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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110화 (110/218)

110화 너였어. 네가 망쳐 놓은 거구나!

B급 검사와 A급 마법사의 대결.

이는 단순히 초인과 초인간의 대결이 아니었다.

아카데미의 현역 교관, 그리고 교관이었던 변절자 간의 전투였다.

그것도 승패나 우열을 가리는 게 아니라 목숨을 걸고 서로를 죽이기 위해 싸우는 것이었다.

때문에 생도들은 대결을 숨죽여 지켜봤다.

그 속에서.

‘……침착하자.’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품은 채 두 사람의 전투를 주시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안일한 생도, A반 인원들과 이은애 교관을 부탁하지.

진태진 교관이 김한석과의 전투에 앞서 남은 사람들을 내게 맡긴 까닭이었다.

이는 진태진 교관이 나를 더 이상 평범한 생도로 보고 있지 않다는 반증처럼 다가왔다.

‘하기야, 이쯤 되면 평범하게 봐 주는 게 오히려 이상하겠지.’

그 정도로 납득하는 한편, 눈앞의 전투에 집중했다.

각각 B급, A급에 이르는 초인답게 두 사람의 전투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파직-!

진태진 교관의 보법은 섬전과도 같이 기민했고, 검술은 극도로 효율적이면서 실전적이었다.

또한 칼날을 뒤덮은 회색 마나는 그의 성향을 대변하듯, 철옹성처럼 두터웠다.

이 모든 게 어우러져 김한석에게로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카가가강-!

김한석 또한 결코 만만치 않았다.

마법의 전개 속도부터 공격과 방어의 전환 속도, 그리고 마법의 규모에 이르기까지.

그의 전투는 자신이 왜 A급 마법사인지를 증명하는 듯했다.

하지만 김한석보단 진태진 교관의 활약에 자연스럽게 눈이 갔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태진 교관님이 밀어붙이고 계셔!”

“진짜 대단하시다, 대체 어떻게……?”

진태진 교관이 절대적이라 할 수 있는 등급의 격차를 뛰어넘어 김한석을 밀어붙이고 있는 까닭이었다.

비결은 다름이 아니었다.

“……무기 통찰, 생각보다 까다로운 특성이네요.”

진태진 교관이 가진 이능형 특성, ‘무기 통찰’ 때문인 듯했다.

그제야 나는 진태진 교관이 여태까지 선보인 전투 방식이 이해가 됐다.

‘제어 마법이 됐든, 공격 마법이 됐든. 대부분 빠르게 파훼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거였구나.’

여태 진태진 교관은 김한석의 다양한 마법 구사에 맞서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대응했다.

그 바탕이 바로 이능형 특성, ‘무기 통찰’인 것이다.

손패를 계속해서 읽혀서 그런지, 김한석의 표정은 점차 굳어 가고 있었다.

이는 그가 여유를 잃고 있다는 반증이나 다름없었다.

“……과연, 전장의 매. 쉽지 않네요, 태진 교관님.”

김한석은 눈매를 좁히며 가만히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슬슬 나서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지금처럼 팽팽한 구도라면 단 하나의 변수만 더해져도 승부의 추가 급속도로 기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직접 그 변수가 될 작정이었다.

‘그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나는 잠깐 생각을 정리하고는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내 눈길이 닿은 곳에는 윤설하를 비롯한 내 친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내 시선을 의식한 순간, 나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너희들에게 부탁이 있어.”

내 말에 세 사람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입술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지, 세 명 모두 침묵을 고수하는 가운데.

윤설하가 어렵사리 입을 열어 내게 되물었다.

“부, 부탁이라니? 지금?”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

그녀가 극도로 긴장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을 일일이 배려하면서 대화할 수 있는 순간이 아니었다.

때문에 나는 그녀를 향한 미안한 감정을 잠시 접어 둔 채 말을 이어 갔다.

“어. 중요한 일이야.”

“……!”

“윤설하, 그리고 너희들 모두의 도움이 필요해.”

나는 그렇게 운을 뗀 다음, 곧장 본론을 꺼내 들었다.

“나 대신 너희들이 이은애 교관님하고 다른 친구들을 지켜 줬으면 좋겠어.”

