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하, 이런 괴물 같은 애송이를 봤나!
콰직!
손끝에 가히 좋지 않은 감각이 전해진 순간, 나는 확신했다.
‘끝났군.’
공략이 끝났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더불어 역대급 성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때마침 허공에서 레이드 공략이 끝났음을 알리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1번 게이트 C+급 난이도 공략이 완료됐습니다.
-게이트 공략 결과를 산정합니다.
-클리어 등급 A+. 레이드를 종료합니다.
결과를 듣는 순간 두 눈이 저절로 휘둥그레졌다.
반 대항전을 준비할 당시.
A급까지는 받아 봤어도 A+급 성적은 처음 받아 보는 까닭이었다.
그래서일까.
“으, 은월아 우리 A+급 나왔어!”
“정말이네?!”
윤설하와 차은월은 토끼처럼 동그랗게 뜬 눈으로 서로를 마주 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이윽고 두 사람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내 쪽을 향했다.
그러고는 둘 다 앞다투어 내게 질문을 퍼부었다.
“안일한! 너 언제 그렇게 강해진 거야?!”
“사실 보면서도 여력이 부족하지 않을까 싶어서 계속 조마조마했는데, 정말 대단해!”
경악을 토해내거나, 감탄을 쏟아내는 등.
둘은 아무래도 내 역량이 확 달라졌음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몰라보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려나.’
애초에 이들은 내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훌륭하게 발을 맞춰 줬다.
그 정도로 감이 좋은 그녀들이다.
알아차리지 못하는 쪽이 되레 이상한 일이었다.
“사실…….”
그녀들에게 무어라 대답하려는 찰나.
이질적인 감각과 함께 주위를 둘러싼 가상 게이트 세계가 소멸해 갔다.
수십 초 후, 원래의 어둑어둑한 터널 내부로 돌아왔다.
이를 인식한 순간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옆의 게이트를 확인했다.
‘두 팀 다 아직 안 끝났나 보네.’
B반의 백유진 팀과 C반의 심인욱, 오윤서 팀이 각각 들어갔을 터인 2, 3번 게이트.
두 게이트는 여전히 활성화되어 있는 상태였다.
거기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직감했다.
‘이거 잘하면…….’
이번 반 대항전, 우리 팀이 1등일지도 모르겠다.
조심스럽게 그 사실을 떠올리는 순간.
화아앗-!
옆에 있던 2, 3번 게이트가 몇 차례 점멸했다.
그 상태로 서서히 소멸해 가는 한편, 그 자리에 익숙한 인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름 아닌 B반의 백유진 팀과 C반의 심인욱, 오윤서 팀이었다.
그들은 내가 그랬듯, 나오자마자 주위를 살폈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시선이 우리 팀 쪽에 가닿은 순간.
“아…….”
두 팀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탄식을 흘렸다.
가장 먼저 레이드를 끝내고 나왔다는 것.
그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린 기색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아아, 역시 조금 부족했나?”
“동감이다. 연습 때는 충분히 가능성이 보였건만.”
백유진과 심인욱은 거의 동시에 한숨을 푹 내쉬었고, 오윤서는 잠깐 노려보더니 홱 하니 고개를 돌렸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두 사람, 백유진과 심인욱은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와 말했다.
“너희는 어떤 필드가 나왔어? 참고로 나는 언데드.”
“내 쪽은 트롤 주술사였다.”
그들의 질문에 나는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는 오크 투사.”
내 대답을 듣는 순간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들 또한 오크 투사를 상대할 때만큼은 별다른 요행이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그럼에도 가장 먼저 공략했으니, 혀를 내두르는 것도 아주 이상한 반응은 아니었다.
“오크 투사를 상대로 우리보다 더 빨리 클리어할 줄은. 거기까진 생각 못 했는데 말이지. 아하하.”
“……안일한, 괴물 같은 녀석 같으니라고. 실전을 위해 비장의 한 수를 숨겨 둔 모양이군.”
난처한 듯, 웃음 짓는 백유진과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심인욱.
