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도약할 때가 됐다는 거다, 애송이
같은 시각.
“후우, 심인욱. 넌 역시 강하군! 다시 한 판 가 볼까?!”
임강철은 이마의 땀을 훔치는 한편.
심인욱에게 대련을 한 판 더 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심인욱은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잠깐 쉬도록 하지.”
“뭐야, 벌써 지친 건가?”
“그게 아니다. 저길 봐라.”
심인욱은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임강철은 고개를 기울이면서도 심인욱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두 사람, 고태식 교관과 안일한이 대련을 펼치고 있었다.
이를 본 순간 임강철의 두 눈에 이채가 서렸다.
“역시 대단하군, 일한이……!”
작년과 다르게 마나를 아낌없이 활용하여 무차별적으로 참격을 퍼붓는 고태식 교관부터.
비록 열세이긴 하나 교관의 맹렬한 공세에 맞서 마나량으로 응수하는 안일한까지.
두 사람의 대련은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대단한 수준이었다.
여타 생도들의 대련과는 격이 다른 느낌에 임강철은 피가 끓어올랐다.
더불어 그는 뒤늦게 심인욱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일한이의 대련을 보고 난 다음에 하자는 거로군!”
“그래. 네가 진심으로 안일한을 꺾고 싶다면, 최우선으로 녀석의 전력을 낱낱이 해부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테니까.”
심인욱은 차분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그의 의견에 임강철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렇군!”
“그래서, 뭐가 좀 보이나?”
“일한이가 역시 대단하다는 것 정도는 알 것 같다!”
힘차게 대답하는 임강철.
“……하아.”
그의 대답에 심인욱은 이마를 짚는 한편, 한숨과 함께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확실히, 육감으로 승부를 보는 네게 분석 같은 건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임강철을 타박하는 대신 자신의 판단 착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심인욱이 그의 실력, 역량을 인정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분석은 이래도, 대련에서 보이는 임강철의 육감적인 움직임은 충분히 인정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심인욱은 마음을 달리 먹었다.
“그럼 내가 설명해 줄 테니 잘 기억해 둬라. 그 정도는 가능하겠지.”
임강철의 부족한 부분을 자신이 채워 주려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임강철은 일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윽고 반 박자 늦게 진의를 이해하고는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오, 물론이다! 고맙군!”
그렇게 임강철과 합의를 본 다음.
심인욱은 냉철한 눈빛으로 안일한의 대련을 주시했다.
동시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일한의 전투 스타일에는 몇 가지, 눈에 띄는 특징이자 장점이 있다.”
“특징?”
“그래. 가장 먼저 마나량이다. 방금 교관님의 참격을 똑같은 참격으로 막아 낸 걸 봤나?”
심인욱이 임강철에게 질문하려는 찰나.
때마침 고태식 교관이 주먹을 내질렀다.
그로부터.
쿠구구궁-!
맹호의 형상을 띤 황금빛 참격이 발출됐다.
이에 맞서 안일한은 빠르게 오른발을 차올리며 백은색의 참격을 일으켰다.
서-걱!
동일한 수법으로 맞선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 교관의 참격에 대항할 수 있을 정도로 안일한의 마나량이 빼어나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마나량을 바탕으로 한 힘겨루기는 가급적이면 피해라. 나도 자신하기 어려울 정도니까.”
“……그렇군!”
“그렇다고 육탄전도 쉽지는 않을 거다. 저걸 봐라.”
한차례 참격과 참격이 맞붙은 이후.
고태식 교관은 안일한의 빈틈을 노리고 빠르게 짓쳐들었다.
그대로 육탄전이 전개되자 안일한은 순식간에 열세에 몰렸다.
속절없이 밀리는 안일한의 모습을 주시하던 임강철은 일순 두 눈을 부릅떴다.
“……좀처럼 유효타를 허용하지 않는다. 심인욱, 설마 넌 그걸 말하고 싶었던 건가?”
“그래. 그게 바로 두 번째 특징, 노련함이다.”
분명 상황은 명백히 안일한에게 불리했다.
수세에 몰려 대처하기에 급급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구도에 비해 신기할 정도로 유효한 타격이 나오질 않았다.
