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내가 본 건 그림자, 바로 너였어
“끄아아악!”
지옥의 겁화 속에 김한석은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시뻘건 불길이 그의 피부와 근육을 넘어 뼈까지 순식간에 불태워 버렸다.
실시간으로 사람이 녹아내리는 광경은 꽤나 그로테스크했다.
그럼에도 겁화를 일으킨 여성은 나른한 미소를 띤 채 눈앞의 광경을 지켜봤다.
“재앙, 마녀……, 당신이, 왜……!”
고통에 짓눌린 까닭인지, 김한석의 말이 어눌한 어조로 흘러내렸다.
구태여 반응할 필요가 없었음에도.
“괘씸죄라고 생각해. 감히 내 동생에게 이상한 수작을 부린 대가라고 할까.”
재앙의 마녀라 불린 여성, 오윤진은 그렇게 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이 김한석에게 전해질 일은 없었다.
그는 숨이 끊어진 것도 모자라 형체도 남기지 못한 채 한 줌의 재로 화한 까닭이었다.
오윤진은 그의 죽음을 다시금 두 눈에 새기고는 천천히 돌아섰다.
그러고는 누군가를 찾듯, 우거진 수풀 너머로 시선을 고정시킨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걸로 빚은 없다고 해도 되려나?”
오윤진은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한 사람을 떠올렸다.
다름 아닌 안일한이었다.
그가 바로 그녀에게 김한석의 정체와 더불어 지금과 같은 기회를 제공한 장본인이었다.
잠깐을 생각하던 그녀는 문득 미간을 찡그렸다.
“……아닌가? 이걸로는 조금 부족하려나?”
분명 부탁받은 일이긴 해도 사실 이번 같은 일은 그녀 스스로도 바라마지않던 일이었다.
실제로 오윤진은 일전의 침식 사태 이후, 줄곧 김재학과 더불어 또 다른 사도와 배후를 추적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온전히 안일한의 부탁을 들어줬다 하기엔 스스로도 석연치 않다고 느껴졌다.
“하아, 채무 관계는 조금 더 지속될 수밖에 없겠구나.”
오윤진은 한숨과 함께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내뱉은 혼잣말의 내용과는 달리 그녀의 표정은 딱히 싫지는 않은 기색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는 천천히 일대를 벗어났다.
…
…
…
그로부터 약 두 시간 후.
진태진은 김한석을 놓친 후, 곧바로 상황을 수습했다.
쓰러진 이은애 교관과 A반 생도들을 챙기고, B, C반 생도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태식 교관이 합류한 덕분에 나머지 생도들도 비교적 무사히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다 같이 게이트를 벗어나고 난 직후.
“선배님, 잠깐 따로 움직이겠습니다. 확인해 봐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진태진은 고태식 교관에게 정중히 양해를 구했다.
“확인이라니. 태진 교관, 자네는 몸도 성치 않으면서.”
“김한석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반드시 확인이 필요합니다. 부디 안일한 생도를 부탁드립니다.”
진태진은 고개를 꾸벅 숙이는 한편, 곁눈질로 고태식 교관이 업고 있는 안일한 생도의 상태를 살폈다.
안일한 생도는 김한석에 관한 전말을 밝힌 후,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추측건대 상황이 일단락나면서 막대한 피로가 몰려온 탓인 듯했다.
그간 안일한 생도가 해낸 일을 생각하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알겠네. 부디 조심하도록.”
“네.”
그렇게 진태진은 고태식 교관의 허가를 받은 다음 곧장 걸음을 옮겼다.
바로 산속으로 들어가 지면에 남아 있는 혈흔과 마나의 자취를 쫓았다.
그 결과,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이곳인가.”
막대한 혈흔과 새까맣게 타 버린 자국, 그리고 김한석의 것으로 추정되는 옷자락까지.
주위의 모든 요소들이 말해 주고 있었다.
이 자리야말로 김한석이 최후를 맞이한 곳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진태진의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빛으로 지면에 남은 탄 자국을 바라봤다.
“…….”
잠깐을 말없이 바라보던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우거진 산속 너머를 주시했다.
그 상태로 나직하게 한 사람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오윤진.”
8년 전, 참사를 겪고 빌런으로 탈선해 버린 줄 알았던 애제자 오윤진.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여전히 재앙을 보고 있었고, 세상의 이면에서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싸움을 지속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너무나도 늦게 깨달았다는 생각에 진태진은 가슴이 아려오는 한편.