두 사람의 반응은 마치 패배를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를 보니 새삼스럽게 그들의 결과가 궁금해졌다.
무어라 질문하려는 찰나, 터널 입구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반 대항전을 종료하겠다! 결과를 발표할 테니, 다들 나오도록!”
다름 아닌 2학년 주임, 이정식 교관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한차례 시선을 교환한 다음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터널 밖으로 빠져나온 순간.
“와아-!”
주위에서부터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A반이 B, C반을 꺾었다!”
“역시 윤설하 팀! 믿고 있었다고!”
우리 팀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함이었다.
터널 외부에 위치한 홀로그램 화면으로 레이드 실황을 볼 수 있는 만큼, 결과 또한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결과가 확정되니 새삼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진짜 우리가 이겼구나.’
천하의 백유진, 심인욱, 오윤서를 꺾고 이겼다.
그들과 대등한 위치에 섰음을 인식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남다른 감회에 젖어 있을 무렵.
“그럼 지금부터 결과를 발표하겠다.”
이정식 교관이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번 반 대항전의 승자는 A+급 성적을 받은 A반 대표 팀이다!”
A팁의 승리.
이정식 교관의 발표에 같은 반 생도들이 재차 환호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의 발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B반의 대표 팀과 C반의 대표 팀은 각각 A급 성적으로 동일한 만큼, 2등과 3등은 추가적인 분석으로 가릴 거다. 그러니 다들 잠깐 대기하도록 한다.”
2, 3등을 가리는 과정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제야 나는 B반과 C반 팀의 성적을 알게 됐다.
‘A급 성적이라면, 실제로 아슬아슬했네.’
만일 레이드 초기에 전략을 수정하지 않았다면.
그 전에 B급을 달성하지 못했다면.
두 팀이 아니라 우리 팀까지 성적 분석을 통해 1등을 가려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사실이 내심 기껍게 다가왔다.
잠깐 감상에 젖어있을 때, 익숙한 면면들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어이, 애송이.”
다름 아닌 고태식 교관과 진태진 교관이었다.
그중 고태식 교관은 축하의 말을 건네기도 전에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에게서 흘러나온 말은 예상을 벗어나는 내용이었다.
“설마 네놈, 벌써 B급을 달성한 거냐?”
그는 내가 B급을 달성했다는 사실을 대번에 알아차린 것이다.
나는 얼떨떨한 감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며칠 전에 그렇게 됐습니다.”
“하, 이런 괴물 같은 애송이를 봤나!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2학년 애송이가 벌써 B급이라니, 클클!”
고태식 교관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혀를 차면서도 내 어깨를 팡팡 두들겼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 속에는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듯한 감정이 묻어났다.
이는 진태진 교관도 마찬가지였다.
“힘 조절은 다소 미숙했지만 그 외엔 거의 완벽했다. 안일한 생도, 앞으로도 계속 정진하도록.”
놀랍게도 그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내 어깨를 토닥여 줬다.
이는 고태식 교관이 내게 자랑스러운 감정을 품었다는 사실만큼이나 놀라웠다.
“……감사합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그래. 1등이 된 걸 축하한다.”
그렇게 훈훈한 덕담을 남긴 채 두 교관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들이 멀어질 무렵, 이번에는 또 다른 무리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다름 아닌 백유진의 무리였다.
“일한이 너……, 벌써 B급을 달성한 거야?”
백유진은 기가 찬다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심인욱 또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아예 힘으로 찍어 누른 모양이군. 연습 때와 확 달라진 이유를 이제야 알 것도 같다.”
그제야 이유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두어 차례 끄덕이는 것이다.
경악하는 한편, 다들 납득하는 기색을 보였다.
슬슬 대화가 정리될 무렵.
“성적 분석 결과가 나왔다. 6점 차이로 C반 대표 팀이 2등, 그리고 B반 대표 팀이 3등이다.”
2등과 3등까지 가려졌다.
심인욱과 오윤서가 속한 C반이 2등을 차지한 것이다.
‘아무래도 심인욱에겐 오윤서가 있지만, 백유진은 혼자서 임했으니까.’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결과였다.
