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그때가 바로 저들의 최후가 되겠지
-설마 너, 사도들의 일가친척까지 전부 꿰고 있는 건 아니지?
기가 찬다는 듯, 오윤진은 장난스럽게 중얼거렸다.
반면 그림자는 한없이 진지한 어조로 대답했다.
“애석하게도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그게 전부다. 실제로 협력 대상자들과 접선하거나, 사도들과 맞붙었을 때의 결과는 현시점에서 장담할 수 없다.”
웃음기 하나 없는 대답에 오윤진은 객쩍은 듯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농담한 거야, 농담. 결과까지 알 수 있으면 그건 미래 예측 수준을 뛰어넘는 셈이 될 테니까.
“그런가?”
-그래. 어쨌든, 지금까지 알려 준 내용만으로 충분해. 아니, 차고 넘치는 수준이야.
오윤진은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한편, 의욕적으로 대화를 이어 갔다.
-그래서, 내가 해 줬으면 하는 일이나 부탁할 만한 일 있어?
“당장은 없다.”
-하기야, 김한석이 죽었으니 이전보다 움직임이 한층 신중해지려나?
“그보다 당분간은 조심해야 할 거다.”
-내가 김한석을 죽였다는 사실이 세상에 드러났으니, 우선적으로 나를 노릴 테니까?
그림자는 나직하게 긍정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 하지만 네가 그 위협을 버틸 수 있다면 반드시 기회는 온다.”
-저들의 초점이 내게 쏠려 있는 동안 네 운신의 폭은 그만큼 자유로워질 테니까?
“바로 그렇다. 그게 현재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이점이자, 비장의 무기가 될 거다.”
-하긴, 저들은 너라는 존재를 모르는 반면 우리는 이미 저들의 정체와 목적까지 특정하고 있으니.
오윤진은 마치 음미하듯, 이점을 중얼거렸다.
-정보의 격차를 활용하겠다는 거네.
“그래, 격차가 좁혀지기 직전까지 최대한 저들을 몰아넣을 거다.
-그러다 만약에 낙일에서 일제히 들고 일어나면? 이 녀석들, 생각보다 저력이 만만치 않은 것 같은데.
오윤진의 지적은 타당했다.
이는 4대 길드의 일축인 수호자 소속 간부인 김재학과 아카데미의 교관으로서 수년간 숨어 지냈던 김한석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이를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그림자는 단호하게 답했다.
“그때가 바로 저들의 최후가 되겠지. 동시에 온 세상이 파멸의 가능성으로부터 비로소 온전히 자유로워지는 날이 될 거다.”
애초에 두 번째 단계라 명명한 계획의 진정한 목적은 ‘낙일’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는 것이었다.
들고 일어난다면, 오히려 바라던 바였다.
그때가 되면 그림자는 쌍수를 들고 저들을 맞이해 줄 생각이었다.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오윤진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반응했다.
-흐응, 그건 꽤나 설레는 말이네.
“때가 되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기대하고 있을게. 그나저나, 너와는 생각보다 말이 잘 통하는 것 같네.
“그런가?”
-태도도 그렇고, 생각하는 게 신기할 정도로 비슷해. 마치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 느낌이라 해야 할까?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오윤진.
그림자는 그녀의 혼잣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홀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시간대가 달라도 오윤진은 오윤진인가.’
그녀의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게, 그림자의 계획은 전부까진 아니더라도 오윤진의 비중이 상당한 까닭이었다.
계획의 설립 단계에서부터 그녀의 성향이 십분 반영됐으니, 비슷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림자는 구태여 그녀에게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함께했던 시간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으니까.’
오윤진, 그녀와 보냈던 시간은 이미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더하여 그의 시간도 ‘계승’과 함께 계획이 시작된 순간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지금 허락된 시간조차 유한하니…….’
지금의 그는 안일한의 그림자에 불과했다.
이면에서 안일한을 보조하고, 예정된 파멸을 막기 위한 존재.
그거면 충분하다고, 그림자는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심호흡과 함께 생각을 정리할 무렵.
-혹시 내가 이상한 말을 한 거니……?
오윤진이 느닷없는 침묵에 조심스럽게 의문을 표했다.
