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나머지는 네 몫이란다
“일한이 넌 내가 봐주는 편이 좋을 것 같구나.”
“……!”
백천기의 말에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깜짝 놀란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숙부님, 정말 직접 봐주시게요?”
내 친구들은 물론, 백유진까지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질문하는 것이다.
백천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유를 설명했다.
“그래. 하지만 그게 일한이가 너보다 뛰어나서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무기의 이해도는 네 쪽이 더 높으니 말이다.”
“그럼요?”
“일한이의 성향이 극단적인 실전 지향이기 때문이다.”
실전적인 스타일.
이는 조금 전에도 들은 이야기였다.
이번에는 과연 어떤 내용일지, 호기심이 동했다.
때문에 나는 백천기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게다가 일한이의 스타일은 마치 강적을 상대하는 걸 상정한 것처럼 다소 거칠고 무모한 기질이 있다. 그만큼 서로에게 위험하지.”
“……아, 저도 그런 느낌을 받은 것 같긴 해요.”
백유진은 납득이 간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나는 그가 공감한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강적을 상대하는 것을 가정한 전투 스타일, 이는 나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그림자 녀석의 목표를 생각하면 뭐.’
녀석의 최종적인 목표는 무려 예정된 파멸을 막아 내는 것이었다.
일의 중차대함이나 난이도를 고려하면 다소간의 거친 수단을 택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됐다.
더욱이 공교롭게도 녀석이 추구하는 방향성은 내 성향과도 잘 맞았다.
‘……일단은 녀석이 미래의 나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이려나.’
나도 모르게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더욱이 지금의 일한이에게 필요한 건 엇비슷한 수준의 대련이 아니다.”
백천기가 설명을 이어 갔다.
나는 다시금 신경을 그쪽으로 돌렸다.
“그럼 뭐죠?”
“바로 체급을 키우는 것이다.”
“……체급.”
“강적을 상대할 때 네가 가진 회심의 한 수가 네 목숨을 구할 순 있겠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차선에 불과하다.”
“그럼 최선은 무엇인가요.”
“최선은 상대와 동수, 혹은 상대를 웃도는 역량, 실력을 갖추는 거다. 그걸 위해선 경험을 축적하고 꾸준히 스텟을 단련하는 것만이 능사지.”
체급을 키우는 것. 지극히 정론이었다.
하지만.
“내가 도와주마.”
백천기는 단순히 훈계에서 그칠 생각이 없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그 점이 기껍게 다가왔다.
“내가 상대라면 전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을 거다. 조금 전에 머뭇거렸던 그 수법까지 포함해서 말이지.”
“……그렇군요.”
“경험도 마찬가지다.”
백천기는 말을 맺는 것과 동시에 창을 쥔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허공을 세 차례 찔러 넣으며 말을 이어 갔다.
“근접 무기군을 상대하는 경험은 물론…….”
이어서 백천기는 느닷없이 마나를 일으켰다.
선명한 청록색 마나가 창날을 휘감더니 하나의 형상을 이뤄 갔다.
다름 아닌 창룡이었다.
그대로 창을 뻗는 순간.
쿠구구궁-!
육중한 참격이 대련실 내부를 가로질렀다.
마법사가 발휘한 공격 마법을 연상케 하는 규모였다.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 준 다음, 백천기는 나직하게 덧붙였다.
“원거리 무기군을 상대하는 경험까지. 전부 내가 메워 주마. 그러니…….”
백천기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나직하게 덧붙였다.
“나머지는 네 몫이란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속으로 확신했다.
‘나는 더 강해질 수 있다.’
나는 다짐과 함께 백천기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
…
…
모두가 열정적으로 수련에 임하는 가운데.
신창백가에서의 시간은 그야말로 쏜살같이 흘러갔다.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나를 비롯한 내 친구들 모두 눈에 띄는 성취를 보였다.
가장 먼저 윤설하와 임강철.
특성의 활용법을 익힌 두 사람은 이제 대련에서도 특성을 곧잘 써먹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다음, 차은월과 오윤서.
둘은 원래 사이가 안 좋았는지 처음에는 서로 데면데면했다.
