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또다시 성장할 때가 됐다
동기화율이 40%를 달성한 순간.
보다 과거의 자신에 가까워지는 감각 속에서 그림자는 천천히 눈을 떴다.
“……!”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마치 군데군데 공백으로 남아 있던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특히 두루뭉술하게 기억하고 있던 사건의 전말, 디테일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새겨졌다.
‘……40%를 달성했나.’
그림자는 지끈거리는 두통 속에서 변화를 헤아렸다.
분별력의 강화, 기억의 회복 등.
유용한 변화가 여럿 있었지만 그중 핵심은 다름 아닌 미래시(未來視)의 편린이었다.
‘온전한 미래시도 아니고, 고작 편린이건만.’
이는 지금까지의 동기화율 상승에 따른 변화와는 차원이 다른 두통을 선사했다.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다른 기억들과는 달리 미래시의 편린만큼은 그림자의 것이 아닌 까닭이었다.
미래시에 따른 정보는 외부에서 주입된 정보, 이를테면 타인의 기억이었다.
때문에 떠올리는 것만으로 두통이 심했지만.
‘……슬슬 김한석과의 결전을 준비해야 하니까.’
그림자는 목적을 위해 기꺼이 감내했다.
결전까지 대략 한 달 조금 안 남은 까닭이었다.
고통을 감수하고 기억을 더듬은 덕에 제법 유익한 정보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더불어 그림자는 김한석을 상대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을 헤아렸다.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해.’
다름 아닌 안일한의 성장, 그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주어진 시간 내 이룰 수 있는 요소는 총 세 가지였다.
이를 떠올리며 그림자는 기숙사를 빠져나갔다.
그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스텟 단련실이었다.
“오, 일한이! 오랜만에 스텟을 단련하러 온 건가?!”
임강철이 반가운 낯으로 맞이해 주는 가운데.
그림자는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력 단련실을 향해 갔다.
그는 텅 빈 단련실 내부의 중앙으로 다가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두 눈을 감은 채로 안일한의 의식을 깨웠다.
‘일어나라.’
속으로 되뇌자 오래지 않아 안일한이 대답했다.
-기다리고 있었어. 알려 줄 게 있었거든.
마침 할 말이 있었는지, 녀석은 빠르게 반응했다.
‘뭐지?’
-백유진에 관한 이야기야. 문제는 전부 해결된 것 같고 환영 마법의 기운도 상당히 약해져 있었어.
‘혼원현천신공으로 확인한 건가?’
-어.
‘그렇다면 확실하겠군.’
그림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해들은 내용을 머릿속으로 갈무리하는 한편.
생각해 둔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다음은 김한석과의 결전이다.’
-……역시 그렇겠지.
이미 예상하고 있었는지, 안일한은 살짝 굳은 낯으로 대답했다.
게다가 마음의 준비도 어느 정도 끝마친 모양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그래서, 대책은?
곧바로 대책을 질문해 왔다.
물론 그림자는 김한석과의 결전을 위한 나름의 계획을 갖춘 상태였다.
하지만 계획을 밝히기에 앞서 다른 화두를 먼저 제시했다.
‘그건 나중에 알려 주겠다. 그보다 먼저 알려 줄 게 있으니까.’
-알려 줄 거라니?
‘김한석이 움직이기까지 대략 한 달 조금 안 남았다는 건 알고 있겠지.’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다음, 기말 시즌부터 움직인다고 했었나?
‘그래. 그러니 남은 시간 동안 준비해야 할 일이 있다.’
-뭔데? 이야기해 봐.
‘강해지는 것. 또다시 성장할 때가 됐다.’
-……!
안일한은 일순 놀라는가 싶더니, 곧장 흥미를 보였다.
-이번엔 뭐지? 여태까지 받은 것들도 하나같이 엄청난 것들이라 쉽게 상상이 안 되는데.
‘총 세 가지다.’
-……세 개나 된다고?
의아한 기색으로 되묻는 안일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고차원의 스킬이라면 분명 역량 증진에는 도움이 될 테지만, 무공이 늘어난다고 해서 김한석을 상대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는데.
스킬은 어디까지나 도구였다.
