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그래야 재밌는 승부가 될 것 같으니까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일한이, 5교시는 무기술 심화 수업이다! 빠르게 가서 몸을 풀고 있는 건 어떤가?!”
“먼저 가 있어. 난 어디 좀 들렀다가 갈게.”
5교시 수업 장소로 이동하기에 앞서 나는 스텟 단련실을 향해 갔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그동안 스텟이 얼마나 올랐을지.’
신창백가에서의 수련부터 오윤진과 함께했던 게이트 공략, 마지막으로 마나 수정 섭취까지.
지난 겨울 방학 때 했던 수련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스텟 단련실에 도착한 즉시 근력 스텟부터 차례대로 스텟을 갱신했다.
그 결과.
-근력 스텟 48
-민첩 스텟 47
-체력 스텟 47
-마력 스텟 96
총합 238스텟, 이전과 비교해 대략 20스텟 넘게 상승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B급까지 앞으로 한 걸음 남은 건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성장세였다.
특히 마력 스텟은 규격 외나 다름없는 수치였다.
다른 스텟과 비교해 2배가량이나 높은 까닭이었다.
‘보통 이쯤 되면 스텟은 잘 안 오른다고들 하던데.’
본래 이맘때쯤이면 대부분 스텟 성장의 정체기가 오는 모양이었다.
그나마 윤설하나 백유진 등.
원래부터 타고난 이들이 아니고서야 단련 효율이 극악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기대감을 품을 수 있는 건 성장 스킬, ‘초성장’ 덕분이었다.
‘과연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나는 기분 좋은 상상과 함께 스텟 단련실을 벗어났다.
그 길로 곧장 5교시 수업이 진행되는 2층 소훈련실을 향해 갔다.
훈련실 내부에는 나보다 한발 앞서 도착한 임강철이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아직 점심시간이 끝나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었다.
“오, 일한이! 갔다 왔나?”
“어. 같이 하자.”
“좋아!”
그렇게 5교시가 시작될 때까지 몸을 풀고 있을 때.
“둘 다 일찍 왔군.”
등 뒤에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름 아닌 심인욱이었다.
그를 향해 임강철은 반가운 기색으로 소리쳤다.
“마침 몸을 풀고 있었다! 심인욱, 너도 함께하지!”
“그래.”
심인욱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합류했다.
친근하게 구는 임강철과 별다른 내색 없이 받아 주는 심인욱.
특히 심인욱의 경우, 다소 날이 서 있던 예전 모습을 생각하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방학 때 함께 수련했던 덕분이려나?’
시답잖은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
“그나저나 너희 둘, 팀 구성은 잘 하고 있나?”
심인욱이 팀 구성에 관한 화제를 꺼내 들었다.
나는 대답하기에 앞서 그에게 되물었다.
“너는?”
“난 이미 팀 구성을 끝냈다.”
“빠르네? 어떻게 짰는데?”
“오윤서,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검을 사용하는 생도다. 실력이 썩 나쁘지 않더군.”
한 명은 오윤서,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검을 사용하는 상위권 생도.
즉, 근접 둘에 원거리 한 명으로 구성한 모양이었다.
‘오윤서라……. 그렇게 티격태격하더니, 의외로 마음이 맞았나 보네.’
언뜻 보기에도 밸런스가 괜찮아 보였다.
그런 감상을 떠올리고 있을 때, 심인욱이 재차 질문해 왔다.
“그래서, 너희 둘은?”
심인욱의 나직한 물음에 무어라 입을 열려는 찰나.
나보다 한발 앞서 임강철이 대답했다.
“난 일한이와 자리 경쟁을 하기로 했다!”
“자리 경쟁? 그게 무슨 뜻이지?”
“윤설하와 차은월, 두 명에 남은 한 자리를 걸고 승부하기로 했지!”
“호오, 너희 둘이 경쟁이라. 그건 또 의외로군.”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는지, 심인욱은 나직하게 탄성을 흘렸다.
사실 이상할 것 하나 없는 반응이었다.
임강철과 나는 그야말로 아카데미 입학시험부터 지금까지 줄곧 붙어 지내온 까닭이었다.
“승부라……, 그렇다는 말은 둘이서 대결을 펼치겠다는 건가?”