3등이 된 백유진은 다소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으나 표정 자체는 개운해 보였다.
아무래도 그 또한 결과에 납득하는 모양이었다.
그사이.
“그럼 지금부터 국제 대회 선발전에 관해 설명하겠다.”
이정식 교관이 갑작스럽게 화제를 바꿔 국제 대회 선발전을 언급했다.
“사전에 예고했듯, 반 대항전은 단순한 이벤트성 대회가 아니다. 국제 대회 선발전의 핵심적인 척도지. 지금부터 그 점을 상세히 설명할 테니, 특히 이번 시합에 출전한 생도들은 귀 기울여 듣도록.”
그렇게 운을 떼는 것과 동시에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 나갔다.
가장 먼저 국제 대회에는 총 2개의 팀이 출전한다는 점부터.
그중 한 팀은 이번 반 대항전에서 1등을 차지한 우리 팀이 될 거라는 점.
그리고 나머지 한 팀은 2등 팀과 3등 팀에서 총 세 명을 추려 구성한다는 점이었다.
“2등 팀과 3등 팀에서 총 세 명을 추려내는 건 이번 공략에서의 활약을 두고 각 교관들과 상의하여 선출할 예정이다.”
이정식 교관의 설명을 듣는 순간.
‘이번 공략에서의 활약으로 선출한다면…….’
나머지 한 팀의 구성 인원이 대략적으로나마 예상됐다.
‘백유진을 필두로 심인욱, 오윤서가 되겠지.’
연습 때 지켜본 결과, 이들과 나머지 팀원들 간의 격차는 꽤나 유의미하게 나는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럼 유진이하고 심인욱, 오윤서인가?”
“그러게. 뭐, 인욱이와 윤서가 나간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지도.”
세 사람과 팀을 이룬 나머지 생도들 또한 별다른 반발 없이 납득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들의 반응을 훑어보는 한편,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드디어 국제 대회인가…….’
국제 대회는 내게 있어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비단 아카데미 졸업 후 초인으로서의 진로 선택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점을 제쳐 두고서라도 그랬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림자 녀석의 계획도 슬슬 시작되겠구나.’
예정된 파멸을 막기 위한 움직임.
다시금 예측할 수 없는 파란을 정면으로 맞이해야 하는 까닭이었다.
이번에는 과연 어떤 사건과 마주하게 될지.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
“결과는 오늘 중으로 각자의 스마트 워치를 통해 통보하겠다.”
이정식 교관이 설명을 이어 갔다.
“그리고 국제 대회는 여름 방학 때 개최될 거다. 그때까지 선발된 두 개의 팀은 국제 대회 준비를, 나머지 생도들은 다음 승급 심사 준비를 위주로 수업에 임하면 될 거다.”
다름 아닌 국제 대회 개최 시점과 향후 수업의 방향성에 관한 설명이었다.
이정식 교관은 이어서 국제 대회의 준비에 관한 설명을 덧붙였다.
“국제 대회는 B급 난이도로 진행된다. 국가를 대표해서 출전하는 만큼, 교관들이 집중적으로 조력하는 게 최선이지만 애석하게도 커리큘럼의 문제로 인해 집중 지도는 불가능하다.”
충분히 납득되는 이유였다.
명예가 걸린 문제라 한들, 나머지 생도들을 마냥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그걸로 설명이 끝나는 듯했으나, 이정식 교관은 대안을 제시했다.
“그렇기에 국제 대회 출전 팀들에겐 특별한 지도 교사를 붙여 줄 예정이다. 세 명은 앞으로 나오도록.”
이정식 교관은 말을 끝마치는 것과 동시에 정진관 입구 쪽을 바라봤다.
그에 따라 나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입구로 흘러가는 가운데.
처음 보는 남녀가 천천히 정진관으로 들어섰다.
이들을 보는 순간.
“어?”
“저 사람들은…….”
“잠깐만, 진짜로?!”
세 사람. 백유진과 심인욱, 그리고 오윤서가 두 눈을 부릅뜨며 반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