고차원의 무공이 강대하다 한들, 결국은 사용자의 재량에 따라 위력은 결정되기 마련이었다.
더욱이 김한석은 교관인 만큼 스텟의 격차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제법 날카로운 지적이다. 그림자는 그리 생각하며 차분하게 답했다.
‘결국 스킬의 가짓수를 늘리기보단 숙련도나 기초 체급을 키우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 그런 의미인가?’
-정확해.
그림자의 물음에 안일한은 순순히 수긍했다.
‘네 말이 맞다. 확실히 지금 당장 고차원의 스킬 한두 가지를 더 익힌다고 한들, 그것만으론 김한석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 네가 말한 세 가지는 대체 뭐지?
‘기존의 스킬을 강화하거나, 상위 호환이라 할 수 있는 스킬로 대체하는 것. 마지막으로 새로운 무공까지 해서 총 세 가지다.’
-스킬 강화, 상위 호환으로 대체, 그리고 새로운 무공이라…….
‘이 세 가지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게 뭐지?
‘체급을 키워야 한다는 점이지. 네가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실제로 그림자가 떠올린 요소들은 전부 일정 수준 이상의 체급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즉, 스텟의 성장이 바탕이 되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위력이 발휘되는 것이다.
오늘 무기 훈련실이 아니라 스텟 단련실을 찾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당분간 나는 스텟 단련에 매진할 거다.’
-스텟 단련이라면, 마력 스텟?
‘마력 스텟을 포함한 모든 스텟이다.’
-모든 스텟을 단련하는 건가. 상당히 오랜만이네.
안일한은 어딘가 그리운 뉘앙스로 중얼거렸다.
실제로 근력, 민첩, 체력 스텟의 단련은 동기화율이 낮아 행동의 제약이 있던 시기에만 집중했을 뿐.
어느 정도 기억과 행동의 제약이 풀린 이후부터는 줄곧 마력이나 무공 단련을 위주로 했다.
‘여태까진 그렇게 해도 충분했지만 앞으로는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단순한 이야기지.’
-그러게, 단순하네. 그래서? 나는 뭘 하면 되는데?
‘먼저 기존의 스킬을 강화하는 것부터 진행하는 거로 하지. 나머지는 스텟이 어느 정도 받쳐 줘야 할 테니까.’
-스킬 강화라……. 어떤 스킬이지?
‘혼원현천신공이다.’
-혼원현천신공? 이미 S급 스킬인데 거기서 더 강화할 수 있는 거야?
안일한의 물음에 그림자는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정확히는 혼원현천신공의 진정한 묘리를 이끌어내는 거다. 그게 결과적으론 강화로 이어질 테니까.’
-진정한 묘리라면, 현천강기 때와 비슷한 건가?
‘수련의 형태는 비슷할지도 모르겠군.’
그림자는 나직하게 대답하며 방법을 설명했다.
생각보다 간단한 까닭에 설명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정말 그걸로 충분한 거야?
안일한은 의아한 기색으로 되물었다.
그림자는 고개를 끄덕여 주는 한편, 슬슬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결국 이번 과제는 스텟 단련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후 성취를 봐서 적당한 시기에 다음 과제를 알려 주는 거로 하지.’
-알겠어.
안일한의 대답을 끝으로 그림자는 눈을 떴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한번 생각을 정리했다.
‘혼원현천신공의 묘리 수련은 녀석에게 맡기고, 나는 그럼…….’
우선 기본적인 스텟 단련부터 시작하자.
그리 마음을 먹고 마력 단련실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또다시 임강철이 그림자를 맞이했다.
“오, 마력 단련은 벌써 끝인가?!”
“어.”
“그럼 돌아가는 건가? 오늘은 꽤나 일찍 들어가는군!”
“아니, 다른 스텟들을 단련할 거다.”
그림자는 대답과 함께 임강철의 근처에 적당히 자리를 잡았다.
그 모습에 임강철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별일이군! 상당히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데?!”
“필요할 것 같아서.”
실제로 그랬다.
‘S급 스킬의 진정한 위력을 끌어내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스텟이 뒷받침되어야 하니까.’
그중 혼원현천신공의 수련 방식이 비교적 간단한 축에 속했다.
