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생도는 혹시 알고 있었나?
스스스-
안개가 순식간에 주위를 둘러쌌다.
느닷없는 기현상에 대부분 경악스러운 반응을 토해내는 가운데.
기이한 안개는 급속도로 제 몸을 부풀려 갔다.
그 결과 한 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자욱해졌다.
이에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 이게 대체……!”
“설마 이번에도 침식 현상인 거야?!”
생도들은 경악하는 한편, 여름 방학 때 발생한 게이트 실습 사태를 떠올리며 혼비백산했다.
아비규환의 상황 속에서 진태진 교관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전원, 내 쪽으로 모여라!”
상황을 파악하기에 앞서 생도들의 안전을 먼저 확보하려는 듯했다.
그 사이에도 이변은 계속됐다.
차박차박-
지면으로부터 별안간 물이 새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빠르게 차오른 끝에 어느새 초원은 늪으로 변모했다.
발목 어림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각에 또 다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공포감이 급속도로 전염되어 가는 가운데, 진태진 교관은 재차 소리쳤다.
“다들 침착하게 내 쪽으로 모여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움직여!”
그가 일갈을 터뜨리고 나서야 생도들은 정신을 차리고 움직였다.
불안한 적막 속에 사람들의 발소리만이 요란한 가운데.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마음을 다잡았다.
‘……움직이기 시작했구나.’
드디어 김한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금 일어난 이변이 바로 그 증거였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차박 차박-
나는 서둘러 진태진 교관을 향해 움직였다.
단순히 지시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아예 그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이제 슬슬 모든 전말을 밝힐 순간이 왔기 때문이다.
내 접근을 눈치챘는지, 일순간 진태진 교관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안일한 생도.”
그의 반응을 보아하니, 내 의도를 어렴풋하게나마 눈치챈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진태진 교관은 나를 향해 빠르게 말을 이어 갔다.
“혹시 생도는 본 교관에게 할 말이 있나?”
“네. 잠시 귀 좀 빌려주십시오.”
내 요청에 진태진 교관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나는 빠르게 생각해둔 말을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꿈 속에서 본 내용을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장 먼저 범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범인이라고? 생도의 말은 눈앞의 이변이 인위적으로 일으킨 현상이라는 뜻인가?”
“네. 혹시 교관님께선 안개가 생성되기 전에 하늘을 본 적 있으신가요?”
“하늘……, 그렇구나.”
그제야 진태진 교관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달은 모양이었다.
침식 특유의 하늘이 갈라지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안일한 생도, 분명 범인이라 했나? 그렇다는 건 범인의 정체까지 알고 있다는 말인가?”
“네. 이번 이변은 김한석 교관이 벌인 일입니다.”
“뭐……?!”
망설임 없이 대답하자 진태진 교관의 두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그만큼 충격적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감정을 추스를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이미 김한석은 움직이기 시작했을 테니까.’
본래 김한석의 계획은 기현상을 바탕으로 생도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기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다소간의 피해쯤은 신경조차 쓰지 않을 터였다.
그러니 피해가 커지기 전에 그를 막아야 했다.
때문에 나는 빠르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 사람의 신분은 위장이었습니다. 진짜 정체는 비밀스러운 빌런 집단의 간부입니다. 목적은…….”
김한석의 진정한 정체부터, 이변을 일으킨 목적.
마지막으로.
“믿기 힘들 거란 건 알고 있습니다. 더욱이 의혹만으로 움직이기 힘들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한 가지 더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말하도록.”
“그 사람과 조우했을 때, 이렇게 말씀해 보시죠.”
태양이 완전히 추락하는 날. 나는 그림자 녀석이 사전에 알려 준 문구를 입에 담았다
내 말에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진태진 교관은 굳은 낯빛으로 전해 들은 문구를 중얼거렸다.
“암구호입니다. 분명 그 문구에 반응할 겁니다.”
“……일단 알겠다. 본 교관에게 더 전할 말은 없나?”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뭐지?”
“전 그 사람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뭐……?!”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전혀 예상치 못한 듯, 진태진 교관은 두 눈을 부릅떴다.
이쯤 되니 그의 눈빛에는 김한석에 관한 의혹 이상으로 나를 향한 의문이 가득해 보였다.
이를 증명하듯.
