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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129화 (129/218)

129화 일한이는 뭔가 교관님 같아

가장 먼저 전투에 나선 이는 다름 아닌 윤설하였다.

그녀는 마력형 특성, ‘혹한’을 발휘하는 한편.

타닷-

유려한 걸음으로 좌측에 있는 오크를 향해 짓쳐들었다.

겨울 방학 때 봤던 보법, 비화표(飛花漂)였다.

단숨에 간격을 좁힌 윤설하는 서리가 내려앉은 검으로 낙화칠검(落花七劍)을 펼쳤다.

그리고 거의 비슷한 타이밍에 차은월 또한 전투 준비에 나섰다.

우우웅-!

우측에 있는 오크를 겨냥하여 수십여 개의 마력 역장을 전개한 것이다.

이윽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마탄 세례를 쏟아냈다.

콰앙-!

두 사람의 공세에 굉음과 함께 먼지구름이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이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겠지.

윤설하는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위력적이긴 해도, 그것만으론 역부족이지.’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 같은 수준의 공세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취엑-!

먼지구름 사이로 세 마리의 오크가 멀쩡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두 사람은 눈을 휘둥그레 뜨는 한편, 다시금 전투를 준비했다.

“하압……!”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달려드는 윤설하.

그녀는 낙화칠검 특유의 현란한 검로를 활용하여 오크의 급소를 노렸다.

그러나.

카강!

오크는 맨손으로 그녀의 검을 튕겨 버렸다.

그 힘이 어찌나 대단한지, 윤설하는 딛고 선 자리로부터 두 걸음이나 밀려났다.

반면 그녀의 검을 맨손으로 걷어낸 오크는 콧김을 내뿜으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녀석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육중한 걸음으로 윤설하를 향해 짓쳐들었다.

“……으윽!”

다급한 기색으로 검을 바로 세우는 윤설하.

손끝이 미미하게 떨리는 게, 아무래도 녀석의 반격을 예상치 못한 모양이었다.

처음과는 달리 그녀는 살짝 경직되어 있었다.

그로 인해 오크의 돌진에 반 박자 늦게 반응해 버렸다.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순간.

“설하야, 물러서!”

뒤쪽에서 차은월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녀는 윤설하가 반응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수십여 발의 마탄을 쏟아냈다.

콰앙! 쾅!

투명한 마나가 파편이 되어 흩날리는 가운데.

차은월의 표정에는 안도의 기색이, 윤설하의 표정에는 고마움의 기색이 서렸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해.’

여전히 충분하지 않았다.

이는 결코 두 사람이 약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모르긴 몰라도, 가상 레이드 내지는 가상 전투였으면 이미 전투가 끝날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지금.

“어, 어떻게!”

“피해가 없어……?”

멀쩡한 기색으로 오크 무리가 걸어 나올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실제 게이트의 몬스터들은 마나로 강화된 육체를 가지고 있으니까.’

게이트 내부는 곧 마나의 세계였다.

현실과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마나가 풍부한 것이다.

그런 세계에서 살아가는 몬스터의 육체에 마나가 깃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때문에 어중간한 수준의 힘으론 결코 녀석들을 상대할 수 없다.

‘그래서 처음엔 낭패를 봤었지.’

실전에서의 전투는 이것저것 재고 따지기에 앞서 전력을 다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지난 겨울 방학의 동행을 통해 내가 배운 지식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새삼스럽게 되새기는 한편.

타닷-

코어의 마나를 한껏 끌어 올린 채 폭발적으로 달려나갔다.

바로 그때.

“일한아!”

등 뒤로 윤설하의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은월 또한 망설이면서도 나를 엄호해 주기 위해 마나를 전개했다.

반응을 보아하니 그들도 깨달은 모양이었다.

작년에 했던 수업은 여러모로 학습 용도에 맞춰 난이도가 조절됐음을 말이다.

‘이번 전투가 끝나면 다들 깨달을 테니까.’

내 친구들은 결코 둔재가 아니었다.

직접 겪고, 또 내 전투를 본다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전투에 임해야 하는지 충분히 감을 잡을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보여 줘야겠지.’

나는 판단과 더불어 혼원현천신공의 마나를 두 주먹에 휘감았다.

그 상태로 탈혼지를 발휘하는 한편.

세 마리의 오크 중 유난히 돌출되어 있는 정면의 녀석을 향해 항마멸인장을 내질렀다.

