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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118화 (118/218)

118화 유진이의 말이 맞았구나

“어디 실력을 마음껏 펼쳐 보려무나.”

백천기는 창을 쥔 오른손을 늘어뜨린 채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생각지도 못한 권유에 당황스러운 한편, 때아닌 고민에 휩싸였다.

‘전력이라면…….’

김한석을 죽이기 위해 그림자가 제공한 비수이자, 현시점에서 내가 가진 최강의 무공.

항마멸인장(降魔滅印掌)까지 사용해도 되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비장의 수단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항마멸인장은 철저히 살상을 위한 무공이니까.’

항마멸인장이 비수로 활용될 수 있었던 바탕은 다름이 아니었다.

대상의 마나 순환을 어그러뜨리고, 호신까지 종잇장처럼 찢어 버리는 효과 덕분이었다.

빈틈을 노렸다곤 하나 그것만으론 A급 마법사의 방어 마법을 파훼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걸 가능케 만들고, 나아가 김한석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준 결정적인 요소가 바로 항마멸인장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사용하기가 망설여졌다.

‘이분도 항마멸인장의 효과를 모르고 계실 테니까.’

자칫 불상사가 일어날지 모를 일이었다.

얼떨결에 성사된 실전 대련은 그렇다 쳐도, 이 부분이 제일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고민해 봐도 뾰족한 답은 나오질 않았다.

‘일단 상황을 좀 보도록 할까.’

그 정도로 가닥을 잡고는 자세를 잡았다.

내 모습에 백천기는 싱긋 웃으며 반응했다.

“준비가 끝난 모양이구나.”

“네.”

“그럼 오거라!”

백천기의 지시에 나는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곧장 흑영신보를 발휘했다.

화아앗-!

전신으로부터 묵빛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나와 자욱한 안개로 화했다.

그 순간 주변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저, 저 보법은 대체……!”

뿐만 아니라 선수를 양보하려는 듯, 여태 가만히 지켜보던 백천기의 두 눈에도 이채가 서렸다.

그의 반응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나는 사각을 노리고 짓쳐들었다.

사정권에 들어선 즉시 공격에 나섰다.

타닷-!

자욱하게 깔린 안개가 순식간에 형상을 이루는 가운데.

나는 변함없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백천기의 측면을 노려 주먹을 내질렀다.

복마구권의 후반부 연환 초식이었다.

후웅-!

강맹하게 쇄도해가는 일권.

그대로 백천기의 어깻죽지에 작렬하는가 싶은 순간.

“상당히 고차원의 보법을 가지고 있구나.”

느긋한 목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시야가 무언가로 뒤덮였다.

워낙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라 나는 반 박자 늦게 깨달았다.

백천기가 손에 쥔 창을 횡으로 휘두른 것이다.

“……!”

창대가 엄청난 속도로 짓쳐들었다.

거기에 맞서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 결과 내가 택한 수단은 다름이 아니었다.

파직-!

백유진을 상대하기 위해 습득했던 무공, 벽뢰수였다.

벼락을 쪼개듯, 백은의 마나를 휘감은 손을 뻗어냈다.

다행히 늦지 않게 창대에 맞닿은 순간.

‘……무겁다.’

백천기의 일격에 실린 묵직함이 여실히 느껴졌다.

하지만 마나가 실리지 않은 덕분에 어렵지 않게 창대를 걷어낼 수 있었다.

나는 기세를 몰아 물 흐르듯 연환 동작을 이어 나갔다.

캉! 카가가강!

백천기는 내 공세를 여유롭게 응수하며 간격을 벌렸다.

동시에 그는 오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내 역량을 평가했다.

“……수공 또한 범상치 않구나.”

나는 대답할 틈조차 없이 공세에 박차를 가했다.

조금만 더하면 닿을 것 같은 까닭이었다.

하지만.

카강! 캉-!

백천기와의 간격은 쉬이 좁혀지지 않았다.

마치 벽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깨달은 순간, 문득 그리운 감각이란 생각이 들었다.

‘고태식 교관님께 개인 교습을 받는 느낌이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부담감과 긴장감을 덜어내자 그만큼 몸놀림이 날카로워졌다.