“대, 대신 지켜 달라니……, 잠깐만.”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윤설하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바짝 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핵심을 놓치지 않고 언급했다.

“……설마 안일한 너, 뭔가 할 셈이야?!”

“어.”

내 단호한 대답에 윤설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내게 재차 물었다.

“……혹시 저 싸움에 끼어들려는 건 아니지?”

“…….”

정확히 짚었으나, 구태여 대답하진 않았다.

그 대신 나는 슬쩍 몸을 일으키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부탁할게.”

“잠깐만, 일한이 너……!”

윤설하의 다급한 목소리를 뒤로한 채 나는 곧바로 흑영신보를 발휘했다.

그 순간 내 몸이 안개로 화했다.

스르륵-

특유의 허공을 유영하는 감각 속에서 나는 내 상태를 살폈다.

주변에 짙게 깔린 안개 덕분인지, 내게서 비롯된 칠흑빛 안개는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들키지 않을 거란 생각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거겠지?’

내가 만들어 낸 칠흑빛 안개는 결국 마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니 기감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알아차릴 터였다.

‘하물며 상대는 교관, 틀림없이 들키겠지.’

본래라면 그렇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두 사람은 백중지세를 이루며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목숨이 걸린 전투인 만큼 온 심력을 쏟아내는 것이다.

바로 거기서 나는 활로를 엿봤다.

‘항마멸인장의 사정권 안으로 접근할 수만 있다면.’

그때쯤이면 들켜도 상관없었다.

적어도 그림자 녀석의 말에 따르면 그랬다.

‘상대가 눈치를 채도 사정권 안에 들어서기만 한다면 반드시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무공이라 했으니까.’

애초에 그림자 녀석의 계획은 기습을 상정하고 세워진 것이었다.

따라서 기습이 가능할 만한 무공을 준비했다는 게 녀석의 설명이었다.

나는 그 말을 믿기로 했다.

‘슬슬 움직이자.’

그렇게 나는 숨죽여 움직이며 타이밍을 가늠했다.

* * *

카강! 쩌엉-!

이중으로 펼친 방어 마법으로부터 회색 마나의 파편이 요란하게 튀는 가운데.

‘……성가시네, 정말로.’

김한석은 미간을 찌푸린 채 방어 마법을 파훼하는 적을 노려봤다.

시선이 닿는 곳에는 진태진이 무표정하게 쇄도하고 있었다.

파지직-!

진태진은 시퍼런 섬전과 함께 나타나 무심하게 검격을 흩뿌렸다.

속도는 물론이거니와, 그가 사용하는 검술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불필요한 부분을 전부 덜어내고, 오로지 실전과 효율만 집대성한 듯한 검술.

이는 단순히 움직임뿐만 아니라 마나의 활용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A급 마법사인 자신을 상대로 여태 마나가 마르지 않았다는 게 바로 그 증거였다.

“……치잇!”

김한석은 표정을 구긴 채 순간 이동 마법으로 순식간에 간격을 벌렸다.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한편, 문득 한 쪽에 시선이 가닿았다.

다름 아닌 A반 생도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인식한 순간, 그의 뇌리로 잠시 잊고 있던 아이디어가 스쳐 갔다.

‘슬슬 생도들을 활용해서 끝내 볼까.’

어차피 진태진에게 정체를 들킨 이상 결말은 정해져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물론, 게이트에서 헤매고 있을 생도들까지 전부 죽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제 손으로 죽이든, 진태진을 처리하기 위해서 희생양으로 삼든 결과는 다르지 않을 터였다.

‘몇몇은 조금 아쉬운데…….’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는 찰나, 김한석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본래 A반 생도들과 함께 있어야 할 생도 한 명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고개를 기울이며 정체를 가늠하고 있을 때.

“……너!”

별안간 정면에서 달려들던 진태진이 멈춰 선 채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런데 그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향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이를 인식한 순간.

오싹-

김한석은 문득 등골이 서늘함을 느꼈다.

마치 목덜미에 날카로운 비수가 다가오는 듯, 오싹한 감각이었다.

때문에 김한석은 눈앞에 진태진이 접근하고 있음에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오싹한 감각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안개가 어느 틈에. 잠깐만, 이건……!’