‘아직 늦지 않았다.’
이제라도 진실을 알게 됐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더불어 감사의 대상으로서 한 명의 생도를 떠올렸다.
다름 아닌 안일한 생도였다.
녀석은 정신을 잃기 전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오윤진에 관한 부분은 차후 자세하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안일한 생도의 말이 사실이라면, 머지않아 보다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터였다.
이를 곱씹으며 진태진은 김한석의 것으로 추정되는 옷자락을 집어 들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새까맣게 탄 자국을 곁눈질하고는.
저벅저벅-
미련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 * *
이른바 ‘수행평가 참사’라 불리는 일대의 사건 이후.
세간은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아카데미 대참사! 범인은 초인 아카데미 소속 교관이라 밝혀져 충격……
-수행평가 참사의 원흉은 아카데미의 마법 심화 교관인 김한석……
-수년간 정체를 숨긴 채 초인 아카데미에서 암약한 김한석, 그가 몸담은 집단의 정체는?!
초인 아카데미부터 각종 길드 및 단체까지.
이번 수행평가 참사는 초인 사회 전반에 엄청난 파급을 일으켰다.
국내에 단 한 곳 존재하는 유일한 초인 육성의 요람인 아카데미가 습격을 받은 거나 다름없는 까닭이었다.
본래 국내에서 활동하는 초인의 대부분이 아카데미를 거치는 만큼 아카데미를 향한 신뢰가 두터웠다.
그곳에서 문제가 잇달아 두 번이나 발생한 것이다.
하물며 ‘침식’이라는 불가해한 현상에서 비롯된 지난번 ‘게이트 실습 사태’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명백한 인재(人災)였다.
때문에 아카데미를 향한 신뢰성이 훼손된 건 물론,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었다.
그런 문제와 더불어 초인 사회 전체에 또 다른 문제가 대두됐다.
다름 아닌 최악의 참사를 일으킨 김한성의 정체와 배후에 관한 문제였다.
알려진 사실이라곤 김한석에게 모종의 배후가 존재한다는 사실 뿐이었다.
때문에 지난 ‘게이트 실습 사태’ 이후 또다시 대대적인 빌런 색출, 소탕의 흐름이 개시된 가운데.
한 가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사실이 발표됐다.
출처는 수행평가 참사 당시 목숨을 걸고 생도를 지킨 영웅, 진태진 교관에게서 비롯됐다.
-김한석을 처단한 사람은 달그림자 길드의 수장이자, 재앙의 마녀라는 그릇된 이명으로 알려진 초인, 오윤진입니다.
참사를 일으킨 원흉, 김한석을 처단한 사람이 재앙의 마녀로 악명 높은 빌런.
달그림자 길드의 수장, 오윤진이라 발표한 것이다.
이는 진태진이 마치 오윤진을 비호하는 뉘앙스로 발표한 까닭에 더더욱 여파가 컸다.
진태진의 폭탄 발언으로 인해 재앙의 마녀인 오윤진의 행적이 재조명되는 한편.
초인 사회는 또다시 술렁거렸다.
그녀와 관련된 화제, 의문은 돌고 돌아 한 점으로 귀결됐다.
-재앙의 마녀 오윤진은 도대체 어떻게 수년간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김한석의 정체를 알아냈는가.
참사의 당사자들은 물론, 빌런계에서조차 단서가 전무한 김한석의 배후.
그 열쇠를 쥐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오윤진일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특히 김한석은 심문할 기회조차 없이 죽어 버린 까닭에 세간의 이목은 더더욱 그녀에게 집중됐다.
따라서 오윤진이 속한 달그림자 길드는 토벌 대상이라기보단 배후에 관한 조사 대상으로 여겨졌다.
이렇듯, 상황이 복잡하게 흘러가는 가운데.
…
…
…
“한국에 있는 여덟 번째 사도, 김한석이 죽었다고?”
어느 누구도 특정하지 못한 김한석의 배후에 해당하는 ‘조직’ 또한 이번 참사의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네, 이로써 한국 쪽에서의 초인 수급은 당분간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망토를 뒤집어쓴 남성의 말에 가만히 듣고 있던 금발의 중년 여성은 잠시 침음을 흘렸다.
