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있다
진태진 교관에게 조력을 청하는 것.
그게 바로 내가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김한석은 A급인 역량을 B급으로 숨긴 채 생활했으며, 그걸 여태까지 들키지 않았을 정도의 실력자니까.’
그가 다른 교관들과 함께하고 있음에도 참사를 일으킬 정도의 역량을 지닌 까닭이었다.
물론 내가 있는 이상, 그림자 녀석을 통해 미래를 알고 있는 한 결말은 달라질 터였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내 의지이자 목표일 뿐, 그것과는 별개로 일의 성패는 냉정하게 가늠해 봐야 했다.
‘그림자 녀석이 전수해 준 세 가지 능력, S급 스킬들이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그것만으론 확신이 서질 않았다.
일의 중차대함, 그리고 절대적인 전력 차이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다른 교관에게 조력을 청하고자 했고, 적임자로서 진태진 교관을 떠올렸다.
물론 여기에도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김한석이 일으킬 참사를 밝히는 것부터, 실제로 맞서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이를 설명할 방법도, 납득시킬 근거도 부족했다.
반대로 진태진 교관이 납득해 준다고 해도, 그건 그거대로 문제였다.
‘그림자 녀석이 알고 있는 미래와 다르게 전개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
나는 머리를 싸맨 끝에 한 가지 해답을 떠올렸다.
오윤진을 언급한 건 바로 그 일환이었다.
그녀를 떠올린 이유는 간단했다.
1학기 때 처음 면담했을 당시, 진태진 교관이 오윤진의 능력을 연상케 하는 질문을 내게 물었던 점.
그리고 여름 방학 때 입원해 있을 당시 그녀의 실명을 심상치 않은 뉘앙스로 직접 거론한 점이었다.
이를 종합해서 생각한 끝에 한 가지 가설을 도출했다.
‘교관님은 오윤진을 세간에 알려진 이미지와는 다르게 생각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나는 떠올린 즉시 직접 확인에 나섰다.
그 결과.
“……지금 오윤진이라 했나?”
진태진 교관의 살짝 떨리는 목소리를 통해 정답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윤진이란 화제에 흥미를 보이는 것이다.
또한 그의 눈빛에 동요하는 기색은 있을지언정, 분노나 멸시와 같은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일단 긍정적이라 봐도 될 것 같은데. 이다음은 장소를 옮기고 난 다음에 이어 가면…….’
혹시나 대화 도중 김한석이 행정실에 들어설 때를 대비한 조치였다.
말을 꺼내려는 찰나.
“장소를 옮기지. 여기서 그 아이를 논하는 건 썩 좋지 않을 테니.”
공교롭게도 진태진 교관이 나보다 한발 앞서 자리를 옮길 것을 제안해 왔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 행정실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향한 장소는 다름 아닌 진태진 교관의 자가용이었다.
조심스럽게 조수석에 탑승하는 순간,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미구현 특성과 오윤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나?”
“네.”
“순서로 따지면 생도의 특성부터 의논해야 맞겠지만, 오윤진의 이야기부터 하도록 하지. 이해하길 바란다.”
진태진 교관은 진지한 어조로 양해를 구해 왔다.
그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오윤진을 신경 쓰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나는 미리 생각해 둔 이야기를 더듬으며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우선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 한 가지 약속해 주셨으면 하는 점이 있습니다.”
“약속이라……, 뭐지?‘
“지금 나눈 이야기를 철저히 비밀에 부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겠다, 약속하지.”
나는 진태진 교관으로부터 확답을 듣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말문을 열었다.
“사실 그 사람에게 납치당했을 당시, 저는 아무런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의 성격을 생각하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일은 아니군.”
“네. 덕분에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게 됐고, 우연찮게 듣게 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지?”
“능력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말하길, 그분은 저와 같은 미구현 특성이며, 미래를 볼 수 있다고 말하더군요.”
“…….”
진태진 교관은 잠깐 침묵했다.
다만 입을 다물고 있을 뿐, 그다지 놀라는 기색은 아니었다.
반응으로 보아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부분까지 생도에게 알려 줬을 줄은 몰랐다만, 그 아이의 특성은 나도 알고 있었다.”
