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단언컨대 그 이상일 거다
“그럼 결정됐군!”
임강철은 내 대답을 긍정으로 받아들이고는 쾌활한 미소를 지었다.
그걸로 나와 임강철의 대결이 성사됐다.
이후 과정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이번 주 일요일 오전 10시에 무기 훈련실? 알겠다!”
약속 시간과 약속 장소.
더불어 대련에서 지는 사람이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조건까지.
굵직한 합의를 모두 끝마친 다음.
“허가는 미리 받아 두는 거로 하자. 내가 내일 교관님께 가서 신청해 둘게.”
세부적인 부분까지 조율을 마쳤다.
그렇게 나와 임강철이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나머지 두 사람, 윤설하와 차은월은 계속해서 우리 둘의 눈치를 봤다.
그런 두 사람의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 임강철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마! 우리 둘 다 원해서 하는 거니까! 그렇지, 일한이?”
“어.”
임강철과 나의 쾌활한 문답을 듣고 나서야 두 사람은 겨우 납득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렇게 임강철과의 대련을 성사시킨 후, 우리는 식사를 마저 진행했다.
점심 식사를 끝낸 후.
“그럼 우린 기숙사로 돌아갈게.”
“내일 봐, 일한아!”
윤설하와 차은월은 곧장 기숙사로 돌아갔다.
반면 임강철은 투지를 불태우며 학기 첫날부터 곧바로 스텟 단련실을 향했다.
“그럼 오늘부터 특훈이다! 각오하라고, 일한이!”
아무래도 나와의 대결을 대비하여 맹훈련에 임하려는 모양이었다.
마지막으로 나의 경우.
‘임강철이 자리를 비워 줘서 다행이네.’
생각해 둔 일이 있는 까닭에 곧장 기숙사 방으로 돌아왔다.
마침 임강철도 자리를 비웠겠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그림자 녀석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래지 않아 대답이 돌아왔다.
‘들려?’
-그래. 무슨 일이지?
‘알다시피 오늘 개학했잖아. 있었던 일을 간단히 공유해 주려고.’
그렇게 운을 떼는 한편.
나는 녀석에게 시업식 때 들었던 ‘초인 국제 대회’에 관한 설명부터.
임강철과의 대련을 비롯한 팀 구성 문제와 내가 세운 계획에 이르기까지.
오늘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음, 확실히 3명이라면 윤설하와 차은월과 팀을 맺는 게 최선이겠군. 동의한다.
그림자 녀석은 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렇게 근황을 공유한 다음.
‘그나저나 슬슬 알려 줄 때가 된 것 같은데.’
-뭐가 알고 싶지?
‘네가 전에 말했던 계획, 두 번째 단계 말이야.’
나는 그림자에게 대화를 요청한 목적을 밝혔다.
다름 아닌 녀석이 가진 계획에 관해서였다.
‘분명 계획, 두 번째 단계는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한다고 했었지?’
겨울 방학도 다 지나가고, 이젠 어엿한 2학년이 됐다.
그러니 슬슬 알아둬야 할 것 같았다.
녀석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별다른 반발 없이 내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래,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질문해라.
‘지난번에 간략하게 설명해 줬을 때, 낙일을 노리는 게 아니라 그들이 목표로 삼고 있는 대상한테 먼저 접근할 거라고 했었지?’
-그렇지.
‘이 부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해 줘.’
내 질문에 녀석은 대답 대신, 도리어 나를 향해 되물어왔다.
-혹시 이전에 내가 말했던 내용을 기억하는가?
‘그렇게 말하면 나야 모르지. 우리가 여태 나눈 이야기가 한두 가지도 아니고.’
-그것도 그렇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네게 제공하기로 약속한 부분에 관한 이야기다.
‘으음, 뭔가 기억이 날 듯 말 듯한데.’
무언가가 뇌리에 떠오르는 찰나.
-내가 네게 제공하는 건 비단 일신의 무력, 역량뿐만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내가 대답하기에 앞서 그림자가 속 시원히 밝혔다.
‘아, 분명 그런 말도 했었지. 인맥이라고 했었나?’
-그래. 우리를 도와줄 사람들이 존재한다.
다름 아닌 인맥이었다.
뒤늦게 기억을 떠올리는 한편, 여전히 남아 있는 의문을 언급했다.
