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최소한의 조건은 갖춰졌다
2학기 중간고사가 시작된 가운데.
첫날부터 셋째 날 오전까지는 이론 시험이 진행됐다.
이론은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친구들의 도움 덕분에 그럭저럭 괜찮게 치를 수 있었다.
셋째 날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실기 시험이 시작됐다.
실기의 첫 번째 시험 과목은 총 두 가지 테스트로 구성된 마력 시험이었다.
“오늘은 마력 운용 시험을, 넷째 날에 해당하는 내일 오전에는 가상 대련 시험을 진행할 겁니다.”
김한석의 지시 아래 마력 운용 시험부터 시작됐다.
시험 방식은 간단했다.
일정 시간 이상 호신과 마나의 유형화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마나 운용의 지속 시간을 테스트하는 것이었다.
나는 시험 기간 내내 혼원현천신공을 유지하는 연습을 한 덕분인지.
“일한 생도, 만점이에요.”
가볍게 만점을 획득했다.
비결은 다름 아닌 혼원현천신공 수련을 바탕으로 이뤄낸 진정한 묘리에 있었다.
‘수련 초기에는 분명 조절도 잘 안 되고, 마나 효율도 극악에 가까웠는데.’
당시에는 내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되레 방해만 됐다.
하지만 익숙해지니 신세계가 펼쳐졌다.
호신을 따로 발휘하지 않았음에도 호신의 효과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마나의 유형화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코어를 활성화시키는 것만으로 마나의 두 가지 운용을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적응이 되니까 마나 효율은 물론이고 편의성이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네.’
덕분에 마나를 제어하는 데 필요한 심력을 온전히 대련에 쏟을 수 있었다.
덤으로 현 상태에서 호신과 마나의 유형화를 따로 발휘했을 시, 이전보다 한층 강화된 위력이 발휘됐다.
이와 더불어 시험 기간 동안의 수련, 스텟 단련에 매진한 덕분인지.
“그만, 일한 생도의 승리입니다. 그리고 점수는 만점입니다. 축하해요.”
그 다음날 치른 가상 대련에서도 나는 만점을 받았다.
검을 사용하는 중위권 수준의 생도와 맞붙어 압도적인 승리를 따낸 것이다.
이를 통해 나는 스텟 상승의 효과를 톡톡히 체감할 수 있었다.
-근력 스텟 40
-민첩 스텟 38
-체력 스텟 39
-마력 스텟 78
대략 3주간 무려 30스텟 이상 성장시켰다.
그 결과 예상대로 C급을 달성했다.
덕분에 넷째 날과 마지막 날에 치른 가상 전투 시험까지도 완벽에 가깝게 치를 수 있었다.
결국 실기 시험을 전부 만점으로 끝낸 것이다.
나는 성적을 갈무리하며 생각했다.
‘1학기 기말고사 때 상위 5%를 찍었지, 아마?’
과연 이번에는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기대와 함께 친구들과 조촐하게 시험이 끝났음을 자축하며 주말을 보냈다.
* * *
시간이 흘러 월요일.
시험 이후의 첫 수업은 언제나처럼 자습으로 진행됐다.
그리고 7교시, 실기 수업 시간은 성적 발표 및 2학기 기말고사 과정에 관한 설명으로 대체됐다.
변함없이 무표정으로 반에 들어선 진태진 교관은 단상으로 올라가 성적부터 발표했다.
“지금부터 2학기 중간고사 성적을 발표할 테니, 다들 주목하도록.”
그의 무심한 어조에 생도들의 시선이 전부 단상 앞쪽의 홀로그램 화면을 향했다.
나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화면에 표시된 명단에서 내 이름을 찾았다.
그 결과.
‘반에서는 6등, 전교에서 15등인가.’
상위 3%에 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1학기 기말고사 때보다 미세하게나마 전체 석차가 오른 것이다.
‘이론을 조금 더 잘봤으면 1%도 가능했을지도.’
