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새로운 무공에 관한 이야기다
C급 난이도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는 다름 아닌 ‘오크 투사’였다.
위아래로 비죽 튀어나온 송곳니와 적갈색 피부, 거기에 오른손에 쥐고 있는 큼직한 박도 등.
외견부터 존재감까지, 녀석은 일반적인 오크와는 궤를 달리했다.
실제로 오크 투사는 C+급 몬스터였다.
크르륵-!
오크 투사가 낮게 으르렁거리는 순간.
녀석의 뒤에서부터 세 마리의 오크가 추가로 등장했다.
보스 몬스터 하나와 일반 몬스터 셋, 우리보다 머릿수가 하나 더 많았다.
숫자에서부터 밀린 탓일까.
꿀꺽-
등 뒤로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윤설하와 차은월, 두 사람은 다소 긴장한 기색이었다.
‘제어 마법의 영향이겠지만, 어쨌든 통증까지 느껴지는 상황이니까.’
몬스터를 두드리는 타격감부터 반격당했을 때 발생하는 반탄력에 따른 통증까지.
전부 생생하게 느껴지는 만큼, 긴장하는 것도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몸이 너무 굳어 버리면 전투에 차질이 생길 터였다.
나는 적당한 시점에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이번에도 잘해 보자. 여태까지 했던 것처럼만 하면 별문제 없을 거야.”
그제야 두 사람은 다소 누그러진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들의 대답을 듣는 순간.
타닷-
나는 빠르게 지면을 박차고 쏘아져 나갔다.
코어를 활성화시켜 속도를 높이는 한편, 녀석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중에서 우선적으로 체크한 건 다름 아닌 오크 투사 쪽이었다.
크워어-!
오크 투사는 내 접근에 반응하여 포효를 내질렀다.
녀석을 뒤따르던 세 마리의 오크들 또한 콧김을 거칠게 내뿜으며 호응했다.
이대로 가다간 영락없이 네 마리를 한꺼번에 상대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내겐 믿는 구석이 있는 까닭이었다.
타닷-
등 뒤에서 기민한 움직임이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막대한 마나의 흐름이 감지됐다.
내가 녀석들의 이목을 끄는 사이 본격적으로 두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딱히 오더를 내리지 않았음에도 윤설하는 좌측의 오크를, 차은월은 우측의 오크를 향해 공세를 퍼부었다.
콰광! 쾅!
혹한에서 비롯된 눈보라가 흩날리고, 역장으로 강화된 마탄이 폭우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두 사람의 타깃이 된 좌우측의 오크는 물론.
크워어억-!
내가 목표로 삼은 오크 투사와 나머지 한 마리의 오크까지 그녀들에게 반응했다.
하지만 녀석들이 내 친구들에게 접근하는 일은 없었다.
‘어딜……!’
내가 녀석들보다 한발 앞서 짓쳐들었기 때문이다.
오크 투사의 사정권에 들어선 즉시 흑영신보를 펼쳤다.
칠흑의 안개가 몸을 감싸는 가운데.
나는 오크 투사를 향해 오른발을 차올렸다.
서-걱!
무영귀살각을 펼친 것이다.
백은의 참격이 일어나 서슬 퍼런 기세로 쇄도해 갔다.
꽤나 힘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카가가가강-!
오크 투사는 손에 쥔 박도를 횡으로 크게 휘둘러 참격을 막아 냈다.
그사이, 나는 빠르게 움직여 나머지 한 마리의 움직임을 막아섰다.
덕분에 상황은 윤설하와 차은월이 각각 한 마리씩 맡고 나머지를 내가 담당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여기까진 계획대로다.’
내가 강적이나 다수의 몬스터를 맡는 사이, 친구들이 상황을 정리하는 것.
이게 바로 여태까지 해 왔던 역할 분배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할 수 있으니까, 충분히 가능하니까.
‘사실 이런 역할은 대부분 건틀렛을 택한 생도가 맡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감히 특별하다고 자부했다.
그만큼 안정적으로 잘 버틸 수 있는 까닭이었다.
비결은 바로 내가 가진 마나량과 혼원현천신공이었다.
혼원현천신공의 특성상, 코어를 활성화시키는 것만으로 호신의 효과를 띤다.
거기에 인위적으로 호신을 발휘하면 방어력이 한층 더 두터워졌다.
덕분에.
취익-!