머리로 계산하기보단 기세에 몸을 맡긴 채 공세를 지속했다.

그렇게 벽뢰수와 복마구권으로 밀어붙이기를 수 분.

어느 순간 타이밍이 보였다.

‘기회다.’

나는 커다란 한 방을 준비했다.

때마침 알맞은 기회가 찾아왔다.

카강!

벽뢰수로 창대를 걷어낸 순간.

‘……지금!’

반탄력을 활용하여 허리를 힘껏 비틀었다.

그러고는 정면을 양단하듯, 오른발을 내리찍었다.

서-걱!

발끝에서부터 선명한 백은의 참격이 일었다.

동시에 지켜보던 백천기의 표정이 일순간 굳었다.

이를 증명하듯.

화아앗-

백천기의 창날에 청록의 빛무리가 어렸다.

본격적으로 마나를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만으로 인정을 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나 자만하지 않고 상황을 면밀히 주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쩌-엉!

유형화된 마나를 머금은 창날에 백은의 참격이 손쉽게 튕겨 나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백천기는 곧바로 바닥을 박차고 나섰다.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공세를 펼치려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백천기는 신속하게 짓쳐드는 와중에도 조언을 멈추지 않았다.

“마나량부터 출력, 유지력은 물론이고 방금 펼친 각법도 훌륭하다! 하지만 동작이 너무 크구나!”

동작이 크다.

내 빈틈을 파훼함으로써 내뱉은 말을 증명하려는 듯, 백천기는 날카로운 궤적으로 창을 찔러넣었다.

츠즛-!

나는 흑영신보로 간격을 벌리는 한편, 벽뢰수로 응수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쩌-엉!

손아귀로 전해지는 충격량이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단일 공격으로 끝나지 않고 창격이 연거푸 쏟아졌다.

반격은커녕, 받아내기에 급급한 수준이었다.

카강! 캉!

두 주먹에 휘감은 백은색의 마나가 빠르게 갉아 먹히는 가운데.

나는 결단을 내렸다.

‘……피해를 감수하고 반격한다.’

살을 내주는 대신 뼈를 취하려는 것이다.

물론 상대와의 수준 차가 극명한 만큼 뼈는커녕, 살점조차 취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손쓸 도리조차 없이 당하는 것보단 낫겠지.’

가진 바 전력을 다한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더욱이 내겐 믿는 구석이 있었다.

‘지난번에 새로이 업그레이드된 초회복이 있으니까.’

초회복 스킬의 효과라면 다소간의 피해는 금방 수복할 수 있을 터였다.

결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회가 찾아왔다.

터엉-!

양손으로 창대를 어렵사리 걷어낸 것이다.

그 틈을 타 곧장 오른발을 사선으로 차올렸다.

무영귀살각의 전반부 초식이었다.

하지만.

“분명 동작이 크다고 말했을 텐데!”

예상보다 빠르게 백천기의 창이 본 궤도로 돌아왔다.

청록의 마나를 휘감은 창날이 그대로 내 가슴팍을 향해 쇄도해 왔다.

나는 흑영신보에 힘을 주는 한편, 최대한 상체를 비틀었다.

“……!”

저돌적인 행동에 백천기가 두 눈을 부릅떴다.

순간 당황한 듯했으나 그는 역시 프로였다.

내지른 일격의 궤적을 중간에 비틀어낸 것이다.

덕분에 창날은 내 가슴팍을 헤집는 대신.

츠즛-!

옷자락이 쓸려나가는 수준에서 그쳤다.

반면 나는 멈추지 않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쏟아내는 것.

그게 바로 나의 전력이자, 이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게 곧 예의라 여긴 까닭이었다.

나는 개의치 않고 무영귀살각의 초식을 완성시켰다.

츠즛-!

발끝에서 일어난 참격이 살벌한 기세로 내달렸다.

그 결과를 확인하기도 전에 흑영신보를 발휘해 다음을 준비했다.

아니나 다를까.

쩌-엉!

백천기의 진각 한 번에 백은의 참격은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나는 과감하게 백천기의 사정권에 들어섰다.

그 순간.

