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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104화 (104/218)

104화 각오를 다져야 할 때니까

그림자 녀석은 지체 없이 김한석의 계획을 설명했다.

-김한석의 움직임은 수행평가의 장소로 내정된 게이트에 미리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조치라니,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

-게이트 내부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게이트 환경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내부의 몬스터들을 폭주시키는 것.

이로 말미암아 목표로 삼은 인원들의 세뇌를 가속시키는 것이 바로 김한석의 계획이었다.

듣다 보니 불현듯 지난번 게이트 침식 사태가 뇌리를 스쳐 갔다.

‘왠지 침식 현상이랑 느낌이 비슷한데?’

-실제로 유사하다.

‘……뭐라고?’

유사하다니.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되물었다.

그렇다면 김한석은 수행평가로 내정된 게이트에서 침식 현상이 벌어질 거란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건가?

나는 떠올린 의문을 곧바로 입에 담았다.

이에 그림자는 내게 모호한 대답을 돌려줬다.

-김한석이 미래를 알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럼 어떻게? 설마 그 사람은 인위적으로 침식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거야?’

-지금으로부터 수년 후에는 실제로 그런 능력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그럼?’

-전 단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거다. 아직 시험 단계일 테니까.

인위적인 침식 유발의 전 단계.

그래서인지, 지난번처럼 다른 차원이 침식하는 현상까진 발생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단지 몬스터의 폭주만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그 사실만으로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런 현상을 인위적으로 일으킬 수 있다니……, 대체 김한석은 뭐 하는 사람이지? 아무리 B급 마법사라도 그렇지.’

그림자 녀석의 말이 사실이라면 김한석은 생각 이상으로 위험한 존재라 할 수 있었다.

그런 내 속내를 읽었는지, 녀석은 차근차근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세간에 알려진 김한석의 등급은 B급이지. 하나 실상은 다르다.

‘다르다니?’

-그는 자신의 힘을 숨기고 있다. 실제로는 A급 마법사니까.

‘……A급이라니.’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전에 겪어본바, 침식 현상은 가히 자연재해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즉, 개인의 무력과는 다른 차원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A급이라면 고태식 교관과 동급인데, 아무리 A급이라도 그런 일을…….’

-당연히 개인의 힘이 아니다. 애초에 침식 유발은 그가 속해 있는 단체에서 연구하는 과제이자, 목표니까.

‘단체라니, 김한석의 정체가 따로 있는 거야?’

-그래.

그제야 의문이 어느 정도 풀렸다.

더불어 수업 시간에 떠올렸던 의문, 어떻게 그가 다른 교관들의 시선을 피해 일을 벌였는지도 이해가 갔다.

‘A급이라면 아카데미 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니까.’

그렇게 납득하고 있을 때, 그림자 녀석은 진중한 어조로 말을 이어 갔다.

-다만 진정한 신분을 밝히는 건 잠시 미뤄 두도록 하지. 아직은 때가 아니니까.

그림자 녀석의 대답에 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러고는 속으로 떠올린 가능성을 천천히 입에 담았다.

‘……그것만 알려 줘. 김한석이 속한 단체라는 건 전에 네가 보여 준 파멸적인 미래와 관련이 있는 거야?’

-역시 감이 좋군.

녀석의 대답은 긍정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일까, 듣는 순간 침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반면 그림자는 담담한 어조로 재차 입을 열었다.

-격변은 결국 김한석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니 녀석의 계획을 저지하는 것부터 차근차근해 나간다면 미래의 재앙도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거다.

다독이는 말에 천천히 정신이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나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으며 본론으로 돌아왔다.

‘그런 거라면 우선 눈앞에 집중해야겠지.’

-정확하다.

‘그래서? 김한석의 움직임은 대충 알았으니, 이젠 네가 가진 계획을 들을 차례인데.’

과연 어떻게 김한석을 상대하고, 나아가 제거할 건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에 그림자는 짤막하게 대꾸했다.

-게이트 내에서 김한석의 허를 찔러 기습한다. 단번에 녀석의 숨통을 끊는 거지.

‘……역시 내 손으로 해야 하는 거네?’

-그 전에 앞서 내가 몇 가지 작은 조치를 취하겠지만, 계획의 핵심은 다름 아닌 너다.