그러나 둘 다 향상심이 확고한 까닭에 한 달 내내 치열하게 대련을 벌이며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 갔다.
백유진과 심인욱.
이들에 이르러선 두말할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애초에 둘 다 수준이 높은 데다가, 상대는 신창백가의 기재이자 우리보다 두 살 많은 백유성이었다.
그 결과 시선을 사로잡는 수준의 혈전이 매일매일 벌어졌고, 둘의 실력은 그야말로 수직상승했다.
마지막으로 나.
나는 백천기의 지도아래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내가 가진 모든 패를 활용해서 부딪히고, 거기서 유의미한 데이터를 얻은 건 물론.
백천기가 처음에 강조한 기초 체급도 두드러지는 성장을 보였다.
그 결과.
-근력 스텟 45
-민첩 스텟 43
-체력 스텟 44
-마력 스텟 83
총합 215스텟, C+급을 달성했다.
본래라면 갈수록 스텟의 성장 속도가 느려져야 정상이었다.
이는 명실상부 천재라 불리는 윤설하, 백유진, 차은월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한 달 만에 C+급을 찍을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초 성장’ 스킬 덕분이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갈무리하고 난 다음, 나는 슬슬 본가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뭐? 벌써 돌아간다고?”
“어, 방학 기간에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다름 아닌 그림자의 계획을 따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나는 수련을 도와준 백천기와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서둘러 출발한 덕분인지, 아버지가 주무시기 전에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돌아왔냐. 안색이 좋아 보이는구나.”
“네.”
한 달 만에 만났음에도 아버지와의 대화는 언제나처럼 무미건조했다.
이미 익숙한 까닭에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오히려 아버지께서 밤에 일하시니 적당히 대화를 끝내려고 했다.
방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남은 방학 동안에는 집에 있을 거냐?”
아버지가 무심한 어조로 물어보셨다.
이에 나는 적당히 둘러대듯.
“아뇨. 주기적으로 친구 집에 갈까 싶어요.”
거짓을 입에 담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림자 녀석, 아무리 그래도 불법적인 일을 시키다니.’
그림자가 본래 방학 기간에 계획했던 일.
그게 명백한 범법 행위에 해당하는 탓이었다.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는 말에 결국 받아들였다.
주기적으로 친구네 집에 들른다는 건 바로 이를 얼버무리기 위함이었다.
“그래.”
아버지는 별다른 의문 없이 몸을 돌렸다.
나도 슬슬 나갈 채비를 하기 위해 방으로 돌아갔다
간단하게 짐을 챙기며 머릿속으로 그림자 녀석이 알려 준 장소를 헤아렸다.
‘강원도 속초 쪽으로 가라고 했지.’
꽤나 오래전부터 계획한 까닭인지, 녀석은 미리 약속을 잡아 둔 모양이었다.
설명은 가서 하겠다며 나한테는 그저 시간과 약속 장소만 전해 줬다.
나도 어느새 적응한 모양인지.
‘뭐, 가 보면 알게 되겠지.’
별다른 의문 없이 그러려니 하고 집을 나섰다.
…
…
…
몇 시간에 걸쳐 이동하여 속초에 도착하고, 또 거기서 삼십여 분 정도 움직인 끝에 목적지에 도달했다.
‘인적이 드문 야산이라니.’
대체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건지.
의문과 함께 입구 쪽에서 서성이고 있을 때.
“많이 기다렸니?”
왠지 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정체를 직감하는 것과 동시에 고개를 돌리자 예상했던 인물이 서 있었다.
‘……오윤진.’
달그림자 길드의 수장이자, ‘재앙의 마녀’라는 이명을 가진 빌런.
그리고 그림자 녀석이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 오윤진이었다.
살짝 당황했으나.
‘그래서 이런 야산의 입구를 약속 장소로 정한 건가?’
뒤늦게 이런 장소에서 만나는 이유를 이해했다.
현재 세간에서 오윤진의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그녀는 뒷세계에 속한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양지는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렇게 납득하는 한편,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내 대답에 오윤진은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녀의 접근을 주시하는 것과 동시에 나는 머릿속으로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오윤진과 만났어.’