진태진 교관은 오윤진의 특성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순순히 시인했다.
그의 대답을 듣자 새삼스럽게 오윤진과 진태진 교관의 관계에 의문이 생겼다.
하지만 지금은 사사로운 의문에 매달릴 때가 아니었다.
이를 상기하며 나는 본론을 꺼내 들었다.
“능력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한 가지가 더 있었습니다.”
“더 있다니, 뭐지?”
“이후 아카데미에서 크나큰 참사가 일어날 거라는 내용이었죠.”
“……참사라니, 정말인가?”
“네.”
진태진 교관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갔다.
그가 무어라 추궁하기 전에 나는 빠르게 덧붙였다.
“하지만 정확한 시기나 세부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가…….”
진태진 교관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의심은커녕, 오윤진의 특성을 기정사실로써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의 반응을 하나씩 속으로 갈무리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은 이 사실을 굳이 지금에 와서야 밝히는 이유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지금 털어놓은 이유라면, 설마 생도는…….”
“네. 저도 제가 가진 미구현 특성의 능력을 통해 비슷한 광경을 본 것 같습니다.”
“……!”
진태진 교관은 두 눈을 부릅떠가며 반응했다.
나는 뜸들이지 않고 본론을 밝혔다.
“하나 제가 본 광경 역시 모호했고, 시기도 특정할 수 없었습니다.”
“…….”
진태진 교관은 또다시 침묵했다.
이윽고 실망감을 감추려는 양.
“……그건 생도의 잘못이 아니다. 그 점은 확실히 인지하고 있도록.”
곧바로 그렇게 말해 왔다.
마치 내가 참사를 미리 인식했음에도 막지 못했을 때 좌절감을 느끼지 않도록 조언해 주는 느낌이었다.
배려심이 느껴지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밝혀선 안 된다. 어디까지나 참사를 암시하는 수준이어야 해.’
애초에 나는 모든 내막을 밝힐 생각이 없었다.
자칫 정해진 미래와 달리 흘러갈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김한석이란 흑막도, 수행평가라는 구체적인 시점도 밝히지 않을 셈이었다.
‘밝혔다간 아무래도 피해를 방지하는 쪽으로, 이를테면 수행평가를 전면 취소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수도 있을 테니까.’
그래선 안 된다.
미래가 틀어져 이번 기회에 김한석을 잡지 못하면 그때야말로 답이 없어질 터였다.
때문에 나는 암시에 집중하고자 다시금 운을 뗐다.
“추후 새로운 미래를 보게 되면 꼭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만 교관님께 한 가지 약속해 주셨으면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뭐지?”
“부디 때가 되면 저를 도와주셨으면, 신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부분도 본 교관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진태진 교관은 비장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대답을 듣는 순간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짖었다.
‘이걸로 됐다.’
이로써 차후 내막을 밝힐 때, 내 말에 무게감이 실릴 것이다.
나아가 김한석과 맞서는 순간, 진태진 교관의 조력도 받을 수 있을 터였다.
나는 결과를 갈무리하며 정중하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관님.”
“교관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그보다 한 가지 생도에게 당부할 사항이 있다.”
“경청하겠습니다.”
“미래에 무엇을 보고, 어떤 일이 일어나든 결코 혼자서 감당하려 들지 말도록. 이건 교관으로서 명령이다.”
진태진 교관은 마지막까지 교관의 의무를 다했다.
그 모습에 새삼스럽게 그를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감상을 뒤로한 채 그가 원하는 대답을 돌려줬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교관님.”
* * *
진태진 교관과의 대화를 끝마친 후.
나는 서둘러 저녁 식사를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일어나, 알려 줄 게 있으니까.’
그림자 녀석에게 현 상황을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녀석은 빠르게 반응했다.
-알려 줄 거라면, 지난번 네가 떠올린 아이디어에 관한 내용인가?
‘맞아. 결과까지 가져왔어.’
-구체적인 내용부터 듣도록 하지.
그림자 녀석의 대답에 나는 하나씩 차근차근 설명했다.
진태진 교관의 조력을 받으려는 생각부터, 그와 나눈 대화 내용까지.