‘도와줄 사람들이라면, 오윤진 말고도 더 있는 거야?’
-그래.
‘으음, 그럼 대체 어떻게 접근하는데? 설마 그 사람들에게도 작년에 친구들한테 했던 것처럼 해야 돼……?’
-아니, 앞으로는 그럴 필요 없다.
녀석의 대답에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다가가 안면을 트고, 관계를 쌓아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 과정은 생각보다 지난한 일이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애초에 그들은 너의 정체와 능력을 단번에 알아차릴 거다. 굳이 처음부터 관계를 쌓아 나갈 필요 없이 바로 협력해 줄 거다.
‘정체와 능력?’
-네가 미래를 알고 있으며, 나와 함께 예정된 파멸을 막아 내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부분까지. 그들은 전부 알고 있다.
내가 가진 비밀을 전부 꿰고 있을 거라니.
그림자의 대답에 입이 쩍 벌어졌다.
‘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야?’
-그게 그들이 가진 미구현 특성의 능력이다.
미구현 특성.
이 한마디로 불가해한 현상의 대부분은 설명이 됐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점에 살짝 불만스러웠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내가 남 말 할 처지는 아니니까…….’
그렇게 납득하는 한편.
‘그럼 나는 네가 말한 그 대단한 사람들에게 접근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다시금 본래 화제로 돌아와 질문을 던졌다.
녀석은 나직하게 긍정하며 대답을 이어 갔다.
-일단은 그렇다. 그게 우리에게 있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되겠지.
‘그걸 위해서라도 국제 대회에는 반드시 출전해야 하는 거고?’
-그렇지 않고서야 그들에게 접촉할 길이 없다. 상대는 그만큼 격이 높으니까.
‘격이 높다라…….’
상상이 잘 안 됐다.
그림자가 언급한 ‘상대’를 향한 의문이 무럭무럭 커져 갈 무렵.
머릿속에서 재차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하지 않았나. 인맥이라고. 그들은 단순히 우리의 일을 응원해 주는 존재들이 아니다.
‘그럼?’
-우리의 목표를 이룰 수 있게끔 조력할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집단이다.
‘집단이라…….’
갈수록 의문투성이였다.
그렇다고 상념에만 빠져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의문을 잠깐 미뤄 둔 채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당분간 레이드 시합에 집중해야 된다는 거잖아. 그렇지?’
-국제 대회 출전까지는 그렇다.
‘알겠어. 대충 그렇게 알고 있을게.’
대답과 함께 대화를 끝내려는 찰나.
문득 뇌리에 의문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그나저나 새로 뭐, 줄 만한 능력 없어? 동기화율이 49%에 오른 지도 꽤 된 것 같은데.’
다름 아닌 동기화율에 관한 부분이었다.
이제 곧 50%를 목전에 두고 있는 만큼, 뭔가 새로운 능력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밤이면 알게 될 거다.
그림자 녀석에게서 기대하던 답변이 흘러나왔다.
* * *
그날 밤.
-대상의 무의식 상태를 확인.
-대상의 주도권이 [????의 그림자]에게로 넘어갑니다!
-대상과의 동기화율을 확인.
-현재 동기화율…… [50%]
-[????의 그림자]가 연륜에 따른 분별력과 미래시(未來視)의 일부가 담긴 기억, 그리고 의식에 따라 행동합니다!
-의식에 각인된 [스킬]이 활성화됐습니다!
…
…
…
그림자는 동기화율 50% 달성과 함께 눈을 떴다.
한층 선명해진 의식 속에서 변화를 체감하는 한편, 특정 메시지를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 기대하던 문구가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동기화율이 일정 수치에 도달했습니다!
-일정 수준의 [계승]이 이뤄졌습니다!
-의식의 연결이 완료됐습니다!
세 번째 계승.
연결의 세 번째 단추가 채워진 것이다.
확인한 즉시 그림자는 머릿속으로 안일한을 호출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어? 꿈이 아니야?
녀석은 어안이 벙벙한 듯,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런 반응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그림자는 차분하게 물었다.
‘뭐가 보이지?’
-내 방, 기숙사잖아? 잠깐만, 이거 설마…….
안일한은 뭔가 짚이는 바가 있었는지 말끝을 흐렸다.