계승을 발휘한 것이다.
오래지 않아 녀석으로부터 대답이 돌아왔다.
-시간에 맞춰 온 모양이군.
‘어. 이제 슬슬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알겠다.
그림자 녀석은 순순히 수긍했다.
그렇게 설명에 집중하려는 순간.
“자, 이거 받으렴.”
오윤진이 내게 명함 비스무리한 기기를 건넸다.
홀로그램 화면 속에는 ‘김성현’이라는 엉뚱한 이름과 더불어 C급이라는 등급이 새겨져 있었다.
‘……이거 설마.’
순간 머릿속에 기기의 정체가 스쳐 지나갔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떠올린 바를 입에 담았다.
“초인, 라이선스?”
“맞아. 힘들게 구한 거야. 다시 구하긴 힘드니까 게이트에 들어가서도 간수 잘해야 한다?”
“이거 설마 위조…….”
“당연한 걸 묻네? 네가 요청한 거잖니?”
이상한 걸 묻는다는 듯, 오윤진은 나를 향해 가볍게 눈을 흘겼다.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그러고는 속으로 그림자 녀석에게 질문했다.
‘초인 라이선스를 위조한 거야? 게다가 게이트라니.’
-네 성장을 위해 준비한 것들이다. 초인 라이선스가 있어야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
‘아니, 그건 맞지만……. 그럼 오윤진, 이 사람은 이걸 전해 주러 여기까지 온 거야?’
-아니다.
‘그럼?’
-남은 방학 동안 그녀가 네 스승이 되어 줄 거다.
‘……!’
스승이라니, 전혀 예상치 못한 흐름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림자는 제 할 말을 이어 갔다.
-그녀와의 동행을 통해 방학 동안 실전 경험과 스킬, 마지막으로 스텟까지. 한꺼번에 취할 수 있을 거다.
경험과 스킬, 그리고 스텟.
하나같이 내게 이로운 요소들이었다.
하지만.
‘……실전 경험이나 스텟은 그렇다 쳐도, 스킬은 대체 어떻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건…….
녀석이 대답하기 전에 때마침 오윤진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보다, 너는 정말 내가 원하는 유물과 게이트 위치, 그리고 침식 현상의 발생 유무까지 알 수 있는 거니?”
유물.
그제야 모든 의문이 석연하게 풀렸다.
‘유물을 얻으면 확실히 스킬도 얻을 수 있겠지.’
뒤늦게 납득하고 있을 때.
-일단 대답부터 하도록.
머릿속에서 그림자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상념에서 벗어나 오윤진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능합니다.”
“흐음, 마나 수정은 5 대 5로 분배, 유물 획득 시 스킬은 공유하되 유물은 내가 갖는다. 맞니?”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곧 그림자 녀석이 제시한 조건인 듯했다.
얼떨떨한 기분을 뒤로한 채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한 가지 조건을 추가해라.
녀석이 제동을 걸어왔다.
내용은 다름이 아니었다.
-유물 중 하나는 우리가 챙겨야 한다.
조건을 한 가지 추가하라는 것이다.
유물을 챙겨야 한다니.
잘 와닿진 않았지만 일단 그대로 입에 담았다.
“유물 중 하나만 제가 갖는 거로 부탁드릴게요.”
“……호오, 어떤 유물인데?”
“그건…….”
순간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
다행히 그림자가 빠르게 해야 할 말을 알려 줬다.
나는 이번에도 역시 그대로 읊었다.
“……그건 그때 가서 알려 드릴게요.”
오윤진에게 대답하는 한편, 머릿속으로는 그림자 녀석에게 마저 질문했다.
‘무슨 유물인데? 내가 써야 하는 거야?’
-아니다. 스킬은 익히겠지만 유물 자체는 윤진호에게 줄 생각이다.
‘윤진호? 그게 누구…….’
윤진호.
낯선 이름 석 자에 되물어보려던 찰나.
‘잠깐만, 설마…….’
들어 본 적 있는 이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체를 떠올리고 있을 때, 그림자 녀석이 나직하게 덧붙였다.
-그래, 윤설하의 아버지다.
‘……!’
윤설하의 아버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언급에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