이를테면 김한석과의 정면 대결에 가까웠다.

덧붙이기를, 내게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나머지 두 능력 또한 기습을 위해 준비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너무 주먹구구식인데. 대안이나 차선은? 그 전에 내가 진짜 교관인 김한석을 그……, 죽일 수 있는 거야?’

질문을 떠올리는 와중에 입술이 가느다랗게 떨렸다.

육성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에 새삼 안도하며 녀석의 대답을 기다렸다.

-우리가 단번에 즉사하지 않는 이상 방법은 있다.

‘네가 깨어날 테니까?’

-그렇지.

‘그럼 네가 아니라 굳이 내가 먼저 김한석을 상대하는 이유는?’

-만일 처음부터 내가 나서서 실패한다면 다음 기회는 없다.

‘하지만 첫 타자로 내가 나선다면 한 번 더 허를 찌르는 게 가능하다?’

-정확하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으면서도, 여전히 불안하게 느껴지는 계획이었다.

단순히 내 목숨이 달린 문제라 그렇다기보단 김한석을 확실하게 저지할 수 있는지,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때문에 나는 잠깐 대화를 멈추고는 생각에 잠겼다.

‘조금 더 확실하게 저지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보다 안전한 방식,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이…….’

-그게 가능하다면 네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

‘그래도 괜찮아?’

-어디까지나 내 계획은 최후의 수단에 가깝다. 애초에 상당히 제한적인 조건에서 세운 계획이었니까.

그림자의 대답으로부터 어딘가 씁쓸한 뉘앙스가 느껴졌다.

나는 녀석의 말에 반응하는 대신.

‘……잠깐만,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정말인가?

‘어. 나한테 시간을 줘.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니까. 하고 나서 결과를 공유해 줄게.’

-편한 대로 하도록.

내 대답에 그림자는 별다른 추궁 없이 수긍했다.

녀석의 태도에서 나를 향한 믿음이 느껴졌다.

이를 의식하고 있자 녀석은 변함없이 무덤덤한 태도로 긍정했다.

-여태 김한석이 목표로 하는 이들의 문제 해결도 거의 네 덕분이었다. 적극적인 협조에 대해선 언제나 감사하고 있다.

‘그거야 뭐, 남 일은 아니니까.’

직설적인 칭찬에 나는 객쩍게 답했다.

그러고는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이 정도면 일단 김한석의 계획에 관한 이야기는 대충 정리된 것 같네.’

-다음에 이야기할 땐 네가 떠올린 아이디어의 성과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군.

‘동감이야.’

-그럼 이제 다음 화제로 넘어가도록 하지.

‘다음 화제? 아.’

여태 김한석의 세부적인 움직임에 골몰했기 때문일까.

잠시 잊고 있던 이야기를 뒤늦게 떠올렸다.

그림자는 수긍하며 내게 제안을 건넸다.

-두 가지 능력. 이건 잠시 후에 보여 주도록 하지.

‘꿈속에서?’

-이 상태로는 시범을 보일 수 없으니까.

나는 녀석의 대답에 문득 시간을 확인했다.

순식간에 30분가량이 흘러 제한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은은하게 밀려오는 두통을 느끼며 나는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알겠어, 그럼. 조금 뒤에 보자고.’

그 말을 끝으로 의식의 연결을 거둬들였다.

그러고는 침대에 누운 채로 생각을 정리했다.

‘김한석을 제거해야 한다는 건…….’

사람을 내 손으로 죽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생명을 빼앗는 것.

이는 초인의 길을 택한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느 정도 각오했다고 여겼건만 막상 눈앞에, 그것도 생각보다 빨리 다가와서 그런지 심장이 뛰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날 수는 없어. 지금은 오히려 각오를 다져야 할 때니까.’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초인의 길을 택한 이상, 대상이 사람이 됐든 몬스터가 됐든 살해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때 꿈속에서 봤던 참사, 재앙이 눈에 훤했다.

‘그걸 김한석을 죽임으로써 대비할 수 있다면, 적어도 보탬이 된다면.’

기꺼이 해야 했다.

오히려 그림자 녀석과 만남으로써 기회가 왔음을 감사히 여겨야 마땅했다.

애초에 이 일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고,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는 사이, 서서히 의식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 * *

잠시 후.