이윽고 녀석은 조심스럽게 생각해낸 답을 입에 담았다.
-네 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거야 지금?
‘정확하다. 게다가 이젠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계승이 3단계에 도달한 순간부터 그랬다.
그림자와 안일한. 둘의 의식이 온전히 연결된 것이다.
그제야 안일한은 나직하게 탄성을 터뜨렸다.
-이게 새로운 능력이구나…….
‘아직 끝이 아니다.’
-끝이 아니라니?
‘지켜보면 알게 될 거다.’
대답과 동시에 그림자는 몸을 일으켰다.
그대로 기숙사를 빠져나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마력 단련실이었다.
그림자는 텅 빈 단련실의 한가운데에 가부좌를 틀더니, 곧장 마나 심법을 운용했다.
그러자.
-……이 감각은 설마.
이번에도 역시 안일한에게서 즉각적인 반응이 나왔다.
그림자는 얌전히 긍정하며 말문을 열었다.
‘그래, 의식뿐 아니라 감각 또한 공유할 수 있다.’
-감각까지 공유할 수 있다면…….
‘새로이 네게 무공을 전수할 때 수고를 덜 수 있겠지.’
꿈속에서 선보이고, 낮에 따로 단련하는 등.
이제는 따로 무공이나 스킬을 전수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의식과 감각을 공유하는 만큼, 그림자가 익히는 것만으로도 단련 및 습득 경험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이해했는지, 안일한은 나직하게 탄성을 흘렸다.
-……이건 좀 대단한데?
그의 평가에 그림자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단언컨대 그 이상일 거다.’
-그 이상이라니? 설마 효과가 더 있는 거야?
‘그래. 나머지는 직접 활용해 보면 알게 될 거다.’
-그건 또 기대되네. 그나저나 궁금한 게 있는데.
‘뭐지?’
-애초에 네가 윤진호 박사님이나 다른 사람들의 능력을 바탕으로 이뤄진 거라면, 내가 가진 미구현 특성의 진짜 능력은 도대체 뭐야?
안일한의 물음에 그림자는 잠시 침묵했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살짝 뜸을 들이던 그림자는 천천히 대답했다.
‘……그 부분은 지금 말해 주기는 조금 애매할 것 같군. 언젠간 알게 될 거다.’
-흐음, 그래? 일단 알겠어.
다행히 안일한은 별다른 반발 없이 받아들였다.
그림자는 녀석의 존재를 뒤로한 채 잠깐 동안 상념에 잠겼다.
‘그때쯤이면.’
계획이 최종 국면에 접어들 때이자.
모든 일의 최후와 대면하는 시점이 될 터였다.
‘그때가 되면…….’
가만히 속으로 되뇌는 한편.
그림자는 다시금 마력 단련에 집중했다.
* * *
다음날.
나는 오전 교양 수업 시간을 활용하여 새로운 능력에 관한 생각을 정리했다.
가장 먼저 상태창을 살펴봤다.
[특성]
-????의 그림자
동기화율 50%
계승 3단계 –온전한 링크-
2단계였던 계승이 3단계로 변경되고, 일시적인 링크가 온전하다는 수식어로 바뀌었다.
이어서 몸 상태를 점검했다.
그러자 녀석의 존재감이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이게 바로 의식을 완전히 공유하는 감각인가.’
대화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금방 대답이 돌아왔을뿐더러, 30분이라는 제한 시간도 사라진 상태였다.
사실상 이제는 녀석과 의식이 완전히 연결됐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더욱이 이전의 계승과는 달리 두통이 일거나 하는 반동도 없었다.
‘게다가 밤새 그림자 녀석의 마력 단련 감각을 공유했는데도 피로하지도 않고.’
추측건대 이는 ‘초회복’ 스킬 덕분인 듯했다.
그렇게 새로운 능력의 이모저모를 하나둘씩 갈무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녀석의 설명이 떠올랐다.
-나머지는 직접 활용해 보면 알게 될 거다.
그림자가 언급한 ‘나머지 효과’.
녀석의 말에 따르면, 이 부분은 직접 활용해 봐야 제대로 알 수 있는 모양이었다.
‘분명 실기 수업 때쯤이면 알 수 있을 거라 했었지?’
녀석이 덧붙인 설명을 새삼스럽게 되새기는 한편.
설레는 마음으로 실기 수업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