심인욱은 나와 임강철의 승부에 흥미를 느꼈는지, 옅은 미소와 함께 중얼거렸다.
이를 증명하듯.
“그럼 내가 도와주도록 하지.”
선뜻 나서서 조력을 제안해왔다.
예상지 못한 심인욱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도와준다니?”
“대련으로 결판을 내는 게 아닌가?”
“맞아, 대련. 이번 주 일요일에 할 예정이니까.”
“그럼 상대가 필요하지 않겠나?”
그제야 심인욱의 제안이 이해됐다.
임강철과의 대련에 앞서 기꺼이 연습 상대가 되어 주려는 것이다.
‘이건 상당히 도움이 될지도.’
심인욱만 한 실력자가 연습을 도와준다면 꽤나 도움이 될 것이다.
판단을 마치고 제안을 받아들이려는 순간.
스윽-
심인욱의 고개가 살짝 돌아갔다.
그의 시선이 가닿은 곳에는.
“음?”
임강철이 멀뚱멀뚱 서 있었다.
심인욱은 그런 임강철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난 임강철을 돕겠다.”
그의 발언에 나는 물론, 옆에 있던 임강철까지도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심인욱은 어안이 벙벙한 우리 둘을 향해 씨익 웃으며 덧붙였다.
“그래야 재밌는 승부가 될 것 같으니까.”
예상지 못한 발언과 심인욱답지 않은 미소에 잠깐 당황한 사이.
“오, 그건 고맙군! 잘 부탁한다, 심인욱!”
임강철은 호탕하게 웃으며 심인욱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그로 인해 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버렸다.
생각지도 못한 흐름에 당황하고 있는 사이.
“다들 모였나?”
어느새 시간이 됐는지, 5, 6교시 수업을 맡은 고태식 교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업 시작이다, 애송이들! 빨리 이쪽으로 집합해라!”
변함없이 우렁찬 목소리에 생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가자!”
고태식 교관의 지시 때문에 나는 무어라 항변할 틈도 없이 친구들과 걸음을 옮겼다.
* * *
5교시, 무기술 심화 수업은 작년에 했던 수업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딱히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알려 주는 대신.
“각자 수준에 맞게 짝을 지어 대련하도록! 제한? 그런 건 없다!”
자율적인 대련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이제는 2학년이 된 만큼, 어지간한 부분은 전부 가르쳤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하나둘씩 짝을 이뤄 대련을 펼치는 가운데.
‘……진짜 임강철만 도와주려는 모양이네.’
나는 심인욱과 임강철, 두 사람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들은 내겐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서로를 마주 보며 대련 준비에 한창이었다.
덕분에 지옥 코스에는 나 혼자만 남아 있었다.
‘……시험해 봐야 할 부분들이 많은데.’
나는 소외감 속에 미리 생각해 둔 계획을 더듬었다.
이번 실기 수업을 통해 확인하고자 했던 문제가 한가득 있었다.
‘계승도 그렇고, 방학 때 얻은 세 가지 스킬도 실전에서 써 보려 했건만…….’
비단 3단계 계승뿐만이 아니었다.
겨울 방학 때 오윤진과의 게이트 동행을 통해 습득한 세 가지 스킬.
‘마나 친화’, ‘무색무취’, ‘순환 가속’의 효과를 확인해 보고, 활용하는 법을 익히고자 했다.
‘그래야 온전히 내 전력이 될 테니까.’
본래 계획은 그랬건만.
지금은 의도치 않게 붕 떠 버렸다.
그렇게 멍한 표정으로 심인욱과 임강철의 대련을 바라보는 사이.
저벅저벅-
문득 근처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이, 애송이! 방학은 잘 보냈나?”
다름 아닌 고태식 교관이었다.
간단하게 인사를 건네자 그가 말을 이어 갔다.
“보아하니 상대가 없는 모양이로군.”
고태식 교관은 단번에 내 사정을 파악했다.
다행히 그의 말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럼 어디, 애송이의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한번 보도록 할까?”
기꺼이 내 상대가 되어 주려는 것이다.
나는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고태식 교관님이라면 오히려 더 좋을지도.’
신창백가에서 수련할 당시.
내 친구들이 아닌 백유진의 숙부님, 백천기와의 대련은 내게 커다란 도움이 됐다.