“당분간이 아니라 더 이상 한국에 있는 초인 아카데미는 건들 수 없을 것 같은데.”
조직은 점조직의 형태로 운영됐다.
그만큼 사도의 정체는 같은 조직원들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심지어 이는 조직의 간부라 할 수 있는 사도들끼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발각됐고, 죽었어.”
그렇기에 금발의 여성은 이번 사태에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각 사도들의 자세한 정보를 아는 자는 금발의 여성과 그녀의 직속 부하인 눈앞의 남성뿐이었다.
이는 곧 사도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는 ‘무언가’를 아카데미의 누군가가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높은 확률로 언령이 되겠지.’
사도를 임명할 때는 그녀가 직접 대상자에게 ‘언령’을 새겼다.
배신과 정보 누설 등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강제성을 띤 만큼, 언령을 지닌 사도들은 특정 문구에 거역할 수 없었다.
즉, 언령이 아니고서야 사도의 정체를 특정할 수단은 전무한 것이다.
“……대체 누굴까.”
금발의 여성은 생각에 잠긴 채 흥미로운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혼잣말에 망토를 뒤집어쓴 남성이 반응했다.
“세간의 발표에 따르면 진태진과 오윤진, 이 두 사람이 여덟 번째 사도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초인들이었습니다.”
“진태진, 그리고 오윤진이라……. 가만 있어 봐.”
금발의 여성은 두 사람 중 오윤진의 이름 석 자를 작게 되뇌었다.
그 순간 오윤진에 관한 기억이 불현듯 그녀의 뇌리에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일전에 네 번째 사도가 오윤진과 충돌을 빚었다는 보고를 했었지.’
오윤진은 조직에서도 요주의 취급을 하는 초인이었다.
조직을 추적하는 것도 모자라 대놓고 이빨을 드러내는 유일한 인물인 까닭이었다.
하지만 오윤진조차도 금발의 여성에게 명확한 해답이 되지 못했다.
‘……재앙 예보로 그렇게까지 세밀한 정보를 알 수는 없을 텐데.’
첩보에 따라 알아낸 오윤진의 미구현 특성, ‘재앙 예보’로는 원하는 정보를 특정해서 알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애초에 그런 식으로 소용되는 특성이 아니라는 건 세상 그 누구보다 금발의 여성이 잘 알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던 금발 여성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당분간 한국은 손을 떼. 네 번째 사도에게도 그렇게 전하고.”
“알겠습니다.”
* * *
수행평가 참사 이후.
나는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이름 모를 병원의 병실에서 눈을 떴다.
가장 먼저 의사 선생님과 아버지가 나를 맞이해 줬다.
나는 간단한 검사를 통해 몸 상태를 확인하고, 아버지를 안심시켜 드리고 나서야 한시름 돌릴 수 있었다.
‘여름 방학 때도 이랬던 것 같은데.’
나는 어쩐지 익숙하다는 느낌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기억을 더듬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내가 택한 일은 다름이 아니었다.
‘들려?’
그림자 녀석에게 말을 건넨 것이다.
김한석의 제어 마법으로 인해 의식을 잃은 이후로부터 눈을 뜬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의 대부분이 공백으로 남아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이번 참사의 전말을 듣고, 추가로 반드시 녀석에게 들어야 할 문제에 관해 논할 생각이었다.
긴장된 기색으로 기다리고 있자 익숙한 음성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깨어났군. 몸 상태는 어떤가?
‘어. 괜찮은 것 같아.’
-능력이 제대로 발휘됐음은 확인했지만, 직접 들으니 마음이 놓이는군.
‘그런 모양이네. 그보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
-이번 사건의 전말을 말하는 건가?
‘그것도 있고, 한 가지가 더 있어.’
-뭐지?
그림자 녀석의 질문에 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는 천천히 운을 뗐다.
‘사실 그동안 꿈을 꿨어. 너를 계승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무언가를 봤나 보군.
‘맞아.’
-그래서, 무엇을 봤지?
그림자 녀석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렴풋하게나마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실제로 나는 지난번 미래에 예정된 재앙을 목격했을 때처럼 이번에도 역시 뭔가를 봤다.
그에 관한 기억을 더듬으며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물어봤다.
‘……내가 본 건 그림자, 바로 너였어.’
내 대답에 그림자는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