“……생도는 혹시 이번 일이 일어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나?”
그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내게 물어왔다.
질문의 형태를 띠고 있었으나 뉘앙스에선 모종의 확신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는 까닭이었다.
진태진 교관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사사로운 대화는 나중에 다시 하도록 하지. 그것보다 생도는 김한석……, 그자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다고 했나?”
“네. 가능합니다.”
“그럼 앞장서도록.”
아무래도 진태진 교관은 김한석이 맡은 B반 생도들의 상황을 걱정하는 기색이었다.
실제로 그는 나와의 대화를 마무리 지은 다음, 곧바로 생도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지금부터 다들 무기를 들고 내 뒤를 따른다! 아카데미에서 배운 대로만 움직인다면 어떤 몬스터가 습격하든 별문제는 없을 거다!”
그의 외침에 생도들은 쭈뼛쭈뼛 무기를 꺼내 들었다.
나 또한 건틀렛을 착용하며 깊게 심호흡했다.
다음에 김한석과 조우할 때가 곧 결전을 벌여야 하는 시점인 까닭이었다.
‘각오는 됐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는 한편, 고개를 돌려 진태진 교관에게 말했다.
“이쪽입니다.”
* * *
비슷한 시각.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지난 여름 방학 때도 이러지 않았나……?”
“침식 현상?!”
B반의 생도들 역시 A반의 생도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혼란에 휩싸여 잔뜩 위축된 채 몸서리치는 것이다.
생도들의 모습을 보며 이변을 일으킨 당사자, 김한석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그는 고개를 돌려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어디 보자.’
분명 사방은 자욱한 안개로 뒤덮여 한 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김한석은 훤히 보인다는 양 곳곳을 살폈다.
실제로 그는 A반의 움직임과 C반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들여다 보고 있었다.
비결은 다름 아닌 사전에 준비해 둔 아티팩트, 품속의 펜던트 덕분이었다.
‘가까운 곳은 C반, 이은애 교관님 쪽이려나.’
거리상으로 봤을 때 C반, 이은애 교관이 가장 가까이 있었다.
대강 위치 파악을 끝낸 김한석은 슬슬 움직일 준비에 나섰다.
‘먼저 C반부터 처리해 볼까.’
생도를 지켜 주는 교관이 있는 한, 제대로 된 트라우마를 심어 줄 수 없었다.
따라서 김한석은 이은애 교관부터 처리할 생각이었다.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재워 두려는 것이다.
그는 대강 계획을 정리한 즉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생도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침착하세요! 이곳에 있다간 흉포해진 몬스터들에게 습격을 당할지도 모르니, 바로 이동할 겁니다! 다들 제 쪽으로 붙으세요!”
김한석의 지시에 B반 생도들이 하나둘씩 움직였다.
그 와중에 눈에 띄게 침착한 생도가 한 명 있었다.
“얘들아 진정해! 교관님이 함께 계시니 별 문제 없을 거야! 그보다 지금은 움직여야 해!”
다름 아닌 백유진이었다.
명문 신창백가의 자제이자, 전교 1등에 달하는 천재.
그는 실력뿐만이 아니라 평소에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을 정도로 인망이 두터웠다.
그래서인지, 생도들은 백유진의 지시를 곧잘 따랐다.
‘……역시 저 아이는 총명하네.’
총기(聰氣)로 반짝이는 눈빛.
이를 보고 있자니 김한석은 가슴 속에서 그릇된 욕망이 꿈틀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백유진의 눈빛이 환영 마법으로 탁해지는 순간을 떠올렸다.
‘그렇게 되면 먼 훗날, 그는 감히 막아 내기 힘든 재앙을 일으키게 될 거야.’
상상만으로 의욕이 샘솟는게 느껴졌다.
전율에 몸서리치고 있을 때.
“교관님, 다들 모였습니다!”
백유진이 현 상황을 보고해 왔다.
김한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일단 다른 반과 합류할 겁니다! 다들 안개가 짙으니 몬스터의 습격에 대비하면서 저를 따라오세요!”
지시와 함께 본격적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안개가 짙어지는 가운데.
“교, 교관님! 제 친구가 사라졌어요!”
행렬의 후미에서부터 비명이 터져 나왔다.
