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믿을 만한 사람을 수배해 뒀습니다
‘흑점 폭발’.
A급 공격 마법이자, 환영 마법이 주가 되는 김한석에게 있어 몇 안 되는 비기(祕技) 중 하나였다.
그만큼 믿음이 확실했고, 위력도 거기에 상응하는 마법이었다.
그렇기에 김한석은 순간적으로 망설였다.
‘……정면으로 맞으면 반드시 죽는다.’
안일한이 무모하게 돌격하는 곳은 틀림없이 사지(死地)였다.
이래서야 목숨만 붙여서 데려가기는커녕, 송장을 치워야 할 판이었다.
때문에 출력을 줄여야 할지를 망설였다.
안일한이 뛰어든 건 바로 그 타이밍이었다.
타닷-
김한석은 예상치 못한 상대의 움직임에 눈매를 좁혔다.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단념했다.
아니, 단념하려는 순간.
“……무, 슨!”
김한석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두 눈을 부릅떴다.
흑점 폭발의 화마 속에 뛰어든 안일한의 상체가 순식간에 녹아내리고 있는 까닭이었다.
마법의 위력을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결과였다.
따라서 김한석이 경악한 포인트는 그 부분이 아니었다.
‘회복? 아니야,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야……!’
화마에 뒤덮여 실시간으로 피부와 근육이 녹아내리고, 뼈가 타들어 간다.
반대로 타들어 간 뼈가 재생성되고, 근육은 다시 오밀조밀하게 짜이며, 새로운 살결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즉, 안일한은 회복을 넘어서 그야말로 엄청난 속도로 재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검보랏빛 화마가 그의 상반신을 불살라 버리는 것보다도 빠르게 말이다.
‘……이게 사람이라고?’
김한석은 두 눈을 의심해야 할 지경이었다.
더불어 무의식적으로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보고해야 한다. 그분께……!’
상대는 김한석의 정체를 알고, 듣도 보도 못한 능력으로 죽음에 이르는 피해를 수복하는 녀석이다.
그게 조직에 득이 될지, 해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였으나, 그 전에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콰직-!
김한석이 상시 유지하고 있던 보호 마법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제야 그는 엄청난 속도로 쇄도해 오는 안일한의 손을 눈치챘다.
핏빛 기운을 두른 손아귀, 조금 전 마나 순환을 어그러뜨린 바로 그 일격이었다.
하지만.
푸욱-!
이 사실을 인식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김한석은 오른쪽 가슴으로부터 격통을 느꼈다.
제 목숨조차 도외시한 채, 괴물 같은 재생력을 바탕으로 짓쳐들어 결국엔 그의 가슴을 꿰뚫은 것이다.
“……크헉!”
김한석은 검붉은 피를 왈칵 토해냈다.
동시에 흑점 폭발을 유지하던 마나가 통제를 잃고 아스라이 흩어져갔다.
겨우 고개를 들자 시선의 끝에 안일한이 보였다.
“…….”
계속해서 피부가 녹아내리고, 재생되길 반복하면서도 그의 표정은 일체의 변화도 없었다.
소름 끼치는 한편, 김한석은 죽음을 직감했다.
그래서일까.
‘이딴 곳에서 죽을 순 없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서 돌아간다.
그런 일념으로 엉망진창이 된 체내의 마나를 악착같이 그러모았다.
최대한 모은 즉시 코앞에서 폭발시켰다.
콰앙-!
만만치 않은 충격과 함께 몸이 튕겨 나갔다.
김한석은 체내의 마나 순환 경로부터 수복하는 한편,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가닿은 곳에는 안일한이 삐걱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신체의 재생과는 별개로 체내에 쌓인 피해는 무시할 수 없는 듯했다.
‘됐어, 이대로 빠져나가면……!’
판단 즉시 김한석은 힘겹게 몸을 돌렸다.
등 뒤에서 진태진이 무어라 소리쳤으나, 무시했다.
반응하는 대신 남아 있는 환영 마법의 기운을 조종해 생도들로 하여금 진태진을 가로막게 했다.
“허억, 허억!”