전력을 다할 수 있을뿐더러,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을 핀셋처럼 콕 집어 피드백을 해 준 까닭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기대감을 품으며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고태식 교관은 재미있다는 듯, 입가를 비틀며 말했다.
“애송이, 방학 때 뭘 집어 먹었는지는 몰라도 기세가 상당해졌구먼. 재밌겠어.”
그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작년 개인 교습 당시 무지막지하게 시달린 탓에 공포감이 몸에 밴 모양이었다.
쓸데없는 감정을 애써 떨쳐내고 있을 때, 고태식 교관이 나직하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애송이. 살짝 거칠 수도 있으니, 정신 똑바로 차려라. 알겠냐?”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순간.
“그럼 간다!”
고태식 교관이 비뚜름한 미소와 함께 짓쳐들었다.
육중한 체구에 걸맞지 않게 속도가 엄청났다.
그것만 봐도 고태식 교관이 체내 마나를 아낌없이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방심했다간 만신창이가 될지도.’
A급 초인이 작정했을 때,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이미 겨울 방학 동안 뼈저리게 느꼈다.
그런 경각심 덕분일까.
화악-!
나는 늦지 않게 흑영신보를 전개할 수 있었다.
칠흑빛 안개 속에서 유영하는 한편, 벌써부터 새로운 스킬의 효과를 체감할 수 있었다.
다름 아닌 ‘마나 친화(C)’였다.
‘교관님의 움직임이 보인다……!’
그의 단단한 신체를 폭발적으로 질주하는 마나의 흐름이 눈에 훤히 보였다.
덕분에 고태식 교관이 발휘하는 속도에 상관없이 그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또 재밌는 기교를 주워 왔구먼!”
고태식 교관은 그 사실조차 단번에 꿰뚫어 봤다.
안개 속에서, 그것도 그의 움직임에 반응한다는 사실만으로 내 스킬의 효과를 알아차린 것이다.
‘……이런 괴물 같으니라고.’
나는 혀를 내두르는 한편, 빠르게 전략을 수정했다.
저 정도로 반응한다면, 사각을 노려 봤자 별 의미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면에서 강경하게 나가는 편이 훨씬 유효할 것 같았다.
나는 판단과 동시에 안개화를 풀고 속도를 높였다.
사아악-
더불어 새로 얻은 스킬, ‘순환 가속’을 발휘했다.
그 순간.
쿠구구궁-!
체내의 혼원현천신공의 마나가 급물살을 탔다.
거대한 흐름이 가일층 빨라지자 그만큼 체내에 작용하는 부하가 가중되는 느낌이었다.
그 대신.
쩌-엉!
한층 폭발적인 속도를 발휘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고태식 교관에게 짓쳐드는 한편.
그의 사정권에 이르러 복마구권의 후반 초식을 연거푸 전개했다.
후웅-!
백은의 마나를 휘감은 일권이 날카롭게 쇄도했다.
거기에 맞서 고태식 교관은 입가를 비틀며 마주 주먹을 내질렀다.
“흥!”
일순간 황금을 머금은 고태식 교관의 일권이 내 시야를 뒤덮었다.
아니,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강맹했다.
하지만.
“흐아압!”
나는 공격을 거둬들이는 대신, 기합과 함께 뻗은 주먹에 힘을 더했다.
여태 기본 스텟도 상당히 성장한 만큼 힘겨루기에도 승산이 있을 거라 판단한 까닭이었다.
그대로 맞붙는 순간.
쩌-엉!
어마어마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맞닿은 주먹으로부터 충격이 전해졌다.
“크, 윽!”
충격으로 인해 전신이 조금씩 밀리는 가운데.
고태식 교관이 코앞에서 입가를 잔뜩 비틀며 소리쳤다.
“제법 기개가 있구나, 애송이!”
상당히 만족스러워 보이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기뻐할 틈은 없었다.
그의 칭찬은 곧.
‘……더 큰 게 온다.’
대련 수준을 한층 끌어올릴 거란 신호와도 같았으니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가만히 두 손 놓고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온몸의 감각이 내게 계속해서 속삭였다.
현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어떻게 반격을 가해야 회피할 틈을 자아낼 수 있을지.
인식한 순간.
‘이게 바로 그림자 녀석이 말했던 효과……?’
나는 불현듯 계승의 새로운 효과가 무엇인지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