제법 위력이 강맹한 오크의 일격을 손등만으로 손쉽게 막아 내는 건 물론.
크워어!
오크 투사의 박도까지 별다른 피해 없이 막아 내는 게 가능했다
더욱이 마나량이 받쳐 주는 만큼, 남들이 방어에 마나를 올인할 때 나는 공격으로의 전환도 가능했다.
내가 가진 역량이 방어 이상으로 공격에 특화되어 있어서 더더욱 효과적이었다.
덕분에 내 역할은 단순히 녀석들의 발을 묶어 두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쿠웅-!
도리어 일반 몬스터 한 마리를 때려눕힌 것이다.
그렇게 머릿수를 줄이고, 오크 투사를 안정적으로 마크하는 사이.
“일한아, 오른쪽 끝났어!”
“나도 거의 다 됐어! 금방 합류할게!”
때마침 두 사람의 전투도 끝난 모양이었다.
둘의 역량이 어지간한 수준을 상회한다는 점 또한 전투의 안정성, 그리고 속도를 크게 높여 줬다.덕분에 상황은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정리됐고, 이제 남은 건 보스 몬스터 한 마리뿐이었다.
오크 투사 또한 이 사실을 인식한 건지.
쿠워어억-!
거칠게 포효하며 내 쪽으로 달려들었다.
나는 의연한 자세로 충격에 대비했다.
내겐 친구들이라는 믿는 구석이 존재하는 까닭이었다.
녀석이 나를 공격하기 직전에.
콰앙! 쾅!
녀석의 머리 위로 무차별적인 마탄 세례가 쏟아졌다.
먼지구름이 자욱하게 피어난 가운데.
츠즛-!
냉기를 머금은 혹한의 검이 사각으로부터 오크 투사를 노리고 쇄도해 갔다.
그렇게 정신없이 휘둘리는 가운데. 녀석이 어떻게든 내 친구들을 노리고 달려들 때면.
“어림도 없지.”
내가 나섰다.
항마멸인장에 탈혼지를 더하여 녀석을 거세게 압박하는 것이다.
스치기만 해도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때문에 오크 투사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쿠워어억!
괴로움이 뒤섞인 포효가 흘러나왔을 때.
나는 이번 레이드의 끝이 머지않았음을 직감했다.
‘이 정도쯤 됐으면.’
제아무리 C+급 보스 몬스터라 한들, 전황을 뒤집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쿠웅-!
만신창이가 된 오크 투사의 거체가 허물어진 것이다.
그 순간.
-4번 게이트의 가상 레이드가 종료됐습니다.
기계적인 음성이 허공에서 울려 퍼졌다.
레이드의 성공을 알리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돼, 됐다!”
“한 번에 성공할 줄이야……!”
윤설하와 차은월은 탄성을 내지르며 한달음에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을 옅은 미소로 맞이하며 나직하게 말했다.
“고생했어, 둘 다.”
* * *
7교시부터 9교시까지.
수업은 가상 레이드와 담당 교관의 팀 단위 피드백의 반복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당분간 수업은 오늘과 동일할 테니 그리 알도록. 이상이다.”
눈 깜빡할 사이에 방과 후가 찾아왔다.
하나둘씩 정진관을 벗어나고 있을 때.
“일한이!”
변함없이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임강철이 다가왔다.
여태까지 팀 단위로 수업을 받았던 만큼, 그의 뒤에는 김은솔과 장지석도 함께 있었다.
그들과는 아직 어색한 까닭에 머뭇머뭇 인사를 나눴다.
바로 그때.
“일한이, 오늘 활약 잘 봤다! 역시 넌 대단하더군……!”
임강철이 내 어깨에 턱 하니 손을 올리며 다른 손으로 엄지를 치켜세웠다.
아무래도 그는 나와 내 팀의 레이드를 지켜본 모양이었다.
“봤어?”
“당연하지! 아주 배울 점이 많았다! 안 그런가?!”
임강철은 시원스레 수긍하며 별안간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가닿은 곳에는 이제 막 윤설하, 차은월과 인사를 마친 김은솔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는 한편,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으응? 어, 그렇지. 확실히 참고가 됐어. 안 그래?”
그녀의 물음에 곁에 있던 장지석 또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우리뿐만이 아니라 다른 팀도 마찬가지일 거야. 특히 데미지를 계산하는 부분은 100%일걸?”
