었다.

“이런 건방진……!”

“아주 개념을 상실했구나? 가정 교육이 그 모양이니까 다섯 번째 진리 마탑에서 빌런이 나오는 거지!”

도정석이 오윤진을 암시하는 듯한 말을 내뱉는 순간.

“고작 부탑주를 배경으로 둔 주제에, 뭐라고?”

오윤서의 표정이 대번에 험악해졌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속.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떻습니까, 선배님들.”

내가 끼어들었다.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목소리에 모든 이목이 내 쪽으로 집중됐다.

나는 그중에서도 특히 진천호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나직하게 덧붙였다.

“저희와 내기 하나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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