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좋은 승부였어
임강철은 빠른 속도로 짓쳐드는 한편.
양손에 투명한 마나를 휘감았다.
유 계열의 마나 심법, 삼재기공으로 마나를 유형화시킨 것이다.
아카데미에서 기본으로 제공되는 심법 중 하나가 바로 삼재기공이었다.
분명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스킬이건만.
‘……기세가 심상치 않네.’
임강철의 양손에 어린 기운은 유난히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를 단순한 기분 탓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감각이 경종을 울렸을 땐 반드시 무언가가 일어났으니까.’
이를테면 위기 감지 능력이었다.
이 또한 계승 3단계에 이르러 그림자 녀석의 경험과 감각을 흡수한 효과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나는 생각을 정리하는 한편, 곧바로 혼원현천신공을 운용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백은의 마나가 두 주먹을 휘감았다.
그 상태로 나는 충돌에 대비했다.
우선 힘으로 맞받아치려는 것이다.
판단을 끝마칠 무렵.
“하아압!”
어느새 내 사정권 안에 들어선 임강철이 힘차게 주먹을 내질렀다.
나는 거기에 맞서 복마구권으로 응수했다.
쩌-엉!
굉음과 함께 두 주먹이 맞닥뜨린 가운데.
“크윽, 역시 일한이……!”
임강철이 입가를 비틀었다.
내 일격에 담긴 위력이 그의 것을 상회하는 까닭이었다.
임강철은 주춤주춤 밀리는 와중에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그 대신.
씨익-
돌연 미소를 지었다.
이를 확인한 순간, 감각이 재차 경종을 울려댔다.
아니나 다를까.
고오오-
임강철의 주먹을 휘감은 마나가 크게 약동했다.
동시에 마나가 맞닿은 곳에서부터 이변이 일어났다.
쩌적-!
느닷없이 혼원현천신공의 마나에 미세한 균열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삽시간에 거미줄 같은 실금이 그어지더니 그대로 산산이 부서졌다.
“……!”
나는 두 눈을 부릅뜨며 곧바로 흑영신보를 펼쳤다.
칠흑빛 안개 속에 숨어들어 간격을 벌리는 한편, 임강철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자세히 보니 그의 양손을 휘감은 마나가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경종의 원인을 알아차렸다.
‘임강철이 가진 특성, 분쇄였나?’
임강철이 가진 특성, 분쇄 때문이었다.
나는 놀라움을 속으로 삼킨 채 방금 교환을 되새겼다.
‘힘에선 밀리지 않는데, 정면 대결은 힘들지도.’
마나량에 따른 위력은 분명 내 쪽이 우위였다.
하지만 임강철의 마나에 분쇄가 더해진다면, 지금처럼 유효타는 나오지 않을 터였다.
오히려 불필요한 마나 소모만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정직하게 정면으로 들어가 힘 싸움을 유발하는 건 가급적 지양해야 마땅했다.
‘그렇다면…….’
판단을 마친 즉시, 혼원현천신공의 흐름에 박차를 가했다.
다시금 백은색의 마나가 선명하게 일어나는 가운데.
화아앗-!
나는 안개화를 푸는 것과 동시에 자세를 취했다.
무영귀살각을 펼치기 위함이었다.
여태 여러 번 지적당했듯, 무영귀살각 특유의 준비 동작으로 인해 빈틈이 생긴 가운데.
임강철은 그 점을 노리고 빠르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타닷-
나는 이미 그와의 간격을 충분히 벌려놓은 상태였다.
“흐읍!”
호흡을 삼키는 것과 동시에 왼발을 축으로 삼아 상체를 뒤틀었다.
그 상태로 힘차게 오른발을 사선으로 차올리는 순간.
서걱-!
백은의 참격이 임강철을 향해 쇄도해 갔다.
그는 무영귀살각에 맞서 이번에도 역시 분쇄의 기운을 담은 일권으로 응수했다.
쩌적-!
조금 전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임강철이 분쇄로 참격을 박살 낸 것이다.
공세가 막혔음에도 나는 계속해서 무영귀살각의 후반부 초식을 연거푸 전개했다.
쿠구구궁-!
총 세 갈래의 참격이 임강철을 집어삼킬 기세로 쇄도했다.
그래서일까, 임강철은 굳은 낯빛으로 자세를 취했다.
일전에 봤던 호왕권이었다.
휘익-
제법 매서운 투로로 내지르며 참격을 분쇄시켜 버리는 임강철.