마력 스텟의 수련을 안일한에게 맡긴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림자는 나머지 두 가지 요소를 위한 단련에 임할 생각이었다.
그 정도로 정리하고 있을 때.
“그럼 같이하지! 힘내 보자고!”
임강철이 옆에서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림자는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단련에 집중했다.
* * *
다음날, 7교시.
“그럼 교관님, 저는 다시 수업에 복귀하겠습니다.”
백유진의 인사에 김한석은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러고는 웃는 낯으로 마주 인사를 건넸다.
“그래요. 앞으로의 활약도 기대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끝으로 백유진은 다른 생도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완전히 멀어진 순간 김한석의 표정이 일변했다.
웃음기가 사라지고, 눈빛에는 불길한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백유진에게 심어 놓은 씨앗도 맥을 못 추고 있을 줄이야.’
김한석은 오윤서와 더불어 백유진에게도 환영 마법의 씨앗을 심어 뒀다.
그 씨앗은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백유진의 체내에서 미세하게나마 몸집을 부풀리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확인한 결과, 눈에 띄게 약화된 상태였다.
추측건대 원인은 정신력의 회복인 듯했다.
다만 그 정도로 납득하고 넘어가는 건 불가능했다.
‘오윤서에 이어서 백유진도 마음의 틈새가 메워졌다. 이게 우연이라고?’
너무나도 공교로운 타이밍, 바로 그 부분이 문제였다.
게다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점이 존재했다.
‘분명 생기부도 파악했고, 면담을 통해 확신까지 했어.’
김한석은 먹잇감을 노릴 때 무턱대고 접근하는 법이 없었다.
교관의 직권을 십분 활용하여 다각도로 먹잇감을 파악, 분석하고 파고들 틈을 찾았다.
그다음에야 씨앗을 심었으니, 여태 실패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올해는?
현시점에서 봤을 때 전부 실패나 다름없었다.
이는 그가 교관으로 위장한 이래로 처음 겪는 일이었다.
‘……재미있네.’
김한석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무엇이 문제인지.
그는 머릿속으로 생각을 거듭했다.
‘만약에 누군가가 내 정체를 알고 있다면…….’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김한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무나도 현실성이 없는 까닭이었다.
차라리 그의 정체가 아니라 환영 마법의 존재를 들킨 쪽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마저도 희박하겠지만.’
그는 결코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게다가 이는 벌써 수 년째 하고 있는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흔적을 들킬 정도로 어쭙잖은 실력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원인이 뭘까.’
진한 미소와 함께 생각에 골몰하고 있을 때.
불현듯 한 사람이 그의 뇌리를 스쳐 갔다.
‘안일한.’
정확히는 지금으로부터 며칠 전, 안일한이 백유진과 함께 찾아왔던 순간이 떠올랐다.
만일 녀석이 백유진의 문제를 해결했다면?
이마저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아예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라는 건데.’
그 부분에서 막혔다.
김한석은 의자에 몸을 깊게 파묻듯, 등을 뒤로 젖히며 생각했다.
‘환영 마법을 알고 있다? 설마, 그럴리가.’
김한석은 생각과 함께 실소를 흘렸다.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추측이었다.
그럼에도 자꾸 안일한의 존재가 밟혔다.
‘이유가 뭘까. 아니, 그 전에.’
여태까지 일개 생도에게 이렇게 집착한 적이 있던가.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김한석의 미소가 한층 더 진해졌다.
그는 슬쩍 고개를 돌려 시간을 확인했다.
7교시가 끝나기까지 대략 십여 분 정도 남은 상태였다.
‘마침 8교시가 A반 수업이었지.’
공교롭게도 다음 수업이 A반, 안일한이 속해 있는 반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가닿은 순간 김한석은 굉장히 재밌는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렸다.
‘직접 떠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거듭 생각해도 안일한에 관한 가능성은 정말이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런 이성적인 생각과는 별개로 호기심이 동했다.
그리고 김한석은 호기심 같은 건 빨리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마음 속에서 흥미가 강렬하게 들끓는 가운데.
“빨리 시간이 갔으면 좋겠네.”
김한석은 즐거운 마음으로 8교시가 시작되길 기다렸다.