그제야 김한석은 가슴을 부여잡은 채 게이트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 * *
“……크윽!”
진태진은 이를 악물며 손에 쥔 검을 휘둘렀다.
단조롭지만 묵직한 일격이었다.
그의 검격에 마지막 남은 생도 한 명이 비틀거리며 튕겨 나갔다.
진태진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생도에게 달려들어 검 손잡이로 내리찍었다.
퍼걱-!
뒷목을 가격당한 생도는 마치 실 떨어진 인형처럼 그대로 허물어졌다.
생도의 상체를 부드럽게 받아든 진태진은 침통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잠시 자고 있어라.”
조심스럽게 생도를 눕히고 나서야 진태진은 몸을 일으켰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김한석이 떠나간 방향이었다.
교관으로 위장한 최흉의 빌런이자, 생도의 목숨을 인질로 삼는 만행을 저지른 악적.
그런 김한석을 놓쳐 버렸다.
생각만으로 화가 치밀어 올라 진태진은 이를 악물었다.
빠득-!
단지 그뿐으로, 그는 곧장 몸을 돌렸다.
악적을 처단하지 못한 분노 그 이상으로 통탄한 심정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안일한 생도.’
제 한 몸을 바쳐가며 김한석을 처단할 기회를 만들어 준 안일한.
가늘게 경련하며 서 있는 안일한 생도에게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태진은 누적된 피로에 온몸이 비명을 내지르는 와중에도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겨우 안일한 생도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하려는 순간.
스윽-
여태 미동조차 없었던 생도가 느닷없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아주 천천히, 손가락부터 시작해 손목과 발목을 움직이며 제 몸 상태를 점검했다.
마지막으로 고개를 두어 번 휘젓고 나서야 안일한 생도는 그를 바라봤다.
“…….”
안일한 생도의 눈빛은 무심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조금 전까지 생도에게서 이해할 수 없는 능력과 기현상을 목격했기 때문일까.
꿀꺽-
진태진은 무의식적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는 머릿속으로 할 말을 골랐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일한 생도, 괜찮은가?”
그의 물음에 안일한 생도는 대답 대신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묘한 위압감 속에 진태진은 회안이 어린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정말 면목이 없다. 그자를 놓친 건 전적으로 본 교관의 잘못이다.”
“…….”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쫓아가고 싶지만, 그랬다간 이곳에 남아 있는…….”
본의 아니게 변명하듯 중얼거리고 있을 때.
여태 침묵하던 안일한 생도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생도에게서 흘러나온 말은 진태진의 예상을 벗어나는 내용이었다.
“지금 쓰러져 있는 생도들과 교관님을 수습하고, 이곳에서 방황하는 나머지 생도들을 구하도록 하죠.”
죽음을 무릅쓰고 맞선 김한석이 아니라, 도리어 남은 인원들을 구하는 쪽을 신경 쓰는 것이다.
진태진에게는 당연한 수순이었으나, 안일한 생도까지 그리 말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이런 내색을 읽었는지, 생도가 재차 말을 이어 갔다.
“김한석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교관님.”
“……그게 무슨.”
“믿을 만한 사람을 수배해 뒀습니다. 김한석은 게이트 일대를 벗어나는 순간, 죽음을 면치 못할 겁니다.”
“……!”
안일한 생도의 대답에 진태진은 미간을 좁혔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니.
당장 떠오르는 이는 한 사람뿐이었다.
“설마 고태식 선배님을 말하는 건가?”
“아닙니다.”
“……그럼 누구지?”
“교관님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안일한 생도는 지체 없이 한 사람의 이름을 언급했다.
듣는 순간.
“……!”
진태진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 * *
비슷한 시각.
“커헉, 허억, 허억!”
김한석은 게이트를 빠져나가기에 앞서 잠시 멈춰 섰다.
호흡을 거칠게 내뱉으며 힘겹게 고개를 내렸다.
그의 시선이 닿은 가슴팍은 피칠갑이 되어 있었다.
‘……관통상은 메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응급조치에 불과했다.