“맞아. 나 같은 경우에는 역할 분배 쪽에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아. 윤설하가 유격대처럼 움직이던 모습이 인상 깊어서 따라 해 봤는데 효과가 좋더라고.”
“차은월의 마법 운용도 안정적이었고 말이지.”
그렇게 나뿐만 아니라 윤설하, 차은월을 향한 칭찬까지 청산유수로 흘러나왔다.
때문에 의도치 않게 주변의 시선이 이쪽에 집중됐다.
나는 물론, 윤설하와 차은월도 민망했는지 멋쩍게 미소를 지었다.
슬슬 부담스러워지려는 찰나.
“그럼 일한이, 나는 당분간 이 녀석들과 함께 움직일 테니 이따가 보자! 윤설하, 차은월 너희도 저녁 맛있게 먹어라!”
때마침 임강철이 타이밍 좋게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한바탕 폭풍우가 몰아치고 난 듯한 기분 속에서 멍하니 임강철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윤설하와 차은월과 눈이 마주쳤다.
마치 입을 맞춘 듯, 우리는 동시에 피식 웃어 버렸다.
“슬슬 우리도 저녁 먹으러 갈까?”
그제야 나도 친구들과 함께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그날 저녁.
나는 식사를 마치고 난 다음, 바로 기숙사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곧장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계승 효과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거, 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다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 특화되어 있는 것 같은데. 맞아?’
오늘 처음 접했던 가상 레이드.
거기서 느꼈던 3단계 계승 효과에 관해 질문하기 위함이었다.
내 질문에 녀석은 순순히 대답했다.
-감이 좋군. 네 말이 맞다. 대인전에 관한 지도도 어느 정도는 받았지만, 내 근본적인 목표는 몬스터 사냥과 토벌이었으니까.
‘근본적인 목표? 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내가 누렸던 효과들의 바탕이 전부 그림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 속내를 알아차린 듯, 그림자는 설명을 덧붙였다.
-내가 살았던 시대에는 빌런도 문제였지만 그보다는 몬스터가 더 큰 문제였다. 피해는 물론이거니와 전투가 빈번했으니까.
녀석의 말에 불현듯 기억이 떠올랐다.
계승이 2단계에 머무를 적, 꿈속에서 목격했던 재앙에 관한 기억이었다.
사방에 뚫린 균열과 시시각각 발생하는 범람, 그로 인해 황폐해진 도심의 풍경까지.
결코 잊기 어려운 장면을 떠올리자 순간적으로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그래서 레이드에서 훨씬 더 효과적이었던 거구나.’
-그렇지. 신경이 쓰이는 건 이해한다만, 너무 매몰되지는 마라.
‘그걸 막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는 거니까?’
-잘 아는군.
고저 없는 목소리였으나, 왠지 모르게 녀석이 웃음 짓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궁금증도 어느 정도 해소했겠다, 나는 생각해 둔 화제를 이어 나갔다.
‘그럼 2주 후에 있을 승급 심사도 문제 없겠네?’
다름 아닌 앞으로의 일정에 관해서였다.
내 물음에 그림자는 나직하게 대답했다.
-지금도 C+급 난이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거다. 다만 문제라면 B급 난이도겠군.
‘B급 난이도라……. 일단 첫 승급 심사는 C급 난이도로 치러질 테니까.’
이를 고려한다면 B급 난이도는 최소 반 대항전, 혹은 국제 대회 선발전에서나 접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반 대항전이라 가정하고 준비하는 편이 보다 확실할 터였다.
‘역량을 미리 길러서 나쁠 건 없을 테니까.’
게다가 반 대항전은 사실상 국제 대회 선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반 대항전이 각 반의 최강의 팀으로서 출전해 경쟁하는 만큼, 성적이 선발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었다.
이를테면 국제 대회 선발전의 척도가 곧 반 대항전이 되는 셈이었다.
‘그럼 그때까지 수업에 집중하면서 단련하면 되려나.’
그림자 녀석의 말에 따르면, 나는 C급 난이도는 물론 C+급까지 감당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B급 난이도에 대비하는 것 정도라 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슬슬 나눌 때가 된 것 같군.
별안간 녀석이 두루뭉술하게 운을 뗐다.
‘나누다니, 뭘?’
-새로운 무공에 관한 이야기다.
새로운 무공.
생각지도 못한 언급에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