하지만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지금과 같은 소모전은 오히려 내가 바라던 바였기 때문이다.
‘정면 힘겨루기는 내 쪽의 소모가 더 크지만.’
지금처럼 간격을 두고 참격을 뿌린다면?
나와 임강철의 마나는 얼추 비슷하게 소모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먼저 나가떨어지는 쪽은 임강철이 될 터였다.
내 마나량은 차은월이나 오윤서 정도를 제외하면 견줄 사람이 없는 까닭이었다.
‘야속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최선의 수단을 택해 밀어붙이는 것.
이 또한 전력을 다하는 것이며, 그게 곧 상대를 향한 예의였다.
그런 일념으로 나는 계속해서 임강철과의 간격을 유지한 채 잇달아 참격을 일으켰다.
쩌-엉! 쩌저저적!
요란한 굉음과 함께 백은의 마나가 산산이 부서져 파편이 되어 흩날렸다.
그 속에서 임강철은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불리하다 여겼는지.
“……크윽!”
임강철은 돌연 이를 악물었다.
또다시 감각이 경종을 울리는 걸 보니, 아무래도 승부수를 띄우려는 모양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그는 기합을 터뜨리며 가일층 마나를 끌어올렸다.
“크하압-!”
결과는 곧바로 눈앞에 나타났다.
임강철이 참격을 박살 내는 것과 동시에 거기서 비롯된 충격을 추진력 삼아 순식간에 간격을 좁혀온 것이다.
“……!”
나는 순간 당황했으나 금방 정신을 차렸다.
동시에 임강철의 의도까지 단숨에 읽어냈다.
‘초근접전이라…….’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나 역시 마력뿐만 아니라 나머지 세 가지 스텟도 결코 꿀리는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충분히 해 볼 만했다.
판단과 더불어 나는 흑영신보를 펼치며 임강철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상태로 복마구권의 후반부 초식을 펼쳤다.
휘익-!
그렇게 지근거리의 육탄전이 시작된 가운데.
나는 또 한 번 임강철의 저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역시 타고난 감각은 나보다 한 수 위인가.’
나는 혼원현천신공의 반발력을 바탕으로 한 호신으로 공세를 막아 냈다.
반면 임강철은 스스로의 감각을 믿고 회피 위주로 대처했다.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로 내 공세를 피해가며 역으로 공격해 오는 것이다.
거기서 나는 새삼스럽게 임강철의 재능을 느꼈다.
‘하기야, 임강철은 그림자 녀석도 높게 평가했었지.’
사실 그림자 녀석의 입장에서 임강철은 다른 친구들과는 다소 느낌이 달랐다.
애초에 녀석은 내게 임강철을 두고 이름조차 들어 본 적 없는, 기억 속에 없는 사람이라 했다.
돌이켜 보면 그랬다.
윤설하부터 차은월, 오윤서, 심인욱, 백유진 등.
이 다섯은 김한석과 관련되어 있으며, 훗날 어떤 형태로든 이름을 날렸다.
반면 임강철은 그들과 달랐다.
‘임강철만큼은 처음부터 문제도, 정보도 없었으니까.’
이는 달리 말해 미래의 임강철이 수많은 초인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뜻이었다.
정확히는 다른 다섯 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진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림자 녀석은 이번 대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분명히 말했다.
‘임강철에게도 재능이,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그랬지.’
그와 손을 섞고 있는 지금.
나는 임강철을 향한 그림자 녀석의 평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타고난 감각, 야성적인 움직임.
이는 분명 내가 갖지 못한 재능이자, 나를 웃도는 요소들이었다.
바로 그 때문이었다.
화아앗-
항마멸인장을 사용하기로 결심한 것은 말이다.
특유의 요사스러운 기운이 스멀스멀 손바닥을 감싸는 가운데.
“……!”
임강철이 돌연 두 눈을 부릅떴다.
아무래도 그는 항마멸인장의 범상치 않은 위력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하지만.
‘상관없어.’
나는 개의치 않았다.
지금처럼 초근접한 상태에서 빗맞힐 정도로 내 수행이 얕지 않은 까닭이었다.
내 판단을 증명하듯.
“크윽!”
임강철은 다급한 표정으로 마나를 쥐어짜 냈다.
그의 안색에 핏기가 싹 가시는 한편, 또다시 유형화를 이룬 마나가 약동했다.