쩌-엉!

어마어마한 충격과 함께 중앙의 오크가 몸서리쳤다.

항마멸인장의 요사스러운 기운이 맞닿은 부위에서부터 괴사가 일었다.

탈혼지의 급소 포착이 더해진 결과였다.

그로 인해 중앙의 오크는 그대로 허물어졌다.

쿠웅-!

동료가 맥도 못 추고 죽었기 때문일까.

남아 있는 두 마리의 오크는 콧김을 거칠게 내뿜으며 양팔을 휘둘렀다.

휘익-!

마치 쇳덩이가 날아드는 것 같은 소리가 귓가를 찌르는 가운데.

나는 양손을 백은색의 마나로 두텁게 감쌌다.

그 상태로 한 발짝 물러서는 한편.

스스슥-

양손으로 벽뢰수를 전개했다.

호신의 반탄력을 뚫고 충격이 손아귀에 전해질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터엉-!

나는 무사히 녀석들의 공세를 쳐 낼 수 있었다.

그렇게 틈을 만들어 낸 직후, 곧장 흑영신보를 발휘하며 소리쳤다.

“내가 좌측을 맡을게!”

그것만으로 충분했는지.

“아, 알겠어! 은월아 우리는 오른쪽!”

“응!”

두 사람은 신속하게 반응했다.

단숨에 알아들었을 뿐만 아니라 전투에 임하는 자세도 달라져 있었다.

고오오-

일견 과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마나를 끌어 올리는 것이다.

그게 정답이었다.

‘적절한 수준으로 힘을 분배하는 건 차차 맞춰 나가면 되는 문제니까.’

그렇게 경험을 쌓다 보면 분명 감을 잡을 터였다.

특히 지닌 바 자질이 뛰어난 두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가능할 것이다.

나는 감상을 뒤로한 채 맡은 바 역할에 충실했다.

서-걱!

무영귀살각을 시작으로 몰아치듯 공세를 퍼부었다.

그 결과.

쿠웅-!

맡고 있던 녀석을 어렵지 않게 쓰러뜨릴 수 있었다.

숨통이 끊어진 것까지 확인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츠즛-!

때마침 윤설하와 차은월이 맡았던 오크 녀석의 머리가 떨어져 나갔다.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머리를 잃은 몸뚱이가 맥없이 허물어지는 가운데.

두 사람과 눈을 마주친 상태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생했어.”

내 말에 두 사람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이내 둘의 눈빛에는 비슷한 감정이 서렸다.

성취감, 고양감 등. 그중에는 나를 향한 믿음직스러움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두 사람에게 옅게 미소를 지어 보이는 한편, 슬슬 걸음을 옮겼다.

“가자.”

* * *

비슷한 시각, 정진관.

“……우와, 저 팀은 뭐지?”

“속도가 미쳤는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생도들부터 각 반의 담임 교관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시선은 전부 한 곳에 쏠려 있었다.

다름 아닌 각 터널의 좌측 벽에 위치한 홀로그램 화면이었다.

화면을 통해 각 팀의 레이드 상황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그중에서도 좌측, A반의 10개 팀 가운데 한 개의 팀에 모든 이들의 이목이 쏠려 있었다.

“안일한, 쟤는 진짜 또래가 맞는 건가?”

“뭐 저렇게 능숙해? 딱 봐도 가상 레이드는 작년 수업보다 난이도가 몇 배는 더 높은 것 같은데.”

“진짜 연구 대상이다.”

다름 아닌 안일한이 속한 팀이었다.

레이드 진행 속도는 물론.

몬스터와 대면하는 순간 이뤄지는 신속한 역할 분배와 피해가 거의 없다시피 한 전투까지.

모두가 경악하거나 감탄을 쏟아내는 가운데, 그중에는 고태식도 포함되어 있었다.

“저 애송이, 아니 이제는 애송이라 부르기도 애매해진 건가. 이봐, 태진 교관.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지?”

고태식은 혀를 내두르며 중얼거렸다.

이에 진태진은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아무래도 일한 생도는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뛰어넘은 것 같습니다.”

“이해를 뛰어넘었다?”

“네. 그렇지 않고서야 실전을, 그것도 첫 전투에서부터 핵심을 정확하게 짚는 건…….”

진태진은 홀로그램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말끝을 흐렸다.