실기 성적이 전부 만점이었음에도 상위 3%인 이유는 다름 아닌 이론 시험의 성적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스텟 단련에 집중한 탓에 상대적으로 이론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만한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건 모두 윤설하와 차은월, 두 천재들 덕분이었다.
‘다음에 과자라도 사 줘야겠다.’
새삼스럽게 속으로 두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는 한편.
잠깐 동안 감회에 젖어들었다.
이 정도면 윤설하와 백유진을 비롯한 천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모처럼의 기쁨을 만끽하는 사이, 진태진 교관은 성적 발표에서 넘어가 전출 대상자를 발표했다.
확실히 시간이 갈수록 수준이 올라갔는지, 호명된 인원은 10명을 넘기지 않았다.
‘2학기 기말고사에선 5명 아래로 떨어지겠는데.’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진태진 교관이 다시 이목을 집중시켰다.
아무래도 2학기 기말고사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가려는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어서 2학기 기말고사의 커리큘럼을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진태진 교관은 무표정하게 본론을 꺼내 들었다.
2학기 기말고사의 커리큘럼, 이는 내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김한석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환영 마법사, 김한석과의 결전이 어느새 성큼 다가온 것이다.
그림자 녀석의 말에 따르면 김한석은 이 시기에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설명에서 무언가 단서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때문에 나는 진태진 교관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2학기 기말고사 과정에선 본격적으로 게이트 레이드, 온전한 형태의 사냥을 배우게 될 거다.”
레이드, 온전한 형태의 사냥.
그의 설명에 저마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반응했다.
다들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린 까닭이었다.
“즉, 실전 역량을 배양하는 게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수업 과정 또한 실전에 가까운 환경으로 진행될 거다.”
진태진 교관이 말을 이어 갔다.
“단순히 여태까지 했던 것처럼 몬스터와의 단일 전투가 아니라 실제 게이트와 유사한 환경, 조건에서 레이드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를테면 가상 전투의 심화 과정 같은 느낌이었다.
‘가상 전투실에선 그런 것도 가능하구나.’
감상과는 별개로 살짝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제아무리 실전을 방불케 하는 조건과 환경이라 한들, 결국 수업은 가상에서 이뤄진다.
그렇다면 대체 김한석은 어떤 식으로 움직이길래 참사를 일으킬 수 있는지,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슬슬 그림자 녀석에게 물어봐야 하나.’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
진태진 교관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내용이 흘러나왔다.
“2학기 수행평가와 기말고사는 D급 게이트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가상이 아니라 실전인 셈이지.”
D급 게이트.
이 말은 곧 수행평가와 기말고사를 현존하는 D급 게이트를 통해 진행한다는 뜻이었다.
진태진 교관이 말을 맺자 교실 내부에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생도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대부분 예상치 못한 모양이었다.
반면 나는 듣는 순간 직감했다.
‘……이거다.’
김한석이 움직이는 타이밍.
그와의 결전을 벌일 시점은 바로 수행평가 내지는 기말고사가 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가슴이 뛰는 가운데, 진태진 교관은 진지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본 교관을 비롯하여 여러 교관이 동행하겠지만 그럼에도 실전은 실전이다. 다들 수업에 집중해서 역량을 다지고, 필요한 지식을 제대로 소화해 두도록.”
대부분이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나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그의 설명을 갈무리했다.
‘교관님들이 동행한다면 김한석도 포함되어 있겠지.’
그런 상황에서 일을 벌인다니,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진태진 교관이 설명을 마무리 지었다.
“정식 수업은 내일부터 진행할 테니, 오늘은 각자 자습하도록. 이상이다.”
말을 마치고는 천천히 단상에서 내려가 교실을 빠져나갔다.
생각지 못한 시험 방식에 여태 얼어붙어 있던 분위기는 차츰 누그러져 갔다.
삼삼오오 모여들어 시험에 관한 잡담을 나누는 가운데.
“일한이, 이제 진짜 실전이다!”
임강철이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걸어왔다.
