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안일한, 역시 재미있네
환영 마법.
마법의 한 갈래이자, 마음의 틈을 파고들어 은밀하게 작용해 최후에는 사람을 조종하는 해악.
그런 간악한 마법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를 묻는 말에 나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질문하는 대상이 바로 환영 마법의 사용자, 김한석인 탓이었다.
“…….”
말문이 막히고, 목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온몸의 감각이 아득해지는 가운데,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러고는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침착하자, 여기선 침착해야 해.’
반복해서 침착함을 주문하자 차츰 마음이 가라앉았다.
동시에 전신의 감각이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시야의 초점이 원래대로 돌아와 김한석의 웃는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속내를 알 수 없는 불길한 눈빛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살피고 있다.’
정확히는 내 반응을 살피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티를 내선 안 된다.
그리 생각하니 일순 온몸의 감각이 첨예하게 곤두섰다.
더불어 마음이 급해졌다.
과연 나는 표정을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지, 눈빛이나 입술이 떨리고 있는 건 아닌지.
엄습해오는 불안감 속에 나는 천천히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마법에 관한 내용은 따로 배운 적 없어서요.”
다행히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평이하게, 평소와 다름없이 무덤덤하게 흘러나온 것이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한편, 계속 김한석의 표정을 살폈다.
여전히 꺼림칙한 기운이 느껴지는 가운데, 그가 입을 열었다.
“……그런가요? 마침 잘됐네요.”
잘됐다니.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내용이었다.
“이 기회에 제대로 알아 두도록 하세요. 공격 마법 이외에도 마법의 종류는 다양하니까요.”
금방이라도 강의를 시작하려는 양,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순식간에 대화의 궤도가 건설적인 방향으로 돌아왔다.
그 사실에 소름이 끼쳤으나 최대한 내색하지 않은 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집중하겠습니다.”
“좋아요. 마법의 기원은 무공과 비슷하면서도 달라요. 스킬에서 비롯됐지만, 순수히 마나만을 활용하는 식의 마법도 존재하기 때문이죠.”
“그렇군요.”
“원리까진 알 필요 없어요. 다만 종류 정도는 알고 있어야 대처가 가능할 거예요.”
이어서 김한석은 몇 가지 마법의 종류를 언급했다.
보법과 비슷하게 순식간에 이동하는 이동 마법.
타인에게 간접적으로 피해를 주거나, 정신을 제어하는 식으로 해악을 끼치는 제어 마법 등.
제대로 된 설명을 이어 갔으나 나는 도저히 집중할 수 없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수업이 끝나면 이 문제에 대해서 그림자 녀석과 의논해 봐야겠어.’
머릿속이 온통 김한석의 질문으로 가득한 까닭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까, 그의 심화 수업은 오래지 않아 끝을 맺었다.
그는 싱글거리는 표정으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럼 잘 기억해 두세요.”
“네,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돌아섰다.
등 뒤에서부터 시선이 느껴졌으나,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걸음을 서둘렀다.
그러고는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수업에 참여했다.
…
…
…
같은 시각.
‘역시 아니었나?’
김한석은 생도의 무리에 뒤섞이는 안일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어서 그는 조금 전의 대화를, 특히 안일한의 표정과 미세한 반응을 떠올렸다.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지.’
환영 마법에 관해 뭔가를 알고 있었다면 당황했을 터.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반대로 환영 마법을 아예 모른다면 질문하는 저의조차 모를 테니, 놀라는 것도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느낌도 아니었다.
그저 평소처럼 무표정하고, 무덤덤할 뿐이었다.
때문에 더더욱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둘 다 아니라면…….’
만일 알면서도 모르는 척을 하는 거라면.
이 또한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상대는 17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일개 생도였다.
‘내 정체를 알고, 환영 마법의 위험성까지 알고 있는 마당에 그만한 연기를 한다?’
어불성설이었다.
만일 그게 가능하다면 안일한은 초인을 할 게 아니라 배우를 해야 마땅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김한석은 방금 떠올린 가능성을 지울 수 없었다.