그제야 그림자는 상념에서 깨어나 입을 열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싱겁기는.“오늘 할 이야기는 이걸로 전부다. 다음에 필요한 일이 생기면 연락하도록 하지.”
-알겠어.
그렇게 길었던 오윤진과의 전화가 끝이 났다.
그림자는 스마트 워치를 몇 차례 매만지고는 선반 위의 달력을 확인했다.
‘퇴원까지는 앞으로 일주일 남은 건가.’
퇴원하는 날짜를 가늠하고는 머릿속으로 다음 계획을 헤아렸다.
계획대로라면 두 번째 단계는 내년부터 비로소 본격적으로 진행하게 될 터였다.
그러니 지금 생각해야 할 문제는 그때까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에 관한 부분이었다.
‘시간은 충분하다. 그러니까 차근차근 힘을 쌓아 올릴 방법을 생각하고, 정리하는 식으로…….’
그렇게 생각을 거듭하는 사이.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 * *
일주일 후.
나는 진태진 교관을 비롯한 다른 이들보다 빠르게 퇴원했다.
애초에 나는 입원했을 때부터 그림자 녀석이 가진 회복 스킬 덕분에 비교적 멀쩡한 까닭이었다.
따라서 별다른 문제가 없을 거라 판단된 즉시 퇴원하게 됐다.
그대로 자택에 복귀해 아카데미에서의 연락을 기다리자 오래지 않아 메시지가 왔다.
다름 아닌 아카데미의 휴교에 관한 안내문이었다.
‘진태진 교관님께 들었던 내용과 비슷하네.’
수행평가 참사로 인해 남은 2학기 수업 및 기말고사를 전면 취소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기말고사의 성적은 2학기 중간고사 성적으로 대체하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안내문은 1학년 겨울방학을 1달가량 앞당겨 시행하겠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됐다.
즉, 지금부터 내년 3월에 있을 2학년 시업식까지 겨울방학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아버지께 알려 드리는 한편.
‘들려? 논의해야 할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그림자에게 대화를 요청했다.
김한석과의 결전 이후 붕 뜬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녀석과 의논하기 위함이었다.
오래지 않아 머릿속에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지?
‘지난번에 진태진 교관님께서 말씀해 주신 대로 남아 있는 2학기 과정이 취소됐어. 겨울방학이 다소 빠르게 시작된 셈이지.’
-그런가?
‘어. 그래서 말인데. 이제부터 난 뭘 하면 되는 거지? 이제 곧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간다고 했잖아.’
두 번째 단계. 이는 곧 다음 계획을 의미했다.
과연 이다음에는 어떤 일을 마주하게 될지, 가늠조차 되질 않았다.
때문에 나는 약간의 긴장과 함께 그림자 녀석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당분간은 없다.
녀석으로부터 예상과는 다른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일순 당황했으나, 침착하게 이유를 되물었다.
‘없다고? 그럼 방학 내내 계획이 없는 거야?’
-정확히 말하자면, 겨울방학 때는 계획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아니라고? 아……, 혹시 겨울방학이 앞당겨져서 그런 건가?’
-정확하다.
아무래도 녀석이 알고 있는 미래에선 2학기 기말 과정이 아예 취소되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 부분은 납득이 됐으나,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럼 앞으로 대략 한 달간은 붕 뜨겠네.’
-기껏해야 개인 단련을 하는 것 정도겠지.
‘개인 단련이라…….
문득 뇌리에 괜찮은 아이디어가 스쳐 갔다.
이를 갈무리한 채 다시금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럼 네가 말한 두 번째 단계라는 건 언제부터 시작하는 거지? 원래 겨울방학 기간 시점?
-아니다. 그건 애초에 내년부터 진행할 생각이었다.
‘내년?’
-두 번째 단계는 2학년 교과 과정을 토대로 세운 계획이니까.
‘그렇구나.’
2학년 교과 과정, 나는 녀석의 답변을 속으로 되뇌는 한편.
조금 전 떠올린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그림자와의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럼 일단 다음 달까지는 내 임의로 움직여도 된다는 뜻이지?’
-그래. 뭔가 좋은 생각이라도 있나?
‘어. 한번 시험해 보려고. 결과는 다음에 알려 줄게.’
-잘됐으면 좋겠군.