분명 딱 붙은 채로 움직였음에도 어느 순간부터 사라진 까닭이었다.
그렇게 생도들이 한 명씩, 소리없이 사라져 갔다.
불안감이 가중되는 상황 속에서도 김한석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다만 같은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괜찮을 겁니다! 그보단 빨리 합류하는 쪽이 훨씬 중요하니, 서둘러 움직여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현 상황은 그가 연출한 것이다.
따라서 몬스터의 움직임도 그의 계획에 방해되지 않게끔 미리 제어해 둔 상태였다.
그러니 지금 낙오된 생도들은 가만히 쓰러져 있는 이상 당분간은 별 문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김한석이 속한 B반에 국한된 이야기였다.
“교, 교관님 저 쪽에 C반 애들이 있어요!”
“뭔가 소리가 이상한데?! 전투 중인가?!”
B반과는 달리, 마침내 조우한 C반은 폭주하는 몬스터들과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이는 의도적으로 연출한 상황이었다.
김한석은 그런 속내를 조금도 드러내지 않은 채 홀로 고군분투하는 이은애 교관을 향해 다가갔다.
“은애 교관님!”
“김한석 교관님, 와 주셨군요……!”
이은애는 대답과 함께 손에 쥔 창을 내질렀다.
그녀의 일격이 검붉은빛으로 변한 고블린의 머리통을 그대로 꿰뚫었다.
쩌적-!
단 한 번의 일격으로 폭주하는 몬스터의 숨통을 끊어낼 정도로 이은애의 실력은 빼어났다.
그럼에도 그녀의 움직임은 분주할 수밖에 없었다.
“교, 교관님……, 꺄악!”
“금방 갈게!”
수십여 마리가 넘는 고블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생도들을 급습하는 까닭이었다.
필사적으로 움직이며 생도들을 지키는 이은애의 모습에 김한석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과연 B급다운 무력이네. 역시 그녀에겐 신중하게 접근해야겠어.’
섣불리 움직였다간 계획을 성사시키기는커녕, 도리어 정체를 들킬지도 모를 일이었다.
때문에 김한석은 곧장 이은애에게 접근하는 대신.
“한 손 보탤게요! B반, 전원 전투를 준비하세요!”
도와주려는 척, 남아 있는 B반을 이끌며 전투 현장에 합류했다.
김한석은 C반 생도들에게 달라붙는 몬스터의 무리를 향해 마탄을 쏟아내는 한편.
‘자아, 잠깐 잠들어 있으렴.’
동시에 C반 생도들에게 제어 마법을 시전했다.
가벼운 환영을 통해 환각을 유발하는 식의 마법이었다.
일회성 마법에 가까우며 지속 시간도 짧았지만, 지금처럼 공포감이 극대화된 상황에선 굉장히 효과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꺄아아악!”
약발이 굉장히 잘 받았다.
마법에 당한 생도들이 비틀거리며 안색이 파랗게 질린 것이다.
그 순간 무방비한 생도들을 노리고 몬스터 무리가 짓쳐들었다.
‘여기서 한번…….’
김한석은 판단과 함께 생도와 몬스터 무리 사이로 뛰어들었다.
이어서 이은애를 낚기 위해 상황을 연출했다.
쩌-엉!
폭주한 고블린으로부터 날아드는 가시 돋친 몽둥이를 몸으로 받아낸 것이다.
정확히는 받아내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기, 김한석 교관님?!”
이은애는 혼비백산하여 순식간에 도약해 왔다.
그 사이 김한석은 재빠르게 코어의 마나를 끌어올렸다.
이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괜찮으신가요?!”
이은애는 그를 지킬 요량으로 다급하게 근처의 몬스터 무리를 향해 창격을 흩뿌렸다.
바로 그 틈을 노려 김한석은 한껏 끌어올려 둔 마나로 강력한 환영 마법을 시전했다.
“김한석 교관님! 괜찮……, 끄윽!”
이은애는 마치 벼락에 관통당한 것처럼 몸서리쳤다.
김한석은 그대로 혼절하여 허물어지는 그녀의 상체를 받아냈다.
그러고는 귓가에 속삭였다.
“잠시 자고 있어요, 은애 교관님.”
금방 끝날 테니까요.
김한석의 입가에 미소가 한층 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