‘……안일한, 역시 재미있네.’
호기심을 해결하려고 벌인 일이었으나, 도리어 호기심이 증폭되어 버렸다.
김한석은 몸을 일으키며 생각했다.
‘좀 더 찔러 볼까.’
어차피 그에겐 리스크가 없었다.
만일 안일한이 환영 마법을 알고 있고, 심지어 그 자신의 정체까지 알고 있다고 한들 그랬다.
물증이 없는 건 물론, 심증조차 희박할 터.
그런 상황에서 일개 생도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따라서 김한석은 조금 더 유희를 즐기고자 했다.
‘환영 마법의 씨앗을 미리 발견하고, 제거하는 쪽으로 움직인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좀 떨어지는 녀석들을 통해 실험하는 식으로…….’
생각을 거듭하는 가운데.
김한석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한층 더 진해졌다.
* * *
그날 저녁.
나는 저녁도 거른 채 기숙사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곧바로 그림자에게 대화를 청했다.
‘잠깐 일어나 봐.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다행히 녀석은 오래지 않아 내 호출에 응답했다.
-무슨 일이지?
‘김한석이 나한테 환영 마법을 알고 있냐고 물어봤어.’
-……!
내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림자 녀석은 침묵했다.
반응을 보아하니, 녀석 또한 김한석의 행동을 예상치 못한 모양이었다.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만큼 나는 차분하게 대답을 기다렸다.
이윽고 그림자는 천천히 대답했다.
-상황 자체는 무사히 끝난 모양이군.
‘어떻게 알았어?’
-네가 침착하게 설명하고 있으니까.
상당히 날카로운 추리였다.
나는 얌전히 긍정하며 김한석의 질문부터 내가 했던 대답까지, 그림자 녀석에게 상세하게 설명했다.
자초지종을 전부 들은 녀석은 나직하게 침음을 흘렸다.
-침착함은 높이 살 만하군. 잘했다.
‘나도 내가 어떻게 평정심을 유지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남아 있다.
‘뭔데?’
-어떤 추리 과정을 거쳐서 너에게까지 도달했는지. 그 부분이 마음에 걸리는군.
타당한 반응이었다.
나 역시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김한석이 누군가 환영 마법의 씨앗을 제거하고 있다는 사실까진 어떻게든 알아차릴 수 있을 거라 본다.
‘뭐, 당사자니까. 자신이 발휘한 마법의 상태를 모른다는 쪽이 말이 안 되겠지?’
-그래. 문제는 그 상태에서 너를 의심하게 된 경위를 잘 모르겠다는 거다.
그림자 녀석은 가만히 중얼거리며 침묵했다.
나 역시 잠깐 생각해봤으나 뾰족한 답이 안 나왔다.
그래서일까.
-우선 경위 문제는 제쳐 두고 생각하도록 하지.
그림자 녀석은 본질에 집중할 것을 제안했다.
이는 다름 아닌 향후 대책에 관한 부분이었다.
-지금까지 네게 문제 해결을 요청한 이들은 먼 훗날 커다란 재앙을 초래하게 될 인원들이다.
‘그런데?’
-그래서 필수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했고, 따라서 나는 마땅한 계획과 수단을 가지고 있었지.
‘계속해.’
-그걸 네 도움을 바탕으로 최선의 형태로 해결한 지금, 더 이상 환영 마법은 신경 쓰지 않을 거다. 정확히는 추가적인 계획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림자 녀석의 설명에 문득 이질감이 느껴졌다.
나는 꺼림칙한 기분을 뒤로한 채 되물었다.
‘그럼 만약 김한석이 추가적으로 누군가에게 환영 마법을 시전한다면?’
-거기까진 고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처럼 김한석이 너를 의식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고려하지 않을 거다.
‘……!’
녀석의 단호한 대답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즉, 만에 하나 다른 피해자가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할 생각이 없다는 뜻과 다름없는 까닭이었다.