전부 밝히자 녀석은 솔직한 감상을 들려줬다.
-확실히 그게 가능하다면 최선의 수단이 될 것 같군.
‘그렇지?’
-게다가 내막을 전부 밝히지 않고 후일을 위해 암시 정도로 그친 판단도 훌륭했다.
‘만일 지금 털어놓는다면 우리의 유일한 이점을 잃게 되는 꼴이니까.’
그림자 녀석의 생각은 전반적으로 나와 동일했다.
그럼에도 내가 떠올린 아이디어를 녀석이 실행하지 않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전에 말했듯, 내가 계획을 세울 땐 제약이 많이 따랐다. 어느 것 하나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
‘즉, 정면 대결과 기습 정도가 최선이었다?’
-그 말대로다.
납득이 되는 한편, 녀석이 누차 말하는 ‘제약이 따르는 상황’에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이를 물어보기에 앞서 그림자가 미묘한 뉘앙스로 운을 뗐다.
-교관의 조력을 얻는다면, 그게 필요할지도 모르겠군.
‘그거라니?’
-김한석을 추궁할 증거다.
‘아, 막상 대면했을 때 김한석이 발뺌할 수 있으니까?’
-정확하다. 그런 의미로 한 가지 말을 잘 기억해 둬라.
‘한 가지 말이라니?’
-언령이다. 김한석이 속해 있는 단체의 인원들은 결코 거역할 수 없는 문구가 있지.
언령, 잘 와닿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녀석은 천천히 언령의 내용을 내게 밝혔다.
-태양이 완전히 추락하는 날. 이 말을 김한석에게 제시한다면 녀석은 스스로 제 정체를 드러낼 거다.
‘……그건 조금 신기하네.’
나는 녀석이 알려 준 문구를 속으로 곱씹어보는 한편.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를 가늠해 봤다.
‘나는 김한석의 정체를 알고 있으니 상관없지만, 교관님은 다를 테니까.’
추후 상황이 발생했을 때, 진태진 교관에게 전달하면 될 듯싶었다.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한 채 그림자 녀석에게 말을 건넸다.
‘이걸로 내 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끝난 것 같아.’
-그런가?
‘어. 다른 교관님의 경우에는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거든.’
실제로 진태진 교관을 찾아가기 전, 나는 고태식 교관도 고려했다.
하지만 결국 단념했다.
받아들여질지 확신이 안 섰고, 사람이 많아지면 자칫 정보가 새어나갈 가능성도 있는 까닭이었다.
-한 명으로 충분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결국 우리는 최종적으로 기습을 취할 테고, 시선을 분산시키는 사람이 있으면 한층 더 성공 확률이 올라갈 테니까.’
-그리 알고 있겠다.
그림자 녀석의 대답을 끝으로 나는 슬슬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러고는 시간을 살폈다.
저녁 식사 이후 바로 기숙사로 돌아와서 그런지, 아직 8시밖에 안 된 상황이었다.
‘무기 훈련실이나 가 볼까. 아직 사람이 많이 남아 있으려나?’
다름 아닌 항마멸인장을 수련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잠깐 동안 생각한 끝에 몸을 일으켰다.
‘가 보면 알게 되겠지.’
사람이 많으면 조금 기다리고, 없으면 그때 가서 수련하면 될 것 같았다.
나는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한 채 기숙사를 벗어났다.
* * *
그날 밤.
-대상의 무의식 상태를 확인.
-대상의 주도권이 [????의 그림자]에게로 넘어갑니다!
-대상과의 동기화율을 확인.
-현재 동기화율…… [42%]
-[????의 그림자]가 연륜의 일부가 깃든 분별력과 미래시(未來視)의 편린이 담긴 기억, 그리고 의식에 따라 행동합니다!
…
…
…
그림자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기억을 더듬어 이른 저녁, 안일한과 대화를 나누며 생각했던 일을 떠올렸다.
생각이 날 때쯤 완전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준비할 게 남아 있으니까.’
판단 즉시 그림자는 스마트 워치를 조작했다.
그대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윽고 연결된 순간, 그림자는 나직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