다른 생도들과는 달리 그는 걱정하는 기색 하나 없이 도리어 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주먹을 불끈 쥔 채로 열변을 토해내는 모습을 보아하니 상당히 기대하는 모양이었다.
본래라면 나 또한 몬스터를 내 손으로 사냥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생각보다 위험할지도 모르겠네.’
나는 조금 다른 이유로 가슴이 떨렸다.
이유는 당연히 김한석 때문이었다.
실전이라는 점보다는 다른 교관들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일을 벌인다는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대체 저력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한편, 마음을 다잡았다.
결국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명확한 까닭이었다.
‘만일 수행평가 때 일이 발생한다고 해도 최소한 한 달 정도는 시간이 있으니까.’
더더욱 단련에 박차를 가하자는 생각과 더불어 그림자 녀석을 떠올렸다.
이제 슬슬 김한석의 구체적인 움직임에 관해 알아둬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그런 의미에서 일한이, 당장 단련하러 가지 않겠나?!”
임강철이 열변을 끝내고 함께 자습하자고 청해 왔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 가자.”
* * *
그날 저녁.
나는 단련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온 즉시 그림자 녀석을 호출했다.
이제 2학기 중간고사도 끝났겠다, 본격적으로 김한석에 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시험은 잘 봤나?
‘나름대로? 그보다 할 이야기가 있어.’
-뭐지?
‘김한석. 이젠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시험에 관한 이야기를 대충 마무리 짓고 곧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이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는지.
-안 그래도 시험이 끝나면 슬슬 대화를 나누려던 참이었다. 마침 잘됐군.
녀석은 군말 없이 내 요구에 응했다.
나는 녀석에게 오늘 실기 수업 때 들었던 2학기 기말 과정의 정보와 내 나름의 추론을 설명했다.
그러자 녀석은 평소 단도직입적인 성향답게, 곧장 사건의 전말을 밝혔다.
-김한석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시점은 2학기 수행평가로 추정된다.
‘추정된다는 건?’
-지금으로부터 대략 한 달 뒤니까, 시기상으로 봤을 때 기말고사는 아닐 거란 이야기다.
‘그렇다면 수행평가 때겠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재촉했다.
-녀석의 목적은 참사를 일으켜 점찍어 둔 먹잇감들에게 새로운 트라우마를 심는 거다.
‘새로운 트라우마?’
-환영 마법의 씨앗은 벌어진 틈새 속에 자리를 잡아 부정적인 기운을 바탕으로 성장하니까.
‘즉, 세뇌를 가속시키기 위해서다?’
-정확하다.
그림자 녀석의 설명에 납득하는 한편,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
‘그럼 지금은? 김한석이 목표로 삼은 인원들의 문제는 전부 해결했잖아?’
-그 부분에 대해선 두 가지 가설이 있다. 먼저 첫 번째는 최초의 목표물이 아니라 차선으로 삼은 이들의 세뇌를 가속시키는 거다.
‘가능성 있네. 그럼 두 번째는?’
-본래 목표했던 이들에게 새로운 트라우마를 심어 다시금 씨앗을 심고자 하는 시도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것도 일리가 있네.’
둘 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딱 그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갔다.
김한석의 목적을 추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를 제거하면 끝나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김한석의 목적보단 세부적인 움직임이었다.
내 물음에 그림자 녀석은 동의하며 설명을 이어 갔다.
-이번 기회에 내가 알고 있는 김한석의 구체적인 움직임, 그의 계획까지 전부 설명하겠다. 그리고.
‘그리고?’
-혼원현천신공의 진정한 묘리와 더불어 네게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나머지 요소들도 알려 주도록 하지.
‘나머지 요소라는 말은…….’
그림자 녀석이 김한석과의 결전을 위해 준비한 세 가지 능력, 그중 남아 있는 두 가지 능력을 의미했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속으로 되뇌었다.
‘그럼 준비가 끝난 거야?’
-최소한의 조건은 갖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