녀석의 격려를 끝으로 신경을 거둬들였다.
그러고는 곧바로 스마트 워치를 조작하여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차례의 연결음 끝에 스마트 워치 너머로 흘러나온 목소리는 다름이 아니었다.
-안일한? 일한이 맞지?
바로 백유진이었다.
나는 전화를 건 목적을 밝히기에 앞서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혹시 퇴원했어?”
-응. 애초에 난 피로가 조금 쌓였을 뿐, 별다른 피해는 없었으니까. 너는?
“나도 마찬가지야.”
-……호오, 그건 좀 놀랍네.
백유진은 나에 관해 뭔가 들은 게 있었는지, 예상 밖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분명 네가 김한석……, 그자와 교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중상을 입었다고 들었거든.
“으음, 누구한테 들었어?”
-딱히 누군가에게 들었다기보단, 대부분 알고 있을걸?
“그런가?”
아무래도 사태를 수습할 당시 소문이 퍼진 모양이었다.
‘어쨌든, 퇴원했다 이거지?’
원하는 정보를 확인한 나는 적당히 얼버무리며 본론을 꺼내 들었다.
“혹시 너희 집에 스텟 단련이나 무기술을 훈련할 수 있는 시설 있어?”
훈련 시설의 존재 여부.
이게 바로 백유진에게 전화를 건 목적이었다.
본래 예정되어 있던 겨울방학, 달리 말해 그림자 녀석의 계획에 임하기까지 약 한 달가량 남아 있는 지금.
붕 뜬 시간을 그나마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단련뿐이었다.
하나 아카데미의 휴교로 인해 교내 시설은 사용이 불가능했다.
그로 인해 대안을 찾는 도중에 백유진이 떠올랐다.
‘신창백가라면 충분히 있을 법하니까.’
백유진의 본가가 4대 길드에 버금가는 위세를 자랑하는 신창백가인 까닭이었다.
신창백가 정도 되는 집안이라면 틀림없이 사설 단련장 정도는 가지고 있을 터.
게다가 백유진은 무공 관련으로 내게 신세를 졌던 만큼, 어지간해선 들어줄 거란 계산도 있었다.
그런 의미를 담아 건넨 질문에 백유진은 의아해하면서도 곧장 대답했다.
-있긴 한데, 그게 왜?
“너도 알다시피 겨울방학이 앞당겨졌잖아?”
-그렇지?
“혹시 너희 집에 있는 시설을 좀 쓸 수 있을까? 너도 알다시피 아카데미에 있는 시설은 당분간 못 쓰니까.”
-아 그런 거라면 상관없긴 한데.
백유진은 예상대로 흔쾌히 허락해 줬다.
아니, 단순히 허락에서 그치지 않고 그는 역으로 내게 제안을 건네왔다.
-한 달이라 그랬지? 아예 한 달 동안 우리 집에 와서 합숙하는 건 어때?
“합숙?”
-응, 매번 오가는 것도 번거로울 테니까. 게다가 단련이 목적이라면 집안의 어른들도 허락해 주실 것 같은데. 특히 대상이 너라면 말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마지막으로 백유진은 쾌활하게 웃었다.
나는 마지막 말이 신경 쓰였으나 우선은 합숙에 관해 마저 대화를 이어 갔다.
“음, 나쁘지 않은 것 같아.”
-그렇지?
“어. 그럼 한번 물어봐 줘. 나도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다시 전화 줄게.”
-알겠어. 그럼 내일까지 알려 줘!
나는 간단하게 대답하며 통화를 종료했다.
그러고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합숙이라…….’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었으나 확실히 나쁘지 않았다.
신창백가의 정확한 위치는 몰라도, 매일 오고 가는 건 꽤나 부담스러운 까닭이었다.
나는 마음을 정한 즉시 머릿속으로 아버지의 퇴근 시간을 헤아렸다.
‘내일 아침에 오시면 여쭤봐야겠다.’
…
…
…
다음날.
나는 아버지께 무사히 허락을 받고, 한 달 치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백유진이 알려 준 대로 대략 두 시간에 걸쳐 이동하여 신창백가에 도착했다.
그대로 들어서는 순간.
“……어?”
생각지도 못한 면면들과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