꿈틀-

오른손이 근질거렸다.

지금 타이밍에 가장 적합한 무공은 항마멸인장이었다.

몸은 그렇게 소리쳤으나, 이성이 잡아 세웠다.

바로 그 찰나의 주저함이 대련의 종지부를 찍었다.

척-

어느새 눈앞에 백천기의 창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다.

“……아.”

전투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 증거로 아직도 오른손이 근질거렸다.

저릿한 손끝의 감각을 뒤로한 채 나는 호흡을 골랐다.

그러고는 창을 거둬들이는 백천기를 향해 정중히 감사를 표했다.

“지도 감사드립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내 인사에 백천기는 곧바로 대꾸하는 대신, 잠깐 동안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 속에는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가만히 시선을 교환하기를 수 초.

이윽고 백천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유진이의 말이 맞았구나.”

“네?”

“네가 여러모로 특별하다는 뜻이란다.”

그는 나직하게 탄성을 흘리며 다시금 말문을 열었다.

“마나 심법부터 각종 무공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들임은 물론, 하나같이 고절하더구나.”

그에게서 흘러나온 말은 다름 아닌 칭찬이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백천기는 계속해서 나를 향한 평가를 나열했다.

“게다가 전투 스타일도 그렇구나. 완전히 다듬어졌다곤 할 수 없지만, 상당히 날카로워.”

“……감사합니다.”

“대련이 아닌 실전을 상정한 것 같더구나. 수법은 다소 무모하나, 생사의 간극에 섰을 때의 최선은 먼저 상대의 숨통을 끊는 것이니 그것 또한 훌륭한 판단이라 할 수 있겠다.”

백천기는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며 감상평을 세세하게 늘어놨다.

게다가.

“보아하니, 일한이 너는 네 나름의 비수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더구나.”

그는 놀랍게도, 마지막에 내가 주저했던 이유까지 꿰뚫어 봤다.

거기까진 예상치 못한 까닭에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자 백천기는 인자한 웃음과 함께 말을 이어 갔다.

“예측할 수 없는 변수와 맞서야 하는 게 바로 초인의 숙명이다. 응당 숨겨 둔 재간 한두 개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마땅하겠지.”

“그렇습니까……?”

“다만 아직 여물지 못한 생도 시기에 벌써 그만한 비수와 심계를 가지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네 수련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부분이 조금 고민되는구나.”

백천기는 진심으로 그렇다는 듯, 잠깐 침음을 흘렸다.

이윽고 생각을 정리했는지 그는 내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다른 친구들부터 정해 주는 게 빠를 것 같구나. 너는 잠깐 기다리고 있거라.”

“네,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백천기는 내 친구들을 향해 돌아섰다.

그제야 나는 친구들이 여태 내 쪽에 시선을 고정시켜 두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의 눈빛 속에는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감정은 다름 아닌 향상심이었다.

백천기 또한 그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자질은 너희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건 내 이름을 걸고 보증하도록 하마.”

인자하게 웃으며 내 친구들을 다독여 줬다.

그러고는 윤설하와 임강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먼저 너희 둘은 특성의 활용법부터 배워야 할 듯싶더구나.”

특성의 활용법.

미구현 특성인 나와는 연이 없는 수련이었다.

반면 윤설하와 임강철, 두 사람은 기꺼운 듯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두 사람의 수련 내용이 정해지고 나자 다음은 차은월이었다.

“너는 윤서와 함께 자유 대련을 하는 편이 좋을 것 같구나. 단 이참에 제어 마법도 기본적인 종류를 배워 두거라. 너희들에겐 따로 인원을 붙여 주마.”

신창백가에 마법사도 있는지, 백천기는 기꺼이 수련을 보조할 마법사를 붙여 주겠다고도 덧붙였다.

그렇게 차은월의 수련 방법이 정해진 다음.

“그리고 유진이와 인욱이, 두 사람은 유성이가 도와주려무나. 괜찮지?”

예상과는 달리 내가 아닌 백유진과 심인욱의 수련법이 정해졌다.

그리고 나서야 내 차례가 돌아왔다.

기대감과 함께 기다리자 백천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넌 나와 함께 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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