이는 전적으로 순간순간 돋보이는 안일한의 판단력과 움직임 덕분이었다.
“겨울 방학 때만 해도 지금과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이따금씩 노련함이 드러나긴 했어도, 순간적인 기지에 불과했지. 지속되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는 건가?”
“아예 궤를 달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고태식 교관님이 수준을 끌어올리고 계시는데도 대련이 끝나지 않는 게 바로 그 증거다.”
실제로 고태식 교관이 퍼붓는 공세는 갈수록 맹렬함을 더해 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대련이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 바로 안일한의 실력을 방증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노련함이라……. 상당히 까다롭겠군.”
임강철은 모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고심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심인욱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괜찮다. 네겐 안일한에게는 없는, 너만의 비장의 무기가 있으니까.”
“그런가?”
“그래. 그러니 네게 가능성이 아주 없다고 볼 순 없다. 다만……”
심인욱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할 무렵, 슬슬 대련도 끝날 기미가 보였다.
변함없이 공세일변도를 자랑하는 고태식 교관과는 달리 안일한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처지는 것이다.
바로 그때, 안일한의 기세가 일변했다.
고오오-
그의 오른손에 백은색의 마나 대신 붉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확인한 순간, 심인욱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갔다.
그는 안일한의 손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저 무공이 나오면 사실상 가망이 없다고 생각해라.”
“……붉은 기운을 내뿜는 장법을 말하는 건가?”
요사스러운 붉은빛을 휘감은 장법.
심인욱은 그 무공이 발휘하는 파괴력을 떠올리는 한편.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맺었다.
“그래. 교관님 같은 괴물이라면 모를까, 현시점의 우리로선 막아 낼 도리가 없을 테니까.”
* * *
승부는 한순간에 결정됐다.
내가 가진 회심의 한 수, 항마멸인장을 발휘한 순간.
터억-!
고태식 교관이 순식간에 내 손목을 낚아채 버린 까닭이었다.
‘……아, 끝났군.’
속으로 패배를 인식하고 있을 때.
“애송이, 이런 위험천만한 무공은 또 언제 익힌 거지?”
고태식 교관이 어처구니없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그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가만히 고개를 수그렸다.
“……졌습니다.”
패배를 시인한 것이다.
그제야 고태식 교관은 내 팔을 놔주고 물러섰다.
동시에 기가 막힌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나 참, 네놈은 작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건 매한가지구나.”
“무슨 말씀이신지…….”
“네놈이 보여 주는 성장 속도가 상식의 범주를 벗어났다는 이야기다.”
“아.”
다름 아닌 나를 향한 극찬이었다.
고태식 교관은 단순히 칭찬에서 그치지 않고 피드백까지 이어 갔다.
“사실상 전투에 관해서는 네놈에게 딱히 해 줄 조언은 없다.”
“그렇습니까?”
“그래. 실력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지만, 그 이상으로 부족한 점, 단점을 메워 버렸으니. 나 원 참, 일개 생도 수준에서 그런 노련함을 보게 될 줄이야.”
거듭 생각해 봐도 어이가 없었는지, 고태식 교관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내색은 안 했지만, 나 또한 속으로 상당히 놀라고 있는 까닭이었다.
‘……의식의 온전한 공유가 설마 이 정도로 위력적일 줄이야.’
나는 계승 3단계, 온전한 링크 덕분에 그림자 녀석과 완전히 의식을 공유하게 됐다.
즉, 녀석의 감각, 경험이 전부 내 것이 된 셈이었다.
그 위력은 방금 대련으로 충분히 증명됐다.
‘교관님을 상대로 밀릴지언정, 지금까지 버틸 수 있게끔 만들어 줬으니까.’
체급에서 차이가 나는 만큼 본래라면 한참 전에 나가떨어졌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구도였다.
그럼에도 마지막, 회심의 한 수까지 사용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녀석에게 공유받은 경험 덕분이었다.
‘그림자 녀석, 그 이상일 거라더니.’
실로 그러했다.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새삼스럽게 납득하고 있을 때.
“뭐, 구태여 피드백을 하자면 기본 스텟 정도일 거다.”
고태식 교관이 나직하게 말을 이어 갔다.
“기본 스텟 말씀이십니까?”