그제야 나는 꺼림칙한 감정의 정체를 깨달았다.
이런 내 속내를 읽은 건지, 그림자 녀석은 나직한 어조로 설명을 덧붙였다.
-내가 아는 미래에선 발생하지 않았던 일이기 때문에 고려하지 않은 거다.
‘……그럼 앞으로도 고려하지 않을 거라는 건?’
-네 안전이 더 중요하다는 게 첫 번째고, 일일이 해결할 수 없다는 게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는 결전의 날에 김한석을 제거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 그런 거라면…….’
충분히 납득이 되는 설명이었다.
지금이라면 내가 김한석의 정체와 환영 마법을 알고 있다 한들, 어떻게 손쓸 도리가 없다.
하지만 그가 움직여 일을 벌이고, 정체를 드러낸 다음이라면.
그리고 그의 정체를 아카데미 측에서도 알게 된다면.
틀림없이 아카데미 차원에서 무언가 조치가 취해질 터였다.
‘애초에 환영 마법의 씨앗은 발아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니까?’
-바로 그렇다.
그제야 마음속에 남아 있던 꺼림칙한 감정이 전부 해소가 됐다.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금 향후 대책 논의에 집중했다.
잠깐 생각해 본 결과.
‘……딱히 추가적인 행동을 할 수도, 해서도 안 될 것 같은데. 넌 어떻게 생각해?’
단순한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김한석에게 더 이상 의심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는 것만이 지금의 내가 해야 할 일인 까닭이었다.
의외로 그림자 녀석도 내 말에 동의를 표했다.
-내 생각도 그렇다. 그게 최선이다.
‘만일 내가 친구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씨앗을 제거한 거로 의심을 했다고 가정하면 앞으로는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그림자는 백유진의 문제를 끝으로 더 이상 타인의 문제 해결은 없다고 단언했다.
즉, 이제 더는 김한석의 눈에 띄는 움직임을 취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김한석 또한 내게서 추가적인 단서나 의심의 여지를 발견할 수 없을 터였다.
‘그럼 결국 최대한 주의하면서 다가올 결전에 대비하는 것만이 최선이려나?’
-단련에 힘쓰고, 성장하는 것. 거기에만 집중하면 될 거다.
‘하기야, 이제 2학기 중간고사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나는 한숨을 내쉬며 2학기 중간고사까지 남은 시간을 헤아렸다.
대략 3주 정도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당분간 스텟 단련에 집중해야 한다면.’
이는 시험 대비와도 맥이 닿아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머릿속을 정리하며 슬슬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일단 알겠어. 앞으로도 김한석의 동향은 공유할게.’
-부탁하지.
녀석의 대답을 끝으로 대화는 끝을 맺었다.
가벼운 두통 속에서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막 저녁 8시가 되어 가는 시점이었다.
‘아직 여유가 있으니까.’
머리를 식힐 겸, 스텟을 단련하며 땀을 좀 빼고 오자.
나는 판단 즉시 기숙사를 벗어났다.
* * *
그림자 녀석과 대책을 논의한 이후, 나는 꽤나 충실한 나날들을 보냈다.
수업 시간에는 수업에 집중하고, 남은 시간에는 온전히 스텟 단련에 매진한 것이다.
그 와중에 김한석의 동향도 틈틈이 살폈으나, 의외로 그는 특별히 수상한 점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는 단지 보이는 행동에 국한된 이야기로, 실상은 조금 달랐다.
‘……저 기운은.’
생각지도 못한 이들에게서 환영 마법의 기운을 목격한 것이다.
혼원현천신공을 매 순간 운용하며 기감이 보다 날카로워진 덕분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눈에 띄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철저히 무시했다.
그래서인지, 가면 갈수록 김한석의 관심도 서서히 옅어져 갔다.
그렇게 시간이 쏜살같이 흐른 끝에.
“지금부터 2학기 중간고사를 실시한다. 책상을 비우고, 시험지를…….”
나는 무탈하게 2학기 중간고사를 맞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