서둘러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는 한 목숨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 이상으로 상처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눈앞의 게이트 너머에 있을 고태식 교관, 그를 넘어서지 않는 한 목숨을 보전할 수 없는 까닭이었다.
“허억, 허억, 후우……!”
김한석은 억지로 호흡을 정돈하는 한편, 품속에서 펜던트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체내의 마나를 쥐어짜내 다시금 아티팩트의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처음과는 비교도 안 될 수준의 옅은 안개가 펜던트에서 피어올랐다.
그제야 김한석은 근처의 수풀로 펜던트를 던졌다.
“……이걸로 충분하겠지.”
아티팩트는 고태식 교관을 낚을 마지막 수단이었다.
이렇게 활용하는 이상,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갈 것이고 세간이 알려질 터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그가 속한 단체를 특정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애초에 그렇게 설계된 까닭이었다.
‘가자.’
김한석은 그대로 게이트 너머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이질적인 감각 속에 숨이 막혔으나, 꾹 눌러 참았다.
이윽고 게이트 바깥의 풍경을 접하는 순간.
“……한석 교관?”
고태식 교관 특유의 거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접근해 오는 그의 인기척을 느끼며 김한석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털썩-!
어깨를 가늘게 떠는 한편, 피를 한 움큼 게워냈다.
물론 의도적인 연출이 가미된 행동이었다.
이를 본 순간.
“한석 교관!”
고태식 교관의 표정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이는 당연한 반응이자, 김한석이 바라마지않던 반응이었다.
애초에 김한석이 일으킨 이변은 침식 현상과는 달랐다.
외부에서 이상함을 감지하는 건 불가능한 것이다.
즉, 고태식 교관의 입장에서 지금 김한석의 모습은 때아닌 참사처럼 느껴질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대체 게이트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지금 느껴지는 이상한 기운은 또 뭐고! 말해 보게!”
고태식 교관은 다급하게 추궁했다.
김한석은 경련하는 입술로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아, 안쪽에 정체 모를 빌런이 숨어들었습니다……!”
“뭐라고? 빌런?! 생도들의 상태는? 나머지 교관은 무사한가?!”
“힘겹게 버티고는 있지만, 오래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특히 태진 교관님이……!”
“태진 교관이? 그렇군, 자네를 내게 보내기 위해 시간을 벌고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아귀가 척척 맞아떨어졌다.
이는 전적으로 사전 작업과 김한석의 의도적인 연출이 맞물린 결과였다.
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태식 교관의 표정을 살폈다.
보아하니, 상태가 심각한 그의 안위와 게이트 너머에 있을 생도의 안위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양이었다.
이 사실을 눈치챈 김한석은 한마디를 덧붙이며 고태식 교관의 등을 떠밀었다.
“저는, 저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고태식 선배님, 안쪽의 생도들을 부디……!”
“……알겠네. 반드시 살아남게!”
고태식 교관은 엄청난 살기를 내뿜으며 곧장 게이트로 넘어갔다.
이를 확인한 즉시 김한석은 코어의 마나를 다시 한번 쥐어짜냈다.
엄청난 격통 속에 발휘한 마법은 다름 아닌 순간 이동 마법이었다.
스슷-!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착지하는 순간.
“커헉!”
또다시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피를 토해내고 나니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거기서 김한석은 직감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마지막 고비까지 무사히 넘겼다.
이제 남은 건 비상 연락책을 가동하여 조직의 구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리 생각하며 근처의 나무에 기대어 털썩 주저앉았다.
“허억, 허억, 허억!”
아득해지는 정신을 악착같이 붙들고 있을 때.
우우웅-!
어디선가 심상치 않은 마나의 파동이 느껴졌다.
출혈이 너무 심했기 때문일까, 사고의 속도가 따라가지 못했다.
바로 그 때문이었다.
타닷-
느닷없이 나타나 가볍게 착지하는 여성의 기척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은 말이다.
그녀의 존재를 인식한 순간, 김한석은 두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너, 너는 재앙의…….”
김한석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흐응, 당신이었구나. 여덟 번째 사도라는 자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여성이 나른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가 잦아든 순간.
화륵-!
지옥의 겁화가 김한석을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