“그래. 보아하니 마력 스텟은 상당히 높은 것 같은데. 나머지 세 가지 스텟이 못 따라갈 정도로 말이야.”
“어쩌다 보니…….”
말끝을 흐리자 고태식 교관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력은 굉장히 중요한 스텟이다. 등급이 높아질수록 더더욱 그렇지. 하지만.”
“네.”
“그럴수록 나머지 스텟도 신경을 써야 한다. 상투적인 말이 아니라 진실로 그렇지. 네 녀석도 바라고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제가 바라고 있다는 말씀은…….”
“체급 말이다. 계속해서 기본 수준에 머물러 있을 생각은 아닐 테고. 내 말이 틀리냐?”
“……!”
체급.
고태식 교관의 말을 듣는 순간, 뇌리로 여태까지 들었던 조언들이 하나둘씩 스쳐 지나갔다.
‘그 말씀은 지금…….’
고태식 교관의 물음은 달리 말해 내 체급이 기본적인 수준을 달성했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이를 증명하듯, 그는 입가를 비틀며 나직하게 덧붙였다.
“기본적인 체급은 이미 갖춰졌으니, 슬슬 도약할 때가 됐다는 거다, 애송이.”
도약할 때가 됐다.
그 말에 유난히 가슴이 뛰었다.
가만히 곱씹고 있을 때.
“그럼 이따 또 봐줄 테니, 쉬고 있도록.”
고태식 교관은 설렁설렁 손을 내저으며 멀어져갔다.
그렇게 혼자 남은 내 쪽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일한이, 멋진 대련이었다!”
다름 아닌 임강철이었다.
그와 더불어 뒤따라온 심인욱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두 사람이 여태까지 내 대련을 지켜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봤나 보네?”
“그래, 겨울 방학 때 봤던 것보다 실력이 더 늘었더군. 괴물 같은 녀석.”
심인욱은 투덜거리면서도 입꼬리를 슬쩍 들어 올렸다.
그는 이어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말했다.
“그래서 더욱 투지가 끓어오른다.”
“음?”
“너와 임강철의 대련 말이다. 나는 어떻게든 임강철이 널 꺾을 수 있게끔 조력할 생각이다.”
심인욱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리 단언했다.
그 모습이 조금은 낯설면서도 당황스러웠다.
‘……뜬금없이 불이 붙었네?’
어찌 된 영문인지, 심인욱 또한 당사자인 나와 임강철 만큼이나 이번 승부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썩 나쁘게 느껴지진 않았다.
‘이걸로 임강철과 균형이 맞게 되고, 결과적으로 좋은 승부를 펼칠 수 있게 된다면.’
오히려 내겐 기꺼운 일이었다.
새삼스럽게 승부욕이 끓어오르는 한편.
심인욱을 향해 옅게 웃으며 답했다.
“그래, 기대할게.”
* * *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 일요일.
임강철과 약속했던 날이 밝아왔다.
“준비됐나, 일한이?!”
“어. 가자.”
기숙사 방을 같이 쓰는 만큼, 나는 임강철과 함께 무기 훈련실을 향해 갔다.
훈련실에 도착한 순간, 익숙한 면면들이 우리를 맞이해 줬다.
다름 아닌 친구들, 윤설하와 차은월이었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백유진의 무리도 같이 있었다.
이유를 묻자 백유진은 천진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왔지! 게다가 인욱이도 적극적으로 도와줬다면서?”
“그거야 뭐.”
“그럼 우리의 문제나 다름없는 거니까! 맞지, 인욱아?”
백유진의 쾌활한 미소에 심인욱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안일한.”
그는 입꼬리를 슬쩍 들어 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마치 제 일처럼 승부욕을 불태우는 모습이 살짝 어이가 없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이제 슬슬 본론에 집중해야 하는 까닭이었다.
“해 보자고, 일한이!”
“그래, 나도 준비 끝났어.”
미리 교관님께 허가를 받아 둔 만큼, 우리는 곧장 대련을 위해 마주 섰다.
그 상태로 어느 정도 워밍업을 마쳤을 때.
“그럼 간다!”
임강철이 먼저 기합을 터뜨리며 내게 쇄도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