도무지 믿기 어려운 가능성을 떠올리는 순간.

화아앗-!

칠흑빛 안개가 눈앞에서 순식간에 하나의 형태를 이뤄 갔다.

그렇게 완성된 형체는 익숙한 사람이었다.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 속내를 읽기 힘든 눈빛. 다름 아닌 안일한이었다.

“네가 여기서 뭘…….”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김한석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느닷없이 나타난 것도 모자라 안일한이 엄청난 속도로 오른손을 뻗은 까닭이었다.

심지어 그의 손바닥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정확히는 피를 연상케 할 정도로 붉은 기운이 요사스럽게 넘실거리고 있었다.

‘……이건 위험하다.’

위험을 인식하기가 무섭게 김한석은 미친 듯이 마나를 끌어올렸다.

동시에 양손을 바쁘게 움직여 방어 마법을 전개했다.

그야말로 간발의 차로 그의 정면에 검보랏빛 방어막이 형성됐다.

바로 그때 안일한의 일격이 방어막과 맞닥뜨렸다.

쩌-엉!

심상치 않은 소리가 터져 나오는 한편, 김한석은 문득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오브를 쥔 오른손으로부터 저릿한 감각이 흘러드는 것이다.

이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콰직-!

방어막에 균열이 일었다.

A급 마법사인 자신의 마법을 고작 일개 생도가 뚫어내고 있는 것이다.

김한석은 다급하게 코어를 활성화시켰다.

아니, 정확히는 활성화시키려다가 멈칫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마나 순환이 어그러졌다?’

오른팔을 저릿하게 만든 붉은 기운.

그로 인해 마나의 순환 경로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이를 깨달은 순간 김한석은 무의식적으로 직감했다.

죽는다.

저 요사스러운 기운을 휘감은 오른손아귀를 저지하지 못하면 그대로 왼쪽 가슴을 꿰뚫려 절명할 것이다.

그런 위기감의 발로일까, 김한석은 코어의 마나를 무리해서라도 이끌어냈다.

그 결과 눈 깜빡할 사이 정면에 다섯 겹의 방어 마법이 생성됐다.

그럼에도.

콰직-! 콰지직-!

안일한의 일격의 기세는 쉬이 꺾이질 않았다.

때문에 김한석은 목덜미에 핏줄을 세운 채 미친 듯이 방어 마법에 마나를 쏟아부었다.

그 사이.

파지직-!

여태 혼란에 잠겨 있던 진태진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를 인식한 순간 김한석은 깨달았다.

‘더 이상 사정을 봐가면서 움직여선 죽는다……!’

결심과 판단은 빨랐다.

펜던트에 투자한 마나를 모조리 회수한 것이다.

그 즉시.

스스스-

주위에 내려앉은 안개가 옅어졌다.

이변이 풀리고 있는 것이다.

그 대신 김한석은 전신에 끓어오르는 힘을 느꼈다.

이를 바탕으로 순식간에 방어막을 형성해 전신을 보호했다.

진태진의 검광이 번뜩인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쩌-엉!

방어막이 요동치고 먼지구름이 짙게 피어올랐다.

다만 그게 전부였다.

“……커헉, 허억, 허억!”

진태진의 일격을 튕겨 낸 건 물론, 안일한의 공격까지 전부 막아 낸 것이다.

김한석은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얼굴을 들어 안일한을 바라봤다.

녀석은 당돌하게도 변함없이 무표정으로 그의 시선을 받아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모든 의문이 풀렸음을 깨달았다.

“너였어. 네가 망쳐 놓은 거구나!”

먹잇감에게 심어 둔 환영 마법의 씨앗을 짓밟은 사람.

이번 계획을 어그러뜨린 사람.

그의 진정한 정체까지 알고, 까발린 사람.

바로 안일한이었다.

거기에 분노가 들끓는 한편, 김한석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광기가 피어올랐다.

‘……반드시 가져야겠어.’

완전한 세뇌로 백치를 만들어서라도 안일한은 데려가야겠다.

김한석은 다짐과 함께 체내에서 들끓는 힘을 곧장 개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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