“……일어나라.”

몽롱한 감각 속에 어렴풋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꿈속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한편, 천천히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무너진 건물 옥상, 어느새 익숙해진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정면에는 그림자 녀석이 서 있었다.

“정신이 들었나?”

“어. 꿈속에서 그런 말을 듣는 것도 조금 이상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녀석은 이번에도 역시 곧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가장 먼저 네가 가진 스킬의 상위 호환이라 할 수 있는 무공부터 알려 주도록 하지.”

“상위 호환이라, 기대되는데. 어떤 스킬이지?”

“보법이다.”

“보법이라면, 흑영보?”

그림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차오르는 호기심을 느끼며 생각했다.

‘흑영보라…….’

흑영보는 내게 있어 나름대로 특별한 의미를 가진 무공이었다.

처음으로 전수받은 무공이자, 처음 생긴 스킬인 까닭이었다.

‘등급도 C급이라 꽤나 기뻤는데.’

그 이후로 B급, A급, 심지어 S급 스킬까지 얻어서 그런지 지금에 와선 감흥이 덜한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온갖 전투에 있어 반드시 활용하는 게 보법인 만큼 여전히 유용하게 쓰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감회에 젖어 드는 사이, 그림자 녀석이 말을 이어 갔다.

“보법의 명칭은 ‘흑영신보’다.”

“흑영신보라……, 과연 이름만 놓고 보면 상위 호환 같은 느낌이네.”

흑영신보(黑影神步).

보법의 명칭을 속으로 되뇌고 있을 때, 녀석이 설명을 덧붙였다.

“베이스는 흑영보와 비슷하다. 애초에 혼원현천신공처럼 흑영보는 흑영신보에서부터 파생된 보법이니까.”

“그래?”

“따라서 동작과 구결만 익힌다면 체득이 가능할 거다.”

“바로 사용이 가능할 거란 이야기네.”

그림자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본격적으로 흑영신보에 관해 설명했다.

“초식은 총 네 개로 이뤄졌으며, 등급은 S급이다.”

“S급……!”

“혼원현천신공을 수련하며 느꼈겠지만, 흑영신보 또한 S급 스킬인 만큼 고유의 묘리를 품고 있다.”

“이번에도 묘리인가. 그래서?”

“효과는 체득하고 나서 직접 경험해 보도록.”

그림자는 그 말을 끝으로 자세를 취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녀석에게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 순간.

스윽-

녀석이 본격적으로 흑영신보를 펼치기 시작했다.

초식의 형(形)은 변함없이 기괴하고,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상당히 오랜만에 접하는 감각이었다.

그리움을 느끼는 한편, 각 동작들과 특히 걸음걸이를 주의 깊게 살펴봤다.

‘정말 흑영보와 비슷하네. 그런데 속도는 흑영보에 비해 조금 느린 것 같기도 하고.’

흑영보에 이미 익숙해서 그런지, 단순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확 와닿지 않았다.

S급 특유의 위력적인 느낌이 부족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직접 전수받는 건 처음이라 그런가?’

혼원현천신공도 어떻게 보면 그림자 녀석이 미리 토대를 만들고 난 다음 내게 구결을 전해 줬을 뿐이었다.

그러니 지금과 같은 감상이 맞는지, 틀린 지는 아무래도 직접 체득해 봐야 알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녀석의 시범은 끝났다.

“구결은 한꺼번에 전하고, 노트에 적어 놓겠다.”

“알겠어. 그럼 다음은?”

“다음은 새로운 무공이다.”

“마지막 능력인가. 명칭은?”

“알려 주기에 앞서 한 가지 조건이 있다.”

흑영신보를 알려줄 때와는 다른 뉘앙스였다.

의아한 감정이 드는 한편, 곧바로 녀석에게 되물었다.

“조건? 뭔데?”

“아무도 없는 곳에서만 단련할 것. 그리고 수업 시간이나 대련에서 위력을 확인하지 말 것. 이 두 가지다.”

생각지도 못한 조건에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아직 이해는 안 됐지만, 결코 허언을 하지 않는 그림자 녀석의 성격상 분명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이유는?”

“이 무공이 김한석의 숨통을 끊을 비수가 될 테니까.”

녀석은 한없이 진지한 모습으로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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