아무래도 그는 항마멸인장에 맞서 분쇄로 대처하려는 모양이었다.
이를 알고서도 나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항마멸인장도 마나를 깨부수는 데 일가견이 있는 무공이니까.’
무려 A급 마법사인 김한석의 방어 마법을 파훼한 무공이 바로 항마멸인장이었다.
그 위력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콰직-!
임강철의 마나에 커다란 균열이 일었다.
금이 가는 속도는 그의 분쇄가 발휘한 위력, 그 이상이었다.
마침내 그의 마나를 완전히 어그러뜨렸을 때.
척-
나는 임강철의 가슴팍에서 불과 한 치 앞에서 손바닥을 멈춰 세웠다.
무심한 눈빛으로 고개를 떨군 임강철을 주시했다.
“…….”
그러기를 수 초.
임강철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내 패배다……!”
그는 패배를 시인하는 한편, 어째선지 희열에 찬 미소를 내게 지어 보였다.
거기에 화답하듯, 나 또한 옅게 미소를 지었다.
“좋은 승부였어.”
대답과 함께 가볍게 악수를 나누는 순간.
주위의 친구들로부터 감탄이 쏟아져 나왔다.
* * *
임강철과의 대결이 끝난 이후.
일요일은 그야말로 정신없이 지나갔다.
다름 아닌 나와 임강철의 대결이 불러온 여파 때문이었다.
박진감 넘치는 구도 때문인지, 아니면 경쟁심을 불러일으킨 건지.
대련이 끝나자마자 때아닌 단련 열풍이 불어닥쳤다.
그 주역은 바로 내 친구들이었다.
“일한아, 나와도 한 판 붙어 줘!”
이채 가득한 눈빛으로 대련을 요청하는 윤설하부터.
“윤설하 다음은 내 차례다, 안일한.”
“앗! 인욱이, 너! 내가 먼저 부탁하려고 했는데!”
차례를 두고 티격태격하는 심인욱과 백유진.
심지어 차은월과 오윤서까지도 내게 대련을 청했다.
그로 인해 나를 비롯하여 친구들끼리 번갈아 가며 대련을 펼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저녁 시간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도 한참을 시달렸으니까.’
그 결과 기숙사에 돌아오자마자 뻗었고, 자고 일어나니 월요일 아침이었다.
교양 수업을 멍하니 보내자 순식간에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빠르게 먹고 오자, 일한이!”
그렇게 홀린 듯,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빠르게 반으로 돌아왔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아쉽지만, 약속은 약속이니까 나는 다른 팀을 찾도록 하지!”
본격적인 레이드 수업에 앞서 팀을 구성하고, 명단을 작성해야 하는 까닭이었다.
진태진 교관의 말에 따르면 5교시에 무기술 심화 수업으로 이동하기 전까지 명단을 제출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A반은 상당히 소란스러웠다.
대부분이 팀원의 명단을 작성하거나, 팀을 구하는 데 열을 올리는 가운데.
“임강철, 괜찮겠어?”
윤설하는 걱정을 떨칠 수 없었는지, 명단을 작성하면서도 여러 차례에 걸쳐 물었다.
차은월 또한 걱정스러운 기색을 띠긴 매한가지였다.
반면 임강철은.
“괜찮다! 어떻게든 될 거다!”
시종일관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다소 근거가 없다고 느껴진 까닭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렇게 된 이상…….’
함께할 순 없지만, 적어도 임강철이 팀을 구하는 걸 도와줘야겠다.
그리 마음을 먹고 슬슬 움직이려는 순간.
“저기, 임강철!”
등 뒤쪽에서 낯선 여자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연스럽게 나뿐만이 아니라 윤설하와 차은월, 그리고 당사자인 임강철의 고개까지 한꺼번에 돌아갔다.
그곳에는 여자애 한 명과 남자애 한 명이 서 있었다.
‘분명 김은솔하고, 장지석이었나?’
두 사람의 이름을 더듬더듬 떠올렸다.
이 두 사람은 기껏해야 면식이 있는 수준이라 기억하는 데 시간이 살짝 걸렸다.
‘분명 성적이 썩 괜찮은 애들이었지?’
여자애는 창을 썼고, 남자애는 마법을 택했으며 둘 다 반에서 10위권 안에 속하는 우수한 생도들이었다.
이런 식으로 차츰차츰 기억을 되살리고 있을 때.
“있잖아…….”
여자애, 김은솔에게서 뜻밖의 제안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