하나부터 열까지, 거듭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까닭이었다.

‘저 생도가 가진 역량의 끝은 도대체…….’

가늠조차 안 되는 수준이었다.

진태진은 한편으론 그런 생각까지 떠올렸다.

일한 생도는 어쩌면 이미 불가해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게 아닐까.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하기야 저 녀석. 대련에서도 심상치 않았어.”

“대련 말씀이십니까?”

“그래. 모처럼 제한을 풀고 임했는데도 10여 분을 넘게 버티더군.”

“……!”

진태진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백전노장이자, 맹호라는 이명을 지닌 고태식을 상대로 10분 넘게 버티는 것.

이는 단순히 스텟이나 스킬, 마나량만 가지고선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선배님을 상대로 버티려면 무엇보다 경험, 노련함이 받쳐 줘야 그나마 가능할 터.’

경험, 노련함 같은 요소들은 단순히 재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경험이란 절대적으로 시간을 투자해야만 얻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런 역량을 이제 막 2학년에 오른 생도가 갖췄다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느껴지는 수준이었다.

“나 원 참. 어디서 저런 물건이 굴러들어와서는. 하기야 그만큼 괴물이니까 김한석, 그 빌어먹을 놈에게도 유효타를 가할 수 있었던 거겠지.”

“…….”

진태진은 대답하는 대신 침음을 삼켰다.

그 당시의 부족했던 자신의 모습이 뇌리를 스쳐 가는 한편.

거기서 비롯된 죄책감이 되살아나는 까닭이었다.

그의 상태를 눈치챈 고태식은 마땅찮은 듯 혀를 짧게 차며 말했다.

“쯧! 언제까지 떠안고 있을 건가?”

“하지만 제가 부족한 바람에…….”

“그렇게 따지면 우리 모두가 부족한 거겠지.”

고태식은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가닿은 곳은 다름 아닌 홀로그램 화면 쪽이었다.

그중에서도 정확히 안일한을 포착하고 있었다.

그는 무표정하게 달려나가는 녀석을 복잡한 눈빛으로 주시하며 중얼거렸다.

“저 녀석을 제외하고 말이야.”

* * *

“내가 마무리할게.”

나는 외침과 동시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오크를 향해 일권을 내질렀다.

혼원현천신공의 폭발력이 담긴 일격은 마나로 강화된 녀석의 육체를 단숨에 꿰뚫었다.

쿠웅!

오크의 거체가 실 떨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거기까지 확인하고 난 다음, 고개를 돌려서 두 사람을 바라봤다.

내 시선을 의식한 걸까.

“이젠 어느 정도 감이 잡히는 것 같아!”

“응, 나도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야.”

윤설하와 차은월은 배시시 웃으며 감상을 입에 담았다.

그들은 다소 긴장했던 첫 전투 때와는 달리 어느 정도 적응한 상태였다.

실제로 처음 오크 세 마리와의 전투 이후, 공략은 굉장히 순조롭게 진행됐다.

단순히 나만이 홀로 무쌍을 찍듯 활약하는 게 아니라, 각자 맡은 바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랬다.

여기에는 윤설하와 차은월, 둘 다 습득력과 적응력이 굉장히 뛰어나다는 점도 한몫했다.

반면 두 사람은 조금 달리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게 다 일한이, 네 덕분인 것 같아!”

“그러게. 일한이가 없었다면 처음부터 되게 낭패였을 거야.”

지금까지의 원활한 전투에 대한 공을 전부 내게로 돌리는 것이다.

정확히는.

“일한이는 뭔가 교관님 같아. 어떻게 그 정도로 시기적절하게 지시를 할 수 있는 건지.”

“내 말이. 하여간 괴물 같으니라고!”

내가 내린 오더를 높이 쳐 주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의 애정 어린 평가에 겸양을 표했다.

실제로 이는 내가 온전히 갈고 닦은 역량이 아닌 까닭이었다.

‘계승 3단계의 한계는 대체 어디까지일까.’

계승에 따른 경험 공유.

지금까지의 활약, 특히 오더에 관해선 전적으로 그림자 녀석에게 받은 경험 덕분이었다.

그래서인지, 남은 전투도 무탈하게 진행했다.

그 결과.

“얘들아, 준비하자.”

마침내 게이트 공략의 끝이나 다름없는 존재.

보스 몬스터와 조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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